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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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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특별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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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훈은 전화박스에서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끝났다.

"… …"

무언가 한 마디, 크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목이 잠기었다.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떨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이 떨려오고, 멍했던 가슴이 아파온다. 눈물이 터져나오고, 억울함과 서러움이 몰려왔다. 미친듯이 복받히는 울음을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참는다.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하지만 급기야 굵은 눈물이 주륵 흘러내린다.

나는, 우리 커플은, 지윤이는 아닐거라, 우리만은 특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엉엉 울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이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 콧물을 훔친다.

"…흐…흐흐흡…"

다시 한번 설움이 복받치며 눈물이 터져나오지만 애써 참고 눈가를 훔친다. 울음을 속으로 삼킨다.

"커흠!"

목소리를 가다듬고 코 한번 들이마시고, 다시 눈물 한번 닦아내고 이제 내무실로 향한다. 그래, 그 뿐이다. 누구나 한번 겪는 일, 나도 겪었을 뿐이다. 씨발.




"소등하겠습니다! 인,화,단,결! 취침!"
"전우야 수고했다!"

대대장의 특별 지시로 또 쓸데없는 구호를 외치고 불을 끈다. 말년 조상우가 중얼거린다.

"근데 씨발 곰곰히 생각해보면 '수고했다'는 반말 아니냐?"

막내들은 그 와중에 애써 웃음을 참고, 고참 뻘들은 대놓고 킥킥댄다. 하지만 곧 그마저도 조용해진다. 이제 모두가 잠에 빠져들 시간.

'후우'

아무리 이별을 겪었더 한들, 몸은 솔직하다. 벌써부터 피로가 미친듯이 몰려온다. 눈만 길게 감으면 잠에 빠져들 것이다. 자기 전 마지막으로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대한민국이 징병제 국가가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 군대에서 이렇게 반 강제로 윤지와 근 2년을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그랬더라면.아니, 그랬더라도… 대한민국의 군대 때문에 헤어진 그 많은 커플들도…

헤어진 그 많은 커플들 중 대다수는 어차피 언젠가는 군대 때문이 아니었더라도 헤어졌겠지만, 그래도 정말 일부는, 군대가 아니었다면 결혼까지 갔을지도 모를텐데.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부터. 인생에서 가장 순수한 시기의 순수한 연애.

그런 연애에 시간의 무게까지 더해져 결혼까지, 아니 그것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시기에 그 아픔을 안긴 그런 이별은 아니었을 수도 있을텐데.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헤어졌을까. 군대 때문에. 마음이 먹먹하지만 한편으로 그제서야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나도, 우리도 그 많은 사람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전혀 특별하지 않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그렇게 대훈은 눈을 감는다. 모든 엄마들의 다같이 잘난 아들들, 모두 다 각자의 사연과 인생이 있는 이 모든 장정들이 그저 '군바리' 세 글자로 통일되는 마법과 같이, 대훈은 그렇게 애써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전혀 특별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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