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삼국지 소설을 참 좋아해서 여러 작가 버전의 삼국지를 읽어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가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문열 삼국지의 '평역' 때문인데…
이문열 삼국지는 소설이 죽 전개되어가다가 얼추 일단락이 될 때마다, 혹은 중요한 장면마다 마치 해설자가 상황을 정리하듯 작가가 끼어들어 그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이런저런 '평'을 늘어놓는다. 혹자는 이러한 이문열 작가의 해설이 '소설의 맥을 끊고 자신만의 개똥철학을 설파하는 것 같아서' 매우 싫어하는 경우도 있는데(의외로 많다), 나는 반대로 그 평역 부분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생각없이 죽 보노라면 어떤 관념이 고정되기 쉬운 시점에서 '정말 그럴까?' 하는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느낌이라, 똑똑한 친구나 선생님이 자신만의 흥미로운 이론을 내 앞에서 "그렇지 않냐?" 하고 풀어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조조가 가후의 계략에 빠져 자신의 말까지 죽고 이제 꼼짝없이 잡히거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순간, 장남인 조앙이 "아버님, 부디 제 말을 타고 피하십시오" 하고 자신의 말을 건내고, 그 말을 타고 도망쳐 조조는 살고 조앙은 결국 죽게 되는 장면 이후의 평역이 그렇다.
나를 포함하여 보통 사람이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에 지 살자고 아들을 사지에 내버려두고 도망가다니" 하면서 혀를 끌끌 차며 조조를 욕할 것이다. 조금 상황이 다를지 모르지만 만약 대형 사고가 벌어졌는데, 어느 사회적 명사가 자기 살자고 자식의 안전장구를 대신 차고 살아남았다고 생각해보자. (설령 강제로 뺏은 것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에게 안전장구를 양보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과연 사회의 시선이 어떻겠는가. 대놓고 욕하지는 않아도 수근거림은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당연히 당대에도 그러한 평가는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보는데…
여기에서 이문열은 조조를 변호한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범부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거기서 자식을 살리고 자신이 죽어버려서야 자신의 세력(자신을 따라온 수많은 장수는 물론이요 조조의 자식들까지 포함하여)의 멸망을 피하기 어렵고, 그저 죽음이 잠시 미뤄질 뿐이라는 식의 논리로 조조를 변호한다. 오히려 조조 그 본인이 살아남아야 복수를 하던 뭘하던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조는 그렇게 자식의 목숨을 대가로 간신히 살아나 결국 승리를 쟁취한다.
이문열 삼국지를 보노라면 평역에서 이런 식의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식의 접근이 많이 꽤 신선한 지적 자극을 주곤 하는데, 그 영향이 뒤늦게 발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 성격이 그저 꼬였을 뿐인지… 최근의 나는 세상 많은 일에 대해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식의 접근을 곧잘하곤 한다.
인터넷 기사나 주변에서 보고 겪는 일들에 대해 처음에는 단순히 "아니 이게 말이 돼?" 하고 발칵 성질을 냈다가도, 다시 한번 그 당사자의 입장에서, 혹은 단순히 해당 사건 뿐만 아니라 전후의 상황을 살피면서 한번 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들은 그런 '두 번 생각하기'가 가져오는 그 나름의 이유를 "말도 안되는 변명" 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실제로 저 조조-조앙의 건 역시도 단순히 너무 멋진 아들과 못난 아비의 비극적인 교차점이 역사적 승리로 인해 금칠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조조가 그렇게 도망가서도 승자로 남지 못했다면 그 장면은 비장미 넘치는 눈물의 한 장면이 아니라 세상 추악한 패륜 부모의 꼴사나운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세상 이해되지 않는 대부분의 일들도 당사자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의외로 그것이 윤리적인 면이나 효율면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당시 상황 속에서의 합리성은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호미로 막을거 왜 가래로 막았냐"고 따지고 보니까, 알고보니 아예 호미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래로 막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거나 옆에서 모두가 가래로 막으라고 조언해서 가래로 막았을 뿐이거나 그때는 정말로 가래로 막는게 타당해보였기 때문에(나라도 그랬을 정도로)그랬을 뿐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럴만해서 그랬다" 라고나 할까.
뒤늦게 그것을 비난하고 평가하기는 쉬워도, 정작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정말 그보다 크게 더 잘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솔직히 요즘의 나는 그다지 자신이 없다.
내가 그리도 쉽게 비난하고 비판했던 그 많은 일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문열 삼국지는 소설이 죽 전개되어가다가 얼추 일단락이 될 때마다, 혹은 중요한 장면마다 마치 해설자가 상황을 정리하듯 작가가 끼어들어 그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이런저런 '평'을 늘어놓는다. 혹자는 이러한 이문열 작가의 해설이 '소설의 맥을 끊고 자신만의 개똥철학을 설파하는 것 같아서' 매우 싫어하는 경우도 있는데(의외로 많다), 나는 반대로 그 평역 부분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생각없이 죽 보노라면 어떤 관념이 고정되기 쉬운 시점에서 '정말 그럴까?' 하는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느낌이라, 똑똑한 친구나 선생님이 자신만의 흥미로운 이론을 내 앞에서 "그렇지 않냐?" 하고 풀어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조조가 가후의 계략에 빠져 자신의 말까지 죽고 이제 꼼짝없이 잡히거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순간, 장남인 조앙이 "아버님, 부디 제 말을 타고 피하십시오" 하고 자신의 말을 건내고, 그 말을 타고 도망쳐 조조는 살고 조앙은 결국 죽게 되는 장면 이후의 평역이 그렇다.
나를 포함하여 보통 사람이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에 지 살자고 아들을 사지에 내버려두고 도망가다니" 하면서 혀를 끌끌 차며 조조를 욕할 것이다. 조금 상황이 다를지 모르지만 만약 대형 사고가 벌어졌는데, 어느 사회적 명사가 자기 살자고 자식의 안전장구를 대신 차고 살아남았다고 생각해보자. (설령 강제로 뺏은 것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에게 안전장구를 양보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과연 사회의 시선이 어떻겠는가. 대놓고 욕하지는 않아도 수근거림은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당연히 당대에도 그러한 평가는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보는데…
여기에서 이문열은 조조를 변호한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범부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거기서 자식을 살리고 자신이 죽어버려서야 자신의 세력(자신을 따라온 수많은 장수는 물론이요 조조의 자식들까지 포함하여)의 멸망을 피하기 어렵고, 그저 죽음이 잠시 미뤄질 뿐이라는 식의 논리로 조조를 변호한다. 오히려 조조 그 본인이 살아남아야 복수를 하던 뭘하던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조는 그렇게 자식의 목숨을 대가로 간신히 살아나 결국 승리를 쟁취한다.
이문열 삼국지를 보노라면 평역에서 이런 식의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식의 접근이 많이 꽤 신선한 지적 자극을 주곤 하는데, 그 영향이 뒤늦게 발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 성격이 그저 꼬였을 뿐인지… 최근의 나는 세상 많은 일에 대해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식의 접근을 곧잘하곤 한다.
인터넷 기사나 주변에서 보고 겪는 일들에 대해 처음에는 단순히 "아니 이게 말이 돼?" 하고 발칵 성질을 냈다가도, 다시 한번 그 당사자의 입장에서, 혹은 단순히 해당 사건 뿐만 아니라 전후의 상황을 살피면서 한번 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들은 그런 '두 번 생각하기'가 가져오는 그 나름의 이유를 "말도 안되는 변명" 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실제로 저 조조-조앙의 건 역시도 단순히 너무 멋진 아들과 못난 아비의 비극적인 교차점이 역사적 승리로 인해 금칠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조조가 그렇게 도망가서도 승자로 남지 못했다면 그 장면은 비장미 넘치는 눈물의 한 장면이 아니라 세상 추악한 패륜 부모의 꼴사나운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세상 이해되지 않는 대부분의 일들도 당사자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의외로 그것이 윤리적인 면이나 효율면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당시 상황 속에서의 합리성은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호미로 막을거 왜 가래로 막았냐"고 따지고 보니까, 알고보니 아예 호미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래로 막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거나 옆에서 모두가 가래로 막으라고 조언해서 가래로 막았을 뿐이거나 그때는 정말로 가래로 막는게 타당해보였기 때문에(나라도 그랬을 정도로)그랬을 뿐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럴만해서 그랬다" 라고나 할까.
뒤늦게 그것을 비난하고 평가하기는 쉬워도, 정작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정말 그보다 크게 더 잘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솔직히 요즘의 나는 그다지 자신이 없다.
내가 그리도 쉽게 비난하고 비판했던 그 많은 일들에 대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