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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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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태는 기본이야 기본! 어? 출근시간 툭하면 지각이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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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은 아주 오늘은 벼르고 벼렸다는 듯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정신들이 있어없어? 어? 지금 김성원 대리, 이번 달에 지각 두 번, 9시 2분 9시 8분, 조혜리 주임 이번 달 지각 여섯 번, 2분 3분 8분 5분… 서아름씨 지각 한번, 9시 15분, 이 날은 아팠던 그 날인가? 최정민씨, 아주 상습범이야. 말 안 해도 알지? 강가을씨, 지각 두 번…지각 없는건 윤 과장이랑 인턴 한서정씨 둘 뿐이네"

인사팀에 말해서 출근 기록까지 뽑아놓고 작정하고 사원들을 닥달한다.

"근태는 기본이야 기본! 어? 출근시간 툭하면 지각이고 말이야. 이게 근본이 안되어 있는거야 근본이. 출근시간 왜 있어? 9시까지 해놓으면 9시까지 출근하는게 맞아? 늦어도 8시 50분까지는 와서 자리에 앉아야 되는거 아냐? 오자마자 바로 일해? 다들 뭐 화장실도 한번 다녀오고, 화장도 한번 고치고, 담배도 한 대 피우고, 커피도 타고, 다들 바쁘잖아? 그럼 실제 업무시간은 9시 10분 20분은 되야 시작하는거 아냐? 회사 돈 공짜로 벌어? 어?"

어느새 칼칼해진 목을 축이기 위해 물 한잔을 마신 그는 종이컵을 탁! 하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말이야, 뭐 내가 나이 먹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아침 6시 반이면 눈이 딱 떠져. 준비하고 일찍 나와서 여유있게 와서 가볍게 운동하고, 그래도 8시 20분이야. 다 나처럼 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최소한 기본은 하라는 이야기지"

시계를 흘낏 본 그는 마지막으로 단단히 경고하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앞으로 지각 3회 이상이면 시말서 받을거고, 인사고과에 칼같이 반영할거야. 분명히 알아둬. 근태는 약속이야 약속!"






약속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가운데, 점심시간이 지나고 1시 반이 되자, 김부장은 계약직 서아름을 회의실로 호출했다.

"뭐 다른건 아니고, 이제 슬슬 아름씨가 온지 거의 한 2년 됐지?"

그렇잖아도 신경쓰이던 이야기를 이제서라도 꺼내자 아름의 얼굴은 긴장 속에서도 밝아진다.

"네"

그러나 마치 반전의 클리셰를 연출하기라도 하듯, 김부장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썹을 긁적이며, 눈 앞의 서류를 몇 장 훑어보다 입을 열었다.

"길게 이야기해봤자 서로 입장만 난처하고… 여튼, 회사 사정상 이번에 전환이 어려울 것 같아"

아름의 표정이 순간 흙빛으로 변한다. 충격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약 3~4초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물었다.

"분명히 올 초에, 부장님이 기대해도 좋을거라고 하셨는데…"

김부장은 눈빛을 슬그머니 피하며 대답한다.

"내가 그랬나. 여튼, 올해 상반기 실적도 안 좋고, 아름씨 포지션도 지금 T.O 자체가 사라질 상황이라 어렵게 됐어. 뭐, 기대하게 했으면 미안하고, 한 두 어달 남았으니까, 아 이제 한달 보름 정도인가. 여튼 슬슬 알아봐야 할 것 같아"
"부장님"

그 유약하고 조용하던 아름이건만, 이제와서는 조금 할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저 지난 번 한섬 건 때도 정규직 전환 이야기 말씀하셔서 병원 다니면서도 계속 링겔 맞고 와서 일하고 9시 출근 밤 10시 퇴근 한달 내내 하면서도 한번도 불평불만한 적 없는데요, 이제와서 이렇게 말씀하시면, 이건 아니죠"

김부장도 거기에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나도 아름씨 열심히 한 거 모르는 바 아니고, 전환 관련해서 계속 어필했는데, 알다시피 우리 부서 올 상반기 실적 나가리 나고 지금 명퇴를 받겠다느니 말겠다느니 하는 판에 잘 안 됐어. 나도 미안해"

이후 몇 마디의 말을 덧붙였지만 아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진짜 부장님 어디 가셨어요?"

혜리 주임은 아까부터 발을 동동 구르다가 머리를 쓸어넘겼다. 희미한 향수 냄새가 성원 대리의 코를 스치고, 그는 움찔했지만 그저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모르죠, 우리 부장님 한번 자리 비우면 어디갔는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아 진짜 미치겠네"

오전 중으로 처리해서 넘겨야 되는 문서인데 결재처리가 안되어서 혜리는 당혹스러워하다못해 짜증을 부린다.

"아니 본인이 30분 빨리 나오면 뭐해. 나와서 하루에 몇 시간을 자리 비우는데"

그녀의 말에 모두 실소를 짓다가도, 가을이 슬쩍 귀뜸한다.

"지금 옆 파티션에 원실장님 와있어요"

김부장 영혼의 파트너, 밀어주고 끌어주고 89학번 서울대 라인 원이사의 등장에 다들 말소리를 줄인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혜리의 속은 끓어오를 뿐이다. 계약서 검토해야 되는거 생각하다가 문득 시말서에 다시 생각이 미쳤고, 2분 3분 지각 타령이 그저 우습게만 느껴졌다.




"아름씨 이야기 들었어요?"

정민의 말에 가을이 한숨을 쉬었다.

"들었어요. 진짜 미친거 아니에요? 아니 사람 그렇게 부려먹었으면 이건 진짜 어떻게든 챙겨줘야 되는거 아니에요? 아름씨 눈 팅팅 부었던데"
"내 말이. 링겔 맞아가며 일한 사람인데. 솔까 아름씨 아니었음 그거 일정 절대 못 맞추고 빵꾸 났어요. 당장 그럼 김부장 본인이 목 날아갈거 아름씨가 살려준건데, 사람을 그렇게 뒤통수를 치나"
"아 진짜 짜증나요"

가을은 고등어를 뒤집으며 말했다.

"아까 서정씨랑 아름씨 복도에서 둘이 이야기 하더라구요. 뭔 이야기 하는지는 안 물어봤지만 뻔하겠지. 솔직히 서정씨도 그 꼴 봤는데 할 마음이 들겠냐고. 링겔 맞아가며 일한 사람 계약 연장 안되는데, 인턴인 자기도 안되는거 알겠지"
"아 그랬어요?"
"이게 사람 기 죽이는거에요. 우리도 마찬가지고. 같이 일하면서 서로 얼굴 어떻게 봐요. 당장 다음 주에도 동명 브로셔 건 때문에 디자인실에서 이것저것 요구할텐데 아름씨 손 놓으면 우리 아무도 그거 처리 안되요. 우린 우리대로 창원 행사도 준비해야 되는데"
"아 모르겠다 진짜"

정민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후 다시 자세를 바로 잡으며 방석을 고쳐 앉은 그는 물었다.

"아니 근데 진짜 아름씨 나가고 나면 그 업무 이제 누가 봐요?"
"몰라요, 혜리 주임이 하던가, 아니면 윤 과장님이 다시 잡겠지"
"아 말도 안돼. 진짜 망하겠네"
"아마 원래는…"

살짝 운을 뗀 가을은 자신의 추측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마 원래는 서정씨를 아름씨 대타로 삼을라고 뽑은걸거에요. 인턴이 계약직보다 싸게 먹히니까. 새미 주임님 나간 것도 서정씨로 떼우려고 한 거고"
"헐"

정민은 길게 뜯어진 고등어 껍질을 스윽 들어올린다. 참으로 맛나보이는 노릇한 고등어 껍질에 가을이 "어!" 하고 아쉬워 하는 순간, 정민은 그대로 그것을 가을 앞으로 슥 가져다놓는다. 가을은 피식 웃고, 정민은 쑥쓰럽게 웃는다.




오후 2시 반, 윤과장은 쏟아지는 졸음과 싸우고 있다. 커피를 네 잔을 마셨지만 애초에 그게 먹힐 사람이 아니다. 간밤의 미드가 원수다. 아니 좀 더 말하면 위쳐3가 문제다.

"과장님, 그거 맞는지 한번 봐주세요"

혜리 주임의 말에, 깜빡이는 사내 메신저창을 뒤늦게 확인한다. 8분 전에 보낸 파일이다. 아 진짜 졸지 말아야지. 이게 매번 뭔 망신이냐. 하품을 연거푸 하며 엑셀 파일을 들여다보지만 눈 앞의 숫자는 이미 숫자가 아니라 암호다. 그저 혜리 주임에 대한 믿음이 그를 구원한다.

"응, 맞네"

사실 맞는지 안 맞는지도 모르겠다. 머리에 아무 것도 입력되지를 않는걸. 이렇게 흐리멍텅하게 일처리하다가 언제 한번 사고가 터져도 터지지 싶은데 적어도 현재까지는 멀쩡하다. 성원 대리와 혜리 주임이 있는 한 일단은 안심이다. 물론 그 둘이 있는 이상 언제 자리 뺏길지 모르겠지만.

"파일 숫자 맞나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정산팀에 넘기기 전에 성원 대리한테도 공유해 줘. 한번 봐보라고 해"
"…네"

성원 대리에게도 슬쩍 일을 걸쳐둔다. 이로서 안심이다. 하지만 혜리는 또 표정이 썩는다. 업무 토스에 분개하는 거겠지. 근데 지가 왜 짜증내. 언젠가부터 혜리 주임은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자격지심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그렇게 보인다. 당장 기분은 조금 나쁘지만, 그대로 냅두기로 한다. 그걸 제 3자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또 그런 모습 절대 용납 못하는 우리 부장님이 있는 한, 혜리 저 기집애는 대리 진급도 어려울거다.

가끔 보면 똑똑한 애들이 저런 바보 짓을 잘한다. 그저 지 똑똑한 줄만 알지 그 발톱 숨길 줄을 모르니까. 그저 지각 안 하고 안 튀고 술 잘 마시고 상사 써킹 잘하고 오래 엉덩이 붙일 줄 알고, 이거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나 어려운 것일까. 참 바보들 많다. 진짜 바보들.




"이거 싹 다 손봐야 될 거 같아"

오후 5시 반, 김부장이 벌개진 얼굴로 돌아온다. 뭐, 이제는 다들 그러려니 하지만 아름의 표정은 차갑다. 아마 더이상 이제 그녀에게서 혼이 담긴 야근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퇴근 시간대에 인접한 야근선언령이 얼마나 먹힐까는 이번 사태의 좋은 관찰거리가 될 것이다, 라고 정민은 생각했다.

"문서 구조부터 다시요?"

그것만은 아니길, 하고 바라며 성원이 물었지만 안타깝게도 김부장은 고개를 젓는다.

"다~ 다시"

모두의 한숨이 터져나오고, 혜리가 "그거 위에서 먼저 컨펌 한번 됐던거 아니에요?" 하고 볼멘소리를 해보지만 김부장은 그저 "다시"라는 말만 할 따름이었다.

"후"

여기저기서 길게 한숨을 내쉬고, 인턴 서정은 빠르게 전 버전, 전전 버전, 전전전 버전의 파일들을 참고를 위해 인쇄한다. 혜리는 오늘의 데이트 취소를 통보하러 복도로 나간다. 가을이 정민에게 "혜리 주임 남친이랑 요즘 위태위태하던데"하고 입모양으로 말한다. 성민은 윤과장에게 "담배 한대 피우러 나가시죠"하고 제안하고, 그 말에 윤과장은 옳다꾸나 "그래" 하고 일어선다. 김부장은 오늘의 저녁 식사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오후 8시 50분. 성원은 잠시 멍해진 머리를 달래러 포털의 뉴스를 읽다가 "포괄임금제"까지 눈이 닿는다. 그리고 문득 그는 근로계약서 내용과 이번 달의 야근 내역을 머릿 속으로 조심스레 계산해본다.

"초과된거 같은데"

하지만 그 말은 그 누구에게도 들릴 말이 아니고, 그저 오늘 저녁에는 사람인하고 링크드인 손 좀 봐야겠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잡코리아는 이미 어제 손을 봤으니까.

"파일 넘겼습니다"

혜리 주임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모두들 그녀를 의식한다. 그녀의 기분이 엉망이라는 소리니까. 아마 돌아올 월요일 팀회의에서는 또 업무 분장 관련해서 그녀의 열띈 주장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서정은 슬슬 초조함을 느낀다. 또 저번처럼 애매한 시간에 퇴근하게 되면 택시비만 깨질테니까. 쥐꼬리만한 인턴 월급에 큰 부담이다. 야근 수당이라도 나오면 좋겠는데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다. 그나마 저녁이라도 사주니 다행이라 생각할 따름이다. 지난 번 회사는 그마저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서정은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까지는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그냥 택시를 타버렸는데, 어차피 이 회사에서도 정규직 전환 희망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 그 택시비들이 아깝게만 느껴졌다. 출근 시간 1~2분에는 그렇게 열변을 토하더니 퇴근 시간은 벌써 3시간 초과가 다 되어가도 말 한 마디 없는 부장님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안되겠네. 슬슬 접고, 나머지는 다들 내일 조금 일찍 나와서 합시다"

김부장의 제언에, 차라리 지금 1시간 더하고 출근 정상대로 하고 싶다는 말에 목구멍에서 맴돈 성원이었지만 그저 대답 대신 가방 안에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넣을 따름이었다. 사실 그도 한계였다. 더이상은 눈이 뻑뻑해서라도 안되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잠긴 목을 풀고, 빠르게 컴퓨터를 끈다. 눈알을 비비며 생각한다. 돌아오는 주말은 푹 쉬어야 겠다고. 연수와의 캠핑 약속은 역시 이번 주에도 깨야겠다고.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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