"알잖아 대충. 이제 내 인생에 로또라도 맞지 않는 다음에야 대충 이렇게 살다 가겠다는거. 이제 점점 더 좆같아지면 좆같아졌지, 더 좋아질 일은 없다는거. 그게 느낌이 딱 오잖아. 나이 먹으면. 니도 이제 대충은 감이 오잖아?"
내 어깨를 툭 치며 하는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게 조금은 씁쓸했다.
"근데 말이야, 근데 그러면 사람이 뭔 짓을 하게 되냐면, 자꾸 지가 제일 잘나갔을 때 생각을 하게 돼. 하 그때는 내가 진짜 가능성이 있었는데, 그때는 막 내가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 그때는 돈이 막 이렇게 들어왔는데, 그때는 다들 내가 하는 말에 막 빵빵 웃음이 터졌는데, 뭐 그런 생각. 기집 년들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기로 했다. 콧물을 훔친 그는 대충 양복 주머니에 손을 문지르려다 겨우 테이블 구석에서 티슈를 집어 닦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반복하는거지. 지 주변에 잘나보이고 싶은 사람한테 계속 그 이야기만 하는거야. 평생을. 꼰대들 하던 짓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더라니까. 처음에는 그래도 집에 가는 길에 문득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아 이러지 말아야겠다' 생각이라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새로운 사람이 나한테 말 한 마디만 친근하게 건내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거야. 미친 놈이지. '내가 이러이러한 놈이었는데, 뭐, 알아두라고' 하는 마음이랄까. 근데 또 그래. 처음에는 다들 웃어주고, 감탄하고, 이것저것 더 캐물어보고, 호감도 갖고. 아직은 쓸만한거지. 그 과거의 추억들이. 내 인생에 제일 맛있는 부분, 액기스 같은 이야기니까. 재밌고, 요긴하다고. 하지만 그게 어느 시점이 되면 빛, 빛이 바래"
빛이 바랜다는 말이 나올 즈음에야 나는 그의 목이 칼칼해졌음을 느끼고 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물론 그는 방금 전처럼 바로 비웠다.
"후우, 아는 거지. 이 이야기가 정말로 쓸만한 이야기인지 아닌지를. 어디가서 이랬대 저랬다, 하면서 나도 남한테 한번 들려줄만한 재미나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꼰대가 좋은 시절 생각하며 헛소리 하는건지. 그런 시점이 되면 볼짱 다 본거지. 그리고 지금 내가 그렇고"
주문했던 소세지 안주는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고, 나는 이걸 주문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을 해봐야 되는지 아니면 그냥 무시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근데! 이거 하나는 알아둬도 좋은 이야기야. 꼰대의 충고라고 해도 좋은 이야기인데… 나도 꼰대한테 들은 이야기야. 그런데 생각은 나더라고. 남자는 말이야, 그러니까 나처럼 꼰대가 되었을 때… 딱 인생을 뒤돌아봤을 때…크후…"
그는 조금 힘들어 보였다.
"뒤돌아 봤을 때, 잘난 구석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아무리 상등신 비응신이라도 좋은 시절 이야기 하나쯤은 다 있으니까. 다 있다고, 그런거 쯤은. 저어기 영등포 굴다리 밑의 노숙자 아저씨들도 다 있어 그런건. 근데 문제는, 뒤돌아 봤을 때 부끄러운 기억이 없어야 돼. 실패한 기억 말고, 내가 모자라서, 내가 부족해서 망한거 그런거 말고, 그냥 부끄러운거. 내가 암만 되바라진 새끼라도 진짜 이런 짓까지는 하지 말았어야 되는건데, 하는 그런 기억 말이야. 그런건 있으면 안돼. 그런게 있으면 쓰레기가 되어 버리는거야. 아무리 한때 잘난 새끼라도."
나는 잔을 채워주는 대신 물었다.
"아저씨는 어떤데요"
내 질문에 그는 피식 웃더니 또 크허허헝 하며 코웃음을 길게 친다.
"나는… 뒤돌아 보면…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뒤돌아 보는거 자체가 무서워. 힐끗힐끗 눈길만 줘도, 당장이라도 목 메달아 죽어버리고 싶은 부끄러워 뒤지고 싶은 기억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더 좋았던 시절에만 집중하는거야. 다른 데는 눈길조차 안 주고. 아예 못 주는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잔을 채우고 말했다.
"저도 그래요. 못 보겠어요. 그럼 이제 그건 어떻게 극복하죠. 이미 쓰레기가 되어버린 새끼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그는 꽤 오랜 시간 이런 말 저런 말을 찾는 듯 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없어, 그런 방법은"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새삼 피곤함과 취기를 함께 느낀다.
"한번 쓰레기는 영원한 쓰레기?"
그는 잔을 또 한번 채우고 비우며 말했다.
"그래도 재활용 쓰레기라면, 아직은 길이 있잖아. 안 그래?"
난 피식 웃고 되물었다.
"아저씨는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난 이미 음식물 쓰레기 수준이지. 냄새나고, 보기도, 만지기도 싫고. 어디 한 방울이라도 튀면 누가 치우던지 비가 오던지 하기 전에는 두고두고 냄새 풍기고, 아주 여러 사람 애 먹이는, 좆같은 음식물 쓰레기"
이제는 자학으로 넘어가나 싶어서 슬슬 집에 가야겠다 하는 순간, 그는 "으, 취한다. 이젠 집에 가야겄다" 라는 말과 함께 묘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래도 음식물 쓰레기도 잘만 묵히면, 퇴비가 되지 않겠냐? 안 그냐?"
그리고 생각했다.
"가시죠"
나도, 스스로를 음식물 쓰레기 수준이라고 적당히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내 어깨를 툭 치며 하는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게 조금은 씁쓸했다.
"근데 말이야, 근데 그러면 사람이 뭔 짓을 하게 되냐면, 자꾸 지가 제일 잘나갔을 때 생각을 하게 돼. 하 그때는 내가 진짜 가능성이 있었는데, 그때는 막 내가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 그때는 돈이 막 이렇게 들어왔는데, 그때는 다들 내가 하는 말에 막 빵빵 웃음이 터졌는데, 뭐 그런 생각. 기집 년들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기로 했다. 콧물을 훔친 그는 대충 양복 주머니에 손을 문지르려다 겨우 테이블 구석에서 티슈를 집어 닦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반복하는거지. 지 주변에 잘나보이고 싶은 사람한테 계속 그 이야기만 하는거야. 평생을. 꼰대들 하던 짓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더라니까. 처음에는 그래도 집에 가는 길에 문득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아 이러지 말아야겠다' 생각이라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새로운 사람이 나한테 말 한 마디만 친근하게 건내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거야. 미친 놈이지. '내가 이러이러한 놈이었는데, 뭐, 알아두라고' 하는 마음이랄까. 근데 또 그래. 처음에는 다들 웃어주고, 감탄하고, 이것저것 더 캐물어보고, 호감도 갖고. 아직은 쓸만한거지. 그 과거의 추억들이. 내 인생에 제일 맛있는 부분, 액기스 같은 이야기니까. 재밌고, 요긴하다고. 하지만 그게 어느 시점이 되면 빛, 빛이 바래"
빛이 바랜다는 말이 나올 즈음에야 나는 그의 목이 칼칼해졌음을 느끼고 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물론 그는 방금 전처럼 바로 비웠다.
"후우, 아는 거지. 이 이야기가 정말로 쓸만한 이야기인지 아닌지를. 어디가서 이랬대 저랬다, 하면서 나도 남한테 한번 들려줄만한 재미나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꼰대가 좋은 시절 생각하며 헛소리 하는건지. 그런 시점이 되면 볼짱 다 본거지. 그리고 지금 내가 그렇고"
주문했던 소세지 안주는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고, 나는 이걸 주문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을 해봐야 되는지 아니면 그냥 무시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근데! 이거 하나는 알아둬도 좋은 이야기야. 꼰대의 충고라고 해도 좋은 이야기인데… 나도 꼰대한테 들은 이야기야. 그런데 생각은 나더라고. 남자는 말이야, 그러니까 나처럼 꼰대가 되었을 때… 딱 인생을 뒤돌아봤을 때…크후…"
그는 조금 힘들어 보였다.
"뒤돌아 봤을 때, 잘난 구석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아무리 상등신 비응신이라도 좋은 시절 이야기 하나쯤은 다 있으니까. 다 있다고, 그런거 쯤은. 저어기 영등포 굴다리 밑의 노숙자 아저씨들도 다 있어 그런건. 근데 문제는, 뒤돌아 봤을 때 부끄러운 기억이 없어야 돼. 실패한 기억 말고, 내가 모자라서, 내가 부족해서 망한거 그런거 말고, 그냥 부끄러운거. 내가 암만 되바라진 새끼라도 진짜 이런 짓까지는 하지 말았어야 되는건데, 하는 그런 기억 말이야. 그런건 있으면 안돼. 그런게 있으면 쓰레기가 되어 버리는거야. 아무리 한때 잘난 새끼라도."
나는 잔을 채워주는 대신 물었다.
"아저씨는 어떤데요"
내 질문에 그는 피식 웃더니 또 크허허헝 하며 코웃음을 길게 친다.
"나는… 뒤돌아 보면…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뒤돌아 보는거 자체가 무서워. 힐끗힐끗 눈길만 줘도, 당장이라도 목 메달아 죽어버리고 싶은 부끄러워 뒤지고 싶은 기억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더 좋았던 시절에만 집중하는거야. 다른 데는 눈길조차 안 주고. 아예 못 주는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잔을 채우고 말했다.
"저도 그래요. 못 보겠어요. 그럼 이제 그건 어떻게 극복하죠. 이미 쓰레기가 되어버린 새끼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그는 꽤 오랜 시간 이런 말 저런 말을 찾는 듯 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없어, 그런 방법은"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새삼 피곤함과 취기를 함께 느낀다.
"한번 쓰레기는 영원한 쓰레기?"
그는 잔을 또 한번 채우고 비우며 말했다.
"그래도 재활용 쓰레기라면, 아직은 길이 있잖아. 안 그래?"
난 피식 웃고 되물었다.
"아저씨는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난 이미 음식물 쓰레기 수준이지. 냄새나고, 보기도, 만지기도 싫고. 어디 한 방울이라도 튀면 누가 치우던지 비가 오던지 하기 전에는 두고두고 냄새 풍기고, 아주 여러 사람 애 먹이는, 좆같은 음식물 쓰레기"
이제는 자학으로 넘어가나 싶어서 슬슬 집에 가야겠다 하는 순간, 그는 "으, 취한다. 이젠 집에 가야겄다" 라는 말과 함께 묘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래도 음식물 쓰레기도 잘만 묵히면, 퇴비가 되지 않겠냐? 안 그냐?"
그리고 생각했다.
"가시죠"
나도, 스스로를 음식물 쓰레기 수준이라고 적당히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방사성 폐기물 같은게 아닐까. 푸르스름하니 특이하게 빛나는. 그래서 신기해서, 좋은 건 줄 알고 다가온 사람들을 망치고, 병신 만드는, 다가서는 모든 사람을 상하게 만드는, 도저히 어떻게 처지할 방법도 없는 그런 쓰레기 중의 쓰레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