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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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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관리…어떻게들 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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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보다는 다소 가라앉은 듯한 말투지만, 사장은 깍지를 낀 채 테이블 바닥만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게 더 무서웠다.

"저번 건도 그렇고, 내가 여러분들 이렇게 다 모아놓고 그때도 한번 말했을거야. 잘들 하자고. 근데 지금 이게 잘하는거야, 못 하는거야?"

회의실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그때 적막함을 뚫고 들어온 정윤씨는 사장의 지시대로 실시간 네티즌 반응 및 그동안 알게 모르게 티를 냈던 둘의 SNS 글들을 프린트해서 가져왔다.

"여기 있습니다"
"나가 봐"

언제나의 "고마워요" 같은 인사치례도 없이 바로 나가보라는 말에 사장 비서 정윤씨는 힐끔 회의실에 앉아있는 홍보팀과 관리팀을 쳐다보고 가벼운 목례와 함께 나갔다. 쿵- 문 닫기는 소리와 함께 사장은 천천히 프린물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테이블에 톡톡 튕기며 읽던 그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앉아있는 일동에게 말했다.

"다들 일하기 싫은거야? 싫으면 말해. 사직서 오늘 바로 결재해줄께"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회의실의 긴 테이블을 따라 걸으면서 말했다.

"예전에 저기, 신 사장 말이야. 우리 사무실까지 와서 미안하다고 자기 연예인 똑바로 관리 못해서 미안하다고 인사할 때 난 그랬어. 어휴 그럴 수도 있죠. 그리고 아직 어리지 않습니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한참 그럴 나이죠. 이제 갓 성인 된 앤데요. 괜찮습니다. 하고"

그는 갑자기 멈추어서서 회의실 중앙의 벽시계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갓 스무살 남짓한 애가, 새벽 시간에 혼자 지 감정에 취해서… 한번 실수하는거? 그럴 수 있어. 있다고. 그리고 내가 그 날 그랬을거야. 이유 막론하고 스캔들 터진거 자체가 우리 잘못도 있는거다. 우리 가수가 엮인 문제고, 우리도 관리 못한 책임 있으니까 앞으로 잘하자. 진짜 정신차리고 잘하자. 그러고. 아니아니 그 건 이후에도 몇 건 터졌잖아? 근데 그런거 다 이해한다고 나는. 솔직히 스캔들이 아예 없는 것도 너무 재미없잖아. 그런 재미도 있어야지. 그래서 몇 건 언론사에도 우리가 먼저 던져주고 다 했잖아. 안 그래? 차 실장, 안 그래?"
"예"

얼굴이 무거운지 차 실장은 고개를 숙인 채로 대답했다. 사장은 얼굴을 쓸어내리고 말했다.

"근데 이건 뭐냐고. 지금 그리고 때가 어느 때야? 내가 월요일 회의 때도 그랬지. 지금 이제 진짜 중요한 때다, 그 짱깨 새끼 건만 이제 잘 넘기면, 아 조 이사 쏘리. 내가 또 중국인 비하를 했네. 내가 요즘 감정조절이 안 되네?"

글로벌 마케팅 담당인 중국계 여자 이사 조 이사는 괜찮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여튼, 그 건만 이제 잘 넘기면 모두 다 잘되는거다, 앞으로 딱 1년만 빡세게 달리면 된다고 했어 안 했어?"

거기까지 말한 사장은 빈 의자에 팔을 기대어 서서, 아니 빈 의자를 움켜쥐더니 이윽고 확 넘어뜨리고 말했다. 쿵 소리가 나며 회의실 중역의자가 넘어지자 다들 움찔했다.

"어? 내가 했어 안 했어? 그런데 이거 뭐야. 뭐냐고. 그래, 내가 저번에 반 농담으로 그런 말도 했지. 바깥에서 문제 일으킬 바에야 그냥 차라리 안에서 놀라고. 안에서 사고치라고. 그래서 그런 거야? 근데 이게 안에서 사고친거야? 언론에 대서특필 됐는데? 그것도 일타쌍피로? 지금 이제 음반 나올 건데 뭐, 지금 우리 실시간 우결 찍는건가? 아니면 안 팔리니까 아예 노가다 작전이라도 펴자는건가?"

'노이즈'라고 말할 것을 흥분해서 자기도 모르고 '노가다'라고 말해버린 그였지만, 여기에는 평소와 달리 아무도 그걸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회의실 밖에서 누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와요"

그러자 다시 사장 비서 윤정씨가 들어와 사장 귀에 무어라 속삭였다. 사장은 짜증난다는 얼굴로 잠깐 시계를 보더니 "5분, 아니 10분 후에 들어올께" 하고 그녀와 함께 회의실을 나섰다. 그가 나가고 회의실 문이 닫기자 숨소리조차 죽였던 회의실의 13명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홍보팀의 김 팀장은 관리팀 차 실장에게 물었다.

"실장님, 근데 이거 정말 모르고 계셨던 거에요?"

차 실장은 조금 말을 주저했지만 한숨과 함께 짜증스럽다는 듯 대답했다.

"제가 몰랐겠어요? 근데 아 이게 이런 식으로 터질 줄은 몰랐죠. 그리고 그러면 김 팀장님은 그 미친 년이 그 기사 쓸 때 뭐하고 계셨어요?"

갑자기 돌아온 퉁명스러운 말투에 김 팀장은 당황스럽다는 듯 눈을 깜박이더니 대꾸했다.

"아니 차 실장님. 지금 이 건이 제 잘못이에요? 그리고 제가 그동안 진짜… 몇 건 막았는지 아시죠? 지금 누가 누구한테 화를 내야 되는데요. 지금 저희가 거기 뒤치닥거리 하는 팀이에요?"
"뭐요?"

이미 해묵은 감정싸움이 다시 터질 조짐을 보이자 옆의 다른 팀원들이 말렸다. 구석에 앉아있던 글로벌 마케팅 담당인 중국계 조 이사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말했다. 다들 싸움을 멈추고 그쪽을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말은 싱거웠다.

"폰 콜"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그녀는 회의실을 나섰고, 앉아있던 홍보팀의 막내 사원이 모두에게 물었다.

"저희 근데 이런거 터지면요, 광고도 다 물러야 되는 건가요?"

이 분위기에 왠 눈치없는 질문인가 하는 수준의 이야기였지만, 나름 분위기 좀 식히자는 말임을 모두 알았고 그 말에 사수인 한 대리가 말했다.

"아니. 근데 계약에 따라 영향 받는 건도 있어. 그리고…"

하지만 그의 말은 곧 다시 돌아온 사장에 의해 끊겼다.

"차 실장, 애들 오늘 스케쥴 어떻게 되지? 기집애 말고, 머슴아들"
"오늘 오전에 광고 촬영 하나 있고, 오후에 패션지 화보 촬영 있습니다"
"그거 일단 TV광고만 진행 하고, 잡지에는 미안한데 스케쥴 다시 조정해보자고 해. 우리가 비용 조정해주겠다고 하고"
"알겠습니다"

딱 부러지는 대답. 하지만 사장은 아직도 가슴 속의 불덩이가 식지 않는 모양.

"대답만 하지 말고 바로 지금 나가서 알아봐! 쫌! 굼뜨게 행동 좀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괜한 짜증이었지만 차 실장을 비롯한 관리팀은 대꾸 대신 얼른 사무실에서 일어났다. 나머지들은 차라리 그게 부러웠다.

"일단 그리고 말이야, 김 팀장이랑 홍보팀은 다시 나가서 일 봐. 조 이사는 또 어디 간거야? 여튼 아, 김 팀장"
"네 사장님"

사장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곧 머리를 긁더니 말했다.

"아니다 아니다, 나가봐"
"…네"

다들 우르르 나가자 남은 건 전략기획팀의 오 차장 뿐이었다. 그녀는 빙긋 웃었다.

"연기 잘하시던데요"
"연기는 무슨…"

그러자 오 차장은 결재판을 펼치며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8월 재계약 관련 검토안이 있었다. 사장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렴 똥차 재계약하는데 신차 값 주고 사는 미친 놈이 어딨어? 뻗대면 야코를 좀 먹여야지. 그리고 어디 장사 1~2년 하나. 이런 걸로 내가 화를 내게"
"어쨌든 수고하셨어요"

사장은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입에 불 안 붙인 담배를 물었다.

"머슴아들은 이걸로 되바라지기 전에 한번 단단히 잡아주고, 가시나들은 똥물 한번 튀기고 싸게 재계약하고, 김 기자는 특종 쓰고 두 건 묻고, 이런게 비지니스지 비지니스"

그리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회의실을 나섰다.

"아이고 의원님, 아니요 아니요… 원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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