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창문 너머로 기울어지는 오후 네 시의 태양에 나도 모르게 감상적이 되어 눈시울이 붉어진다. 미래에 대한 걱정에 흐르는 눈물이라기보다는 그저 어쩐 이유에선지 떠오른 지나간 옛 연인들의 얼굴 때문이다.
'나랑 안 이어져서 다행이다'
혹시라도 나같은 새끼한테 시집이라도 왔으면 어쩔 뻔 했는가. 그래도 다들 알아서들 잘 제 인생들 찾아갔다.
"허"
나도 모르게 헛기침이 다 나온다. 그 장대비 속에서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리는 나를 참 모질게도 버리고 가 버린 유정이, 헤어지고 나서도 뭐가 그리 아쉬웠는지 맨날 술 쳐먹고 울며 전화하던, 그러나 다시 만날까? 하는 내 질문에는 귀신 같이 입 다물던 소영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차버린 핸드폰 가게 빚쟁이 경미, 못 생겼지만 마음 하나는 끝내주게 착했지만 역시 못 생겨서 싫었던 다희씨,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난 왜 그리도 눈치가 없었는가 후회되는 슈퍼 퀸카 정은이, 세상 털털했던 방귀쟁이 현정이, 비교쟁이 호정이, 5년 짝사랑 했다더니 3일 사귀고 날 차버린 경란이, 바람둥이 수연이, 변태년 소미, 짝눈 길희, 맛있고 착했던 유희, 이쁜 이모 연경, 사내 양다리 혜경이 이 개년…
울고 웃었던 추억들이지만 이제는 다 '차라리 잘됐네'라는 생각 속에 묻어둘 수 있다. 특히 유희 생각이 새삼 떠오른다. 궁합도 안 본다던 4살 차이, "오빠 우리 결혼할래?" 하고 먼저 프로포즈 했던 순진 덩어리에 여튼 참, 다시 생각해도 내가 그런 기집애랑 연애를 해봤다는 사실이 새삼 뿌듯해지는 그런 이쁘고 늘씬했던 그 기집애.
"오빠가 조금만 자리 잡으면, 그때 결혼하자"
등신 새끼. 자리 잡긴 시펄 뭔 어디에 무슨 자리를 잡는다는건지 당최 지금도 알 수 없는 개소리는, 그냥 시벌 손 잡아끌고 유희 아버지 찾아가서 "장인 어른!"하고 소리치고 우리 수원 집 팔아버리고 엄마 아빠 길바닥에 재우더라도 신혼집 장만해서는 둘이 오손오손 이쁘고 행복하게 살았어야 되는 것을 무슨 놈의 자리는 그리도 쳐잡겠다고 3년을 내리 질질 끌다가 남 좋은 일만 시켰는가.
"잘 다녀와"
잘 다녀오긴 엠병 어딜 잘 다녀와, 결혼 적령기 접어든 기집애가 외국 장기체류 시작하면 쫑나고 새출발 시작인 것을 어디 몰라서 보내줬나, 도대체 그 시절의 내 대가리 속에는 어떤 썩은 개똥이 문들어져가고 있었길래 그런 병신 짓만 연달아 했는지 당최 이해가 안 갈 지경이다. 결국에 현지에서 만난 인물 훤칠하고 교포 냄새 나는 버터 김치맨이랑 눈 맞아서 "오빠 미안해" 하는 전화 한 통에 눈물 콧물 다 쏟은, 그러고보니 왜 내가 그 환승녀를 착했던 년으로 기억하고 있는가 생각해봤더니 결국에는 거시기구나. 그래, 그건 훌륭했지. 인정, 가슴 하나는 역대 최고였지.
"그래, 다 그렇고 그런거지"
순진하긴 니미 세상 천지에 순진한 것이 다 뭐냐. 그냥 세상 물정 모르고 학교랑 부모한테 배운대로 행동하면 순진이고, 스스로 허리 열심히 돌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볼장 다 본 것이지. 그래도 역시나 나에게 먼저 결혼하자는 제안 해준 것은 세상 고마운 것이다. 최소한 나와 함께 진지하게 미래를 꿈꿔보고 괜찮다 생각 해본 것 아닌가. 설령 그게 기분에 취해서 한 소리라고 한들 말이다. 다른 년들은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안 했었더랬지.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2만 6천원입니다"
카드로 결제하고 보니 이번 달 카드값도 어느새 팔백 오십이다. 언제쯤 리볼빙 인생을 탈출할 수 있을까. 아니, 모처럼 고기까지 산 마당에 기분 잡치는 소리는 관두자. 루루루 콧노래까지 부르며 집으로 향하노라니 어느새 콧노래는 군가를 쳐부르고 있었다. 이 나이 쳐먹고 흥겨워 부르는 콧노래 레파토리가 군가라니 참 내 팔자도 어지간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 참 답 없구만"
방문을 열자마자 희미하게 풍기는 쓰레기 냄새. 어제 내다 버린다는 것을 그냥 냅뒀더니 방 안에 썩는 내만 풀풀 풍기고 있다. 쓰레기 봉투 주둥이를 묶어놓고 환기를 좀 시킨다. 마지막 출근을 위해 입었던 외출복을 벗고 빤스 바람으로 방바닥에 널부러진다. 마트에서 사온 삼겹살과 마늘과 쌈장과 깻잎과 소주는 내 옆에 두고.
"아, 참 싫구나. 내 인생"
미지근한 방바닥이 조금은 신경 쓰이지만 딱 5분만 누워있다가 고기를 굽기로 한다. 그 화려하고 좋은 시간 다 지나가고, 결국에 이리 홀로 되어 직장에서도 쫒겨났다. 퇴직금 한 돈 천만원이 있긴 하다만 내 나이에 무슨 이직이 되겠는가. 한 달 두 달 세 달 까먹다 보면 어느새 빈털털이 다시 되겠지. 애초에 당장 카드값 다 갚고 나면 꼴랑 2백이 채 안 남는데 아마 은행대출 자동 연장 다음 달에 안되고 최소 10% 결제하고 나면 레알 개털될 것이다. 어쩌다 이리 되었는가. 왜긴 왜야, 그 놈의 영감쟁이 연대보증 때문이지.
치익- 칙-
아 참 맛있게도 구워진다. 가스렌지 멀쩡히 있는걸 두고 괜히 방에서 부루스타 켜고 돼지를 굽다보면 첫 사랑 유정이가 생각난다. 상암동 재개발 되기 전에 그 좁은 집에서 둘이 부루스타 켜고 고기 구워 먹는 추억을 떠올리면 아마 30년 후에도 우리 이러고 있겠지? 하고 히히덕 대던 말들이 지금도 선하게 기억난다.
30년 후는 얼어죽을, 바로 그 다음 다음 주에 장마비 속에 사람 그 많은 곳에서 그녀 바짓가랑이 붙잡고 엉엉 울던 그 날의 굴욕이 20년도 넘게 흐른 지금도 날 몸서리치게 만든다. 내가 찌질해서 싫어 차는건데 마지막까지 이러기냐며 쌀쌀맞게 날 버리고 가던 그 얄미운 뒷모습이 당시에는 그리도 원망스러웠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며 내가 사람 구실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부터다.
"크, 술 맛 도는구만"
내가 후져 보여서 헤어진거다, 라는 생각은 정말로 찌질했던 나 스스로를 채찍질 하게 만들었고 서울로 올라오던 버스 안에서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했듯 스스로를 다듬기 시작한 나의 와꾸는 점차 오랑우탄에서 네안데르탈인을 거쳐 경훈 오빠에 이르게 되었더랬지.
그리고 시작된 십 여 년간의 화려한 내 삶의 봄. 흐뭇하다. 이름조차 기억 못할 그 수많은 꽃밭의 향연 속에 내 입술과 기둥과 알주머니는 참으로 호강을 누렸으되 오늘의 이 허무함은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참맛 아니겠는가.
"마늘, 마늘"
소미 년은 항상 생마늘을 강요했었다. 세상에 나보다 더 밝히는 기집애는 소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왜 구워먹냐며 그러면 영양소 다 파괴되는거 아니냐며 쌈을 싸도 그 놈의 쌩마늘은 대여섯개를 퍼넣으니 그게 어디 고기쌈인가 마늘쌈이지. 맛도 모르고 먹느냐며 성질 벌컥 내고 싸우노라니 대뜸 티셔츠를 가슴팍까지 걷어올리고는 "만지고 화풀어" 하던 그 미친 발상에 새삼 그 년은 누구한테 시집가도 사랑받고 살겠구나 싶어 흐뭇하게 아빠 미소가 지어진다.
"하아"
배터지게 쳐먹고 널부러져 고기 냄새 충만하고 기름바닥 미끄러운 이 좁은 원룸에서 천장 바라보며 서서히 저물어가는 노을을 만끽한다. 눈가에 흐르는 이 눈물은 역시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오늘의 현실에 대한 회한 따위가 아니라 그냥 그녀들이 참 괜히, 정말 괜히도 너무나 보고 싶어서다.
잘 지내고 있을까. 다들 정말로 잘들 지내며 살고 있을까.
혹시라도 지금의 나처럼 찌글찌글하게 사는 기집애가 있다면, 얼른 그 찌질함 털어버리고 부디 내 몫의 행운까지 가져가서 잘 살기를 바란다. 소주 한 병에 이렇게도 나는 얼큰해진다. 부디, 제발, 다들 잘. 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