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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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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다운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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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그것들 좀 이제 버리면 안 돼?"

다음 주로 다가온 이삿날을 앞두고, 아내는 창고 안에 쌓인 '그것'들을 버리자고 며칠째 화를 내고 있었다. 지난 두 차례의 이사 때도 그랬지만, 특히 이 집의 창고를 자신이 아끼는 화분들의 온실로 개조하길 간절히 바라던 그녀로서는 그 바람을 4년이나 포기한 채로 참고 지낸 만큼 명분은 쌓을만큼 쌓은 셈이다. 이제 이사할 다음 집에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자세였다.

"안돼"

하지만 나는 간결하면서도 단호하게 그녀의 간청을 거절했다. 물론 그렇다고 아내가 쉽게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나 역시 그 안의 내 보물들을 쉽게 버릴 생각은 없다.

"내가 거실의 빈티지 도자기들 버리자면 넌 버릴거야? 아니잖아. 각자만의 보물이 있는데 왜 자꾸 나한테 그것들을 버리라는거야"
"참나. 그게 얼마짜리인 줄 알아? 수제 예술품이랑 오빠 그것들이 같아? 그건 다 공산품이잖아!"
"공장에서 나왔다고 가치없는 공산품이면, 네…"

당초 내 말의 의도는 '네 왼손의 의수도 공장에서 나온 공산품이지만 그 가치는 결코 낮지 않다'라는 것이었지만, 난 말을 꺼내면서 내 말이 심각한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튀어나오던 말을 겨우 삼켰다. 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온 말만으로도, 아니 그래서 오히려 더 크게 아내는 내 말의 의도를 오해했고 "맙소사" 라는 말과 함께 그대로 등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망할"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내에게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라고 오해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안방으로 들어간 아내는 문을 잠그고 엉엉 큰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나는 방 문 밖에서 그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옆으로 '제롬'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건, 참 어렵죠"

나는 녀석의 그 말에 공감하면서도, 애초에 지금 상황에 저런 말을 꺼내는 녀석의 눈치 역시 참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삼 더 녀석의 말에 공감했다.







창조물 






서기 2087년. 양자 컴퓨터의 생물학적 적용과 인간 뉴런의 전자적 대체가 완전히 가능해진 시점에서 A.I(인공지능)는 '인간'이라는 롤모델을 적어도 시스템적으로는 완벽히 따라잡은 상태였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측면에서 이미 한참 전에 인간을 아득히 초월했었지만.

게다가 '인간이 사용하는 온라인 네트워크 시스템에 고등 인공지능 시스템의 접촉을 불허한다'라는 희대의 악법, '인간존엄법'이 다양한 제약이 붙기는 했지만 의회에서 근 20년만에 철폐됨으로서, 드디어 초 고성능 인공지능의 탄생이 가능해졌다.

이제 두 시간 내외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인공지능은 익명성 뒤에 숨겨진 인간의 가장 밑바닥 속내부터, 인간 중에서도 상위 1% 미만의 인간만이, 그것도 특정 분야에 한해서 십수년 이상의 시간을 들이고 끊임없는 노력 후에야 마스터 할수 있는 고도의 학술 정보까지 모든 것을 습득하고, 응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많은 이들은 그동안 수많은 미래학자들과 소설가, 각본가, 몽상가들에 의해 경고되어 온 '기계에 의한 인간지배'를 우려했고, 실제로도 두어차례 '비제어 선택적 정보흡수형 인공지능'의 주요 네트워크 전반에 대한 대규모 해킹이 시도된 바 있지만 곧 실패로 돌아갔고, 문제가 된 것도 그 뿐이었다. 두 차례의 공격을 막아낸 것도 미 국방성의 초 고성능 인공지능이었다.

이후 초 고성능 인공지능의 도입이 사회 전 분야에서 이루어졌고, '또 다른 고성능 인공지능'들이 늘어남으로서 '인공지능을 인공지능으로 제어한다' 라는 개념이 자리잡았다. 마치 냉전시대 핵무기에 의한 평화가 유지된 것처럼 인공지능들 역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 이후로는 더이상 인간, 또는 인공지능들에 대해 공격적 행동을 취하는 일은 없었다.

또한 인공지능의 성능이 그 정도까지 진화하는데 로봇 기술 역시 정체되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 이혼해"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난, 적어도 당신이 그 정도로 미친 사람인 줄은 몰랐어. 그 놈의 기계 덩어리들 좀 버리라고 했다고 내 팔이 의수인 걸 들먹거려? 그게 정상이야?"
"몇 번을 말해.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라, 당신이 공산품은 무조건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길래 그 반례로 당신의 의수를…"

아내는 "그만해!" 라는 비명에 가까운 고함과 함께 나의 말을 끊었다.

"자꾸 내 팔 이야기 꺼내지 말라고! 도대체 왜 그러는거야 왜!"

애초에 내 생각이 짧았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 예는 들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것은 그냥 그 자체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기억의 역린과도 같은 것이었다. 트라우마이자 컴플렉스인 그녀의 팔. 신혼여행에서의 교통사고, 절단 수술, 그리고 기계 의수의 착용. 나는 '재생'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놀라우리만치 감쪽같은 기계 팔의 완성도와 성능이었지만, 공학도로서의 순수한 감탄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우선적으로 보였어야 할 안타까움과 애수의 부재로 이어졌고 그 이래로 그녀는 로봇 공학 그 자체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후우…"

어쩌면 그녀가 그리도 식물과 화분에 집착하고, 또 인간의 손길이 닿은 '예술품'들에 과하다 싶은 정도의 애착을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니 아마 그것이 확실하리라. 그리고 창고에 가득한, 근 20여대에 이르는 '클래식 가정용 도우미 로봇 시제품'들을 그녀가 혐오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미안해"

나는 다양한 감정이 섞인 미안하다는 말을 토해냈지만, 그녀는 그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몇 가지의 감정만을 취사선택하여 "아니, 괜찮아"라는 말을 남기고는 캐리어를 끌고 떠났다.

"당분간 친정에 가있을거야. 언제 돌아올지는 기약하지 않을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회 전 분야에서, 특히 학문과 산업 측면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의 도움에 의한 발전은 '엄청나다, 눈부시다, 폭발적이다'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놀라운 영향력을 과시했다. 산업 역시 그 영향을 톡톡히 받았다. 하지만 소시민의 삶에 있어서는 '비교적 이전 시대에 비해 사회 변화와 발전이 조금 더 빨라진 것 같다'라는 느낌만 어렴풋이 느낄 뿐, 피부로 와닿는 큰 변화는 없었다.

그나마 크게 바뀐 것이라면 가정용 도우미 로봇의 도입이 크게 늘어난 정도?

그래, 가정용 도우미 로봇. 그거 하나만큼은 정말 대단한 혁명이었다. 지난 세기, 인간들이 수많은 상상 속에서 "비리비리빗"하는 효과음과 함께 그려내었던 바로 그 '로봇'들이 드디어 현실화 되어 삶 속에 파고들었다. 하기사 우리 고조 할머니 시대에도 로봇 청소기 같은 초보적인 형태의 가사 도우미 로봇은 존재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접어들며 참 많이도 발전한 로봇 기술은 바이오 테크놀러지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진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인간화'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참 많은 논란이 있었다.



아내가 집을 나선 이후, 나는 제롬을 불렀다.

"제롬, 뜬금없는 소리이긴 한데…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녀석은 대답했다.

"주인님이십니다"

재미없는 대답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재미없는데. 좋아, 이를테면 내가 너의 소유권을 포기했다고 치자. 그럼 난 너의 뭐지?"
"창조주이십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난 로봇공학자… 그것도 바이오 로보 테크놀러지 분야의 엔지니어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히 말해서 내가 너를 만든 부분은 일부분의…한정된 부분 뿐이야. '창조주'라는 표현은 좀 과하지 않나?"

그 말에 제롬은 머리를 긁적이는 시늉과 함께 대답을 했다.

"대부분의 공학자들은 그 표현을 좋아한다는 설문조사가 있어서 참고해봤습니다"

나는 네 그런 모습이 참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알고 싶은건 그게 아니야.

"그럼 네 '본심'이 말하는 나에 대한 정의는?"
"아버지입니다"

상당히 뜻밖의 대답이다.

"아버지?"
"저를 만드셨지만 혼자 만드신 것도 아니고, 지난 17년간 쭉 제 보호자가 되어주셨고, 저에게 많은 지식을 주셨으며, 감정을 공유하였고, 무엇보다 저를 사랑하며, 제가 거역하기 어려운 존재이시니까요"

그렇구나.

"그래"



과학 기술은 한없이 그저 곧게 쭉쭉 직진하며 발전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기술과 이론은 끝없이 경쟁하며 새로운 출구와 한계를 끊없이 발견하며, 돌파한다. 그리고 하나의 기술이 발전을 지속하다 당분간의 정점에 도달하면,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은 물론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다른 분야에서의 혁신적인 발견이 필요하다. 특히 산업용 기술의 발전에 있어서는 경제성과 합목적성이라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장애물까지 존재하는 탓에 더욱 그 발전이 기대만큼 수월치가 않다. 게다가 그 지점에 윤리나 도덕, 종교 같은 '방해물'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미친듯이 달려나가던 기술의 발전이 하루 아침에 큰 벽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미 의학 기술에 깊숙히 파고 든 상태였던 로봇 테크놀러지가, 나노 바이오 테크놀러지와 결합되어 로봇 기술 그 스스로에 적용이 되려는 순간 사람들은 과거 인공지능의 발전 단계에서 느꼈던 공포를 또 한번 느꼈다.

'만약 언젠가 로봇이, 인간과 같은 단백질의 피부로 몸을 감싸고, 온 몸에 36.5도의 발열체가 흐르며, 인간과 감성을 공유하고,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재조합하여 인간의 아이를 출산할 수도 있게 된다면?'

인간의 삶에 로봇이 끼어들 여지를 좀 더 확장하자고 주장하던 사람들마저도 이 질문에 대해서만큼은 대부분 격렬한 반대표를 던졌다. '로봇은 로봇일 뿐, 인간이 될 수 없다'라는 주장이었다.




"제롬"
"네"

나는 녀석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언젠가 너에게 제안했었지. 너를 다음 세대의 로봇으로 '진화'시켜주겠다던 제안 말이야. 그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뭐지?"

그러자 제롬은 잠시 생각 후에 대답했다.

"저는 지금의 제가 좋습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간이 또 흐르자, 메디컬 로보테크놀러지가 사람들 마음 속의 빈틈을 파고 들었다.

인류의 평균 수명이 120세를 바라보게 된 시점에서 약학, 병리학, 생물학적 차원의 의학적 발전은 한계에 부딪혔고 바로 그 지점에 의학으로서의 로봇 기술이 기존 세대에 비해서 아주 과감하게 도입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몸에 기계 부품을 이식하여 '사이보그'가 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아무 데도 없었지만 적어도 과거처럼 도입 자체를 윤리적 차원에서 거부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것은 로봇이 인간의 삶에 이미 완벽히 녹아든 덕분이었고 또 의학이, 아니 '인간' 그 스스로가 요구하는 수준의 결과물을 로봇 기술이 상당히 만족스러워 할만한 수준으로 뽑아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함'에도 각막과 공막, 맥락막과 모양체, 홍채 및 망막, 수정체, 유리체, 안방수 등 그 구조를 충실히 구현하면서도 최고 시력 14.5까지 그 기능을 조절 가능한 바이오 인공 안구, 160년간 안정적으로 그 박동과 역할을 완벽히 구현해 줄 선형 단백질 구조의 인공 심장 등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의학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했던 덕분으로 투자와 신뢰, 기술적 발전 모두를 거머쥘 수 있었던 로봇 기술은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힘을 스스로에게 쏟아붇기 시작했다. '보다 더 인간에 가까운 로봇'을 목표로 말이다.

드디어 다시 한번 법과 윤리의 굴레가 벗겨지고, 인간을 향해서만 제한적으로 사용이 가능했던 꿈의 기술들이 로봇에 대해 도입되기 시작했다. 특히 '미래의 연금술'로 불리던 나노 바이오 테크놀러지가 의학적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아주 공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이 시대의 로봇은, 인조 단백질이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손톱이 자라고 머리카락이 자라났다. 탄소나노튜브 구조로 구성된 튼튼한 모세혈관 속에는 인공혈액이 흘렀고 바이오 나노 섬유로 제작된 인공심장은 로봇들의 가슴 속에서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제가 한가지 여쭈어도 될까요"

제롬의 질문에 나는 조금 긴장했다. 녀석은 나에게 거의 질문을 하지 않았지만-보통은 혼자 답을 찾아내니까- 가끔 녀석이 질문을 던지는 것들은 나를 당황케 하는 것들이 많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신혼여행 때의 사고…그때 왜 그녀에게 기계 팔을 이식했습니까"

녀석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정말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겨우 대답했다.

"당시로선 어쩔 수가 없었거든. 나도 살고, 그녀도 살려면"




그러나 마지막 장벽…최후의 장벽 앞에서 사람들은 완강했다. 이번만큼은 결코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이제는 로봇도 인간처럼 몸 속에 따뜻한 붉은 피가 흐르고, 음식을 먹고 배설을 하며, 뜨거운 열정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데다, 1분에 70~80번 뛰는 심장을 갖고 있다. 병원에서 검사라도 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로봇과 인간을 외형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었다. 이제 인간과 최첨단 로봇의 차이는 단 하나 뿐이었다.

'그래도 로봇이 인간의 아이를 낳아서는 안된다'

전 인류의 약 7%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된 로봇성애주의자들은 로봇에게도 이제 출산의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수파였고, 그 어느 사회에서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 어느 국가에서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미 수년 전에 로봇과 인간 모두에게 공유가 가능한 인공자궁이 개발된 상태였지만 그것은 결코 로봇에 삽입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자체적 DNA 유전코드 제작 소스 역시 범죄에 악용될 여지 때문에 개발된지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로봇에 삽입되는 것이 금지된 상태였다.




"사실 나도 이빨이 하나 부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난 상태가 제법 양호한 편이었어. 하지만 제인은 팔이 구겨진 문에 접혀서 완전히 뭉개진 채로 기절한 상태였지. 하지만 병원에 갈 수도 없었어. 그녀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특히 임신까지 가능한 로봇이라는걸 들키면 그대로 폐기처분 당하고 나도 감방에 가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보다 자기 자신이 로봇이라는걸 제인에게 깨닫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걸 알면 앞으로도 절대 임신을 하려하지 않을테고, 엄청난 충격을 받을테니까. 자살을 시도할지도 몰라"
"그거야 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실의 후배를 불렀지. 셰런 말이야. 너도 아는 그 여자 말이야. 어쨌든 로봇공학자에 앞서서 외과 전문의잖아. 헬기타고 오라고 했지. 두 시간만에 오더만. 내 이도 치료하고, 둘이 함께 펜션에서 제인을 '고쳤지'. 연구실이었거나 병원에 갔더라면 신경 손실이 오기 전에 팔을 되살릴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당시로선 그게 최선이었어. 우선 그렇게 긴급치료를 마치고 셰런의 은사님이 계신 병원으로 옮겼지. 본인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절대 모르게 해달라고 입 막음도 해놨고. 물론 너한테도 마찬가지고"

제롬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또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럼 왜 그 이후에 다시 아이를 임신하지 않았습니까?"

그 질문에 나는 웃었다.

"제인이 우울증이 왔어"
"팔을 잃은 충격으로?"
"어. 그렇게 한참을 어색하게 지내다가, 그녀는 우울증을 극복했지만 결국 섹스리스 부부가 되어버렸지"

내 말에 제롬은 무언가 할 말을 한참이나 찾다가 말했다.

"그럼 어쨌든 로봇과 인간의 관계로 만든 첫 '아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실패한 것 아닙니까"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궁극적인 목표는 '가장 인간다운 로봇'이지, 출산이 아니야. 그리고 섹스리스 부부만큼 인간적인 관계가 또 어딨다고 그래. 세상에 이제는 더이상 남편한테서 흥분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섹스 기피하는 마누라처럼 인간적인게 또 어디 있을까"

그러자 제롬이 말했다.

"주인님과의 관계가 소원한 사모님을 보며 묘하게 흥분하는 로봇만큼 더 인간적인 로봇도 드물테구요"
"거시기도 안 달린 중성 로봇 주제에 미친 소리 하지마"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나는 저 언덕배기 아래, 짐 싸서 나간지 채 하루도 안 되어서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다시 민망한 얼굴로 집을 향해 돌아오는 귀여운 마누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미우나 고우나, 인간이나 로봇이나, 어쨌든 그녀는 내 배우자이고, 영원히 함께 할 동반자인 것이다.

21세, 로봇 공학도의 시작에서부터 바이오 로봇 엔지니어 마스터가 된 49세의 지금에 이르기까지, 제인 1호에서 제인 7호에 이르는, 창고 속 그녀의 '번데기'들을 그래서 더 버릴 수가 없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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