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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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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인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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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원에서 3일차를 넘기게 되면 슬슬 본격적인 단식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 시점부터 벌써 무너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다. 나처럼 말이다.

"뭐라도 좋으니까 씹을 것 없을까요. 무설탕 껌이라두요"
"안됩니다"

보통 나는 그 즈음해서 종이, 이를테면 휴지 뭉터기를 씹곤 한다. 의외로 텅 빈 뱃 속에 물을 있는대로 잔뜩 채운 후 휴지덩이를 씹고 있으며 다른 일을 하다가 입 속의 그것이 휴지라는 것을 잠시 잊을 무렵이면 약 3초 정도, 그것을 고기로 착각할 때가 있다.

"웩"

물론 그 짧디 짧은 행복의 순간과 함께 나도 모르게 그것을 입 속으로 삼키려는 순간이면 뒤늦게 나의 이성과 미각은 다행히도 그것이 '음식이 아닌 이물질'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짙은 자괴감을 삼키면서 휴지를 뱉어내고나면 나는 굶주림 속에 언제나처럼 '여기 내가 왜 있는거지. 왜 돈을 내고 몸을 학대하고 있는거지'에 대한 후회를 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때였다.

"힘내요. 정 힘들면 딱 하루만 더 버텨봐요. 저도 내일까지만 어떻게든 힘내보려구요"

나에게 말을 건 상대는…. 그래, 이름은 안다. 성은 모르지만 정미씨. 척 봐도 100Kg에 육박하는, 나와 같은 초 고도비만 회원이고 비록 말 한번 나눠본 적 없지만 몇 번인가 마주친 적이 있다. 아마 지난 단식회 때도 나왔을걸. 

"아, 예. 힘낼께요"

사실 단식원에서 제일 힘든 것은 고독이다. 당장 배고픔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말 한 마디 꺼내고 싶지 않으며 모든 외부의 자극에 민감해지면서도 누군가가 제발 나와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참 간절한 그곳이다. 그 외로움. 가뜩이나 어려운 자신과의 싸움인데, 혼자 싸우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게다가 그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차마 남에게 먼저 말을 걸기 어려운게 우리같은 뚱씨들인데 먼저 말을 걸어준, 그것도 힘내자는 말을 해준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몇 살이세요?"




결국 정미씨와 나는 그 다음 날 저녁 즈음, 도중 포기를 하고 말았다. 그래 안되는건 안되는거다. 억지로 버티자면 하루쯤은 더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루에 비타민 알약 몇 개로 내 쌀자루 같은 위장을 달래기에는 곤두선 내 신경이 버텨내지를 못할 것 같았다.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같이 포기하시는 것 같아서"
"아니에요. 저는 벌써 어제부터 '아 한계다' 하고 느꼈는걸요. 그래서 말 건 거에요. 이 사람이랑 같이 힘내보자, 하고"
"결과적으로 그러면 저 때문에 포기한 거네요. 아 미안해라"
"아 정말 아니에요. 오히려 성용씨 덕분에 하루 더 버틴 거에요. 아니었음 어제 포기했을 거에요"

다시 입고 온 사복으로 갈아입고 역으로 향하던 길. 하지만 이미 며칠 간의 단식으로 미친듯이 예민해진 후각은 역 근처 호프집에서 흘러나오는 치킨 냄새를 캐치해냈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콜?"
"콜!"

하고, 함께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문득 앞장선 그녀의 38인치 허리가 새삼 눈에 들어왔지만 어차피 내 허리를 생각해보면 뭐 그쯤이야. 그리고 그보다는 식욕이 더 급했다.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이제 겨우 6시 밖에 안 됐지만 작은 호프집에는 자리가 몇 자리 없었다. 다행히 앉기도 힘든 바 자리가 아닌 테이블 자리가 한 자리 남아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메뉴판을 펼치기도 전에 그녀는 주문을 했다. 

"치맥이요. 오백… 아니 피쳐 둘에 후라이드 하나, 양념 하나요. 아, 성용씨, 괜찮죠?"
"그럼요!"

영원같이 느껴진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덩달이 말이 없어진 우리의 입은 치킨 두 마리가 나오면서 그제서야 방언 터지듯 기쁨에 넘친 성탄과 함께 시식을 시작했다. 

"먹읍시다!"
"네!"




 
진작 전철을 타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어야 할 우리는, 아직도 한강 둔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솔직히 저는, 아까 되게 좋았어요"
"뭐가요?"

정미씨는 아까부터 무언가 굉장히 행복한 표정이었다. 물론 우리 같은 뚱뚱한 사람들 입장에서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는 것은 당연히 삶에서 큰 행복이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그녀는 나의 질문에 잠깐 대답을 주억거렸지만 곧 입을 열었다.

"저는 사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안 뚱뚱했던 적이 없었어요. 아니, 뭐 학교 다닐 때 어렸을 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때도 뭐 남들에 비하면 한참…. 그래서 놀림도 많이 받고…"
"아 그거야 뭐…에이"

구태여 말해 무엇 하나. 알지. 그 많은 잔소리, 눈총, 뒤에서 다 들리는 비아냥… 후우. 

"그런데 아까 성용씨 앞에서, 분명히 이미 서로 좀 친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정식으로는 초면인데… 같이 처음 뭐 먹는 자리에서 그렇게 마음껏… 네,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같이 먹는 사람한테 이런저런 잔소리 안 듣고 마음껏 주문해본게 너무 좋았어요. 처음이에요. 엄마 앞에서도 그렇게 마음 놓고 먹어본 적이 없어요. 너무. 정말 너무너무…"

마치 토해내듯 그 말을 쏟아낸 정미씨는 무언가에 북받쳤는지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둥근 뿔테 속의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고, 굵은 손가락은 안경을 들어올리고 그것을 닦아냈다. 

아까 정미씨는 먼저 시킨 두 마리 이외에도 또 두 마리를 더 주문했고, 우리는 결국 그것을 모두 해치웠다. 뭐 어차피 평소에도 집에서 혼자 두 마리 치킨 시켜다 먹는데 그게 무에 대수겠냐만 그래도 3일간의 단식으로 위장이 많이 쪼그라 들었을 상태에서도 전혀 어려움 없이 둘이서 치킨 네 마리와 맥주 5천 cc를 먹어버린 것은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아니,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정미씨"

그녀는 대답 대신 그저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 아니 코를 팽 풀었고, 나는 왠지 가냘프게-정말 우스운 표현인거 알지만 정말 난 그렇게 느꼈다- 느껴진 정미씨를 향해 말했다. 상당히 용기를 낸 도전이었지만 솔직히 실패할 거라는 느낌은 안 들었다. 

"우리 사귈래요?"





천국이었다. 진정한 천국이었다. 아침에 삼겹살을 굽고 점심에는 피자를 먹으며 저녁에는 치킨을 뜯었다. 간식은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이었고, 빵에 치즈와 베이컨을 끼워 먹고 원없이 콜라를 마시며 캬라멜 마끼아또에 휘핑크림을 추가해서 마시고 츄러스를 몇 개씩 먹었다. 주말이면 식빵에 누텔라잼을 발라먹으며 미드를 보고, 과일을 산처럼 쌓아놓고 먹었다. 비 오면 부침개요, 맑으면 볶음밥이었다. 언제나처럼 중국집 쿠폰도 차곡차곡 모았다. 둘이서 먹으니 모으기도 좋았다. 

그리고 그 모두를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서로를 제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더 먹으라고 챙겨주면서.

"더 먹을래?"
"좀만 쉬었다가. 배 살짝 내려가면 만두 구워먹자"
"좋았어!" 

목 좋은 자리에서 24시간 알바로 돌아가는 소위 '오토' 편의점 업주였던 나와, 어머니가 약사시고 아버지가 대학교수이신 '은수저' 외동딸 정미씨. 우리는 비록 몸은 둔중했을 지언정 남보다 시간과 돈의 제약은 그리 크지 않았고, 하루종일 누워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주문은 온라인 주문으로 충분했고, 15평 그녀의 원룸에서 우리는 언제나 함께 먹고, 함께 놀았다. 정말 즐겁고, 좋았다. 




"오빠 사랑해"
"흐, 뜬금없이 왜"
"나한테 고백해줘서"
"별…"

던킨 도너츠와 크리스피 도너츠를 양손에 들고 하나씩 먹으며 맛을 비교하던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스트레스 안 줘서 고마워"
"그건 나도 고마운건데"
"진짜 처음이야"

뭐가 처음이라는거지, 뭐, 나도 던킨과 크리스피를 동시에 먹는건 처음이긴 하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항상 꿈꿨었어. 내 외모가 아니라, 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을까, 하고. 그냥 내가 뭘 먹던 그냥 좀 냅두고, 어차피 한끼 좀 덜 먹는다고 내 살 바로 빠지는거 아니잖아. 그냥 내가 뭘 먹기만 해도 바로 그만먹어 하고 트집 잡는 대신에 같이 먹어줄 그런… 우…흑…"

뭐야, 바보.

"왜 갑자기 또 울어"

정미는 안경을 벗고 눈물을 슥 닦으며 말했다.

"난 정말로 죽을 때까지 그런 사람 못 만날 줄 알았거든. 고마워"

사실은 나도다. 

"나도 그래. 정말로"




하지만 그런 생활이 반 년이 넘게 지속되자, 그렇잖아도 초고도 비만이었던 나는 나 스스로가 더 심하게 살이 찐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심장이 아파오는 날이 종종 있었고, 높은 계단을 올라갈 때면 현기증까지 느꼈다. 뭐, 현기증이야 예전에도 곧잘 느꼈지만. 무엇보다 맞는 옷이 없었다. 이미 그 전부터 트리플 엑스라지였는데도 말이다.

"정미야"

매상을 확인하고 정산을 마친 후에 잠깐 알바생들이랑 술 한잔 하고 집에 오니 어느새 밤 12시. 들어오며 정미를 불렀다. 불 꺼진 어두운 방 안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삶은 옥수수와 함께 미드를 보고 있던 그녀는 "어, 오빠왔어?" 하고 나를 맞이했다. 물론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한 채로.

그러고보니 그녀도 살이 많이 쪘다. 그럴 수 밖에. 인바디에서 나보다 훨씬 근육량이 적었으면서도 먹는건 나 못지 않게 먹던 그녀였던 만큼 살도 더 쉽게 붙는건 당연한 이치였다.

"그래도 난 키가 있잖아" 

하고 위안하던 정미였지만, 솔직히…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자.

"정미야"

내가 뭔가 조심스러운 분위기로 이름을 부르자, 그녀 역시 뭔가 심상찮음을 느꼈던지 스페이스 바로 화면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길래 이렇게 힘들어 하나, 하는 의문이 정미의 얼굴에 떠오를 무렵, 나는 말했다.

"우리 다이어트 할까"




오해와 의혹, 한탄이 어우러진 싸움 아닌 싸움이 한바탕 스쳐지나갔고, 정미는 단언했다.

"난 안 할거야"

뭐, 애초부터 별로 기대는 안 했다.

"아니 그래, 알았어. 일단 나 혼자 할거야. 근데 다만 나는, 너도 같이 하면 나도 도움이 더 될테고…"
"오빠. 지금 오빠가 그래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은 그거잖아. 나 살 빼라는거. 보기 흉하니까. 남들처럼…"
"아니야 정미야. 정말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야"
"그럼 뭔데!"

한참을 돌고 돌았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에 나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나 혼자 다이어트 할께.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보다"

정미는 아직도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그녀를 그렇게 화나게 한 것일까. 나는 솔직히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저 나는 같이 다이어트 하자고 한 것 뿐인데. 하지만 구태여 더 캐묻는 대신, 나는 이불을 폈다. 

"자자"
"몰라"
"자자, 정미야"
"오빠나 자. 피곤하잖아. 오늘 정산하느라"
"아니야. 같이 손잡고 자자"
"됐거든?"

결국 혼자 누워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하기사, 그녀 입장에서는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뚱뚱해지자고 해놓고 등 돌리는 느낌이었는지도. 그랬으려나. 어쩌면 무서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는 왜 그렇게 피해의식이 강한가 싶어 답답하기까지 했지만 문득 그제는 오히려 안타깝고 아껴주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배게 빨아놨어"
"그러네. 잘했어"

내 시큰둥한 대답에 정미는 노트북을 덮고 옆 자리에 누웠다. 이번에는 내가 슬쩍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정미도 뿌리치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사랑해"
"됐어" 





우리는 이미 자기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우리는 진짜 어지간한 의지로는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도, 헬스장을 끊어봐야 한달은 커녕 일주일도 제대로 나갈 리 없다는 것도, 단식원 가봤자 절대로 3일을 넘길 수 없다는 것도, 집에서 자가운동을 하기에는 이미 우리는 너무 멀리와버렸다는 것도. 

"우리도 섹스 다이어트나 할까 그럼?"

그냥 쉽게 던진 말이었다. 농담이었다. 하지만 정미는 대답이 없었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걸, 나는 그녀가 내 드립을 어떤 식으로 받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줄 알고 조금 더 진한 농을 던졌다.

"어? 막 땀 뻘뻘 흘려가며 찐하게. 살 좍좍 빠진다던데"

그리고 그 직후 정미가 약간 어색하면서도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아차 싶었다.

"오빠 근데, 왜 진짜 우리는 스킨십 안 해?"

스킨십이라. 뭐 맨날 손 잡고 키스하고 부비부비하고 끌어안고… 오히려 어지간한 커플들보다 살과 살이 닿는 시간과 횟수는 더 많겠지만 그녀가 말하는건 그게 아니겠지.

섹스. 

그래, 섹스. 

흠… 알다시피 그녀와 나는 모두 초고도 비만. 특히 나는… 음. 자위는… 자위라면 몰라도, 섹스를 하기에는… 게다가 그녀도 육중한 편이라 서로의 살이 맞닿고 나면… 어… 아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뭔가 닿지 않는다거나…


아니아니. 

그게 아니다. 

정말 그게 아니다. 

그래. 

사실은… 



"후우"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솔직한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정미야"

정미는 거의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물었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 아니 없지. 그래도…"

하지만 난 그녀의 우려를 날려보낼,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의 좌절이 더 클 대답을 했다.

"나 사실…"

 


정미는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정말 말하기 힘들었을텐데, 오히려 자기가 진작 신경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냥 자기는 자기가 매력이 없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단다. 그래서 몇 번이고 말하려다 꾹 참았단다.

"그럼 약으로는 안 돼? 그거 있잖아.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여튼 그 약 있잖아"
"안 돼. 나 혈압이 높아서 그거 잘못 먹으면 큰일 난대"
"우리 아버지도 고혈압인데 먹던데?"
"나 그 정도 아닌거 알잖아"

정미는 한숨을 내쉬다가 말했다.

"운동하자. 그리고 식이요법도 하자"

쉽지 않을거라는 건 알았지만, 그녀가 먼저 응원해주니 고마웠다. 




운동 5일째. 그녀와 나는 저녁마다 동네 근처에서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했다. 사실… 부끄러웠다. 동네에서 가볍게 조깅을 하거나 걷기 운동을 하는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우리 또래 사람들은 다들 날씬하거나 보기 좋은 몸매의 소유자였다. 

"저 아저씨 팔 근육 좀 봐"

처음에는 있는 사람들이 더한다, 라고 생각했지만 좀 더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였다. 있는 사람들이 더 하는게 아니라, 더 하기 때문에 그런 몸매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사람들이 우리 커플을 보며 피식 웃거나 오다가다 괜한 짜증나는 말 한 마디씩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은 '조금 더 한' 사람들이니까. 

아니, 사실 그래도 그들의 기분 나쁜 말들이 합리화 될 수 있는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를 달랠 수는 있었다. 그리고 나와 정미도 배드민턴, 걷기운동에 조금씩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살은 여전히 빠질 기미가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오빠"

정미가 말했다. 집에 가자고. 무슨 소리냐, 여기가 집인데 어디를 가냐고.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우리 집 말고, 내 집 말이야. 파주에 내 집. 엄마 아빠 사는 내 집" 하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당황했다. 

"그거 지금 나, 집에 소개시키는거?"
"어. 아빠가 오빠 데려오래"
"헉"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릴 정도로 당황했지만, 그녀의 웃음을 보면서 문득 느꼈다. 결혼이라…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정미는 날 끌어안았다. 물론 그녀의 뱃살과 나의 뱃살이 맞닿는 순간 그 강렬한 뱃살의 충돌에 둘 다 한 걸음씩 물러섰다 다시 끌어안는 그런 포옹이었지만. 

"왜? 오빠는 싫어?"

아니 그럴 리가.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양가 집안 모두 '집안의 골칫덩이'를 해결하는 분위기였다. 상견례 자리에서 아버지는 기쁜 마음에 "두 뚱땡이가 그래도 어떻게 잘 서로를 만나서…하하핫" 라는 실언을 하기도 했지만 정미네 아버님 역시 "돼지 두 마리가 만났으니 새끼도 잘 치겠습니다 하하하하" 라는 폭언성 농담으로 의기투합했기에 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도대체 살 좀 찐게 뭐가 그리도 문제인지 항의하고 싶었지만 우리 아버지 성격을 알기에 굳이 입 밖으로 불만을 내뱉지는 않았다. 

"으음"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시작한 헬스장 PT. 사실 그녀는 괜찮다고 했지만, 적어도 예비 장인 어르신이 '새끼도 잘 치겠습니다?' 하고 농담까지 던지는데 정말로 새끼를 못 쳐서야 답이 없지 않겠는가. 





"에이, 몸무게 하나도 안 줄었네"
"아냐 오빠. 똥 안 싸서 그래. 오빠 똥 완전 많이 싸잖아. 다 싸면 3kg는 줄테니까 실제로는 1kg 빠진거나 다름없어"
"야, 암만 그래도 내 뱃 속에 똥이 3kg나 있겠냐" 
"그래도 명색이 똥배인데 똥이 그 정도도 없어?"
"니 머리에는 있을 듯" 
 
어쨌든 결혼 1년 반. 나의 몸은 그대로다. 오히려 결혼식을 기준으로 하면 2kg 정도 몸무게가 더 늘었다. 정미도 2kg이 늘었고. 뭐, 그녀 뱃 속의 '그것'을 뺀다면 정미 역시 살이 좀 더 빠진 셈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 똥 말고.

뱃 속의 아이 말이다. 어쨌든 우리 부부는 이렇게 산다. 여전히 많이 먹고, 뒹굴거리며, 딱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지만, 대신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소비를 통한 적절한 경제활동도 하고 산다. 오물세도 충분히 낼 만큼 내고 있고. 

정미의 말을 빌어 '뒹구는 삶'. 우리 부부는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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