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의 노동자 제임스는 오늘도 경기 관람을 마치고 펍으로 향합니다. 사실 마음 속의 열불은 많이
납니다. 빌어먹을 병신 새끼들! 세상에 내가 지난 36년간 살아온 맨체스터이고 또 지난 36년간 팬이었던
구단이지만 세상에 이렇게까지 못한 적은 아마 지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릅니다. 아 옛날 젊었을 때 성질 같아서야 경기장에 돌 던지고 구단 버스에 불이라도
지르고 오는 길에 상대팀 팬 골 깨버리는거야 예사고 우리 팬끼리도 펍에서 술 쳐먹고 패싸움질 정도는
해줘야 분이 좀 풀렸겠지만 아 나이 먹고서도 그래서야 쓰나요.
그저 피식 웃고 분한 마음을 가진 채 펍으로 향합니다. 아후, 이제서야 발가락이 노골노골하니 안전화 속
무좀발이 구릿하면서도 찐득한 불쾌함을 슬며시 내비춥니다. 응원 도중에 쩔어버린 겨드랑에서는 또
강렬한 양파 냄새가 피어오르지만 제임스는 그냥 일단 무시하기로 합니다.
'오늘은 맨유가 진 날이니까'
물론 이긴 날이라고 해도 펍을 지나치지는 않겠지만. 언제나처럼 펍에 들어서자 맨날 보는 제 3공장의
짐, 다니엘이 힐끗 턱으로 인사를 합니다. 제임스 역시 슬쩍 손을 들어보이며 인사를 합니다. 저기 당구
대에서는 올해 성년이 된 케즈먼가의 둘째 아들… 뭐 이름은 생각이 안 나지만 녀석이 지 친구들과 딱!
하고 열심히 당구를 치고 있습니다.
"으휴"
주문 대신 한숨과 동전 몇 개를 올려놓자 바텐더 조 역시 가타부타 말없이 맥주를 내줍니다. 분명 다른
누군가의 손님이 먹다 남겼음이 분명한 눅눅한 감자칩도 슥 내밀어주는 조의 배려 앞에 제임스는 조금
마음이 풀립니다. 그 눅눅한 감자칩을 쿠욱 씹노라니 TV에서는 오늘 경기에 대한 스포츠 뉴스 하이라
이트가 나옵니다.
아직도 성격 괄괄한 다니엘은 "버러지 같은 놈들" 하고 맨유 선수들을 욕하지만 제임스는 더이상 그런
욕을 할 기력조차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감자칩을 씹노라니 펍의 문이 열리고 왠 동양인 몇몇이 안에
들어옵니다.
살롱도 아니고, 아니 이런 펍 중에서도 하급 펍에 외국인, 것도 피부 노란 동양인들이 들어오자 단번에
시선이 쏠립니다. 하지만 그들 손에 카메라를 비롯해 이런저런 방송 기자재가 들린 것을 보아하니 아,
또 코리안들이겠군요.
"잠시 인터뷰를 해도 될까요? 맨유의 박지성 선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설픈 미국식 발음에 조금 실소가 나왔지만 제임스는 그 웃음을 꾹 참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음, 훌륭한 선수죠. 팀에 대한 공헌도 대단하고, 성실하고, 묵묵히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
자세는 팬으로서 매우 호감이 가는 선수입니다"
솔직히 자기가 말하고도 놀라운 매우 매끄러운 답이었지만,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찌-가 맨유에
온 이래 제임스가 인터뷰 한 것만 세 번째입니다. 특히 전형적인 '영국인 얼굴'의 다니엘은 코리안
방송사에서 촬영만 왔다하면 꼭 물어보는 통에 아마 지금까지 인터뷰 한 것만 수십번은 될 겁니다.
'도대체 코리안들은 왜 그렇게 찌-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어할까'
아 물론 좋은 선수입니다. 사실 찌- 가 오기 전까지 제임스는 동양인들에 대한 묘한 편견이 있었습
니다. 돈벌레에 체격도 작고 잔머리만 비상하고 비겁한 뭐 그런… 하지만 찌-의 헌신적인 모습과 그
성실함이 엿보이는 인터뷰들을 보노라면 절로 그런 편견이 사라질 수 밖에. 게다가 '슈퍼서브'로서
그만한 선수가 또 있으랴 생각해보면 찌-는 정말 훌륭한 선수지요.
아 그쯤해서 제임스는 문득 한 마디를 더 보탰습니다.
"찌-는 아마, 우리 맨유에서 레전드로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분명히"
다소 빤한 대답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던 코리안 리포터와 카메라 기자의 얼굴에 기쁨이 넘쳐납
니다. 아마 오늘 자신의 대답은 코리아 스포츠 뉴스의 마지막을 장식하겠지, 싶어 제임스의 얼굴
에도 슬몃 웃음이 피어오릅니다.
그와 함께 펍 안은 또 '박지성 응원가'가 울려퍼지기 시작합니다. 아 정말 눈치빠른 놈들입니다.
Don't sell my Park, My Ji-Sung Park,
I just don't think you understand,
And if you sell my Park, My Ji-Sung Park,
You're gonna have a riot on your hands~
모두가 목소리를 모아 박지성 응원가를 부르고 크게 웃으며 왁자지껄한 분위기, 코리아의 방송사는
아주 대박이라도 건진 양 웃으며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펍을 빠져나갑니다.
펍은 간만에 활기가 돌았습니다. 그리고 또 금방 다시 그 활기가 잦아들었습니다. TV에서 유로존
문제와 함께 영국의 실업률 뉴스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퍽킹 캐머론"
누군가의 한 마디와 함께 또 펍 안은 우울함이 감돌았습니다. 제임스는 고개를 저으면서 남은 맥주를
비우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하늘은 잔뜩 흐린 채 해가 저물어갑니다. 아마 내일, 아니 오늘 밤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습니다.
"오우"
집으로 가는 길, 이번에는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에서 큰 길에서 사람들에게 '맨유의 위기'를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시하고 걸으려 했지만 눈이 마주친 기자가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언제나 맨유는 위기가 생길 때마다 슈퍼스타, 레전드가 혜성같이 등장해 그 위기를 타계해왔죠. 지금
이 맨유의 위기를 타계해 줄 스타, 차세대 레전드 후보를 3명 댄다면 누가 있을까요?"
하는 질문을 해왔습니다. 조금은 신선한 질문이었습니다. 약 3초 정도 고민한 제임스는 짧게 대답했
습니다.
"웰벡, 마케다, 그리고… 에슐리 영?"
조크 섞인 대답에 기자도 피식 웃었습니다.
"쌩큐"
기자의 말에 가벼운 목례를 하고 제임스는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진지하게 생각해 본 답은
조금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도 당연히 찌- 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납니다. 빌어먹을 병신 새끼들! 세상에 내가 지난 36년간 살아온 맨체스터이고 또 지난 36년간 팬이었던
구단이지만 세상에 이렇게까지 못한 적은 아마 지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릅니다. 아 옛날 젊었을 때 성질 같아서야 경기장에 돌 던지고 구단 버스에 불이라도
지르고 오는 길에 상대팀 팬 골 깨버리는거야 예사고 우리 팬끼리도 펍에서 술 쳐먹고 패싸움질 정도는
해줘야 분이 좀 풀렸겠지만 아 나이 먹고서도 그래서야 쓰나요.
그저 피식 웃고 분한 마음을 가진 채 펍으로 향합니다. 아후, 이제서야 발가락이 노골노골하니 안전화 속
무좀발이 구릿하면서도 찐득한 불쾌함을 슬며시 내비춥니다. 응원 도중에 쩔어버린 겨드랑에서는 또
강렬한 양파 냄새가 피어오르지만 제임스는 그냥 일단 무시하기로 합니다.
'오늘은 맨유가 진 날이니까'
물론 이긴 날이라고 해도 펍을 지나치지는 않겠지만. 언제나처럼 펍에 들어서자 맨날 보는 제 3공장의
짐, 다니엘이 힐끗 턱으로 인사를 합니다. 제임스 역시 슬쩍 손을 들어보이며 인사를 합니다. 저기 당구
대에서는 올해 성년이 된 케즈먼가의 둘째 아들… 뭐 이름은 생각이 안 나지만 녀석이 지 친구들과 딱!
하고 열심히 당구를 치고 있습니다.
"으휴"
주문 대신 한숨과 동전 몇 개를 올려놓자 바텐더 조 역시 가타부타 말없이 맥주를 내줍니다. 분명 다른
누군가의 손님이 먹다 남겼음이 분명한 눅눅한 감자칩도 슥 내밀어주는 조의 배려 앞에 제임스는 조금
마음이 풀립니다. 그 눅눅한 감자칩을 쿠욱 씹노라니 TV에서는 오늘 경기에 대한 스포츠 뉴스 하이라
이트가 나옵니다.
아직도 성격 괄괄한 다니엘은 "버러지 같은 놈들" 하고 맨유 선수들을 욕하지만 제임스는 더이상 그런
욕을 할 기력조차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감자칩을 씹노라니 펍의 문이 열리고 왠 동양인 몇몇이 안에
들어옵니다.
살롱도 아니고, 아니 이런 펍 중에서도 하급 펍에 외국인, 것도 피부 노란 동양인들이 들어오자 단번에
시선이 쏠립니다. 하지만 그들 손에 카메라를 비롯해 이런저런 방송 기자재가 들린 것을 보아하니 아,
또 코리안들이겠군요.
"잠시 인터뷰를 해도 될까요? 맨유의 박지성 선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설픈 미국식 발음에 조금 실소가 나왔지만 제임스는 그 웃음을 꾹 참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음, 훌륭한 선수죠. 팀에 대한 공헌도 대단하고, 성실하고, 묵묵히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
자세는 팬으로서 매우 호감이 가는 선수입니다"
솔직히 자기가 말하고도 놀라운 매우 매끄러운 답이었지만,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찌-가 맨유에
온 이래 제임스가 인터뷰 한 것만 세 번째입니다. 특히 전형적인 '영국인 얼굴'의 다니엘은 코리안
방송사에서 촬영만 왔다하면 꼭 물어보는 통에 아마 지금까지 인터뷰 한 것만 수십번은 될 겁니다.
'도대체 코리안들은 왜 그렇게 찌-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어할까'
아 물론 좋은 선수입니다. 사실 찌- 가 오기 전까지 제임스는 동양인들에 대한 묘한 편견이 있었습
니다. 돈벌레에 체격도 작고 잔머리만 비상하고 비겁한 뭐 그런… 하지만 찌-의 헌신적인 모습과 그
성실함이 엿보이는 인터뷰들을 보노라면 절로 그런 편견이 사라질 수 밖에. 게다가 '슈퍼서브'로서
그만한 선수가 또 있으랴 생각해보면 찌-는 정말 훌륭한 선수지요.
아 그쯤해서 제임스는 문득 한 마디를 더 보탰습니다.
"찌-는 아마, 우리 맨유에서 레전드로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분명히"
다소 빤한 대답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던 코리안 리포터와 카메라 기자의 얼굴에 기쁨이 넘쳐납
니다. 아마 오늘 자신의 대답은 코리아 스포츠 뉴스의 마지막을 장식하겠지, 싶어 제임스의 얼굴
에도 슬몃 웃음이 피어오릅니다.
그와 함께 펍 안은 또 '박지성 응원가'가 울려퍼지기 시작합니다. 아 정말 눈치빠른 놈들입니다.
Don't sell my Park, My Ji-Sung Park,
I just don't think you understand,
And if you sell my Park, My Ji-Sung Park,
You're gonna have a riot on your hands~
모두가 목소리를 모아 박지성 응원가를 부르고 크게 웃으며 왁자지껄한 분위기, 코리아의 방송사는
아주 대박이라도 건진 양 웃으며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펍을 빠져나갑니다.
펍은 간만에 활기가 돌았습니다. 그리고 또 금방 다시 그 활기가 잦아들었습니다. TV에서 유로존
문제와 함께 영국의 실업률 뉴스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퍽킹 캐머론"
누군가의 한 마디와 함께 또 펍 안은 우울함이 감돌았습니다. 제임스는 고개를 저으면서 남은 맥주를
비우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하늘은 잔뜩 흐린 채 해가 저물어갑니다. 아마 내일, 아니 오늘 밤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습니다.
"오우"
집으로 가는 길, 이번에는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에서 큰 길에서 사람들에게 '맨유의 위기'를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시하고 걸으려 했지만 눈이 마주친 기자가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언제나 맨유는 위기가 생길 때마다 슈퍼스타, 레전드가 혜성같이 등장해 그 위기를 타계해왔죠. 지금
이 맨유의 위기를 타계해 줄 스타, 차세대 레전드 후보를 3명 댄다면 누가 있을까요?"
하는 질문을 해왔습니다. 조금은 신선한 질문이었습니다. 약 3초 정도 고민한 제임스는 짧게 대답했
습니다.
"웰벡, 마케다, 그리고… 에슐리 영?"
조크 섞인 대답에 기자도 피식 웃었습니다.
"쌩큐"
기자의 말에 가벼운 목례를 하고 제임스는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진지하게 생각해 본 답은
조금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도 당연히 찌- 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