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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자원 관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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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재미나는 상상 하나 해보자. 퇴근길, 길거리의 수많은 선남 선녀…

그 중에 얼마는 데이트를 하러 기쁜 마음으로 데이트 장소로 향하는 것이겠지만, 기실 대부분은 그저 집으로 향하는 것일게다. 설령 연인이 있더라도 매일 데이트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물론 결혼을 했다거나 동거를 하는 중이라면 배우자가, 연인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나마도 아닌 경우에는 그저 집에 가서 적당히 뒹굴대다 잠이나 자겠지.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수많은 '섹스자원'…어, 초기 사상 단계의 용어니까 적당히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어쨌거나 '섹스자원'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저 매력적인 여자가, 저 매력적인 남자가 그저 오늘 밤은 집에 가서 TV나 보다, 인터넷이나 하다, 술이나 마시다, 게임이나 하다 잠에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매일 매일 엄청난 양의 '젊음'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만약 그가, 그녀가 누군가와 오늘 밤 섹스를 한다면 그 누군가에게 아주 큰 기쁨을 줄 수 있을텐데 말이다. 더욱이 큰 문제는 이런 대규모의 '젊음 낭비'는 해가 갈수록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1970년대의 젊은 따위는 얼마든지 낭비를 해도 충분한 양의 젊음이 또 태어났기에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2125년의 오늘날에는 결코 젊음의 낭비를 좌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과거 21세기 '선진국'이라 불리우던 나라 대부분이 출산율 저하 문제로 어이없이 몰락해버린 현재, 게다가 그와는 정 반대로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들이 폭발적인 출산율을 바탕으로 강대국이 되어 '이교도' 국가들을 군사력으로 위협하고 있는 현재… '젊음의 낭비', '섹스 자원의 방치'는 사회적으로 더이상 용인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상이 발생했고 국가 몰락의 공포를 기반으로 여론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미친 발상에 대한 상식적인 차원의 저항이야 당연히 존재했지만 민족 단위의 공포감이 그들을 지배할 때 이성은 광기에 휩쓸리기 마련이고 그 결과는 군국주의와 비슷한 사상을 가진 어떤 정권이 탄생했다.

덕분에 과거 20세기의 '나치즘'에 비견되는 강력한 국가주의, 반 개인주의적 사상이 동아시아 모 나라를 지배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그 나라는 '청춘(섹스)자원 관리법' 하에 젊은 인적자원이 관리되는 색정국가로 거듭났다.






섹스자원 관리법





"이현진, 17등급!"
"강윤구, 4등급"
"성마리, 6등급!"
"손한민, 13등급!"

21세기였다면 어디 축산물 검사소에서나 들려올 법한 '등급 검사'의 결과가 검사소 안에 크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모 국에서는 만 20세의 성인이 되면 그 개인의 역량을 총 평가하여 매력 등급을 랭크하게 된다.

키, 얼굴, 치아 상태, 혈압 등등의 신체적 역량, 학벌, 지능, EQ, 언어 능력, 잡학 등의 지성적 능력은 물론이요 나이나 사회적 위치 등에 의한 사회적 능력, 패션 감각이나 유머 감각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진다. 현재까지도 이 등급 랭크에 대한 기준점 논란은 빚어지고 있지만 의외로 그 목소리는 크지 않다.

왜냐하면 외모와 학벌(20대 기준) 또는 사회적 위치(30대 기준)의 가산점이 다른 항목들을 압도하니까. 외모와 학벌/사회적 위치는 종합점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라 이 두가지 기준은 다른 기준에 비해 압도적인 배점을 갖는다. 설령 다른 항목 전부가 만점이더라도 외모와 학벌/사회적 위치 점수가 10등급 이하라면 결국 10등급 이상을 받기 힘들다.

총 20개의 등급으로 나뉘는 이 '등급검사'에서 한번 등급이 정해지면 재검이 실시되는 그 이후 3년간 등급이 유지되며(재검 신청은 가능하지만 바뀌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등급이 정해지면 이제 매주 자신의 해당 등급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3등급 이내의 지정된 이성(동성애자 그룹은 당연히 분리된다)과 성적 관계를 의무적으로 가져야 한다. 당연히 건강 상의 문제, 혹은 성기능 장애가 있거나 심리적 문제가 있는 경우 의사의 허가 하에 의무 관계는 거를 수 있다.

"와 대박! 이번 주에 나 7등급 여자애랑 됐어! 사진 봐봐 짱 이쁨!"
"아…난 16등급 애야. 망함"

관계를 가졌는데 마음이 통해서 사귀기로 했다거나, 혹은 이미 이성친구가 있다면 관할 행정구역 사무소에 연락해서 최대 1년간 고정 파트너로 만날 수도 있다.

단 기한은 1년. 그 이후에는 결혼을 하거나, 반 강제로 다른 이성에게 강제 배정을 당하게 된다. '섹스자원 관리법'은 기본적으로 인구 감소에 의한 국가 존망의 위협에 방지하기 위한 법제라서 위반시의 패널티가 엄청나다.

무통보 비관계시 2회까지는 경고가 주어지지만 3회부터는 최대 징역 3년의 실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이 법의 의무 수행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꿈만 같아"

아영은 자기 옆에 누운 자인을 보며 행복한 듯 말했다. 16등급인 자신이 2등급의 자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었으니까.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단 한번도 자신감을 가진 적은 없지만, 그런 만큼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외모를 가진 남자들과 강제로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것도 너무나 끔찍했다.

어차피 외모 랭크 평가는 절대평가. 성형 수술을 해서 등급을 끌어올리면 그만이지만 재작년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인해 그럴 돈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2등급의 남자가 자신에게 반해서 사랑을 나누고자 하다니.

반대로 자인의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썩 싫지는 않았다.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만난 고도 비만인 아영의 인상은 당연히 썩 좋을 리 없었지만, 의외로 말도 잘하고 말을 하면 할수록 똑똑한게 느껴져서 지적인 매력이 느껴졌다. 4,5 등급의 골 텅텅 빈 모델들보다 차라리 아영이 낫다고 느껴질 정도로. 만약 아영이 살을 35kg만 빼고 대학교에만 진학했더라도 그녀의 등급은 10등급 이상 올라갔을 것이다.

아니, 아버지 사업이 망하지만 않았더라면 '돈'으로 등급을 끌어올릴 수 있었을텐데. 이 나라에서는 합법적으로, 돈으로 등급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돈 또한, 아니 돈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능력 중의 하나라고 보았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추한 외모를 가졌다고 한들 돈으로 최상위 등급을 살 수도 있었다. 바로 그러한 제도야말로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했고, 좋은 세금 확보 수단이기도 했고.

어쨌거나 자인은 묘한 이끌림에 아영에게 고백했고, 이미 첫 만남부터 그에게 반했던 아영은 당연히 그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다만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아영은 자연스레 그 다음 날 동사무소에서 고정 파트너를 위한 연인관계 등록을 신청했지만 자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다음 다음 날로 예약되어 있던 '1등급' 무명 탤런트와의 관계가 예약되어 있었으니까.




적당히 상위권의 등급에 랭크된 보통의 남자들은 이 법이 통과된 이래 꿀 같은 삶을 누리고 있었다. 매주 1회씩 섹스 파트너를 나라에서 지정해주는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생각없이 시간만 흘려보냈다가는 역시 낭패를 당하기 마련이다. 이 법은 낭비되는 '청춘'을 아끼기 위한 법이다. 만 40세가 되는 날 자연스럽게 국가의 '파트너 지정 시스템'에서 소집해지를 당하게 된다. 생각없이 놀아난 그 이후의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성택이 그런 케이스였다. 그저 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매주 한 명씩 여자랑 살 섞는데 설마 40세가 되는 해까지 마음 맞는 여자 하나 못 구하랴 생각했다. 서른 일곱까지는 그랬다. 그때부터 서서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주변 사람들도 다 마음 맞는 여자, 적당히 좋은 여자와 진지한 인연을 쌓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는데.

뒤늦게 진지한 만남을 가지려고 해도, 매번 일주일짜리 연애만 하던 그였다. 아니 연애도 안 했다 사실. 그냥 지정일에 만나서 섹스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상대가 OK하면 그저 하루종일 함께 있던게 전부. 어쩌다 애프터 만남을 갖는다 하더라도 조금만 수틀리면 거기서 안녕이었다. 어차피 새 여자가 공급되니까 아쉬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그가 뒤늦게 진지한 만남을 가지려 한들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결국 그렇게 3년이 또 흘렀고, 소집해제를 당한 그는 현재 국가에 의한 불임 시술을 강제로 당했다.

청춘을 낭비하지 말라고 만든 법을 이용해서 청춘을 낭비했으며, 20년의 기간동안 매주 이성을 만날 수 있었음에도 단 한 명 마음을 붙잡지 못한 인간의 유전자는 오히려 도태되는 것이 낫다는 이유에 의한 것이었다. 그것은 여성도 마찬가지. 또한 그럼으로서 다른 이들 모두에게 일벌백계의 효과도 거둘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보통은 30대 후반의 나이에 비슷한 연배 파트너와 짝 지워지면 그런 노총각 노처는 어지간하면 가정을 꾸렸다. 나라가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고.




문제는 피임과 낙태, 출산 문제였다. 아무리 이 법이 출산율 증가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는 법이라고 하더라도 정말로 아무런 사랑도 없는 관계에서 출산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부작용이 엄청날테니까. 나라에서는 피임을 권장했고, 피임에 실패한 경우 낙태도 암암리에 눈 감아 주었다.

그리고 출산을 할 경우에는 나라에서 아이를 대신 키워주었다. 부모가 원한다면 직접 양육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아이를 출산하면 곧바로 국가의 보육원에 아이를 입양시켰다. 돈도 들지 않고, 어차피 원할 때면 언제든지 가서 만날 수 있었으니까. 21세기의 인간들이 본다면 인간성 말살이니, 부성애, 모성애의 상실이니 떠들었겠지만 20세기의 인간들이 부모를 모시지 않는 21세기의 인간들을 가리켜 인간성 말살이니, 효심 상실이니 떠들지는 않았다.

모성은 본능이라 일컬어졌지만, 어차피 교육으로 다 해결될 문제였다. 21세기에도 성욕은 본능이지만 모든 성욕을 항상 사람들이 채우지는 않/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진정으로 가장 큰 문제는 불륜의 문제였다. 십수년간 매일같이 파트너를 갈아치우던 사람들이 갑작스레 한 사람만을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그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십수년간 원없이 즐겨본 덕택일까. 국가에서 우려하던 것에 비하면 그 비율이 낮게 나오긴 했지만 50%를 훌쩍 넘기는 불륜율, 80%를 넘나드는 생애 불륜율 통계는 결혼 제도를 통째로 파멸시킬 수도 있었다. 국가는 청춘의 낭비도 막아야 했지만 중장년들의 가정 안정도 생각해야 했다.

처음에는 강력한 법적 처벌을 가했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 같았으면 애초에 세상에 불륜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때 '국가'에서는 새로운 수단을 강구했다. 호르몬 요법이었다. 불륜을 피운 경우 결혼이 유지되는 하에서는 호르몬 제제를 강제 투약 해야했다. 배우자가 원할 때만 한 시적으로 해독 제제의 투입이 허가되었다. 호르몬 제제를 맞으면 성욕을 느끼지도, 성기능도 작동하지 않게 되니 어찌보면 가장 원천적인 해결방법이었다.

게다가 덕분에 불륜 피해자들은, 이혼을 하는 대신 배우자의 성적 무능을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혼해서 남 좋은 일 시켜주느니 아무도 먹지 못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뭐, 그러다가 자기도 똑같은 신세가 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러한 '섹스자원 관리법' 제도를 기반으로 그 나라는 놀랍게도 출산율 문제를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5천만의 인구에서 쇠퇴를 거듭하던 나라가 불과 100년 만에 1억 3천 인구로 거듭났던 것이다.

당연히 환경이 바뀌면 패러다임이 바뀌고, 패러다임이 바뀌면 사회 제도 전반에 개혁과 혁명의 바람이 불기 마련인지라 초 인륜적인 파행을 거듭하던 그 '국가'는 결국 혁명의 기치 하에 '인구증대'라는 과업만을 완수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물론… 혁명의 기반에는 언제나 피가 깔리기 마련인지라 그 과정에서 대대적인 피의 숙청과 '국가'에 대한 테러가 이어졌다. 그때까지 무려 140세 이상의 나이로 살아있던 '섹스자원 관리법'의 입안자이자 개똥철학파의 거두인 사상가 '김박스' 역시 반동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그는 성난 군중들에 의해 산 채로 불태워지기전, 껄껄 웃으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사상을 담은 노래 한 가락을 불렀다고 전해진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은 기우나니 일생은 일장춘몽에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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