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주니였다. 발음 편한 주니, 오주니.
"맛있네"
처음 들었을 때는 당연히 준희려니 했으나 그녀가 몇 번이고 강조해서 진짜 이름이 발음 편한 주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쵸?"
할아버지 소리 들을 연배인 그녀의 아버지가 막내 딸 이름을 등록하는 과정에서… 다소 소통의 문제가 있었단다. 주니의 표현을 빌어 '배움이 그리 넉넉하신 분이 아닌 탓'에 글에 약해 준희라고 등록해야 하는 것을 주니라고 등록했다나. 당연히 이상하다 싶어 몇 차례나 면사무소의 주사가 되물었지만 그 즈음해서는 또 워낙에 자존심 세고 고집 센 양반인지라 자기가 틀린 것을 인정하기 싫어 그저 주니라고 밀어 붙였다고.
"맛있죠? 진짜 맛있죠?"
어디서 알아온 맛집 정보에 혼자 신이 나서 들떠 내 팔뚝을 붙잡고 끌고 들어온 그녀는 연신 내 입맛을 묻는다. 딱히 입맛이 까다롭지도 않은데도. 주니는 내가 밥 먹는 모습이 복스러워서 그렇게 좋았단다. 생긴 것은 꼭 샌님 같은데 어쩜 밥 먹는 것은 그리도 맛나게 잘 먹는지, 보면서 그만 마음이 녹아내렸다며. 샌님이라는 표현조차 강원도 우리 외할머니나 사용할 법한 단어건만 어쨌거나 나 좋다는데야 기분 나쁠 리 없다. 오히려 그게 신이 나서 부러 더 급하게 먹다가 체한 바람에 집에 와 혼자 토한 기억도 두 번이나 있다.
"뭐라고?"
사실 남들 앞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은근 생각하는 것도 샌님이라 낯선 여자 앞에서 서면 말이 없어지고 낯가림이 심해 친해지는데 시간이 제법 걸리는 내가 그녀 앞에서만큼은 그리도 빨리 달변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칭찬들 덕분이다.
"어쩜 그리도 잘 생겼어요?"
밥그릇 너머로 그저 해맑게 웃으며 칭찬하기 바쁜 주니. 내 연애 상식으로는 여자는 조금 칭찬에 인색해야 남자가 몸이 달아 연애가 쉬워지거늘, 그녀는 그저 퍼주기 바빴다. 칭찬 뿐 아니라 마음 씀씀이 자체가 그랬다.
"월급 받은 김에 샀어요"
내가 그럴듯한 밥 한끼를 사주면 그 다음 번의 만남에는 내 구두을 사오는 격이다. 그것도 그녀가 정말 알고 산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괜찮은 브랜드로. 같이 일하는 언니들의 도움이겠지만. 척 보아도 그리 넉넉함은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스타일이었으니 그녀의 그 선물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는 따로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그녀 손을 붙잡고 화장품 가게에라도 들어설라치자 기겁을 하는 것이, 그것이 부담스럽거나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화장 자체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단다.
"정말로?"
"응. 전부 그냥 언니들이 도와줄 때나 했어요"
서울에 처음 상경해 느낀 것은 그 스스로의 초라함이었단다. 순진하긴 해도 그것은 본성이 착해서 약게 굴지 못함이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닌지라 말씨야 기숙사에서 금새 서울 말씨를 익혔다만 화장이나 옷차림은 아무래도 도전하기가 어려웠다나.
"돈을 들여도 티도 안 나고, 실패는 자꾸 하니까 차라리 그냥 아끼는게 낫겠다 싶어서…"
"내가 도와줄게"
구두에 외투까지 얻어 입은 차에 나 역시 뭐 작은 거라도 하나는 해야겠다 라는 마음에 백화점에 내가 먼저 앞장을 섰다. 실은 이번 달 카드값이 아슬아슬해서 순간 아차 싶기는 했지만, 애써 허세를 부렸다.
"이거 얼마나 해요?"
가격을 들으니 걱정했던 것보다야 훨씬 저렴하니 이쯤해서는 의기양양하게 마음껏 골라보라 했다. 그럼에도 선뜻 집어들지 못하는 주니를 보다못한 점원이 두 어개를 골라주는데 그제서야 비교 눈이 생겼는지 주니도 몇 개를 집어들며 개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
하나는 보랏빛에 하나는 새빨간 색이다.
"마음에 들어?"
실은 둘 다 색이 너무 진해서 촌스럽지는 않나 걱정이 되어 슬몃 점원의 눈치를 보았더니 어째 점원도 당혹스러워 하는 것이 나랑 비슷한 눈치다. 그래서 "이것은 어때?"하고 몇 개를 더 집어 보여주었건만 주니는 이미 마음을 정한 듯 했다. 기왕의 선물인데 본인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모처럼의 선물이 망신이나 돋게 하면 그것도 내 잘못이다 싶어 아까 점원이 추천했던 다소 은은한 색 하나를 얼른 하나를 더 집어들었다. 주니는 괜찮다며 두 개도 많다며 남들 보기 민망할 정도로 손을 내저었지만 구두에 외투까지 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우겨대며 기어코 나는 세 개를 계산하고 나왔다.
"고마워요"
몇 번이고 괜찮은데 괜찮은데 하다가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것인지 "혹시 내가 고른 색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 그럼 그냥 두 개는 돈으로 바꿔올까요?" 하고 묻는데 그제서야 또 내가 괜한 걱정을 만든 것인가 싶어 "아니야, 이뻐. 잘 어울려. 내일은 그 빨간색 바르고 와" 하고 웃어보였다.
"고마워요, 정말로"
그리고 그제서야 화사하게 웃는 웃음이… 그 환하고 밝은 웃음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진 나는 그렇게 내 진심을 어이없이 쉽게 내주고야 말았다. 그 이후의, 우리가 함께 겪을 그 긴 사랑의 여정 따윈 생각조차 해본 적 없이 말이다.
"맛있네"
처음 들었을 때는 당연히 준희려니 했으나 그녀가 몇 번이고 강조해서 진짜 이름이 발음 편한 주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쵸?"
할아버지 소리 들을 연배인 그녀의 아버지가 막내 딸 이름을 등록하는 과정에서… 다소 소통의 문제가 있었단다. 주니의 표현을 빌어 '배움이 그리 넉넉하신 분이 아닌 탓'에 글에 약해 준희라고 등록해야 하는 것을 주니라고 등록했다나. 당연히 이상하다 싶어 몇 차례나 면사무소의 주사가 되물었지만 그 즈음해서는 또 워낙에 자존심 세고 고집 센 양반인지라 자기가 틀린 것을 인정하기 싫어 그저 주니라고 밀어 붙였다고.
"맛있죠? 진짜 맛있죠?"
어디서 알아온 맛집 정보에 혼자 신이 나서 들떠 내 팔뚝을 붙잡고 끌고 들어온 그녀는 연신 내 입맛을 묻는다. 딱히 입맛이 까다롭지도 않은데도. 주니는 내가 밥 먹는 모습이 복스러워서 그렇게 좋았단다. 생긴 것은 꼭 샌님 같은데 어쩜 밥 먹는 것은 그리도 맛나게 잘 먹는지, 보면서 그만 마음이 녹아내렸다며. 샌님이라는 표현조차 강원도 우리 외할머니나 사용할 법한 단어건만 어쨌거나 나 좋다는데야 기분 나쁠 리 없다. 오히려 그게 신이 나서 부러 더 급하게 먹다가 체한 바람에 집에 와 혼자 토한 기억도 두 번이나 있다.
"뭐라고?"
사실 남들 앞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은근 생각하는 것도 샌님이라 낯선 여자 앞에서 서면 말이 없어지고 낯가림이 심해 친해지는데 시간이 제법 걸리는 내가 그녀 앞에서만큼은 그리도 빨리 달변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칭찬들 덕분이다.
"어쩜 그리도 잘 생겼어요?"
밥그릇 너머로 그저 해맑게 웃으며 칭찬하기 바쁜 주니. 내 연애 상식으로는 여자는 조금 칭찬에 인색해야 남자가 몸이 달아 연애가 쉬워지거늘, 그녀는 그저 퍼주기 바빴다. 칭찬 뿐 아니라 마음 씀씀이 자체가 그랬다.
"월급 받은 김에 샀어요"
내가 그럴듯한 밥 한끼를 사주면 그 다음 번의 만남에는 내 구두을 사오는 격이다. 그것도 그녀가 정말 알고 산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괜찮은 브랜드로. 같이 일하는 언니들의 도움이겠지만. 척 보아도 그리 넉넉함은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스타일이었으니 그녀의 그 선물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는 따로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그녀 손을 붙잡고 화장품 가게에라도 들어설라치자 기겁을 하는 것이, 그것이 부담스럽거나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화장 자체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단다.
"정말로?"
"응. 전부 그냥 언니들이 도와줄 때나 했어요"
서울에 처음 상경해 느낀 것은 그 스스로의 초라함이었단다. 순진하긴 해도 그것은 본성이 착해서 약게 굴지 못함이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닌지라 말씨야 기숙사에서 금새 서울 말씨를 익혔다만 화장이나 옷차림은 아무래도 도전하기가 어려웠다나.
"돈을 들여도 티도 안 나고, 실패는 자꾸 하니까 차라리 그냥 아끼는게 낫겠다 싶어서…"
"내가 도와줄게"
구두에 외투까지 얻어 입은 차에 나 역시 뭐 작은 거라도 하나는 해야겠다 라는 마음에 백화점에 내가 먼저 앞장을 섰다. 실은 이번 달 카드값이 아슬아슬해서 순간 아차 싶기는 했지만, 애써 허세를 부렸다.
"이거 얼마나 해요?"
가격을 들으니 걱정했던 것보다야 훨씬 저렴하니 이쯤해서는 의기양양하게 마음껏 골라보라 했다. 그럼에도 선뜻 집어들지 못하는 주니를 보다못한 점원이 두 어개를 골라주는데 그제서야 비교 눈이 생겼는지 주니도 몇 개를 집어들며 개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
하나는 보랏빛에 하나는 새빨간 색이다.
"마음에 들어?"
실은 둘 다 색이 너무 진해서 촌스럽지는 않나 걱정이 되어 슬몃 점원의 눈치를 보았더니 어째 점원도 당혹스러워 하는 것이 나랑 비슷한 눈치다. 그래서 "이것은 어때?"하고 몇 개를 더 집어 보여주었건만 주니는 이미 마음을 정한 듯 했다. 기왕의 선물인데 본인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모처럼의 선물이 망신이나 돋게 하면 그것도 내 잘못이다 싶어 아까 점원이 추천했던 다소 은은한 색 하나를 얼른 하나를 더 집어들었다. 주니는 괜찮다며 두 개도 많다며 남들 보기 민망할 정도로 손을 내저었지만 구두에 외투까지 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우겨대며 기어코 나는 세 개를 계산하고 나왔다.
"고마워요"
몇 번이고 괜찮은데 괜찮은데 하다가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것인지 "혹시 내가 고른 색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 그럼 그냥 두 개는 돈으로 바꿔올까요?" 하고 묻는데 그제서야 또 내가 괜한 걱정을 만든 것인가 싶어 "아니야, 이뻐. 잘 어울려. 내일은 그 빨간색 바르고 와" 하고 웃어보였다.
"고마워요, 정말로"
그리고 그제서야 화사하게 웃는 웃음이… 그 환하고 밝은 웃음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진 나는 그렇게 내 진심을 어이없이 쉽게 내주고야 말았다. 그 이후의, 우리가 함께 겪을 그 긴 사랑의 여정 따윈 생각조차 해본 적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