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4일, 조원규 신임 총리 후보자의 국회청문회 석상에서 대형 이슈가 터졌다. 조 총리 후보자가 그동안 인터넷 포털 뉴스기사에 작성한 댓글들이 문제였다.
현직 야당 대표에 대하여 '빨갱이 새끼', '못 배운 놈'의 댓글을 작성한 것은 물론, 여성 탤런트의 화보 사진에는 '맛있겠구만', '궁뎅이가 빵빵한게 잘 익었다' 같은 성희롱 수준의 댓글을 작성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나라 말아먹을 놈', '빨리 뒤져라' 수준의 폭언을 한 것으로도 밝혀졌다.
한국대학교 총장과 정통부 장관을 거쳐 감사원장을 지내기도 한 조 후보자는 교육자 출신답게 평소 우수한 인품과 높은 청렴도로 여당은 물론 야당측 의원들에게도 많은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던 터라 막말 댓글의 충격은 컸다. 결국 조 후보자는 사건이 터진 이후 3일 만에 "국민께 죄송하다"라는 내용으로 눈물의 기자회견을 가진 끝에 자진 후보자 사퇴를 했다.
기존에도 고위 군 관계자나 법조인, 교육자 등이 온라인에서 막말을 한 행적이 드러나 사회에 충격을 안기고 사퇴한 일들이 있긴 했지만, 총리 후보자 수준의 고위 공직자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 후보자는 낙마 이후 고향으로 내려갔으나 그 일주일 후, 자살을 선택하여 또 한번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30여 년간 쌓아올린 교육자, 공직자로서의 업적과 사회적 인품이 댓글 사건을 통해 무너져 내렸고, 유서에서의 내용 역시 본인 스스로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론은 이미 대단히 부정적인 상태였기에 그의 죽음은 그다지 동정 받지 못했으나, 한편으로 조 후보자의 댓글이 밝혀진 경위에 대해서 사회 일각에서 문제제기를 시도했고 경찰의 수사 결과 포털의 관리자가 내부 정보를 유출해 야당 의원에게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 해당 사안에 대해 그 관리자가 벌금형 등의 처분을 받는 해프닝도 있었다.
결말이 대단히 비극적이긴 했지만 사안 자체는 이미 예전에도 아주 없던 일도 아니었고, 인터넷과 언론, 방송국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일시적으로 이슈가 되기는 했지만 어차피 금방 묻힐 일이었다.
그러나 그 두 달 후, 정말로 큰일이 터졌다.
"이게 뭐야 도대체!"
총선이 불과 석 달 앞으로 다가온 현재, 야당 중진의원 기한진은 한 종편 채널에서 자신의 이름이 "막말 댓글 정치인"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대문짝만하게 속보가 노출되고 있는 것을 보며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도대체 뭣들 하고 있어! 당장 방송국에 연락하고, 어디에서 어디로 정보가 유출되었는지 확인해!"
그러나 보좌진을 다그치고 있는 것은 기 의원 뿐만이 아니었다. 여야를 막론한 전현직 국회의원 32명의 신상정보와 각 포털별 아이디와 각종 커뮤니티 가입 여부, 문제 되는 댓글, 그 아이디가 그의 것임을 증명하는 교차검증 및 증거자료 이미지가 첨부된 엑셀파일이 온 인터넷에 퍼지고 있었다.
국회의원 뿐만이 아니었다. 국회의장, 차관급 국무의원, 대법원 판사, 검사장, 현역 해군소장, 전직 국립대 총장, 거물급 종교인, 유명 시민단체 대표, 대기업 대표 및 임원, 교직원 노조 대표, 영화감독,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 주요 일간지 기자들, 중진 연예인, 걸그룹 멤버 등 각계각층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총 1,005명의 신상정보와 그들이 인터넷에 남긴 '치부'들이 고스란히 세상에 노출되었다.
아무리 공인이며 엘리트, 사회적 책임을 가진 이라고 하더라도 익명성 뒤에 숨은 모습만큼은 인터넷의 흔한 키보드 워리어들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특히 거물급 정치인들의 막말 댓글들은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었고 네티즌 역시 축제가 벌어졌다며 약 130메가 분량의 파일을 분석해 나갔다. 외신에서도 긴급 뉴스로 해당 사건을 다루었다.
한편으로 경찰은 이를 유포한 세력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치부가 담긴 파일인만큼 즉시 경찰과 관계부처는 대응에 나섰지만 자료는 토렌트, 웹하드, 온라인 게시판, 해외 사이트, 스팸 메일 등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유포되었고, 유포하는 측 역시 지능적이며 집요하리만치 사람들에게 자료를 유포시켰다. 일주일이 넘도록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막말, 폭언, 모욕, 비아냥, 성희롱, 비방, 선동, 욕설, 인신공격 등, 사회 지도층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그들의 댓글 수준들은 가관이었다. 그들의 막말 댓글 중에는 단순히 "쓰레기 같은 놈" 같은 가벼운(?) 욕설부터 도를 한참 넘은 막장 발언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했다. 물론 비교적 가벼운 욕설이라고 해도 엄연히 현행법상 모욕죄에 저촉되는 수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의 딸에 대해 성적인 희롱에 가까운 댓글을 단 황당한 정치인도 있었다.
대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터무니 없이 날조된 내용이라며 펄쩍 뛰며 기자회견을 하는 이도 있었고,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하는 이도 있었고, SNS에 괴로움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으며, 사직서를 내고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도 있었다. 몇 건의 송사에 휩싸이게 된 이도 있었으며 이혼 절차에 돌입한 이도 있었다. 가장 많은 반응은 거짓이라고 잡아떼는 것이었고 이는 대부분이 정치인이었다. 물론 그 누구도 거짓말이라느니 날조된 내용이라느니 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를 비판하는 풍자 개그를 해온 제가 이제는 풍자를 당할 때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연예계 은퇴를 선언한 중견 개그맨의 대응이 그나마 가장 낫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잠적 및 자숙 기간에 돌입한 이도 많았다.
그들의 유일한 위안이라면 공개된 명단이 무려 1천명이 넘는 통에 세간의 비난이나 비판이 누구 하나 둘에게 집중되기 어려웠다는 것이었고, 잘못을 저지른 이가 한두명이 아니었기에 "어차피 사람은 익명성 속에 숨으면 그렇게 되는 것 뿐"이라는 변명을 하기도 용이하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 대기업 임원이 자살했다. 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온 그는 각종 성인 동성애 만남 사이트에서 활동한 내역이 있었고, 본의 아니게 아웃팅을 당하게 되자 결국 자살을 택한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 같은 걸그룹 멤버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방하는 악플을 달아온 것으로 알려진 한 여자 가수 역시 자신에게 쏟아진 엄청난 안티팬들과 멤버들의 비난에 자살시도를 했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다른 이들 역시 처지는 비슷했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저지른 비겁한 추태, 한때의 분을 참지 못해 쏟아낸 폭언, 비열한 의도로 작성된 악플들은 익명성의 가면을 벗고 맨 얼굴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 배우자, 자식, 부모, 친척, 친구, 직장, 조직체, 학우, 지인, 팬 등 주변의 모든 이에게 벌거벗겨진 더러운 모습은 그들을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처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건이 터진 후 2주일이 넘었지만 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포털의 아이디와 신상정보 등이 노출된 것으로 보아 포털의 전현직 임원들과 해당 부서 관련자들이 주요 용의선에 올랐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었다. 외부의 해킹 역시 의심되어 대대적인 로그 분석 등이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양대 포털 업체가 지난 10년 간 국내외 해커로부터 각각 700여 차례에 걸쳐 20만건, 1,800여 차례에 걸쳐 930만건에 달하는 해킹을 당한 사실을 숨긴 것이 추가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경찰은 단순히 외부의 해킹만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는 힘들다고 보고, 전현직 포털 관계자와 보안 담당자들에 대해 집중적인 수사를 재개했다.
청와대는 "사상 유례가 없는 사이버 참변"이라는 논평과 함께 '그 모든 사안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나라의 지도자인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라는 말을 꺼냈다가 오히려 네티즌들에게 물타기 하지 말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법조계 역시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 비상대책위를 세워 수사에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속적부심사 등에 대해 24시간 긴급 대응 체계를 마련했다.
네티즌들은 그런 모습에 대하여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자 부랴부랴 열심히 하는 모습은 구역질이 날 뿐"이라는 식의 비아냥을 보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가장 큰 비난에 직면한 것은 언론사들이었다.
"이번 사태에 대하여, 기자협회와 한국 언론인 조합, 각 방송사 대표 등은 사이버 테러에 의해 획득한 정보를 무분별하게 유통하는 것에는 현행 법상에도 저촉되는 것이며 기자윤리 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바, 사건 자체에 대한 개괄이나 수사 발표 등을 제외한, 유포된 신상정보를 활용한 그 내용의 보도는 최대한 자제할 것으로…"
언론사들은 이번 사건에서 획득한 정보에 대한 보도를 자제할 것으로 결의했다. 그러나 이는 불과 두어달 전, 조원규 총리 후보자에 대한 기존의 태도와는 180도 다른 것이었으며, 습관적으로 '국민들의 알 권리' 운운하던 평소의 모습과도 상충되는 모습었다. 곧바로 외압설이 흘러나왔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불법적으로 수집한 자료와는 별개로, 막말 댓글들도 문제는 문제다. 거를 놈은 거르자'라는 반응과 '까발려 봐야 국격만 떨어질 뿐이다. 이미 사람까지 죽은 마당에 불법자료로 뭘 더 하자는 것이냐'라는 의견이 충돌했다.
그 타이밍에 '트레이서'라는 인터넷 언론은 다른 언론사들과 궤를 달리했다. "우리 언론사는 이미 지난 조원규 후보자의 때도 철처히 그의 막말을 파헤쳤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우리는 성역 없이 끝까지 파헤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오히려 특집 기사로 하루에 한 명의 인물들의 폭언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1,005명 전체에 대해 파헤칠 것이라고 선언한지 채 한달이 되지 않아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유포 금지 가처분 신청에 의해 트레이서의 연작 기사 시리즈는 종료되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해당 언론사의 PV가 기존 대비 700% 이상 늘었다는 분석이 있었을만큼 세간의 주목도는 높았다.
하기사 이미 정치적 성향에 의해, 각자가 지지하고 안티하는 정치인들의 막말에 대한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은 굳이 언론이 아니고서라도 하루하루 목소리가 커져만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함께 보도 자제를 결의한 언론 중 경원신문이 제일 먼저 그 약속을 깨고 여당 대표의 인터넷 막말 댓글을 비판하는 사설과 관련 기사를 실었다. 이어 동화일보와 중원일보, 한마음신문 등이 그 뒤를 이었고 결국 언론사들의 결의는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그나마 국내 최다 구독수를 자랑하는 고려일보는 자사의 사장이 사건에 피해자 처지로 연루된 덕분인지 사건 자체에 대한 보도기사를 제외한 해당 이슈를 한달 이상 다루지 않았으나, 20대 총선 공식선거운동 시즌을 한달 앞두고 뒤늦게 관련 기사를 쏟아내었다.
"이게 단순히 외부 해커 몇 명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사건입니까? 당신들 정말 수사 이렇게 할거야?"
'국내 네티즌과 연계한 북한 또는 중국 해커의 소행으로 보인다' 라는 경찰의 사건 수사 중간 브리핑에 대해 항의차 경찰청을 방문한 지성열 새민주연합당 의원은 호통을 쳤다. 역시 '막말 문건'에 이름을 올린 피해자 중의 하나인 그는 같은 당 의원들에 대한 모욕성 댓글 때문에 공천 심사에서 탈락해 더욱 민감해져 있었다.
이 사건의 경우, 처음부터 그 범행의 스케일과 대담성에서 해커 한 두명의 소행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데가 있었다. 또 해커가 포털 내부의 일부 회원 신상정보를 해킹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다른 정보들과 조합하여 특정 인물임을 지목하는 과정, 아울러 특정 포털 이외에서의 정보까지 조합해서 밝혀내는 정보 분석력, 그리고 그런 일을 무려 1천명이 넘는 인물에 대해 해왔다는 것은 단순히 네티즌 몇 명의 작품이라 보기에는 너무나 규모가 큰 것이었다.
곧바로 '국정원'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동안 무슨 시사 이슈만 터졌다 하면 국정원에 의한 음모를 운운하는 일부 야당 정치인들과 그 지지 세력에 의한 주장이었지만, 그런 주장에 피로를 느끼던 사람들조차 이번 일은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애초에 국내에서 그런 문건을 실제로 만들 수 있고 만들만한 조직 자체가 '알려진 한도 내에서는' 적어도 국정원 뿐이었다.
"당장 특검해야죠!"
총선 공식선거운동을 당장 한달 앞둔 극도의 민감하고도 바쁜 시기. 그러나 이 안건만큼은 그 어떤 빅 이슈보다 중요한 선거 이슈였다. 경찰의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야당 측에서는 그것이 여당 측의 외압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막말 문건을 선거에 호재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고 특검을 활용한 국정원에 대한 수사를 강력히 요구했다. 여당 측에서는 그에 대해 '터무니 없는 주장에 의한 악성 선거전이며 더이상의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흔들기를 중단하라'며 반박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74%에 이르는 국민들이 국정원이 이번 사건에 개입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결과가 나온데 이어, 전직 국정원 요원이라고 주장하는 김 아무개씨가 "국가정보기관이 주요 인사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국정원 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정보기관에 늘상 있는 일. 이번 일도 그 연장선상에서 있는 일일 것"이라고 각종 언론에 인터뷰를 하면서 일이 커졌다(하지만 모든 후폭풍이 지나간 후, 김 아무개씨는 국정원에서 근무한 적이 없는 노숙자 출신의 남자로 밝혀져 구속, 각종 혐의로 징역 4년 형을 선고받는다).
판이 커지자, 여론을 의식한 여당 측도 특검에 전격 동의했다. 결국 3일만에 전 대전 고검 차장검사 출신의 정우현 변호사가 특별검사로 임명되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은 후 국정원 본원에 대한 압수수색 및 관련 혐의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 이번 사건은 우리에 의한 것이다 ]
특검의 강도 높은 조사에도 딱히 국정원에 대한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던 그 시기, 스스로를 '에이케이섹(AKsec)'이라고 밝힌 국제해커조직이 드디어 이번 한국에서의 문건 사태는 자신들에 의한 것이라고 사건 두 달 만에 트위터에서 밝혔다. 그 증거로 자신들의 부계정이라고 밝힌 3개의 트위터 계정에 연결된 링크에서 여야 국회의원 12명의 온라인 막말 댓글이 담긴 파일을 추가 공개했다.
에이케이섹은 안티 코리아(Anti Korea)의 약자와 정보를 뜻한 보안(security)을 합친 단어로, 그들이 이번 사건을 벌인 이유는 "한국 정부가 나서서 벌이고 있는 성인 사이트 접속 차단과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이버 모욕죄에 대한 지나치게 광범위한 적용, 마지막으로 '온라인에서의 개인행적을 정보 무기로 사용하고자 하는 반(反) 사이버적 정서의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라는 이유였다.
에이케이섹은 단번에 '온라인의 영웅'과 '터무니 없는 미친 짓을 저지른 악질 범죄해커집단'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이어졌고 엉뚱한 곳에서 헛물만 켜며 미궁에 빠질 뻔한 수사는 급류를 탔다. 우선 경찰은 이번 사건을 '치명적인 온라인 테러'사건으로 규정하여 인터폴과 미국 정부, 트위터 社의 신속한 협조를 받아내는데 성공했고 에이케이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이번 사건은, 국내 해커집단과 해외 해커집단의 연합에 이은…"
수사가 급류를 탄지 이주일 만에 에이케이섹 서브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던 연락책, 한국계 미국인 방필립(25세) 군이 처음으로 체포되었고, 그에 이어 한국에 근거를 둔 해커집단 '아시아대 컴퓨터 동아리' 회원들이 긴급 체포되었다. 방필립 군의 외국인 친구 해커 3인은 끝내 정체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아시아대 컴퓨터 동아리' 흔한 대학교 소모임에서 만난 대학 선후배 사이인 김구한(26)과 한오준(20)은 아마츄어 해커로, 원래는 한오준의 아버지가 중국발 온라인 피싱 사이트에 낚여 무려 5천만원에 이르는 통장예금을 날려버린 데에서 시작한다. 한오준의 사정을 듣게 된 김구한은 이후부터 복수를 위해 둘이 함께 닥치는대로 중국계 온라인 피싱 사이트 및 불법 도박사이트에 대한 해킹을 시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우연찮게 어나니머스에서 떨어져나와 따로 '명분 있는 해킹활동'을 해오던 방필립 군과 친해지게 되어 안티차이나 보이스피싱 활동을 하게 된다. 즉 원래는 에이케이섹(Anti Korea Sec)이 아니라 에이씨섹(Anti China Sec)이었던 셈이다.
그러던 도중, 한 중국 해커집단의 홈페이지를 때려부수던 김구한은 그들의 사설 서버 깊숙한 곳에서 총합 17기가에 달하는 압축 파일 뭉치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보통 같았으면 무시하고 넘어갔겠지만 kaoriBZ_001.dmp로 시작되는 파일명이 어째 한국을 비하하는 단어 '카오리빵즈' 같아서 호기심에 그 파일을 내려받았다. 파일은 변조된 압축파일이었고 기본 암호가 걸려있었지만, 같은 해커출신의 구한에게 파일변조는 아무 것도 아니었고, 방필립의 외국인 해커 친구들은 압축파일의 암호화 메타정보를 기준으로 압축파일을 역설계해서 암호를 풀어냈다.
[ PH님 양키친구들은 무슨 신인가요?ㅎㄷㄷㄷㄷㄷ ]
[ rc_5852 그 놈은 신은 신인데 병신이죠:> 짱깨새끼임. 그리고 d#sd44는 양키가 아니라 Jew임 유태인. 그 새끼는 천재 맞아요 게이라는 사실만 빼면 완벽한 새끼인데 ]
[ 님 혹시 따였나요 ]
[ oo0oo ]
파일을 열어보자 그것은 무려 수십만명의 한국인들 개인정보가 실린 파일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주민등록번호와 이름 정도만 나온 것이 아니라, 카드사용 내역과 카드사 내부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회원들의 자체 신용등급까지 포함된 엄청난 것이었다. 게다가 빅데이터 빅데이터 하더니, 카드사용 내역과 신용평가 정보 기록 등을 바탕으로 한 고객정보 파일에는 그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분석자료까지 있었다. 해커는 아마도 카드사 또는 신용평가사 측의 개인조회정보를 빼돌린 것 같았다.
"이건 대박 정도가 아닌데…"
도대체 이런 정보가 왜 중국 해커의 개인 사설서버 따위에 들어가있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어쨌든 엄청난 발견이었다. 한오준은 펄쩍펄쩍 뛰며 얼른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나섰지만 나머지는 모두 결사반대했다. 이 자료의 출처를 어떻게 증빙할 것이며 설령 제보한다고 한들 무슨 대책이 있겠냐는 것이었다. 괜히 억울한 누명을 쓸 수도 있다며 말렸지만, 오준은 결국 그 자료를 경찰에 신고했다.
[ wtf!!!!!!!!!!!!!!!!!!!!!!!!!!!!!!!!!!!!!!! ]
그리고 예상대로 오준은 어이없게도 카드사에 대한 해킹혐의로 구속수사를 받게 되었다. 오준은 억울하다며 울며불며 난리였지만 경찰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카드사와 신용평가사 역시 인지도 못한 채 추적조차 못할 중국발 해커에게 고객의 신용자료를 털렸다는 사실보다는 차라리 한국인 해커에게 털렸고, 그를 체포했다고 하는 쪽이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밀의은 결국 한 청년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기에 충분했고, 오준은 결국 재판을 거쳐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오준아…"
"괜찮아요. 형이 말렸을 때 말 들었어야 되는데. 제가 병신이었죠. 그래도 저 끝까지 형 이름 말 안 했어요. 괜히 형까지 다칠까 봐"
"걱정마라. 내가 어떻게든 도와볼께"
구한은 오준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나녔지만 아무런 도울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자초지정을 털어놓아도 믿는 사람도, 믿어줄 사람도, 증빙자료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손에 들린 것은 그가 직접 중국 해커에게서 뽑아온 수백만명의 신용정보 뿐. 이것은 그리고 아차하면 엉뚱하게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청와대 신문고 홈페이지에까지 억울함을 알리고 법원에 탄원서도 수십장 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김구한과 방필립이 '에이케이섹'으로 조직의 이름을 바꾸게 된 것도 바로 그 즈음이었다. 6개월간의 실형을 살고 나온 한오준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리 이걸로 재미나는 일 좀 해보죠"
그가 감방에서 떠올려 낸 '재미나는 일'이라는건 이러했다. 신용정보 파일에 실린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그들의 직업이나 사회적 신분을 알아내고, 국가행정포털 혹은 방송국, 언론사, 국내 포털에 아이디가 중첩되는 경우가 있는지 등을 대조해서 추려낸다. 이후 그들이 인터넷에서 벌인 추잡한 행동들을 만 천하에 까발려 세상을 놀래킨다.
황당무개하고 유치하며 이거야말로 본격적인 불법 영역의 일이라 김구한은 꺼렸지만, 마침 호기심 삼아 검색을 해본 VVIP 블랙카드 회원 하나의 정보를 파보자 그녀는 뜻밖에 '온라인 성인 컨텐츠 특별처벌법'을 발의한 통일당 한희원 의원이었다. 그녀의 댓글은 더더욱 놀랍게도 "싼 티 너무 난다 미친년도 아니고옷이 뭐저럼???", "한국 남자들은 열외없이 전부 개쓰레기ㅋ" 등, 그냥 흔한 인터넷 상의 관심종자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 길로 김구한은 오준의 의견에 동참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인터넷에 그 정보를 유포할 생각은 없었지만, 6개월간 감방에서 별 일을 다 겪은 오준은 달랐다. 그는 세상에 어떤 식으로던 복수를 하고 싶었다. 누구에 대한 복수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복수이냐가 중요했다.
수십만명의 회원 중 카드 등급과 소비성향, 금액의 최상위권을 걸러내면 열에 둘 셋은 셀러브리티가 걸렸다. 또 공무원 법인카드와 여의도, 소비금액을 어느 정도 매칭해보면 또 VIP들이 나왔다. 무엇보다 카드사 회원 정보에 직장주소를 보면 쉽게 직위들이 파악이 되었다.
그들의 아이디를, d#sd44가 따온 포털 댓글 관리자 아이디/비번을 포털 사이트 본사와의 가상화 게이트 웨이 네트워크를 통해 접속한 후 내부 CMS에서 검색을 돌리면 주르륵 그들의 댓글과 가입 까페 리스트들이 터져나왔다.
연예인들이 직접 자기 변호하는 댓글들을 보는 것도 웃겼다. 연예인 실드 댓글을 향해 사람들이 반 농담으로 하는 "XXX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는 댓글이 사실은 정말로 그 XXX씨에게 하는 댓글인 경우가 그렇게 많을 줄이야. 정치기사의 정치인 실드 댓글도 마찬가지였다.
여튼 약 6개월간에 거쳐 수집된 데이터들을 모아 한오준은 '생사부'를 완성했다. 그리고 구한 몰래 방필립의 친구 rc_5852에게 그것을 전달했다. 그리고 부디 해외에서 그것들을 유포해주길 바랐다. 겪어본 결과, 방필립이나 d#sd44의 성격이라면 분명 반대했겠지만 rc_5852는 그저 재밌으면 그만이었다. 결국 그렇게 rc_5852과 한오준이 일을 저질러 버리자, 나머지들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어차피 수습은 불가능하고 차라리 일을 키우면 세간의 눈이 있어서라도 우리를 함부러 어쩌진 못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결국 끝없이 달려버린 것이었다.
"인터넷에 뻘 소리 쓰고 다니지 마라"
"허이구, 국회의원부터 대학 교수며 뭐며 배운 놈들도 다 그러고 다니더라"
"그러니께 하는 말이여!"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막말 문건'도 결국 두어달 이후에는 잦아들었다. 총선 직후 벌어진 북한의 장사정포 도발 사건탓이었다. 전쟁 위기가 감도는데 그까짓 인터넷에서 막말 좀 한 것 쯤은 아무런 이슈조차 되지 않았다.
총선은 여당의 압승으로 돌아갔다. 당초 대통령 레임덕과 경제 디플레이션 이슈로 인해 야당의 우세로 점쳐졌던 선거였으나 '막말 문건'을 국정원과 연계시켜 제 2의 국정원 게이트로 만들고자 했던 선거전략이, '막말문건의 진범'이 결국 진짜 사회에 불만을 가진 해커들로 밝혀진 탓에 큰 역풍을 불러왔기 때문이었다.
막말문건에 언급된 총 44명의 국회의원 중 39명이 아예 총선에 나서지 못했거나 패배하여 금뱃지를 잃었다. 장사정포 포격 사건이 있기까지 해당 문건으로 자살한 사람의 총 수는 6명으로 늘어났다.
사건의 주범 김구한과 한오준은 각각 징역 4년과 5년을 받았고, 방필립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또한 사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보안 위반사항을 감추고 알리지 않은 포털의 담당 임원들 역시 실형 또는 벌금형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그 위반시 처벌을 대폭 강화했으며, 법원은 사이버 모욕죄와 명예훼손의 형량 기준도 상향 조정했다.
한오준은 항소삼 최후 변론에서 "제가 알리고 싶었던 것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교양이 넘치는 분들마저 익명성의 그늘에 숨으면 결국 저와 같은 똑같은 수준의 보잘것 없는 들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무단횡단이 빨간 줄의 전과가 생기는 범죄라면 아마 우리 모두는 전과자일 것입니다. 모욕죄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라며 뜬금없이 법원의 형량 기준 상향 조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으며
김구한은 "죄 지은 놈들의 치부를 세상에 까발리는게 '테러'라면, 저는 아예 코리안 아이에스 하겠습니다" 라며 시크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 세간에 마지막까지 또 한번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막말 문건 이슈'는 거기에서 일단락이 되었다.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갔으며, 장사정포 이슈를 계기로 잊혀진 관심 덕분에 막말 문건의 직접적 관계자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티즌들은, 혹은 네티즌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각자 서로에게 "인터넷에서 욕 같은거 쓰지도 말고, 애들이 써도 쓰지 못하게 해"라는 덕담 아닌 덕담을 주고 받았다. 마치 자신들은 결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 /rc_5852/ a u slp? ]
[ /d#sd44/ NN.... Y? ]
[ /rc_5852/ 술 마시러 가자 ]
[ /d#sd4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선배님이 간만에 이걸로 말 거시길래 또 뭔 작업 들어가는 줄 알고;; ]
[ /rc_5852/ 작업은 무슨..... 선거도 다 끝났는데. 애기들은 근데 잘 지내려나 ]
[ /d#sd44/ 춥겠죠. 요즘 같은 시기면.... ]
[ /rc_5852/ 철승이는 요즘 뭐한대 ]
[ /d#sd44/ 1년 보직휴가 먹고 얼굴 팔린 김에 나가서 사업한답니다 ]
[ /rc_5852/ 고생문이 훤하네 ]
[ /d#sd44/ 그쵸 우리 같은 공무원이 최고죠 ]
[ /rc_5852/ 7급 주제에 어딜 '같은' 공무원이여 ]
[ /d#sd44/ 아 또 왜 그러실까ㅋㅋㅋㅋㅋ그럼 6급답게 오늘 술은 선배님이 쏘십시오 승진턱도 안 내셨잖아요 ]
[ /rc_5852/ 여튼 끝나면 내곡동으로 와라 ]
[ /d#sd44/ 아, 2 차장님이 본원 갈때마다 맨날 선배님 안 보이신다고 난리던데 ]
[ /rc_5852/ 왜? 또 설마 씨발 문건 만들라는건 아니겠지? ]
[ /d#sd44/ 그건 아니고 이번 주말에 전 국장님 면회 좀 같이 가자십니다 ]
[ /rc_5852/ 원 별....여튼 송3 ]
[ /rc_5852/ 예예 감2~ ]
현직 야당 대표에 대하여 '빨갱이 새끼', '못 배운 놈'의 댓글을 작성한 것은 물론, 여성 탤런트의 화보 사진에는 '맛있겠구만', '궁뎅이가 빵빵한게 잘 익었다' 같은 성희롱 수준의 댓글을 작성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나라 말아먹을 놈', '빨리 뒤져라' 수준의 폭언을 한 것으로도 밝혀졌다.
한국대학교 총장과 정통부 장관을 거쳐 감사원장을 지내기도 한 조 후보자는 교육자 출신답게 평소 우수한 인품과 높은 청렴도로 여당은 물론 야당측 의원들에게도 많은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던 터라 막말 댓글의 충격은 컸다. 결국 조 후보자는 사건이 터진 이후 3일 만에 "국민께 죄송하다"라는 내용으로 눈물의 기자회견을 가진 끝에 자진 후보자 사퇴를 했다.
기존에도 고위 군 관계자나 법조인, 교육자 등이 온라인에서 막말을 한 행적이 드러나 사회에 충격을 안기고 사퇴한 일들이 있긴 했지만, 총리 후보자 수준의 고위 공직자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 후보자는 낙마 이후 고향으로 내려갔으나 그 일주일 후, 자살을 선택하여 또 한번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30여 년간 쌓아올린 교육자, 공직자로서의 업적과 사회적 인품이 댓글 사건을 통해 무너져 내렸고, 유서에서의 내용 역시 본인 스스로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론은 이미 대단히 부정적인 상태였기에 그의 죽음은 그다지 동정 받지 못했으나, 한편으로 조 후보자의 댓글이 밝혀진 경위에 대해서 사회 일각에서 문제제기를 시도했고 경찰의 수사 결과 포털의 관리자가 내부 정보를 유출해 야당 의원에게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 해당 사안에 대해 그 관리자가 벌금형 등의 처분을 받는 해프닝도 있었다.
결말이 대단히 비극적이긴 했지만 사안 자체는 이미 예전에도 아주 없던 일도 아니었고, 인터넷과 언론, 방송국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일시적으로 이슈가 되기는 했지만 어차피 금방 묻힐 일이었다.
그러나 그 두 달 후, 정말로 큰일이 터졌다.
대폭로
"이게 뭐야 도대체!"
총선이 불과 석 달 앞으로 다가온 현재, 야당 중진의원 기한진은 한 종편 채널에서 자신의 이름이 "막말 댓글 정치인"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대문짝만하게 속보가 노출되고 있는 것을 보며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도대체 뭣들 하고 있어! 당장 방송국에 연락하고, 어디에서 어디로 정보가 유출되었는지 확인해!"
그러나 보좌진을 다그치고 있는 것은 기 의원 뿐만이 아니었다. 여야를 막론한 전현직 국회의원 32명의 신상정보와 각 포털별 아이디와 각종 커뮤니티 가입 여부, 문제 되는 댓글, 그 아이디가 그의 것임을 증명하는 교차검증 및 증거자료 이미지가 첨부된 엑셀파일이 온 인터넷에 퍼지고 있었다.
국회의원 뿐만이 아니었다. 국회의장, 차관급 국무의원, 대법원 판사, 검사장, 현역 해군소장, 전직 국립대 총장, 거물급 종교인, 유명 시민단체 대표, 대기업 대표 및 임원, 교직원 노조 대표, 영화감독,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 주요 일간지 기자들, 중진 연예인, 걸그룹 멤버 등 각계각층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총 1,005명의 신상정보와 그들이 인터넷에 남긴 '치부'들이 고스란히 세상에 노출되었다.
아무리 공인이며 엘리트, 사회적 책임을 가진 이라고 하더라도 익명성 뒤에 숨은 모습만큼은 인터넷의 흔한 키보드 워리어들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특히 거물급 정치인들의 막말 댓글들은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었고 네티즌 역시 축제가 벌어졌다며 약 130메가 분량의 파일을 분석해 나갔다. 외신에서도 긴급 뉴스로 해당 사건을 다루었다.
한편으로 경찰은 이를 유포한 세력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치부가 담긴 파일인만큼 즉시 경찰과 관계부처는 대응에 나섰지만 자료는 토렌트, 웹하드, 온라인 게시판, 해외 사이트, 스팸 메일 등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유포되었고, 유포하는 측 역시 지능적이며 집요하리만치 사람들에게 자료를 유포시켰다. 일주일이 넘도록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막말, 폭언, 모욕, 비아냥, 성희롱, 비방, 선동, 욕설, 인신공격 등, 사회 지도층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그들의 댓글 수준들은 가관이었다. 그들의 막말 댓글 중에는 단순히 "쓰레기 같은 놈" 같은 가벼운(?) 욕설부터 도를 한참 넘은 막장 발언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했다. 물론 비교적 가벼운 욕설이라고 해도 엄연히 현행법상 모욕죄에 저촉되는 수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의 딸에 대해 성적인 희롱에 가까운 댓글을 단 황당한 정치인도 있었다.
대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터무니 없이 날조된 내용이라며 펄쩍 뛰며 기자회견을 하는 이도 있었고,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하는 이도 있었고, SNS에 괴로움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으며, 사직서를 내고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도 있었다. 몇 건의 송사에 휩싸이게 된 이도 있었으며 이혼 절차에 돌입한 이도 있었다. 가장 많은 반응은 거짓이라고 잡아떼는 것이었고 이는 대부분이 정치인이었다. 물론 그 누구도 거짓말이라느니 날조된 내용이라느니 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를 비판하는 풍자 개그를 해온 제가 이제는 풍자를 당할 때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연예계 은퇴를 선언한 중견 개그맨의 대응이 그나마 가장 낫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잠적 및 자숙 기간에 돌입한 이도 많았다.
그들의 유일한 위안이라면 공개된 명단이 무려 1천명이 넘는 통에 세간의 비난이나 비판이 누구 하나 둘에게 집중되기 어려웠다는 것이었고, 잘못을 저지른 이가 한두명이 아니었기에 "어차피 사람은 익명성 속에 숨으면 그렇게 되는 것 뿐"이라는 변명을 하기도 용이하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 대기업 임원이 자살했다. 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온 그는 각종 성인 동성애 만남 사이트에서 활동한 내역이 있었고, 본의 아니게 아웃팅을 당하게 되자 결국 자살을 택한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 같은 걸그룹 멤버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방하는 악플을 달아온 것으로 알려진 한 여자 가수 역시 자신에게 쏟아진 엄청난 안티팬들과 멤버들의 비난에 자살시도를 했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다른 이들 역시 처지는 비슷했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저지른 비겁한 추태, 한때의 분을 참지 못해 쏟아낸 폭언, 비열한 의도로 작성된 악플들은 익명성의 가면을 벗고 맨 얼굴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 배우자, 자식, 부모, 친척, 친구, 직장, 조직체, 학우, 지인, 팬 등 주변의 모든 이에게 벌거벗겨진 더러운 모습은 그들을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처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건이 터진 후 2주일이 넘었지만 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포털의 아이디와 신상정보 등이 노출된 것으로 보아 포털의 전현직 임원들과 해당 부서 관련자들이 주요 용의선에 올랐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었다. 외부의 해킹 역시 의심되어 대대적인 로그 분석 등이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양대 포털 업체가 지난 10년 간 국내외 해커로부터 각각 700여 차례에 걸쳐 20만건, 1,800여 차례에 걸쳐 930만건에 달하는 해킹을 당한 사실을 숨긴 것이 추가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경찰은 단순히 외부의 해킹만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는 힘들다고 보고, 전현직 포털 관계자와 보안 담당자들에 대해 집중적인 수사를 재개했다.
청와대는 "사상 유례가 없는 사이버 참변"이라는 논평과 함께 '그 모든 사안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나라의 지도자인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라는 말을 꺼냈다가 오히려 네티즌들에게 물타기 하지 말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법조계 역시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 비상대책위를 세워 수사에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속적부심사 등에 대해 24시간 긴급 대응 체계를 마련했다.
네티즌들은 그런 모습에 대하여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자 부랴부랴 열심히 하는 모습은 구역질이 날 뿐"이라는 식의 비아냥을 보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가장 큰 비난에 직면한 것은 언론사들이었다.
"이번 사태에 대하여, 기자협회와 한국 언론인 조합, 각 방송사 대표 등은 사이버 테러에 의해 획득한 정보를 무분별하게 유통하는 것에는 현행 법상에도 저촉되는 것이며 기자윤리 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바, 사건 자체에 대한 개괄이나 수사 발표 등을 제외한, 유포된 신상정보를 활용한 그 내용의 보도는 최대한 자제할 것으로…"
언론사들은 이번 사건에서 획득한 정보에 대한 보도를 자제할 것으로 결의했다. 그러나 이는 불과 두어달 전, 조원규 총리 후보자에 대한 기존의 태도와는 180도 다른 것이었으며, 습관적으로 '국민들의 알 권리' 운운하던 평소의 모습과도 상충되는 모습었다. 곧바로 외압설이 흘러나왔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불법적으로 수집한 자료와는 별개로, 막말 댓글들도 문제는 문제다. 거를 놈은 거르자'라는 반응과 '까발려 봐야 국격만 떨어질 뿐이다. 이미 사람까지 죽은 마당에 불법자료로 뭘 더 하자는 것이냐'라는 의견이 충돌했다.
그 타이밍에 '트레이서'라는 인터넷 언론은 다른 언론사들과 궤를 달리했다. "우리 언론사는 이미 지난 조원규 후보자의 때도 철처히 그의 막말을 파헤쳤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우리는 성역 없이 끝까지 파헤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오히려 특집 기사로 하루에 한 명의 인물들의 폭언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1,005명 전체에 대해 파헤칠 것이라고 선언한지 채 한달이 되지 않아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유포 금지 가처분 신청에 의해 트레이서의 연작 기사 시리즈는 종료되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해당 언론사의 PV가 기존 대비 700% 이상 늘었다는 분석이 있었을만큼 세간의 주목도는 높았다.
하기사 이미 정치적 성향에 의해, 각자가 지지하고 안티하는 정치인들의 막말에 대한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은 굳이 언론이 아니고서라도 하루하루 목소리가 커져만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함께 보도 자제를 결의한 언론 중 경원신문이 제일 먼저 그 약속을 깨고 여당 대표의 인터넷 막말 댓글을 비판하는 사설과 관련 기사를 실었다. 이어 동화일보와 중원일보, 한마음신문 등이 그 뒤를 이었고 결국 언론사들의 결의는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그나마 국내 최다 구독수를 자랑하는 고려일보는 자사의 사장이 사건에 피해자 처지로 연루된 덕분인지 사건 자체에 대한 보도기사를 제외한 해당 이슈를 한달 이상 다루지 않았으나, 20대 총선 공식선거운동 시즌을 한달 앞두고 뒤늦게 관련 기사를 쏟아내었다.
"이게 단순히 외부 해커 몇 명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사건입니까? 당신들 정말 수사 이렇게 할거야?"
'국내 네티즌과 연계한 북한 또는 중국 해커의 소행으로 보인다' 라는 경찰의 사건 수사 중간 브리핑에 대해 항의차 경찰청을 방문한 지성열 새민주연합당 의원은 호통을 쳤다. 역시 '막말 문건'에 이름을 올린 피해자 중의 하나인 그는 같은 당 의원들에 대한 모욕성 댓글 때문에 공천 심사에서 탈락해 더욱 민감해져 있었다.
이 사건의 경우, 처음부터 그 범행의 스케일과 대담성에서 해커 한 두명의 소행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데가 있었다. 또 해커가 포털 내부의 일부 회원 신상정보를 해킹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다른 정보들과 조합하여 특정 인물임을 지목하는 과정, 아울러 특정 포털 이외에서의 정보까지 조합해서 밝혀내는 정보 분석력, 그리고 그런 일을 무려 1천명이 넘는 인물에 대해 해왔다는 것은 단순히 네티즌 몇 명의 작품이라 보기에는 너무나 규모가 큰 것이었다.
곧바로 '국정원'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동안 무슨 시사 이슈만 터졌다 하면 국정원에 의한 음모를 운운하는 일부 야당 정치인들과 그 지지 세력에 의한 주장이었지만, 그런 주장에 피로를 느끼던 사람들조차 이번 일은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애초에 국내에서 그런 문건을 실제로 만들 수 있고 만들만한 조직 자체가 '알려진 한도 내에서는' 적어도 국정원 뿐이었다.
"당장 특검해야죠!"
총선 공식선거운동을 당장 한달 앞둔 극도의 민감하고도 바쁜 시기. 그러나 이 안건만큼은 그 어떤 빅 이슈보다 중요한 선거 이슈였다. 경찰의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야당 측에서는 그것이 여당 측의 외압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막말 문건을 선거에 호재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고 특검을 활용한 국정원에 대한 수사를 강력히 요구했다. 여당 측에서는 그에 대해 '터무니 없는 주장에 의한 악성 선거전이며 더이상의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흔들기를 중단하라'며 반박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74%에 이르는 국민들이 국정원이 이번 사건에 개입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결과가 나온데 이어, 전직 국정원 요원이라고 주장하는 김 아무개씨가 "국가정보기관이 주요 인사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국정원 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정보기관에 늘상 있는 일. 이번 일도 그 연장선상에서 있는 일일 것"이라고 각종 언론에 인터뷰를 하면서 일이 커졌다(하지만 모든 후폭풍이 지나간 후, 김 아무개씨는 국정원에서 근무한 적이 없는 노숙자 출신의 남자로 밝혀져 구속, 각종 혐의로 징역 4년 형을 선고받는다).
판이 커지자, 여론을 의식한 여당 측도 특검에 전격 동의했다. 결국 3일만에 전 대전 고검 차장검사 출신의 정우현 변호사가 특별검사로 임명되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은 후 국정원 본원에 대한 압수수색 및 관련 혐의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 이번 사건은 우리에 의한 것이다 ]
특검의 강도 높은 조사에도 딱히 국정원에 대한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던 그 시기, 스스로를 '에이케이섹(AKsec)'이라고 밝힌 국제해커조직이 드디어 이번 한국에서의 문건 사태는 자신들에 의한 것이라고 사건 두 달 만에 트위터에서 밝혔다. 그 증거로 자신들의 부계정이라고 밝힌 3개의 트위터 계정에 연결된 링크에서 여야 국회의원 12명의 온라인 막말 댓글이 담긴 파일을 추가 공개했다.
에이케이섹은 안티 코리아(Anti Korea)의 약자와 정보를 뜻한 보안(security)을 합친 단어로, 그들이 이번 사건을 벌인 이유는 "한국 정부가 나서서 벌이고 있는 성인 사이트 접속 차단과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이버 모욕죄에 대한 지나치게 광범위한 적용, 마지막으로 '온라인에서의 개인행적을 정보 무기로 사용하고자 하는 반(反) 사이버적 정서의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라는 이유였다.
에이케이섹은 단번에 '온라인의 영웅'과 '터무니 없는 미친 짓을 저지른 악질 범죄해커집단'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이어졌고 엉뚱한 곳에서 헛물만 켜며 미궁에 빠질 뻔한 수사는 급류를 탔다. 우선 경찰은 이번 사건을 '치명적인 온라인 테러'사건으로 규정하여 인터폴과 미국 정부, 트위터 社의 신속한 협조를 받아내는데 성공했고 에이케이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이번 사건은, 국내 해커집단과 해외 해커집단의 연합에 이은…"
수사가 급류를 탄지 이주일 만에 에이케이섹 서브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던 연락책, 한국계 미국인 방필립(25세) 군이 처음으로 체포되었고, 그에 이어 한국에 근거를 둔 해커집단 '아시아대 컴퓨터 동아리' 회원들이 긴급 체포되었다. 방필립 군의 외국인 친구 해커 3인은 끝내 정체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아시아대 컴퓨터 동아리' 흔한 대학교 소모임에서 만난 대학 선후배 사이인 김구한(26)과 한오준(20)은 아마츄어 해커로, 원래는 한오준의 아버지가 중국발 온라인 피싱 사이트에 낚여 무려 5천만원에 이르는 통장예금을 날려버린 데에서 시작한다. 한오준의 사정을 듣게 된 김구한은 이후부터 복수를 위해 둘이 함께 닥치는대로 중국계 온라인 피싱 사이트 및 불법 도박사이트에 대한 해킹을 시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우연찮게 어나니머스에서 떨어져나와 따로 '명분 있는 해킹활동'을 해오던 방필립 군과 친해지게 되어 안티차이나 보이스피싱 활동을 하게 된다. 즉 원래는 에이케이섹(Anti Korea Sec)이 아니라 에이씨섹(Anti China Sec)이었던 셈이다.
그러던 도중, 한 중국 해커집단의 홈페이지를 때려부수던 김구한은 그들의 사설 서버 깊숙한 곳에서 총합 17기가에 달하는 압축 파일 뭉치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보통 같았으면 무시하고 넘어갔겠지만 kaoriBZ_001.dmp로 시작되는 파일명이 어째 한국을 비하하는 단어 '카오리빵즈' 같아서 호기심에 그 파일을 내려받았다. 파일은 변조된 압축파일이었고 기본 암호가 걸려있었지만, 같은 해커출신의 구한에게 파일변조는 아무 것도 아니었고, 방필립의 외국인 해커 친구들은 압축파일의 암호화 메타정보를 기준으로 압축파일을 역설계해서 암호를 풀어냈다.
[ PH님 양키친구들은 무슨 신인가요?ㅎㄷㄷㄷㄷㄷ ]
[ rc_5852 그 놈은 신은 신인데 병신이죠:> 짱깨새끼임. 그리고 d#sd44는 양키가 아니라 Jew임 유태인. 그 새끼는 천재 맞아요 게이라는 사실만 빼면 완벽한 새끼인데 ]
[ 님 혹시 따였나요 ]
[ oo0oo ]
파일을 열어보자 그것은 무려 수십만명의 한국인들 개인정보가 실린 파일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주민등록번호와 이름 정도만 나온 것이 아니라, 카드사용 내역과 카드사 내부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회원들의 자체 신용등급까지 포함된 엄청난 것이었다. 게다가 빅데이터 빅데이터 하더니, 카드사용 내역과 신용평가 정보 기록 등을 바탕으로 한 고객정보 파일에는 그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분석자료까지 있었다. 해커는 아마도 카드사 또는 신용평가사 측의 개인조회정보를 빼돌린 것 같았다.
"이건 대박 정도가 아닌데…"
도대체 이런 정보가 왜 중국 해커의 개인 사설서버 따위에 들어가있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어쨌든 엄청난 발견이었다. 한오준은 펄쩍펄쩍 뛰며 얼른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나섰지만 나머지는 모두 결사반대했다. 이 자료의 출처를 어떻게 증빙할 것이며 설령 제보한다고 한들 무슨 대책이 있겠냐는 것이었다. 괜히 억울한 누명을 쓸 수도 있다며 말렸지만, 오준은 결국 그 자료를 경찰에 신고했다.
[ wtf!!!!!!!!!!!!!!!!!!!!!!!!!!!!!!!!!!!!!!! ]
그리고 예상대로 오준은 어이없게도 카드사에 대한 해킹혐의로 구속수사를 받게 되었다. 오준은 억울하다며 울며불며 난리였지만 경찰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카드사와 신용평가사 역시 인지도 못한 채 추적조차 못할 중국발 해커에게 고객의 신용자료를 털렸다는 사실보다는 차라리 한국인 해커에게 털렸고, 그를 체포했다고 하는 쪽이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밀의은 결국 한 청년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기에 충분했고, 오준은 결국 재판을 거쳐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오준아…"
"괜찮아요. 형이 말렸을 때 말 들었어야 되는데. 제가 병신이었죠. 그래도 저 끝까지 형 이름 말 안 했어요. 괜히 형까지 다칠까 봐"
"걱정마라. 내가 어떻게든 도와볼께"
구한은 오준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나녔지만 아무런 도울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자초지정을 털어놓아도 믿는 사람도, 믿어줄 사람도, 증빙자료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손에 들린 것은 그가 직접 중국 해커에게서 뽑아온 수백만명의 신용정보 뿐. 이것은 그리고 아차하면 엉뚱하게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청와대 신문고 홈페이지에까지 억울함을 알리고 법원에 탄원서도 수십장 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김구한과 방필립이 '에이케이섹'으로 조직의 이름을 바꾸게 된 것도 바로 그 즈음이었다. 6개월간의 실형을 살고 나온 한오준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리 이걸로 재미나는 일 좀 해보죠"
그가 감방에서 떠올려 낸 '재미나는 일'이라는건 이러했다. 신용정보 파일에 실린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그들의 직업이나 사회적 신분을 알아내고, 국가행정포털 혹은 방송국, 언론사, 국내 포털에 아이디가 중첩되는 경우가 있는지 등을 대조해서 추려낸다. 이후 그들이 인터넷에서 벌인 추잡한 행동들을 만 천하에 까발려 세상을 놀래킨다.
황당무개하고 유치하며 이거야말로 본격적인 불법 영역의 일이라 김구한은 꺼렸지만, 마침 호기심 삼아 검색을 해본 VVIP 블랙카드 회원 하나의 정보를 파보자 그녀는 뜻밖에 '온라인 성인 컨텐츠 특별처벌법'을 발의한 통일당 한희원 의원이었다. 그녀의 댓글은 더더욱 놀랍게도 "싼 티 너무 난다 미친년도 아니고옷이 뭐저럼???", "한국 남자들은 열외없이 전부 개쓰레기ㅋ" 등, 그냥 흔한 인터넷 상의 관심종자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 길로 김구한은 오준의 의견에 동참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인터넷에 그 정보를 유포할 생각은 없었지만, 6개월간 감방에서 별 일을 다 겪은 오준은 달랐다. 그는 세상에 어떤 식으로던 복수를 하고 싶었다. 누구에 대한 복수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복수이냐가 중요했다.
수십만명의 회원 중 카드 등급과 소비성향, 금액의 최상위권을 걸러내면 열에 둘 셋은 셀러브리티가 걸렸다. 또 공무원 법인카드와 여의도, 소비금액을 어느 정도 매칭해보면 또 VIP들이 나왔다. 무엇보다 카드사 회원 정보에 직장주소를 보면 쉽게 직위들이 파악이 되었다.
그들의 아이디를, d#sd44가 따온 포털 댓글 관리자 아이디/비번을 포털 사이트 본사와의 가상화 게이트 웨이 네트워크를 통해 접속한 후 내부 CMS에서 검색을 돌리면 주르륵 그들의 댓글과 가입 까페 리스트들이 터져나왔다.
연예인들이 직접 자기 변호하는 댓글들을 보는 것도 웃겼다. 연예인 실드 댓글을 향해 사람들이 반 농담으로 하는 "XXX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는 댓글이 사실은 정말로 그 XXX씨에게 하는 댓글인 경우가 그렇게 많을 줄이야. 정치기사의 정치인 실드 댓글도 마찬가지였다.
여튼 약 6개월간에 거쳐 수집된 데이터들을 모아 한오준은 '생사부'를 완성했다. 그리고 구한 몰래 방필립의 친구 rc_5852에게 그것을 전달했다. 그리고 부디 해외에서 그것들을 유포해주길 바랐다. 겪어본 결과, 방필립이나 d#sd44의 성격이라면 분명 반대했겠지만 rc_5852는 그저 재밌으면 그만이었다. 결국 그렇게 rc_5852과 한오준이 일을 저질러 버리자, 나머지들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어차피 수습은 불가능하고 차라리 일을 키우면 세간의 눈이 있어서라도 우리를 함부러 어쩌진 못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결국 끝없이 달려버린 것이었다.
"인터넷에 뻘 소리 쓰고 다니지 마라"
"허이구, 국회의원부터 대학 교수며 뭐며 배운 놈들도 다 그러고 다니더라"
"그러니께 하는 말이여!"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막말 문건'도 결국 두어달 이후에는 잦아들었다. 총선 직후 벌어진 북한의 장사정포 도발 사건탓이었다. 전쟁 위기가 감도는데 그까짓 인터넷에서 막말 좀 한 것 쯤은 아무런 이슈조차 되지 않았다.
총선은 여당의 압승으로 돌아갔다. 당초 대통령 레임덕과 경제 디플레이션 이슈로 인해 야당의 우세로 점쳐졌던 선거였으나 '막말 문건'을 국정원과 연계시켜 제 2의 국정원 게이트로 만들고자 했던 선거전략이, '막말문건의 진범'이 결국 진짜 사회에 불만을 가진 해커들로 밝혀진 탓에 큰 역풍을 불러왔기 때문이었다.
막말문건에 언급된 총 44명의 국회의원 중 39명이 아예 총선에 나서지 못했거나 패배하여 금뱃지를 잃었다. 장사정포 포격 사건이 있기까지 해당 문건으로 자살한 사람의 총 수는 6명으로 늘어났다.
사건의 주범 김구한과 한오준은 각각 징역 4년과 5년을 받았고, 방필립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또한 사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보안 위반사항을 감추고 알리지 않은 포털의 담당 임원들 역시 실형 또는 벌금형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그 위반시 처벌을 대폭 강화했으며, 법원은 사이버 모욕죄와 명예훼손의 형량 기준도 상향 조정했다.
한오준은 항소삼 최후 변론에서 "제가 알리고 싶었던 것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교양이 넘치는 분들마저 익명성의 그늘에 숨으면 결국 저와 같은 똑같은 수준의 보잘것 없는 들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무단횡단이 빨간 줄의 전과가 생기는 범죄라면 아마 우리 모두는 전과자일 것입니다. 모욕죄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라며 뜬금없이 법원의 형량 기준 상향 조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으며
김구한은 "죄 지은 놈들의 치부를 세상에 까발리는게 '테러'라면, 저는 아예 코리안 아이에스 하겠습니다" 라며 시크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 세간에 마지막까지 또 한번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막말 문건 이슈'는 거기에서 일단락이 되었다.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갔으며, 장사정포 이슈를 계기로 잊혀진 관심 덕분에 막말 문건의 직접적 관계자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티즌들은, 혹은 네티즌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각자 서로에게 "인터넷에서 욕 같은거 쓰지도 말고, 애들이 써도 쓰지 못하게 해"라는 덕담 아닌 덕담을 주고 받았다. 마치 자신들은 결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 /rc_5852/ a u slp? ]
[ /d#sd44/ NN.... Y? ]
[ /rc_5852/ 술 마시러 가자 ]
[ /d#sd4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선배님이 간만에 이걸로 말 거시길래 또 뭔 작업 들어가는 줄 알고;; ]
[ /rc_5852/ 작업은 무슨..... 선거도 다 끝났는데. 애기들은 근데 잘 지내려나 ]
[ /d#sd44/ 춥겠죠. 요즘 같은 시기면.... ]
[ /rc_5852/ 철승이는 요즘 뭐한대 ]
[ /d#sd44/ 1년 보직휴가 먹고 얼굴 팔린 김에 나가서 사업한답니다 ]
[ /rc_5852/ 고생문이 훤하네 ]
[ /d#sd44/ 그쵸 우리 같은 공무원이 최고죠 ]
[ /rc_5852/ 7급 주제에 어딜 '같은' 공무원이여 ]
[ /d#sd44/ 아 또 왜 그러실까ㅋㅋㅋㅋㅋ그럼 6급답게 오늘 술은 선배님이 쏘십시오 승진턱도 안 내셨잖아요 ]
[ /rc_5852/ 여튼 끝나면 내곡동으로 와라 ]
[ /d#sd44/ 아, 2 차장님이 본원 갈때마다 맨날 선배님 안 보이신다고 난리던데 ]
[ /rc_5852/ 왜? 또 설마 씨발 문건 만들라는건 아니겠지? ]
[ /d#sd44/ 그건 아니고 이번 주말에 전 국장님 면회 좀 같이 가자십니다 ]
[ /rc_5852/ 원 별....여튼 송3 ]
[ /rc_5852/ 예예 감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