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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요 풋산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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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행님요, 행님이 여 풋싼 함 내려오믄, 완~져히! 완져히 마 처음부터 끄까지 머 최고로 모시겠슴미더. 아~ 푸산이요? 마 크게 볼 거는 머 밸 거 없어도, 그래도… 제가 모시면 달라도 머가 다르지 않겠슴니꺼? 제가 여 30년 토백임니더 30년 토백이!" 

녀석의 말을 진짜로 믿고 푸산까지 내려간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강알리 머 여기 최고 아임미꺼?"
"좋긴 좋네. 간만에 바닷바람 쐬니까"
"하모요, 여 바다, 해운대 앞바다 딴 거 없씸미더. 외지 사람 밖에 엄따, 순 똥물이다 머 막 그래 해싸도, 여 시원~한 바닷바람 이 자체가 최고 아임미꺼. 푸쓰으으으으으안!" 

출출하길래 나는 밥부터 먹자고 했다.

"우리 밥부터 먹으러 가자. 뭐 맛있냐?"
"밥이요? 하아… 행님, 행님 뭐 묵으실람니꺼? 밀맨도 조코, 회 무그러 갈까예? 아님… 아! 대지국빱 무러 가실랍니꺼? 행님 대지국빱 드셔보셨슴니꺼?"
"응, 먹어봤어. 서초동 법원 사거리 근처에 잘하는 집이…"
"아아아아 행니임!! 무슨 스울 바닥에서 드신 대지국빱이 머 대지국빱입니꺼? 어디 머 에레이 타운에서 기무치 무치는 소리 하지 마시고예, 그라모 행님한테 지인짜 대지국빱 맛 소개시켜 드릴랍니더"
"그래 뭐 좋아. 어디 맛있는데 알아?"
"지만 따라오이소"

녀석을 따라 들어간 가게. 가게 안에 가득한 돼지 비린내에 살짝 역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진한 고기 맛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꽤 좋았다. 과연 본고장의 맛이랄까. 하지만 녀석의 호들갑에 비할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행니임~ 으뜨씁니꺼? 장난 아이지예?"
"어, 맛있네"
"크~ 행님이 맛을 아시네 맛을. 미식가야. 캬… 아 그리고 여 대지국빱도 마싰고, 밀맨도 잘하는데 있는데 가실까예?" 
"아냐 배부르다. 어디 커피나 좀 디저트로 마시러 가자" 

커피, 그리고 디저트라는 말을 듣자 녀석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그가 무슨 말을 할지도 곧 예측이 되었다.

"행니임!"
"잠깐만, 계산 좀 하고. 나가서 이야기 하자"

내가 한 템포 끊자, 가게 안의 다른 푸산맨들이 더 아쉬워 하는 눈치였다. 대한민국 제 2의 도시, 푸산의 자랑거리가 곧 소개될 타이밍이었는데… 가게를 나와 "어디 갈까?" 하고 녀석에게 묻자 녀석은 그야말로 신이 잔뜩 나서 마치 춤이라도 출 듯한 기세로 말을 쏟아냈다. 

"행니임! 우리 푸싼에 오셨음 이 등킨 도나쓰 한 사바리 해야 되는거 아니겠슴니꺼? 등킨 도나쓰, 등킨! 행님 서울에 등킨 도나쓰 있습니꺼? 여 강알리 등킨 도나쓰는 머 엄청스리 유명합니더. 맛이 달다구리~ 한 것이 머 완~져히 직입니더!" 
"야 임마" 
 
내가 피식 웃자 녀석도 머쓱한 듯 뒷통수를 긁었다.

"행님 제가 좀 오바했지예? 귀엽게 봐주이소. 흐, 사시른… 강알리 등킨 도나쓰 망한지 좀 됏씀니더. 여 부산 초온놈들이 머 밥 먹고 크피나 마시고, 가시나 맨치로 도나스 무가매 오천원 만원씩 쓸 머 그럴 놈들이 아입니더. 여 앞에 자판기 커피나 한잔 드실까예? 이건 마 제가 시원~하게 쏘겠습니더!"

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저기 스타벅스 있네. 가서 아메리카노나 마시자"
"아 행님도 원래 비이싼 크피 드십니꺼? 바깝보다 비싼 커피를 우예 그래 마십니꺼? 맛도 내는 저 자판기 커피가 젤로 맛있든데"
"자판기 커피도 맛있지. 일단 커피도 내가 쏠께. 가자"
"행님이 또요? 아 이라믄 안돼는데…" 

정작 가게 안에 들어서자 녀석은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하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왜? 화장실 가고 싶냐?"
"아닙니더. 아까 다녀왔슴니더"
"근데 왜? 아 내가 돈 낸다고 해서 미안해? 아냐 괜찮아. 형 이번 주에 월급 탔어"
"아 그건 고맙습니더. 근데 그거 때무이 아입니더"

그가 왜 이리 불안해하는지 당최 이유를 알 수 없던 나는 물었다.

"그럼 왜?"
"하아… 행님. 푸산 싸나이 아입니꺼 푸산 싸나이. 우째 싸나이가 가시나 맹키로 이런 곳에 드가 차이 티 라떼네, 스트로베리 푸라푸치노네, 까라멜 마끼아또네 뭐네 하는 그 이름도 요상시리한 것들 마신다 말입니꺼"
"뭐야, 메뉴 이름도 잘 아네. 자주 왔나보구만"

얼굴이 벌개진 녀석은 대답했다. 

"아 해이응이 땜에 맷 번 와 봤심니더" 

그 익숙한 이름에, 한번 만나본 적도 없건만 나는 반가움마저 느꼈다. 

"아 맞어. 혜영이. 맨날 니가 자랑하던 걔? 막 아이돌처럼 이쁘다는 애? 맞어 풋산 온 김에 얼굴 좀 보고 가자. 걔 한번 나와라고 해. 같이 커피도 마시고 이따 저녁도 같이 먹고"

하지만 녀석은 내 말에 무척 당혹스러워 했다.

"아… 그건 쪼매…"
"왜? 맨날 니가 나오라고 전화 한 통만 하면 아픈 병석에서도 벌떡 일어나서 찾아온다며. 친구들 만나고 있어도 막 그냥 달려오고. 근데 뭐"
"아 행님, 근데 오늘은 쫌…"
"왜?"
"그냥 오늘은 행님이랑 저랑 둘이서 보내면 안되겠슴니꺼?"
"아 무슨 시커먼 남정네 둘이 있는거보다야 여자애 하나 있는게 더 낫지"
"아 행님…"

내가 자꾸 보채자 녀석은 매우 곤란해하면서도 결국 휴대폰을 들었다. 사실 부르면 당장 온다던 그의 말이 구라가 아니었을까 하던 나로서는 조금 놀랐다. 하지만 녀석은 왠일인지 전화 대신 카톡을 이용했다.

"그냥 전화로 부르면 되잖아"
"흠, 흠. 이걸로도 됩니더"

그리고 난 옆에서 흘낏 대화내용을 들여다 보았다. 

[ 혜영아, 내다. 오늘 혹시 잠깐 시간대나 ] 
[ 아 진철이가? 음, 오늘 안 될 거 같은데. 내 오늘 약속 있다 ] 
[ 아 그르나. 내 오늘 설에서 아는 행님이 푸산 구경 함 왔는데 니 보고싶다케서 ] 
[ 니 아는 햄이 와 나를 보고 싶노? ] 
[ 아 그게… 니가 이쁘자나 ] 
[ 미칬나. 내가 모가 이쁘노. 글고 내 이쁜거랑 그 오빠 보는 거랑 무신 상관인데? ] 
[ 화났나 ] 
[ ;;; 화가 난게 아이고 기가 매키자네. 니 또 내 이름 팔아묵고 다니나? 머 또 어데가서 니가 부르면 내가 버선발로 달려나오고 머 그런다 케쌌나? 니 와 자꾸 내 이름 팔아묵노. 내가 니 여친이가? ] 
[ 미안하데이 ] 
[ 됐다 치아라 ] 
[ 내 담에 맛있는거 사주께 ] 
[ 후... 아라따. 니 햄이랑 잼나게 놀아라 ]
[ 고맙데이 ] 

나는 거기까지 보고 못 본 척 슥 고개를 돌렸다. 

"뭐래?"
"아, 행님, 오늘 해이응이가 중요한 약속이 있어가꼬, 못 나온 뎁니더. 평소 가틈 머 부르면 바로 총알처럼 튀 나올텐데. 하~ 참"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우리 이제 둘이 어디 소주나 하러 갈까? 회 먹을까? 아님… 아, 조개구이 먹으러 갈래? 뭐 기왕 쏜 김에 이것도 내가 쏜다"

그러자 녀석은 눈에서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감동한 듯 내 팔뚝에 붙어 말했다. 

"크으으으으으, 우리 행님요, 이 동생은 우리 행님 하나 믿고 삽니더. 행님은 지인짜 멀 아시는 분입니더. 따라오이소" 

우리는 곧 택시를 타고 청사포로 이동했다. 내 말투를 듣고 서울에서 왔냐고 묻는 기사님. 그렇다니까 역시나 서울보다 푸산이 더 낫지 않냐는 둥, 자기는 번잡스러운 것이 너무 싫어서 서울이 싫다는 둥, 와서 맛있는거 마이 묵고 가라는 둥, 청사포도 좋고, 젊은 남정네 둘이니까 이따 밥 먹고 서면 가서 서울 가시나보다 이쁜 푸산 가씨나들 꼬려서 놀라는 둥의 별 도움 안 되는 이야기들 남기고 바가지 요금과 함께 떠났다.

"니 여기 푸산 30년 토박이라며. 완전 빙빙 돌더만"
"미안합니더 행님. 근데 마 개안십니더. 저 기사 아재도 다~ 묵고 살자는긴데. 행님이 좀 이해해주이소" 
"여기 자주 와본 거 맞어?"
"여 층사포 수미이네 이야기는 마이 들었십니다. 귓구녁에 인이 백히게 들었십니더" 
"으이구" 

하지만 잔잔한 파도의 바닷가를 바라보며 시원한 바닷바람 아래 조개구이를 먹노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행님, 으뜨씁니까 오늘 푸산 와보이 좋지예?"
"그래, 좋긴 좋다. 니도 다음에 여자친구 사귀면 여기 데려와서 같이 먹고 그래. 여자애들 껌뻑 넘어가겠다" 
"행님, 크, 역시 제 생각 해주시는건 햄 밖에 없습니다"
"근데 아까 그 택시기사 말 말이야, 서면 여자애들 이쁘냐?"

그리고 그러자 또 녀석은 신이 나서 어깨춤이라도 출 듯이 말을 한다.

"하~ 완져히 머 이거는… 쭉쭉빵빵. 디집니더. 이 빨통은 막 이래가꼬…"
"야, 빨통이 뭐냐 무식하게"
"아 행님 미안합니데이. 그럼… 유방!"
"아니, 가슴이라고 해 그냥"
"가슴은 막 이래가꼬, 배는 또 다 이래 배꼽티 훌렁훌룽 까 재끼고…"

배꼽티를 표현하며 배랫나루가 덮수룩한 지 배꼽을 보여주는 녀석. 

"응뎅이는 또 막 이마해가지고 막 허벅지는 길쭉길쭉한게 매끈매끈하게 쭈욱 빠져 가꼬 막 이기는 막 어마어마한 애들이 밤이면 밤마다 클럽으로 튀나와서 막… 스울 가씨나들한테 즐때로 안 꿀립니더. 부산 아덜 이쁩니더"
"그래서, 걔들이랑 뭐 어떻게, 그런 애들 꼬신 적 있어?"
"흐…뭐 그냥… 가끔 뭐 좋은 날도 있었지예"

살짝 부끄러워하는 녀석이 귀여웠다.

"행님, 근데 언제 올라가십니꺼?"
"아 오늘 바로 올라갈거야. 이따 저녁 차 타고 올라가려고"

그러자 눈알이 튀어나올 듯 놀라하는 녀석.

"아 행님, 참말입니꺼? 마 맻 년마네 푸산 내려오신거 아임니꺼. 좀 이따 가지"
"아냐, 나 바뻐. 그냥 오늘은 니가 하도 푸산 푸산 무슨 푸산이 천국처럼 소개하길래 와봤다. 근데 여기도 뭐 그냥 그렇구만"

녀석은 슬슬 익어가는 조개들을 귀퉁이로 밀고 말했다. 

"행님, 제가 부족해서 제대로 못 뫼신 거 같아서 참말로 죄송스럽습니더"
"아 무슨 소리야. 오늘 맛있는거 잘 먹었는데"
"담에 오믄, 제가 지인짜 장난 아니게 풋산 구경 제대로 시켜드리겠습니더"
"그래"

조개구이를 다 먹고, 술 기운이 슬슬 오를 무렵 나는 역으로 향했다. 해운대와 광안대교, 그리고 한없이 우뚝 솟은 마린시티의 모습들을 뒤로 하고 나는 KTX로 서울길에 올랐다. 출발 전 녀석이 카톡으로 메세지를 보냈다. 

[ 행님, 담에 꼭 한번 또 오이소. 그때는 마 완져히 다… ] 
[ 그래. 그리고 그 '해이응이'한테는 꼭 맛있는거 사주고 ] 
[ 아, 행님, 아 쑥쓰럽게스리. 행님 사랑합니데이 ] 
[ 그래, 잘 지내라 ] 

그리고 떠날 무렵, 침침한 조명 아래 열차 안에는 술안주로 과메기를 자신 아재들의 진한 술냄새가 피어올랐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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