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 누나는 큰어머니 패물통을 뒤적이다가 앤틱한 스타일의 브로치를 꺼내들었다. 어머니는 조금 머뭇거렸지만 이윽고 할머니가 시원하게 말씀하신다.
"어휴, 브로치 하나 얼마나 한다고. 가져라 가져"
단박에 큰어머니의 안색이 바뀌었지만 어른의 말씀이라 감히 토를 달지는 못한다. 안방에서는 옷장을 뒤적이던 재승이 삼촌이 말한다.
"아 큰 형, 어휴, 에르메스 넥타이가 다 있네? 선물 받은거야? 형 어차피 넥타이 맬 일 얼마 없잖아? 나 가져간다?"
이번에도 큰어머니는 "어휴, 저기, 그건…" 하고 무어라 하려고 했지만 역시 할머니가 시원하게
"그래, 형제간에 아까울게 뭐냐. 가져가라 가져가" 하고 화통하게 말씀하시고, 재승이 삼촌은 기쁜 얼굴로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메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청주를 사러갔던 큰아버지가 "어후 춥네. 오늘 날씨 쌀쌀해" 하면서 들어왔고, 그는 지난 30여년 간의 결혼생활을 통해 아내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바로 파악한다.
"왜 그래?"
작게 속삭이듯 말하자 큰어머니는 혹여라도 또 시어머니 눈에 띌까 싶어 "아니야" 라고 작게 말하지만,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메고 있는 재승과 브로치를 매만지는 조카 선미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어휴, 그…어흠, 그거, 비싼건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그 앞에 이번에는 아까부터 TV 앞에서 얼쩡거리던 둘째 만승이 입을 연다.
"형 이거 얼마 줬어? 3D 커브드 이거 좋아보이네?"
큰아버지는 한 기백 줬다고 말하려던 찰나,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말한다.
"그거 좋아, 좋아"
그리고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만승의 장남 태식이 파고 들었다.
"큰아버지, 티비 많이 안 보시면 나 티비 가져가도 돼요? 마침 SUV 끌고 왔는데, 딱 들어가겠네"
큰아버지는 무슨 얼토당토 않는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어휴휴, 그거 보는건데… 안돼지" 하고 하고 손을 내저었지만 할머니가 역시 또 "아 조카가 보겠다는데 좀 줘라. 거 티비 얼마나 한다고. 어디, 돈 아까운거면, 내 이 돈 주마"하고 아까 자식들이 드린 용돈 100만원을 내놓는다.
"아니 어머니…"
드디어 화를 참지 못하고 큰어머니가 나서려던 찰나 큰아버지는 엄중한 경고의 시선으로 그녀를 제지한 후 웃으며 어머니를 제지시킨다.
"아뇨 어머니, 돈이 아까운게 아니고 저거 새로 사려면 돈도 부담이 되고 꽤 비싼거라서 당장 주고 나면 뭐로…"
하지만 현숙 고모는 "에유에유 오빠도 참. 아 그냥 줘. 티비 거 얼마나 한다고. 오빠가 뭐 어린 애도 아니고 그런거에 욕심을 부려?" 하고 옆에서 조공을 하고, 큰아버지의 얼굴은 화가 났는지 얼굴이 벌개졌지만 결정타로 만승이 "아 나 줘라 이거. 어? 완전 마음에 드네" 하고 칭얼거리자 다시 할머니는 강하게 나왔다.
"그래, 그거 만승이꺼 해라. 장승이 너는 돈도 잘 버는 놈이 뭘 그런걸 아까워 해. 태식아 얼른 차에 실어라"
그 말이 나옴과 동시에 만승과 태식은 "우와!"하고 소리를 지르며 코드를 뽑아 티비를 싣고 나가기 시작했다. 차마 그 모습에 분통이 터졌는지 큰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고, 큰아버지도 어쩔 줄 몰라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칠칠치 못한 놈"
할머니는 새삼 혀를 끌끌 차고, 조금 분위기가 냉각되었지만 여전히 선미 누나는 그런 분위기를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했다.
"어머, 이거 루부탱이네? 대박. 큰어머니, 나 이거…"
그제서야 어머니가 선미 누나를 제지했지만 할머니는 그것조차 "그것도 가져가라. 루부탱인지 영감탱인지 마음에 들면 가져가는거지" 하고 선선히 응락했고, 그 소리를 방 안에서 들은 큰어머니는 다시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 어머니, 적당히 좀 하세요. 아니 뭐 다들 거지에요? 왜 남의 집 물건을…"
그러나 '거지'라는 말에 큰어머니 킬러 현숙 고모가 흥분하며 치고 나왔다.
"어머머? 올케 언니, 거지라니? 거지라니? 아니이, 사람 참 이상하네? 남의 집 물건이 어딨어요. 다 한 가족 식구끼리, 안 쓰는 물건 있으면 주기도 하고 그러는거지"
"안 쓰긴 뭘 안 써요, 세상에 당장 티비만 해도…"
급기야 방에서 나온 큰아버지가 "그만그만그만!" 하고 노호성을 터뜨렸고, 삽시간에 분위기가 안 좋아진 통에 나는 스윽 큰집의 막내아들 현식이 쓰는 작은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방 안을 휘 둘러보다 결국 현식의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큰아버지, 나 이거 노트북 좀 가져갈게요. 나 회사에서 써야 돼"
이 분위기에 너까지 왜 이러냐는 시선들이 꽂혔지만, 역시나 할매와 고모는 "그래그래, 가져가. 노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데 쓰겠다는데. 어차피 현식이가 그런거 갖고 있어봐야 게임 밖에 더해?"하며 나를 밀어주었다. 나는 얼른 큰어머니의 사나운 시선을 피해 방 안으로 들어왔고, 다시 방 안을 재차 둘러보았다.
"후후후"
책장에는 익숙한 책들이 잔뜩 보였다. 어렸을 적, 현식이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돌라고 졸라 가져간 만화책 수십권이 아무렇게나 꽂혀 있었다. 내가 갖고 있을 때는 그토록이나 소중히 띠지조차 조심스레 보관했던 물건들인데, 십수년의 세월을 거친 탓인지 아니면 아무렇게나 관리한 탓인지 대부분 표지조차 너덜너덜했다. 몇 권은 분실했는지 군데군데 이빨이 빠진 시리즈 넘버가 보였다.
"이야, 이거도 추억이네"
책장 밑에는 역시 우리 집에서 가져간 플스1, 플스2, 엑박 오리지널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고, 그 안쪽에는 아스카 & 에바 다이캐스팅 피규어도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빛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지. 그때 그 시절 얼마나 피눈물들을 흘렸던가. 몇 달을 졸라 구입한 콘솔 게임기들을 빼앗기고, 점심 굶어가며 구입한 피규어를 빼앗기고, 아까워서 크게 펴보지도 못한 만화책들을 시리즈 통째로 빼앗기고 약탈당하던 그 고통의 순간들. 내가 군에 있던 시절 사라진 1:32 하세가와 F-14 톰캣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 것을 보면 녀석은 아마도 진작에 쓰레기통에 들어간 모양이다.
"하하, 하하하"
책장에 꽂힌 우표 수집책을 넘겨보면서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돈은 둘째치고 수없이 많은 발품을 통해 모았던 내 우표들이, 그나마 돈 될만한 녀석들은 모조리 사라진 채 현식의 책장 구석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수도 없이 약탈해 간 레고들은 다 어디 갔는지 죄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문득,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휴, 브로치 하나 얼마나 한다고. 가져라 가져"
단박에 큰어머니의 안색이 바뀌었지만 어른의 말씀이라 감히 토를 달지는 못한다. 안방에서는 옷장을 뒤적이던 재승이 삼촌이 말한다.
"아 큰 형, 어휴, 에르메스 넥타이가 다 있네? 선물 받은거야? 형 어차피 넥타이 맬 일 얼마 없잖아? 나 가져간다?"
이번에도 큰어머니는 "어휴, 저기, 그건…" 하고 무어라 하려고 했지만 역시 할머니가 시원하게
"그래, 형제간에 아까울게 뭐냐. 가져가라 가져가" 하고 화통하게 말씀하시고, 재승이 삼촌은 기쁜 얼굴로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메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청주를 사러갔던 큰아버지가 "어후 춥네. 오늘 날씨 쌀쌀해" 하면서 들어왔고, 그는 지난 30여년 간의 결혼생활을 통해 아내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바로 파악한다.
"왜 그래?"
작게 속삭이듯 말하자 큰어머니는 혹여라도 또 시어머니 눈에 띌까 싶어 "아니야" 라고 작게 말하지만,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메고 있는 재승과 브로치를 매만지는 조카 선미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어휴, 그…어흠, 그거, 비싼건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그 앞에 이번에는 아까부터 TV 앞에서 얼쩡거리던 둘째 만승이 입을 연다.
"형 이거 얼마 줬어? 3D 커브드 이거 좋아보이네?"
큰아버지는 한 기백 줬다고 말하려던 찰나,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말한다.
"그거 좋아, 좋아"
그리고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만승의 장남 태식이 파고 들었다.
"큰아버지, 티비 많이 안 보시면 나 티비 가져가도 돼요? 마침 SUV 끌고 왔는데, 딱 들어가겠네"
큰아버지는 무슨 얼토당토 않는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어휴휴, 그거 보는건데… 안돼지" 하고 하고 손을 내저었지만 할머니가 역시 또 "아 조카가 보겠다는데 좀 줘라. 거 티비 얼마나 한다고. 어디, 돈 아까운거면, 내 이 돈 주마"하고 아까 자식들이 드린 용돈 100만원을 내놓는다.
"아니 어머니…"
드디어 화를 참지 못하고 큰어머니가 나서려던 찰나 큰아버지는 엄중한 경고의 시선으로 그녀를 제지한 후 웃으며 어머니를 제지시킨다.
"아뇨 어머니, 돈이 아까운게 아니고 저거 새로 사려면 돈도 부담이 되고 꽤 비싼거라서 당장 주고 나면 뭐로…"
하지만 현숙 고모는 "에유에유 오빠도 참. 아 그냥 줘. 티비 거 얼마나 한다고. 오빠가 뭐 어린 애도 아니고 그런거에 욕심을 부려?" 하고 옆에서 조공을 하고, 큰아버지의 얼굴은 화가 났는지 얼굴이 벌개졌지만 결정타로 만승이 "아 나 줘라 이거. 어? 완전 마음에 드네" 하고 칭얼거리자 다시 할머니는 강하게 나왔다.
"그래, 그거 만승이꺼 해라. 장승이 너는 돈도 잘 버는 놈이 뭘 그런걸 아까워 해. 태식아 얼른 차에 실어라"
그 말이 나옴과 동시에 만승과 태식은 "우와!"하고 소리를 지르며 코드를 뽑아 티비를 싣고 나가기 시작했다. 차마 그 모습에 분통이 터졌는지 큰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고, 큰아버지도 어쩔 줄 몰라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칠칠치 못한 놈"
할머니는 새삼 혀를 끌끌 차고, 조금 분위기가 냉각되었지만 여전히 선미 누나는 그런 분위기를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했다.
"어머, 이거 루부탱이네? 대박. 큰어머니, 나 이거…"
그제서야 어머니가 선미 누나를 제지했지만 할머니는 그것조차 "그것도 가져가라. 루부탱인지 영감탱인지 마음에 들면 가져가는거지" 하고 선선히 응락했고, 그 소리를 방 안에서 들은 큰어머니는 다시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 어머니, 적당히 좀 하세요. 아니 뭐 다들 거지에요? 왜 남의 집 물건을…"
그러나 '거지'라는 말에 큰어머니 킬러 현숙 고모가 흥분하며 치고 나왔다.
"어머머? 올케 언니, 거지라니? 거지라니? 아니이, 사람 참 이상하네? 남의 집 물건이 어딨어요. 다 한 가족 식구끼리, 안 쓰는 물건 있으면 주기도 하고 그러는거지"
"안 쓰긴 뭘 안 써요, 세상에 당장 티비만 해도…"
급기야 방에서 나온 큰아버지가 "그만그만그만!" 하고 노호성을 터뜨렸고, 삽시간에 분위기가 안 좋아진 통에 나는 스윽 큰집의 막내아들 현식이 쓰는 작은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방 안을 휘 둘러보다 결국 현식의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큰아버지, 나 이거 노트북 좀 가져갈게요. 나 회사에서 써야 돼"
이 분위기에 너까지 왜 이러냐는 시선들이 꽂혔지만, 역시나 할매와 고모는 "그래그래, 가져가. 노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데 쓰겠다는데. 어차피 현식이가 그런거 갖고 있어봐야 게임 밖에 더해?"하며 나를 밀어주었다. 나는 얼른 큰어머니의 사나운 시선을 피해 방 안으로 들어왔고, 다시 방 안을 재차 둘러보았다.
"후후후"
책장에는 익숙한 책들이 잔뜩 보였다. 어렸을 적, 현식이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돌라고 졸라 가져간 만화책 수십권이 아무렇게나 꽂혀 있었다. 내가 갖고 있을 때는 그토록이나 소중히 띠지조차 조심스레 보관했던 물건들인데, 십수년의 세월을 거친 탓인지 아니면 아무렇게나 관리한 탓인지 대부분 표지조차 너덜너덜했다. 몇 권은 분실했는지 군데군데 이빨이 빠진 시리즈 넘버가 보였다.
"이야, 이거도 추억이네"
책장 밑에는 역시 우리 집에서 가져간 플스1, 플스2, 엑박 오리지널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고, 그 안쪽에는 아스카 & 에바 다이캐스팅 피규어도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빛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지. 그때 그 시절 얼마나 피눈물들을 흘렸던가. 몇 달을 졸라 구입한 콘솔 게임기들을 빼앗기고, 점심 굶어가며 구입한 피규어를 빼앗기고, 아까워서 크게 펴보지도 못한 만화책들을 시리즈 통째로 빼앗기고 약탈당하던 그 고통의 순간들. 내가 군에 있던 시절 사라진 1:32 하세가와 F-14 톰캣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 것을 보면 녀석은 아마도 진작에 쓰레기통에 들어간 모양이다.
"하하, 하하하"
책장에 꽂힌 우표 수집책을 넘겨보면서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돈은 둘째치고 수없이 많은 발품을 통해 모았던 내 우표들이, 그나마 돈 될만한 녀석들은 모조리 사라진 채 현식의 책장 구석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수도 없이 약탈해 간 레고들은 다 어디 갔는지 죄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문득,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