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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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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빈민가에서 아프리카 오지 마을까지, '발 닿는 곳이면 어디까지'라는 그녀가 속한 구호단체의 모토처럼 지구촌 방방 곡곡을 돌아다녔다. 7년차에 접어든 지금, 혜정은 이제 제법 커리어도 쌓여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도 종종 들어오곤 했다.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한 것인지 한국의 대기업에서도 연락이 오곤 했다.

물론 그녀는 "제네바나 워싱턴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옮길 생각이 없습니다"하고 번번히 퇴짜를 놓았다. 그것은 딱히 야심에 찬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그저 엉덩이를 가볍게 해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7년이나 이 일을 해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확신이 없었다. 언제까지 이 고된 일을 해나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일단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힘 닿는데까지 계속 해나아가고 싶었다. 그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만사를 제쳐놓고 갑자기 한국으로 향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엄마 때문이었다.



"누나, 엄마가 많이 아퍼"
"어디가 아픈데"

하지만 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흐느끼며 "빨리 들어와"라는 말만 반복할 따름이었다. 순간 겁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3년 전의 그 소동도 생각났다. 

그때도 엄마가 아프다며 집에서 전화가 왔다. 타이밍이 안 좋았다. 마침, 아프리카 수단에서의 인연으로 UN 산하의 모 기관에서 일하던 케빈이 그녀에게 좋은자리를 제안한 차였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자리. 엉덩이를 가볍게 해두고 싶다는 그녀로서도 탐이 날 정도의 좋은 기회였다. 하필 그때 엄마가 많이 아프다며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연락이 오다니. 

그녀는 그 자리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던건 아픈 모습의 엄마가 아니라, 큰 고모가 주선한 선 자리였다. 

"효도하러 온 차에, 진짜 효도 한번 하고 가. 니 엄마가 니 때문에 얼마나 걱정하는 줄 알아?"

솔직히 너무 기가 막혀서 웃음도 안 났지만, 그래도 엄마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로 만족하기로 했다. 홧김에 선도 안 보려다가 엄마의 성화에 일단 선 자리는 나갔다. 역시나 맞지 않았다.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후반의 좋은 인상을 가진 안정된 남자. 그녀도 인정했을만큼 좋은 남자였지만 그 뿐이었다. 혜정은 지금 결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을 억지로 한다고 해도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저 막연히 '언젠가는 하겠지' 정도만 생각할 뿐이었다. 

결국 그 다음 주에 다시 브라질로 돌아갔다.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던 동료들에게 사정을 말하자 모두 크게 웃으며 위로와 축하를 함께 건냈다. 엄마가 아프지 않은게 어디냐며, 좋은 기회는 또 올거라는 말과 함께. 물론 그런 기회는 그 이후 4년을 더 활동했지만 오지 않았다. 

"너 또 장난치는 거면…"
"헛소리 말고 당장 오늘 밤 비행기로 한국 들어와. 엄마 암이야"

이번에는 태훈 오빠였다. 장난이길 조금은 바랬지만, 평소 실없는 소리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오빠의 목소리를 듣자 힘이 주욱 빠졌다. 이번에는 진짜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다시 한번 캠프를 떠났다. 아마 한동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에 동료인 스티브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녀도 아쉬웠다. 




"엄마가 얼마나 아픈건데"

병원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 반. 중환자실에 입원한 엄마는 면회 시간이 지났다며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혜정의 질문에 동생 태진이 울며 말했다.

"간암 말기래. 여기저기 다 전이되서 수술도 못한대…"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열 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마음을 진정시키다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으시대?"
"잘해야 한달 정도래.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고"
"아니 왜 이제껏 손도 안 댄거야!"

간암은 원래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소리치고 싶었다. 답답했다. 

"다 몰랐어. 그저 엄마가 요새 많이 피곤해하고, 자꾸 토하길래 병원에 데리고 왔더니…"
"피곤하다"

혜정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중환자실 옆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지금 16시간째 먹은게 생수 반 병 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후우…"

집과 일부러 거리를 두고 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깥 세상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였다면 그저 별 볼일 없던 광고 AE가, 글로벌 NGO 단체에서는 국제 이슈의 최전선에서 세계인과 함께 발로 뛰는 일급 에이전트가 될 수 있었으니까.

"하하"

사실 그런 허영은 둘째치더라도 보람이 엄청났다. 죽어가는 어린 아이를 살리고, 한끼 식사도 어려운 이들에게 피 같은 식사를 대접하고, 자연재해로 망가진 동네를 함께 복구하고, 전 세계에서 온 NGO 동료들과 함께 힘을 합쳐 지옥 속에서 꽃을 피워내는 것은 다시 태어나도 꼭 이 일을 하고 싶을 정도의 기쁨이었다. 그 흔한 향수병도 오지 않았다. 그저 한달에 한두번씩 집에 전화하는 정도면 모든 걱정이 없었다. 

물론 가끔은 현실의 벽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하루하루 거칠어가는 손과 피부에, 피곤에 절은 어느 날은 거울을 보다가 왠 아줌마가 그 속에 있나 싶어서 깜짝깜짝 놀라는 때도 있었으니까. 또, 같은 처지라고 생각했던 NGO 동료가 알고보니 농장 대지주의 딸이라거나 성공한 기업인의 영애, 혹은 이미 20대에 자기 사업을 성공하고 꿈을 찾아 온 사람이거나 하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확실히, 같은 NGO라도 누구는 세계적인 자선단체의 관리자 타이틀을 달고 한달에 수천 달러씩 월급 받으면서 여기서 전화나 돌리며 편하게 일하다 언론의 조명이나 받고 가는 모습 같은 것을 보면 허무하기까지 했다. 

정말 나 뭐한거지, 하는 생각은 그러나 한국에 와서 엄마 일로 통장을 까보았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진하게 느꼈다. 36살 미혼의 나이에 전 세계를 뛰어다니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지만 통장 속에 든 돈은 고작 280만원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아프간에 잠깐 파견 나갔을 때 야전병원에서 임시로 일하면서 미군으로부터 받은 급여를 한국으로 보내놓은 것이었다. NGO 활동으로 받는 급여 통장에는 지금 아마 17달러인가 18달러인가 겨우 그만큼 남아있을 것이다. 

"하아…"

엄마 병원비는 오빠가 어떻게든 마련해보겠다고 하지만 애 셋딸린 가장이 무슨 돈이 얼마나 있을까. 왜 엄마는 그 흔한 보험도 하나 안 들어놓았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했지만 남편 없이 삼남매 남 부럽지 않게 키워낸 아줌마는 또 무슨 돈이 얼마나 있어서 보험씩이나 들었겠는가. 

"어쨌든"

혜정은 엄마 돌아가시고 나면, 그 이후를 생각해보았다. 어차피 집에서는 내놓은 자식이었던만큼 다시 외국에 가서 이제야말로 집과 인연 끊고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결혼하라고 들들 볶는 사람이 없어졌으니 이제 결혼의 짐도 벗어던진 셈이다. 사실 외국 국인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느낀 가장 좋은 점은 그것이었다. 나이가 적당히 차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다. 아니, 그런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니 세계 각지를 돌면서 나이 신경 안 쓰고 그런 일 하면서 사는 거겠지만.

그저 그렇게 치열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같은 생각을 가진 좋은 사람 만나서 함께 살면, 그게 언제가 되던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같은 그룹의 존과 영도 그렇게 만난 부부니까. 혜정 본인도 나름의 로맨스는 제법 있었다. 뭐, 그리 좋은 기억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병원에 갈 시간이었다. 장농문을 여니 그래, 나도 이런 옷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지 싶은 옷들이 꽤나 걸려있었다. 이제 저 옷 중에 맞는 옷은 몇 벌 없겠지만 그래도. 한참을 이 옷 입고 저 옷 입고 하다가 결국 조금 날씨에 안 맞는 얇은 코트를 걸쳤다. 별로 예쁘지 않았다. 구호 현장에서라면 배부른 소리겠지만 어쨌든. 외국의 여자 NGO들 보면 먼지 구덩이 속에서도 예쁘고, 어쩌다 아주 가끔씩 정복이나 정장을 입을 때면 정말 다른 사람 보듯 헉 소리나게 예쁘던데. 

"36살이니까"

그 말과 함께 제인은 41살인데도 예쁘던데, 하는 마음 속의 소리가 울려펴졌지만 혜정은 애써 무시했다.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온 친척들은 몇 년 만에 보는 조카 딸, 이모를 보고서 한다는 첫 마디가 다들 "너 살 많이 쪘구나", "너도 이제 나이 먹은 티 난다", "결혼 생각은 없어?" 따위들이었다. 실례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새삼 '한국 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해졌다. 그리고 문득 그제서야 그 힘든 글로벌 NGO 활동을 하면서도 왜 그리 마음이 편했던가에 대한 대답을 깨달았다. 
 
냉정하게 말해서 틀린 말은 아닌지도 모른다. 여자는 적당히 나이 먹으면 시집 가야지, 하는 한국 사회의 정서에 맞지 않는 여자. 맞지 않는 나이, 거칠어진 외모까지 그 '한국 사회'에는 통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괴물'이라는 단어가 순간 떠오른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애초에 한국에 왔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야 하나 싶어서 매우 피곤해졌다. 차라리 그 힘들었던 캄보디아 현장에 다시 가도 이보다는 마음이 편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지 않는 사람…. 그게 지금의 나인가. 

죽어가는 엄마를 보러와서는 어수선하게 그저 아픈 엄마 앞에서 울며 불며 자신의 감정만을 풀어내다 가버린 친척들의 뒷모습에 저주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그들이 건낸 봉투 속의 돈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들을 떠나보내고, 혼자 병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는, 병원에 온다는 동생에게 혜정은 그냥 오늘은 집에서 쉬라고 했다. 



"엄마…"

마약성 진통제로도 이미 한계가 와서 하루에 정신이 멀쩡한 시간이 채 1시간도 되지 않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너무 가늘어진 손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현장을 돌면서 수도 없이 많은 이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그래서 암 말기라는 엄마의 진단을 처음 들었을 때도 의외로 아프지 않았지만 직접 엄마의 손을 잡으니 그렇지 않았다. 

"우리 딸…"

산소호홉기 속에서 가늘게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엄마 왜 아퍼…"

엄마는 그저 힘없는 손마디로 그저 맞닿은 혜정의 손을 힘겹게 붙잡을 따름이었다. 



며칠 뒤, 브라질의 스티브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달 말 즈음에 현지 활동이 일단 1차 종료 될 예정이고 레귤러 멤버들은 런던의 본부로, 계속해서 활동을 할 사람들은 2차 캠프가 꾸려질 내년 초까지 아프리카 콩고에 나가있는 유네스코 쪽 그룹과 합류할 예정이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알고 있던 내용이고, 혜정과 스티브의 원래 계획은 함께 아프리카로 갈 예정이었지만, 만약 혜정이 당분간 합류할 생각이 없다면 스티브도 그냥 런던으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지"

혜정은 당분간은 힘들 것 같다고, 아쉽다고 전했다. 스티브 역시 매우 아쉬워하며 그럼 내년의 2차 캠프 때 보자고 기약했다. 꼭 보자고 약속했지만 그게 지켜질지 어떨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왠지 이제 다시 영원히 나가지 못할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났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혜정아"

그때였다. 태훈 오빠가 올케 언니와 함께 병원에 왔다. 눈물을 닦고 "어, 왔어?"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막내 조카 예준이도 따라온 것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무 걱정마. 엄마 다니는 교회에서 어느 정도 성금도 걷어주셨고, 오빠 회사에서도 이런거 돈 나오는거 있어. 너는 그냥 돈 문제 신경쓰지 말고, 엄마 얼굴… 많이 보다가… 가. 외국물 먹던 애가 한국에서 어디 편히 살겠냐"

역시 오빠 뿐이었다. 엄마는 물론이요 친구, 친척 그 누구 하나 왜 멀쩡히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먼 나라 가서 험한 일 하려고 하느냐, 그렇게 불쌍한 사람 돕고 싶으면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그리고 이제 니 나이가 몇인데 정신 못 차리고 그런데 허송세월하려 하느냐 등의 반대 폭풍우 속에서 

"너 하고 싶으면 해"

라고 유일하게 편들어줬던 것이 오빠였다. 지금도 그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하다가 또 너무 힘들면 다시 한국 들어오면 되지. 한국에 오빠도 있고 니 동생도 있고. 엄마 돌아가시고 나면 그 집도 있는데 뭐. 너랑 태진이랑 그 집에서 살면 되는거고. 태진이 놈이야 나중에 장가가면 그 집은 이제 니 집 되는거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니 하던거 NGO 활동 많이 해서, 덕 많이 쌓았으니 엄마도 덕분에 천국 가시겠지. 근데 엔지오 맞냐? 니 하는거?"
"맞아"
"그게 뭐의 약자인데? 늙은이?"

생전 농담 한번 없는 오빠의 난데없는 농담에 혜정은 그만 콧물까지 튀어나왔다. 




그날 밤 혜정은 스티브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 이탈 지역에 있었던 까닭인지 몇 번이나 연락을 해도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통화 기록은 남았던지 새벽 무렵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혜정은 아마 곧 가게 될 예정이니, 그냥 원래 계획대로 아프리카 콩고로 가자고 했다.

"oh…sorry…"

하지만 스티브는 이미 런던으로 돌아가는 멤버에 이름을 올렸고, 가족에게도 연락을 다 했기 때문에 이제와서는 좀 어렵다고 했다. 그는 미안하다며 위로의 말을 건냈지만 혜정의 실망은 컸다. 설령 그랬더라도 자기가 가자면 함께 아프리카로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어쩌면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그와의 관계는 훨씬 더 드라이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화장실로 들어와 새삼 거울을 보았다. 역시 초췌하고, 실망한 표정이 역력한 아줌마 한 명이 거울 속에 있었다. 수많은 사람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녀 본인은 한 해 한 해 나이를 까먹으며 시간을 허비하며 절망 속으로 아주 천천히 걷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이 울적해서 어딘가에 풀고 싶었지만, 전화기 속에 들어있는 번호들은 거의 전부 해외 어딘가의 머나먼 사람들. 지금 기분으로는 물리적 거리 뿐 아니라 마음의 거리마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이들의 번호 뿐이었다. 그나마의 한국 친구들은 모두들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남편의 옆에서. 

혜정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피곤했다. 지난 시간들의 고생이 무게로 느껴질만큼. 문득 모든게 허무하고 다 무의미해진 기분이었지만, 사실 그 기분은 이미 익숙했다. 아주 익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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