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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결혼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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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결혼제도에 대한 회의감이 사회를 휘감은 근 미래의 어느 아시아 국가… 사회 구성의 최소 단위가 '가정'에서 '개인'으로 무너지기 직전, 국가는 특단의 제도를 내놓았다. 그것은 '준 결혼제도'였다.








준 결혼제도 







"3년 짜리… 오케이, 성함 싸인 다 확인 하셨지요? 네, 다 됐습니다. 이제 두 분은 부부가 되셨습니다"

심드렁한 주민센터 공무원의 검수, 직인질이 끝나자마자 두 남녀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끌어안았다.

"꺄!"
"와후!"

그 종이쪽지 하나가 뭐라고, 신주단지 모시듯 종이를 들고 뛰어나가는 둘을 바라보며 공무원 동석은 혀를 찼다.

"등신들"

그러자 옆에 있던 기택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왜, 보기 좋구만"

하지만 동석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 뭐한다고 3년씩이나 서로를 옭아매. 정 그렇게 좋으면 1년짜리 해서 연장 연장 하면 되는거지"
"귀찮잖아. 이사할 때 2년마다 전입신고 하는 것도 귀찮아 죽을 것 같은데, 결혼신고를 매년 하라고? 어후 귀찮아"
"자동갱신 되는데 뭐가 귀찮아. 전화 한 통만 받으면 되는데"
"아 귀찮아"
"에라, 그 정도로 귀찮아서 결혼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거냐"

그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입 은미가 끼어 들었다.

"동석님이 그래서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는 거에요. 누구는 뭐 옭아메이는거 좋나? 그래도 기분상 1년짜리 보다는 최소한 3년짜리 계약은 해야 아 이 남자가 나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하지"
"그럼 아예 10년짜리를 해야지"
"그건 또 너무 부담되잖아요"
"에라이"



평생토록 단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며, 삶의 모든 것을 하나로 영원히 합친다는, 그야말로 이상의 극치라 할 수 있는 결혼제도는 21세기 이후로 수많은 한계점을 노출했다.

대다수의 연인은 짧은 신혼의 기간이 지나면 더이상 서로만을 사랑하지 않으며, 폭력이나 금전적 제약 등 수많은 불합리 속에서도 남녀는 '부부'라는 제약 속에서 그저 참아야만 했다. 비록 이혼이라는 최후의 수단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풀기 어려운 제약이었으며 이혼은 결혼만큼이나 복잡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애초에 결혼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책임이 지나치게 과도했다. 20대 중후반~30대 중후반 사이의, 아직 삶에 대한 통찰이 부족한 시기에 내린 1년 남짓한 시간의 결단 때문에 평생을 그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그나마 어느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육아'라는 또 하나의 족쇄가 부부관계를 유지하는데 기여했지만, 출산율이 0.6 이하로 떨어진 어느 시기에 접어 들면서는 결혼 제도에 대한 회의는 더욱 크게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재앙 그 이상이었다. 연인이 부부가 되고 가족을 이루며 출산을 하여 또 다른 사회 구성원을 생산해내지 않으면 국가는 결국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문제는 수십년 전부터 심화된 상태였지만, 아예 결혼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였으니까. 결국 국가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그것은 '준 결혼제도'였다.

결혼 생활과 동일한 수준의 사회적 보장을 제공하되, 그 기간은 최단 1년 최장 10년까지의 기약이 있는… 이른바 계약 결혼의 허용이었다. 물론 계약 기간 내에도 얼마든지 이혼은 가능했다. 핵심은 '제도로 서로의 관계를 보장'해주는 것에 있으니까.





"궁극적으로 말해서 솔직히 결혼을 왜 해? 그냥 오래 사귀기만 해도 되는데 결혼 왜 하냐고? 그거야 이 사람이 정말 너무나 갖고 싶다, 너무 좋다, 이 사람이라면 오랜 시간 함께 해도 좋을 것 같다, 다른 누구한테 뺏기기 싫다, 이런 마음으로 하잖아? 근데 사람 마음이라는게 간사하잖아. 막상 결혼해서 딱 가져버리면, 1년, 3년, 5년, 10년 지나면 마음이 변한단 말이야. 이 사람 아니면 안돼, 절대 이 사람 밖에 없어… 하던 사람도 결국 에휴 저 화상, 내가 미쳤지 저런게 좋다고 결혼을 하다니, 하잖아"

원로 정치인 김석환의 말이었다.

"그럼 아예 제도에서 그걸 보장하자고. 두 사람이 일단 원하는 기간동안 결혼 생활을 시켜주고, 그 기간 살아보고 마음에 들면 연장 하고 아니면 딱 그 기간 끝나면 깔끔하게 헤어지는거지. 이혼 소송 그런거 안해도 알아서 자동으로, 제도적으로 딱딱"





제도의 도입을 놓고 근 10년 가까운 진통이 있었다. 역설적으로 결혼제도의 해체를 부를 것이다라는 전망부터 현 시점에서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라는 주장까지. 그러나 무턱대고 반대하기에는 이미 결혼율이 40%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대안이 없는 이상, 제도는 결국 도입되었다.

"오빠, 우리 100일날 뭐할거야?"
"주민센터 가자"
"에구, 이 화상아"
"난 진심이야"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평생동안 함께'라는 말은 달콤하지만 부담스럽다, 하지만 '1년간 함께'라면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누구나 한다. 수많은 연인들이 마치 선물처럼, 이벤트처럼 주민센터에서의 면사포 없는, 싸인 절차 뿐인 결혼을 거행했다.

어차피 그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진지하게 생각할 사람 같았다면 정식 혼인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이제 사회에 채 4할이 되지 않는다. 동거가 기본인 시대에 싸인 뿐인 결혼식은 그저 본격적인 연인 관계 성립의 절차로 받아들여졌다.

관계가 이미 단단하다고 생각했거나 1년은 짧다, 라고 생각하는 초조한 이들은 3년, 5년짜리 계약을 연인에게 들이밀었다. 물론 부담스러워하면 그것으로 상대의 마음까지 확인할 수 있는 보너스까지 있었다.

10년짜리 계약은 드물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을수록,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이들일수록 장기계약을 선호했다. 적어도 그 기간동안은 안심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은 의외로 꽤 적중했다. 부담없는 싸인이었지만 확실히 연인과는 달랐다. 어쨌든 국가가 인정하는 공적 계약으로서의 관계라는 무게감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은 부부 관계를 생각보다 오래 유지했다. 1년으로 시작해서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만나는 커플도 많았다. 10년짜리 계약의 경우 오히려 계약 갱신의 확률이 다소 낮은 편이었지만 그것은 이미 충분히 예상된 결과였다.

"10년이면 오래 만난거죠 뭐. 정은 많이 들었지만, 앞으로 좋은 친구로 지낼 수도 있는거잖아요"

애초에 10년 계약을 선호하는 계층일수록 자기 자신이나 서로에 대한 확신히 오히려 떨어지는 연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었으니까.



"이벤트까지는 아니구, 그냥 같이 여행 가려구요. 올해가 계약 마지막 해니까요. 잘 보여야죠. 제가 이제 어디가서 그런 사람 또 만나겠어요. 하하"

3년, 5년 계약을 한 커플들은 특히나 유별났다. 마지막 시즌이 되면 재계약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과거, 그저 정식 혼인제도만 존재하던 시절의 3년차, 5년차 권태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약 3년차, 5년차 커플들이 보통 제일 서로에게 어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상대는 더이상 '잡아놓은 물고기'가 아니다. 그저 계약으로, 나와 대등하게 이어져 있는 관계일 따름이다, 그런 생각은 자기계발과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러한 '불완전'에 대한 반복적인 스트레스로 심적 부담을 느끼는 이들도 많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리마인드 정식 결혼을 올리는 이들도 많아졌다.




"애를 뭐 제가 키우나요? 나라가 키우죠. 금요일에 잠깐 보러 가기는 해요. 근데 뭐, 아이도 저를 엄마로 생각하기는 하나"

제도 도입 초기부터 가장 큰 우려를 부른 이슈였다. 바로 육아 문제. 만약 계약 기간 중 출산을 하게 된다면, 그리고 계약 연장을 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의 육아는 누가 책임을 지는가.

보통은 '출산을 하게 된다면 정식결혼으로 전환'이라는 선택지를 고르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었다. 계약결혼에 비해 더 많은 사회적 보장이 주어지고 육아 혜택도 풍성하니까.

하지만 임신을 하고 나서야, 혹은 막상 내 아이가 생겨 상대와 아이를 평생 책임져야 한다라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국가는 기꺼이 아이들을 맡아주었다. 애초에 요점은 출산율을 높여 사회가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반 세기 이전부터 나라에서 돈을 지원하며 반나절 이상 아이들을 맡아주지 않았던가. 단지 그것이 24시간으로 늘었을 뿐이다. 생각보다 별 차이는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삶이 충실해졌다. 1년, 3년, 5년… 비록 제한된 시간이라고 할 지언정 '누군가와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제도의 힘.

누군가에게는 잘못된 선택을 부담없이 물릴 수 있는 보험이, 누군가에게는 관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새삼스레 일깨워주는 각성이 되어주었다. '나 혼자 늙어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외로움에 떨던 싱글 중장년이나 노년에게도, 정례적인 계약만료자의 존재는 상대적인 위로와 또 다른 기회의 제공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재태크의 수단이, 누군가에게는 금전적 손실의 부담없는 완벽한 제도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계약'에 따른 결혼제도이기에 강제적인 분할 명령 따위가 필요 없기 때문이었다. 계약서에 따라 진행하면 그만이었다.

결론적으로, 제도는 완벽히 성공했다. 사람들의 생애 결혼율은 68%까지 늘었다. 출산율도 55%나 더 늘었다. 여러 번의 결혼을 거치며 그 허무함을 느낀 이들이, 육아의 부담이 덜어진 이상 '자신의 쥬니어를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생각에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50대의 출산까지 나름 70% 이상의 확률로 안전을 보장하는 놀라운 의학 발전의 역할도 컸지만 말이다.




"허용하라! 허용하라!"

하지만 생애 결혼율이 68%까지 늘었다고 해도 끝끝내 스타일박스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 발전된 제도 속에서도 아직까지 성소수자의 결혼은 허용되지 않았으니까. 전 세계 대다수의 나라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한 22세기의 시대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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