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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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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가 별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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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욱의 말에 답답하다는 듯 종현은 젓가락을 들고 오뎅탕 그릇을 탁탁 쳤다.

"어차피 툭 까놓고 말해서 데이트 하면서 맛있는거 먹고 재밌는거 보고 떡도 치고 정도 들고 눈물도 흘려보고 화도 내보고 그러다 보면 그게 사람 사는거야. 연애하는거고. 그럼 딱 봐서 아 진짜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사람 아니면 일단 거기서 그렇게 대충 눈 맞는거야. 어린 애새끼들도 아니고 연애질 몇 번 해보면 다 알거든. 사람 다 거기서 거기라는거"

그러더니 오뎅을 꺼내 자기 앞접시에 죽 빼낸 그는 숟가락으로 오뎅을 토막내며 말했다.

"잘 봐. 그럼 사람 다 거기서 거기야. 그럼 너라면 그 상황에서 너 좋다고 달려드는 사람이 좋겠냐, 아니면 눈길 한번 안 주는 사람이 좋겠냐?"

신욱은 씁쓸하게 "잘생긴 사람?" 하고 입을 열었다. 뜻밖의 역공에 종현은 픽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왕이면 잘난 놈이 낫겠지. 근데 그건 잘난 놈이 지 만나준다고 할 때의 이야기고. 어차피 조선팔도 여자들 7할은 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먼저 고백 못하는 멍충이 빙충이들이야. 세상에 이런 축복 받은 나라 없지. 왜? 무조건 들이대는 새끼들이 유리한 구조의 사회라는 말이니까. 잘 봐. 니가 여자야. 근데 쫀심도 있고 은근 쓸데없는 소심함도 있어서 절대 남자한테 고백 못한다고 쳐. 그럼 그 상황에서 마음에 있는 남자는 근데 나한테 눈길 한번 안 줘. 그런 판에 뭐 좀 빠지긴 해도 왠 놈이 진지하게 들이대. 그럼 어쩌겠어?"
"차겠지"

종현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겠지. 근데 여기서 조건 바꿔봐. 당장 크게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는 없어. 근데 좀 외로워. 그런 판국에 크게 썩 나쁘지 않은 놈이 만나자고 고백해. 어쩌겠어?"
"생각 좀 해보자고 하겠지"

종현은 신욱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그렇지!"하고 박수를 혼자 짝 쳤다.

"생각 좀 해보자, 이 남자 어떨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남자가 맛집도 데려가고 같이 영화도 보고, 데이트 한답시고 옷도 좀 골라보고, 간만에 풀메이크업도 해보고, 허, 이거 좀 설레네, 하는데 남자가 지 자주가던 근사한 바에서 딱 폼 잡고 '그래도 나 안 만나줄거에요?'하고 다시 한번 남자답게 들이대. 그럼 어쩌겠어?"
"만나볼까, 생각하겠지"
"오케이! 그거지!"

종현은 잘라놓은 오뎅을 떠먹더니 말했다.

"별거 없어. 연애라는거. 자 근데 그 별 거 없는거 왜 못해? 그래 자신없어 못해. 아니 왜 자신이 없어? 돼지야? 갈비야? 돈 없어? 그럼 뭐 상대 여자는 뭐 전지현 김태희야? 아니야. 걔들도 뭐 딱히 특출난거 없어. 잘 나가는 기집애 같으면 지도 잘나가는 남자 만나서 잘 나가고 있겠지. 근데 빌빌대. 왜 빌빌대? 그래 별 거 없거든. 짜리몽땅하고, 옷 벗으면 뱃살 옆구리살 나이 오십 먹은 엄마랑 삐까삐까하는 거 같고 화장 지우면 다른 사람 되고. 솔직히 좆도 없거든, 지들도. 모아 놓은 돈이 있어 뭐가 있어. 근데…"

종현은 혼자 또 뜸 들이더니 말을 이어나간다.

"근데 그런 자기를 또 이쁘다고, 좋다고 남자가 들이대. 자기보고 이쁘대. 어? 이쁘다고. 생각해보면 그래, 이쁘다 소리 언제 마지막으로 들어봤어? 그래 지난 달 미영이 언니 시집가는 날 간만에 본 그 재수덩어리들한테 들어는 봤지. 근데 그게 무슨 의미야? 그래, 입 바른 소리야. 서로 싹 스캔해보고 '너도 이제 퇴물 다 됐구나' 소리 입에서 나오기 직전에 얼른 입 틀어막느라 너 이뻐졌네 어머어머 하는거야. 그럼 진짜 마지막으로 진심 담긴 이쁘다 소리 언제 들어봤어? 그래 전 남친 때는 아예 기억도 안 나고 전전 남친 그 개새끼가 그래도 그 말은 잘했네, 그때 한번 들어보고 지금 몇 년 째 못 들어본거야. 그런 판국에 이쁘다는 사람이 밉겠어 이쁘겠어?"

신욱은 종현의 원맨쇼를 보더니 실룩실룩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너 무슨 개그맨 공채 준비하냐?"

하지만 종현은 꽤나 진지했다.

"아 이 답답한 새끼야. 여튼 들이대라고. 니가 돈이 많아 학벌이 짱짱해 배경이 좋아 얼굴이 원빈이야 키가 강동원이야. 뭐 쥐뿔 없는 놈이 백마 탄 왕자 흉내내. 걍 들이대라고. 정 뭐하면 내가 확 잡아채 가?"
"뭐?"
"너 이 새끼 딱 너 같은 케이스들이 있어요. 미적미적, 내일 사람 죽어도 미적미적, 똥 마려워도 미적미적, 그러다가 결국 여자 지쳐있는 차에 다른 불같은 새끼가 들이대기 시작하면 뒤늦게 똥줄 타서 오바하다가 스토커 짓 하다가 병신되고 찐따 인증 게임 셋 되는 새끼들. 걍 나가 뒤져도 싼 놈들"
"야…"
"좆까고, 걍 내가 봤을 때 너 이번 주 안으로 예빈이한테 고백 못하면 버스 떠난다고 본다. 이건 내 감이 틀림이 없어요"
"하 시발"

신욱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막걸리 한 사발을 그대로 비웠다. 종현도 안주를 추가 시키고는 말했다.

"인생에 기회가 세 번이 오듯이, 한 여자를 잡는데는 기회가 세 번이 있어. 하나는 처음에 딱 알랑달랑할 때 잡는 새끼. 이때 잡는 새끼는 제일 맛난 연애를 하는거야. 꿀단지 퍼먹는거지. 그리고 서로 이미 딱 다 사이즈 잰 다음에 잡는 새끼. 근데 이건 신선함이 확실히 덜하지. 주도권 싸움도 해야되고, 서로 안 맞는거도 맞춰야 되고, 처음의 그 환상 같은게 이미 없기 때문에 확실히 맛이 덜하거든. 마지막으로는 이미 시들시들해지는 판에 뒤늦게 고백하는거. 이런 새끼들은 다 그냥 뒤져도 싸. 어차피 이건 주도권 다 넘겨주는거고 모양새 다 구기는거고, 그래도 어쨌거나 놓치는거보단 낫지. 지금 넌 딱 이 케이스야. 여기서 놓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신욱이 대답이 없자 종현은 남은 오뎅을 우물우물 씹다가 뒷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뭘 어떻게 돼 새꺄. 비융신 되는거지. 그 여자가 딱 이제 지 친구들 모임에 나가서 이야기 하겠지. 언니언니 요즘 그 썸탄다는 남자랑 어떻게 됐어요? 하고 눈치 없는 년이 슥 물어보면 이제 이 년은 부아도 나고 혼자 썸타네 어쩌네 헛물만 켠 거 같으니까 자기만 병신되는 분위기 속에서 몰라, 난 이제 별로 관심 끊었어. 나는 그렇게 막 할 말도 못하고 남자답지 못한 남자는 완전 별로야, 하고 선언하고 이제 선 딱 긋는거지. 그렇게 남들 앞에 선포해놨는데 다시 만날 수 있어? 못 만나. 여자는 그런 짐승이야. 그러니까 딱 기한은 암만 봐도 예빈이한테는 이번 주 안에 고백을 해야 된다고 보는거지. 결론적으로 말해서 넌 간만의 썸 기회가 지금도 날아가고 있다 이거야"
"아 씨"

신욱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럼 마는거지 뭐 어뜩하냐. 내가 그런 걸 못하는걸"

종현은 그쯤해서 참 딱하다는 듯한 눈으로 신욱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것도 하나의 좋은 삶의 자세야. 그러고 살다가 이제 나이 쉰에 머리 벗겨지고 베트남 비행기나 타면 딱 사이즈 나오는거지. 나의 결혼원정기, 캬아, 우리 신욱이 국제결혼하겠네 국제결혼"
"그만해 새캬"

신욱도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현란한 종현의 말을 옆에서 듣던 근처 술자리의 모든 남자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길어진다. 그리고 모두 떠올린다.

모처럼 기회가 왔음에도 미적대다 끝끝내 고백 한번 못 해보고 비엉신같이 술이나 퍼마신 그 어느 날의 한심한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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