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침대에 누워, 혹은 둘 다 적당히 취한 어느 맥주창고에서, 혹은 찜질방 한 구석에서 같이, 혹은 어느 공원 한 벤치에서 함께, 혹은 깊은 밤 전화기 저 너머로.
우연찮게 흘러나온 너의 전 남자 이야기를 듣는다.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털어놓는 아프고 분한 기억에 내 가슴 속 한 구석이 부글부글 끓는다. 이렇게나 예쁘고 착한 너를, 그 놈은 왜 그리도 괴롭혔단 말인가.
비록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으며 단점과 한계를 산처럼 쌓아놓고 사는 나이지만, 최소한 나라면 그 놈 같은 짓은 안 할텐데. 정말 잘해줘야지, 차마 말로 꺼내지는 않지만 가슴 속 깊이 다짐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지금, 그때 그놈보다 더한 놈이 되어버린 괴물 같은 나를 저주하며, 그녀의 '최소한 그놈보다는'의 허들을 더 낮춘 것에 대해 죄책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정말로 이제는, 니가 세상 그 어떤 미친 병신을 만나도 그 놈이 나보다는 낫겠지라는 것을 확신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