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쓸 자서전에는
누구의 자서전처럼 고생 끝의
성공 자랑으로 가득차 있지도 않고
누구의 자서전처럼 똥도 안 누고
섹스도 안 할 것 같은 사람이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내 자서전에서 독자들은
너무나 고상한 지식인 사회에
섞여 살며 힘들어 했던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슬퍼하는 사람과
으리으리한 교회 앞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
가슴 먹먹해 하는 사람과
사람은 누구나 관능적으로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그것으로 너무나 불이익을 당했기에
과거의 집필생활을 후회하는 사람도
독자들은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쓸 자서전에는
나의 글쓰기는 이랬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장면이 담겨있을 것이다
우선 손톱 긴 여자가 좋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그리고 야한 여자들은
못 배운 여자들이거나 방탕 끝의 자살로
생(生)을 마감하는 여자여야 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라는 즐겁지 않았어야 했다고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는
소설 속 여자이어야 했다고
나의 고된 삶 속에서
그나마 한줌 상상적 휴식이 돼주었던
그녀와 나의 잠자리가
타락이었다고 그래서 반성한다고
- <내가 쓸 자서전에는> 故 마광수
저승이나 내세를 믿지 않는 분으로 알고 있기에 '다음 생에는'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위선적이고 우매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 고단한 수모를 당한 것을 뒤늦게나마 통탄스러운 마음으로 위로 드립니다. 항상 진심으로 존경했습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