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이 왔다. 나무질 하다 퍼질러 누워 있으려니 흙냄새가 코 끝을 스치며 희매한 꽃냄시가 알싸허니 기분이 그럴싸하다. 하기사 평소 같으면 콧망울이 얼얼한 것이 다 뭐냐, 얼음장 같아 이래 누워있지도 못할 차에 이만큼이나 노곤히도 잠이 오는 것을 보아하니 필시 봄이 오기는 온 것이다.
"봄이 오면 뭣햐…"
허나 이 육신이 편하고 기분이 그럴싸 한 것과는 또 별개로 뱃 속에는 불덩이가 오가매 심보는 뒤틀리다 못해 요동치다 터분질러질만큼이나 답답하다. 당최 도끼질에도 힘이 안 드가고 정신만 아득한 것이 세상 천지에 또 무슨 꼴을 겪으면 이리도 무기력하고 분기가 오를까.
"꽃분이 이 망할 예식 같으니"
어릴 적에 나랑 저랑 손가락 걸고 약조를 한 것을 고것은 잊은 척하는 것이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아랫마을 그 얼팽이 같은 자식한투루 시집을 간다는 것이냐. 그 아버지가 여기저기 혼처를 알아보고 댕긴다는 말은 들었더래지만 세상에 나를 두고는, 원체 분이 터진다. 손이 부족하면 내가 손을 도왔고, 거름 부족할까 부러 그 집 가서 똥까지 누고 다녔건만 나를 두고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자고로 혼인은 인륜지의 무엇이라고 하거늘 하엿튼간에 나의 각시가 되기로 분명히 했던 것은 세상천지는 몰라도 천지신명과 우리 둘은 안단 말이다. 그러나 일이 이리되니 속만 타들어가고 분한 것이 일은 커녕 밥도 넘어가지가 않는다.
"에라이!"
당최 속이 뒤틀려서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 고대로 빈 지게를 매고 산 밑으로 내려간다. 이래서야 어제마냥 어매한테 또 서너 소리 안 들을 수가 없지만 그럼 어쩔 것이며 안 듣는다고 내 속이 편할 것이냐, 나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매 나왔드래요"
아직 해가 중천에도 안 이르렀는데 내가 돌아왔다는 말에 우리 봉사 어머이는 문을 활짝 열고 "어여 와라, 조심해서 댕겨왔누"라고 말은 하지만서도 또 역시나 "오늘도 나무 안 하고 왔누?"하고 조심스레 묻는다. 그 묻는 짝이 어제 왈칵 화를 냈더니만 어매도 조금은 그 성질을 죽이는 모냥이다. 나도 조금은 누그러져 대답을 한다.
"그려"
그러나 퉁명함은 지울 수 없이 대답을 하는 내 목소리에 괜한 뿔따구가 숨어있다. 생각컨데 어매한테 내 이래 은근히 성을 내는 것은 사실 난도 속심으로는 미안하면서도 답답하여 그러고야 마는 것이다. 작년 겨울만치만 해도 꽃분이랑 언적지가 될런지야 몰라도 그래도 언젠가는 내 각시가 되겄지 하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나는. 아마도 어매도 그것은 나랑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 그랬으니 그래 매번토록 얄궃스레 꽃분이한테 흐뭇함을 감추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중에 내 죽기 전에 손자나 하나 보고 가면 원이 없을터이니 꽃분이 니는 난중에 아는 잘 낳아주려누" 라는 어매의 주책 맞은 질문에 정말로 수줍은건지 아니면 그래도 지도 기집아인 티는 내는 것인지 얼굴만 발그레 해저서 "모르것시어요" 하던 것이 꽃분이 아니던가. 당최에 나도 그저 그 모습이 마치 내가 장가라도 이미 간 듯 하여 흐뭇허니 그 토실한 꽃분이 뒤태만 바라보던 것이 바로 엊그제녘만 같다. 그런데 이리도 겁작스레 일이 글러먹은 것은 역시나 기울어버린 양가의 가난이 제일 큰 지랄이리라.
아비 없이 억척스레 청상과부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태어나면서부터 호로자식 소리 들어가면서도 참으로 독하게 두 모자가 지개와 작대기맨치로 서로를 기대어 살아온 것이 이래 열일곱해인데 원적부터 눈이 뿌옇다 뿌옇다 하던 어매는 급기야 작년부터는 아예 지척의 것도 보지 못하는 반 소경이 되었고, 매한가지로 원적부터 몸이 약하던 꽃분이네 어매는 아예 작년 겨울에 병을 못 이기고 세상을 등져버렸다.
그래도 이런 말이 남헌티는 어드렇게 들릴지 모르것지만 나한테는 꽃분이가 있고, 꽃분이한테는 내가 있던 즉 서로를 위하고 달래주면서 그래 눈물 그렁그렁하면 눈물도 닦아주고, 혼자 울적해하면 없는 재주에 창도 귀동냥 해본대로 뽑아보고 세상 누구도 모르지만 모올래 내 꼬옥 안아주기도 하였고 그랬으니 그런 즉에 이런 생각을 허면 안되겄지만 나는 그래도 그것이 외려 우리 사이를 보다 돈독히 해주기도 하여 꼭 싫지많은 않았던 것이다. 허나 그건 나 혼처만의 착각이었던가, 생각하면 그저 콧바람만 거칠어 질 뿐인 것이다.
"그 예시가 때문에 그러누…"
아마도 어제만 같았어도 나는 벌컥 화부터 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종일 마음 속이 안 좋은 것이 그만 어매의 걱정시려운 말투에 눈물부터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어터하우…"
"울지말라 울지말라…"
어매도 아는 것이다. 내가 우는 것을. 왜 우는지를. 세상 천지에 머리에 털나고부터 내 각시다 내 여자다 생각하고 그래 몰래 좋아하던 기집아가 다른 놈 각시가 된다는데 그 분함에 눈물 안 흘리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인 것인데. 허나 터지는 울음을 간신히 이 악물로 버텨본다.
"안 울어"
얼뱅이도 아니고 다 큰 사내자식이 아무리 앞 못 보는 부모라 해도 어매 앞에서 엉엉 울 수야 없어 얼른 눈물 훔치고 "잠깐 나갔다 온더래요" 말로 나서는데 그 뒤로 "어이고 시상에" 하고 어매도 꺽꺽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속이 또 휘 뭉그러진다.
한참을 너른 걸음으로 정신없이 겅중겅중 걷다보니 뒷산 옆에 개울가인데 여기도 생각해보이 꽃분이랑 어릴 적에 물장구치며 허구헌 날 같이 뛰놀던 곳이라 눈 앞에 그 어엿븐 것이 선하게 어른거린다. 어릴 적에는 그래도 비슷허던 것이 언젠가부텀 잘라놓은 나무 밑둥맨치롱 크지를 않아 남들은 갸를 보믄 작은이 작은이 해도 나는 그저 그 작은 것이 참으로 괴엽고 잇브기만 하였다.
혼자 바웃돌 우에 걸터앉아 울적하게 있노라니 언뜻 흐르는 물에 내 얼굴이 비친다. 그 처연한 모습이 또 한번 속을 뒤집혀 얼병이처럼 가슴을 치며 운다. 넘한테 줘버릴 것 같았으면 애초에 마음도 주지 말 것을. 반나절을 그렇게 땅거미 지도록 혼자 앉아 있노라니 속도 차려지고 허기도 진 것이 우리 불쌍한 어매 생각에 설렁설렁 집으로 발을 향한다. 발걸음은 반 근인데 마음이 천근이라 집으로 향하는 것이 참 늦어도 진다. 그렇게 해가 다 떨어진 뒤에야 집에 돌아오니 어매는 한낮부터 새끼를 꼬고 있던 모양이다. 퉁퉁 부은 손이 안쓰러워 나도 내 앞에 새끼 줄을 잡는다.
"걱정말어"
"뭘"
"내 장개는 내 알아서 갈 터이니. 아무렴"
씨알도 안 먹힐 소리에 어매는 그저 대꾸도 안 하고 새끼 꼬는 손만 더 부지런히 하노라니, 문 밖에서 인기척을 느낀다. 작은 발소리가 계집아이 발소리이니 나는 그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매는 아는 척 모르는 척 그저 새끼만 꼬을 뿐이다.
무슨 일이 그리도 급한지 헐떡이며 뛰올라온 모양새가 지 아부지한테 걸리면 등짝을 맞아도 맞게 생긴 판이다. 반가움이 이를 데가 없음에도 그저 나는 또 그렇게 퉁을 놓는다.
"뭔 일이래"
그러자 꽃분이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안 간다, 나 안 간다! "
그저 야는 예나 지금이나 말을 뭉텅이로 끊어먹고 하는 것이 참 나쁜 성미다. 이를테면 "갯동아 이거 너 주려고 가져왔으니 맛나게 먹어라" 하면 좋을 것을 그저 불쑥 "먹으래" 하고만 말하니 당최가 답답한 것이다.
"무어를 안 간다고"
그러자 답답한지 이 계집애가 뜬금스레 내 가슴을 그 앙칼진 손으로 퉁퉁친다.
"그 얼핑이 같은 반피한테 시집 안 간다고"
그 말에 난 제 자리에서 밤새도록 춤을 추어도 아쉬울만큼 기쁨이 극에 달했지만서도 그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왜"
"이상한 소문을 들어서 아바이가 몰래 그제 몰래 가 확인해보니 진짜로 그 갸가 얼핑이란다. 몸은 똑똑한데 대마이가 얼핑이라, 아부지가 그 집에 딸 못 준다고 확언하고 왔단다"
"어이쿠야!"
설혹 꽃분이가 그 집에 시집을 가지 않는다 한들 그렇다고 꽃분이가 내 마누래가 되는 것도 아니건만, 나는 뭔 지천인지 그 자리에서 꽃분이를 얼싸안고 빙빙 돈다.
"좋다, 좋아"
내 눈에 또 한번 눈물이 환하게 맺히지만 이 눈물은 결단코 낮의 그것이 아니고 오로지 기쁨의 눈물이여, 어느새 그 말을 또 어떻게 주워들었는지 참 귀도 밝아 문 열고 환하게 기뻐하는 우리 어매 얼굴을 보노라니, 나는 이제 꽃분이 너를 결단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또 한다. 니 아부지한테 절을 하고 또 하다 쳐맞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봄이 오면 뭣햐…"
허나 이 육신이 편하고 기분이 그럴싸 한 것과는 또 별개로 뱃 속에는 불덩이가 오가매 심보는 뒤틀리다 못해 요동치다 터분질러질만큼이나 답답하다. 당최 도끼질에도 힘이 안 드가고 정신만 아득한 것이 세상 천지에 또 무슨 꼴을 겪으면 이리도 무기력하고 분기가 오를까.
"꽃분이 이 망할 예식 같으니"
어릴 적에 나랑 저랑 손가락 걸고 약조를 한 것을 고것은 잊은 척하는 것이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아랫마을 그 얼팽이 같은 자식한투루 시집을 간다는 것이냐. 그 아버지가 여기저기 혼처를 알아보고 댕긴다는 말은 들었더래지만 세상에 나를 두고는, 원체 분이 터진다. 손이 부족하면 내가 손을 도왔고, 거름 부족할까 부러 그 집 가서 똥까지 누고 다녔건만 나를 두고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자고로 혼인은 인륜지의 무엇이라고 하거늘 하엿튼간에 나의 각시가 되기로 분명히 했던 것은 세상천지는 몰라도 천지신명과 우리 둘은 안단 말이다. 그러나 일이 이리되니 속만 타들어가고 분한 것이 일은 커녕 밥도 넘어가지가 않는다.
"에라이!"
당최 속이 뒤틀려서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 고대로 빈 지게를 매고 산 밑으로 내려간다. 이래서야 어제마냥 어매한테 또 서너 소리 안 들을 수가 없지만 그럼 어쩔 것이며 안 듣는다고 내 속이 편할 것이냐, 나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매 나왔드래요"
아직 해가 중천에도 안 이르렀는데 내가 돌아왔다는 말에 우리 봉사 어머이는 문을 활짝 열고 "어여 와라, 조심해서 댕겨왔누"라고 말은 하지만서도 또 역시나 "오늘도 나무 안 하고 왔누?"하고 조심스레 묻는다. 그 묻는 짝이 어제 왈칵 화를 냈더니만 어매도 조금은 그 성질을 죽이는 모냥이다. 나도 조금은 누그러져 대답을 한다.
"그려"
그러나 퉁명함은 지울 수 없이 대답을 하는 내 목소리에 괜한 뿔따구가 숨어있다. 생각컨데 어매한테 내 이래 은근히 성을 내는 것은 사실 난도 속심으로는 미안하면서도 답답하여 그러고야 마는 것이다. 작년 겨울만치만 해도 꽃분이랑 언적지가 될런지야 몰라도 그래도 언젠가는 내 각시가 되겄지 하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나는. 아마도 어매도 그것은 나랑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 그랬으니 그래 매번토록 얄궃스레 꽃분이한테 흐뭇함을 감추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중에 내 죽기 전에 손자나 하나 보고 가면 원이 없을터이니 꽃분이 니는 난중에 아는 잘 낳아주려누" 라는 어매의 주책 맞은 질문에 정말로 수줍은건지 아니면 그래도 지도 기집아인 티는 내는 것인지 얼굴만 발그레 해저서 "모르것시어요" 하던 것이 꽃분이 아니던가. 당최에 나도 그저 그 모습이 마치 내가 장가라도 이미 간 듯 하여 흐뭇허니 그 토실한 꽃분이 뒤태만 바라보던 것이 바로 엊그제녘만 같다. 그런데 이리도 겁작스레 일이 글러먹은 것은 역시나 기울어버린 양가의 가난이 제일 큰 지랄이리라.
아비 없이 억척스레 청상과부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태어나면서부터 호로자식 소리 들어가면서도 참으로 독하게 두 모자가 지개와 작대기맨치로 서로를 기대어 살아온 것이 이래 열일곱해인데 원적부터 눈이 뿌옇다 뿌옇다 하던 어매는 급기야 작년부터는 아예 지척의 것도 보지 못하는 반 소경이 되었고, 매한가지로 원적부터 몸이 약하던 꽃분이네 어매는 아예 작년 겨울에 병을 못 이기고 세상을 등져버렸다.
그래도 이런 말이 남헌티는 어드렇게 들릴지 모르것지만 나한테는 꽃분이가 있고, 꽃분이한테는 내가 있던 즉 서로를 위하고 달래주면서 그래 눈물 그렁그렁하면 눈물도 닦아주고, 혼자 울적해하면 없는 재주에 창도 귀동냥 해본대로 뽑아보고 세상 누구도 모르지만 모올래 내 꼬옥 안아주기도 하였고 그랬으니 그런 즉에 이런 생각을 허면 안되겄지만 나는 그래도 그것이 외려 우리 사이를 보다 돈독히 해주기도 하여 꼭 싫지많은 않았던 것이다. 허나 그건 나 혼처만의 착각이었던가, 생각하면 그저 콧바람만 거칠어 질 뿐인 것이다.
"그 예시가 때문에 그러누…"
아마도 어제만 같았어도 나는 벌컥 화부터 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종일 마음 속이 안 좋은 것이 그만 어매의 걱정시려운 말투에 눈물부터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어터하우…"
"울지말라 울지말라…"
어매도 아는 것이다. 내가 우는 것을. 왜 우는지를. 세상 천지에 머리에 털나고부터 내 각시다 내 여자다 생각하고 그래 몰래 좋아하던 기집아가 다른 놈 각시가 된다는데 그 분함에 눈물 안 흘리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인 것인데. 허나 터지는 울음을 간신히 이 악물로 버텨본다.
"안 울어"
얼뱅이도 아니고 다 큰 사내자식이 아무리 앞 못 보는 부모라 해도 어매 앞에서 엉엉 울 수야 없어 얼른 눈물 훔치고 "잠깐 나갔다 온더래요" 말로 나서는데 그 뒤로 "어이고 시상에" 하고 어매도 꺽꺽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속이 또 휘 뭉그러진다.
한참을 너른 걸음으로 정신없이 겅중겅중 걷다보니 뒷산 옆에 개울가인데 여기도 생각해보이 꽃분이랑 어릴 적에 물장구치며 허구헌 날 같이 뛰놀던 곳이라 눈 앞에 그 어엿븐 것이 선하게 어른거린다. 어릴 적에는 그래도 비슷허던 것이 언젠가부텀 잘라놓은 나무 밑둥맨치롱 크지를 않아 남들은 갸를 보믄 작은이 작은이 해도 나는 그저 그 작은 것이 참으로 괴엽고 잇브기만 하였다.
혼자 바웃돌 우에 걸터앉아 울적하게 있노라니 언뜻 흐르는 물에 내 얼굴이 비친다. 그 처연한 모습이 또 한번 속을 뒤집혀 얼병이처럼 가슴을 치며 운다. 넘한테 줘버릴 것 같았으면 애초에 마음도 주지 말 것을. 반나절을 그렇게 땅거미 지도록 혼자 앉아 있노라니 속도 차려지고 허기도 진 것이 우리 불쌍한 어매 생각에 설렁설렁 집으로 발을 향한다. 발걸음은 반 근인데 마음이 천근이라 집으로 향하는 것이 참 늦어도 진다. 그렇게 해가 다 떨어진 뒤에야 집에 돌아오니 어매는 한낮부터 새끼를 꼬고 있던 모양이다. 퉁퉁 부은 손이 안쓰러워 나도 내 앞에 새끼 줄을 잡는다.
"걱정말어"
"뭘"
"내 장개는 내 알아서 갈 터이니. 아무렴"
씨알도 안 먹힐 소리에 어매는 그저 대꾸도 안 하고 새끼 꼬는 손만 더 부지런히 하노라니, 문 밖에서 인기척을 느낀다. 작은 발소리가 계집아이 발소리이니 나는 그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매는 아는 척 모르는 척 그저 새끼만 꼬을 뿐이다.
무슨 일이 그리도 급한지 헐떡이며 뛰올라온 모양새가 지 아부지한테 걸리면 등짝을 맞아도 맞게 생긴 판이다. 반가움이 이를 데가 없음에도 그저 나는 또 그렇게 퉁을 놓는다.
"뭔 일이래"
그러자 꽃분이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안 간다, 나 안 간다! "
그저 야는 예나 지금이나 말을 뭉텅이로 끊어먹고 하는 것이 참 나쁜 성미다. 이를테면 "갯동아 이거 너 주려고 가져왔으니 맛나게 먹어라" 하면 좋을 것을 그저 불쑥 "먹으래" 하고만 말하니 당최가 답답한 것이다.
"무어를 안 간다고"
그러자 답답한지 이 계집애가 뜬금스레 내 가슴을 그 앙칼진 손으로 퉁퉁친다.
"그 얼핑이 같은 반피한테 시집 안 간다고"
그 말에 난 제 자리에서 밤새도록 춤을 추어도 아쉬울만큼 기쁨이 극에 달했지만서도 그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왜"
"이상한 소문을 들어서 아바이가 몰래 그제 몰래 가 확인해보니 진짜로 그 갸가 얼핑이란다. 몸은 똑똑한데 대마이가 얼핑이라, 아부지가 그 집에 딸 못 준다고 확언하고 왔단다"
"어이쿠야!"
설혹 꽃분이가 그 집에 시집을 가지 않는다 한들 그렇다고 꽃분이가 내 마누래가 되는 것도 아니건만, 나는 뭔 지천인지 그 자리에서 꽃분이를 얼싸안고 빙빙 돈다.
"좋다, 좋아"
내 눈에 또 한번 눈물이 환하게 맺히지만 이 눈물은 결단코 낮의 그것이 아니고 오로지 기쁨의 눈물이여, 어느새 그 말을 또 어떻게 주워들었는지 참 귀도 밝아 문 열고 환하게 기뻐하는 우리 어매 얼굴을 보노라니, 나는 이제 꽃분이 너를 결단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또 한다. 니 아부지한테 절을 하고 또 하다 쳐맞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