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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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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s,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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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미국발 비행기에서 쏟아진 탑승객들은 입국 심사대쪽으로 향했다. 성격 급한 한국인들은 서둘러
발걸음을 빨리 했고, 한국에 처음, 혹은 오랜만에 오는 듯한 외국인들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인천
공항을 구경했다.


"흠…"

80년대, 독도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방문한 바 있던 아시아 고지도 전문가, 박스스타일
박사도 그 중 하나였다. 근 30년 만의 방문이었다. 패기 넘치던 30대의 그도 어느새 60을 넘긴 노인이 되
었다. 이번 방문은 한중일 왜곡문제에 관한 세미나 때문이었다.

천천히 걷다보니 자기 앞 줄의 외국인 전용 입국심사대에는 약 10여 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서있었다. 다들
어디 파티라도 가는 듯이 알록달록 열심히들 꾸민 10대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손녀 딸 생각이
절로 났다.

"흐음? 아…"

앞에 선 빨간머리 여자애의 여권이 너무 화려하길래 '어느 나라 여권 표지가 저렇게 화려하지?' 싶어서 좀
자세히 쳐다보니까 K-POP 어쩌구 하고 써있는 아시아 스타 사진 여권 케이스였다. 그러고보니 손녀 딸도
요즘 케이팝에 관심이 많다지. 이래저래 한국하고 관련이 많던 본인으로선, 새삼스러운 한국의 성장에 꽤
기쁨을 느꼈다.

"알라잌 샤이늬!"
 
저 앞에서 입국심사관이랑 이야기 하던 10대 소녀가 뜬금없이 소리를 질렀다. 영국에서 온 아이인가? 공항
창문으로 보이는 한국 특유의 밝은 겨울 햇살에 좋아라 하는건가, 했지만 옆 줄의 소녀들이 똑같이 외치고,
개중에 [ I LOVE 'SHINee' ] 라는 아이돌 사진 피켓을 들고 있는 아이를 보고 깨달았다. 

저 묘한 단어 말장난스러운 그룹명을 가진 가수가 인기인가보구나 싶었다. 쿡 하고 웃음이 지어졌다. 이어
빠른 속도로 줄이 줄어들었고, 드디어 박스스타일 박사의 차례였다.


"Papers, Please"

입국심사관의 말에 자신의 미국 여권을 내밀자 그는 찬찬히 아래 위로 자신을 쳐다보더니 물었다.

"두 유 노우 싸이?"

순간 박스스타일 박사는 당황했다. 지난 30년간 수십개국의 국제 학회를 돌았지만 입국 심사대에서 '싸이'
라는 것을 아느냐고 묻는 곳은 처음이었다. 무슨 뜻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싸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묻자 퉁퉁한 몽골리안 외모의 입국심사관은 조금 불만스러운 눈으로 종이에 써서
보여주었다.

[ PSY ]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무슨 뜻이지? 뭔가의 약자인가? 퍼스널… 흐음. 한참을 주저하자 그 한국인 입국심
사관은 재차 물었다.

"두유 노우 강남 스타일?"

강남은 안다. 이번 세미나가 열리는 곳이 강남의 한 호텔이었으니까. 하지만 강남 '스타일'은 또 뭐람. 박
스스타일박사가 어깨를 으쓱하자, 한국인 입국 심사관은 다소 화난 표정으로 뜬금없이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어느 과체중으로 보이는 젊은 동양인 가수의 우스꽝스러운 뮤직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그 구석에는 'PSY - GANGNAM STYLE' 라는 작은 태그가 들어있었다. 아 그렇구나. 한편으로는 내심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불쾌함마저 들었다. 평생을 연구에만 매진한 학자로서, 입국심사대에서 엔터테이너
관련 질문을 받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황당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자신이 저 싸이라는 가수를 모르고, 강남 스타일도 모른다고 하자, 입국 심사를 마치고 
저 뒤에 있던 한국인들은 물론, 아직 입국심사를 위해 저 쪽에서 기다리던 한국인들도 흉흉한 기세로 욕을
하는 듯 했다.

그제서야 문득 어쩌면 저 PSY라는 사람이 단순히 가수가 아니라 뭔가 한국의 영웅이나 존경받는 정치인,
종교 지도자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토록이나 자부심에 찬 얼굴로 외국
인에게 그를 아느냐 모르느냐 물어볼 이유가 없지 않는가.

새삼 사람들의 흉흉한 기세를 보아하니 필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국심사관은 고개를 저으며
이미 공항 보안요원을 부른 상태였다. 그는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눈치로 물었다.

"두유 라이크 김치?"

어느새 한국인들의 증오 어린 눈길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본인이었다. 게다가 총기를 소지한 공항 보안요원
이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상태였고, 박스스타일 박사는 눈치껏 "예, 예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김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코를 쏘는 신 냄새와 그 입 안을 불로 지지는 듯한 강렬한 스파이시함,
묘하게 쿰쿰한 냄새 등은 도저히 그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예전에 한국에 왔을 때도, 그것만큼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의 거짓말에 온화한 표정을 짓는 듯한 입국 심사관. 주변의 한국인들도 어느새 화기애해하게 웃었다. 겨
우 한숨 돌렸다, 싶었지만 그 다음은 너무나 큰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치 이즈 베리 굿!"

입국심사관은 그렇게 자국의 식품 우수성에 대해 논하면서, 도대체 어디서 났는지 그 '김치'를 두 손가락
으로 주욱 찢어 자신의 입을 향해 뻗고 있었다. 이미 주변의 한국인들은 사진까지 찍고 난리가 났다. 그는
억지로 기쁜 표정을 지으며 먹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우, 우움"

겨우 입 안에 넣기는 했지만, 차마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길 재간이 없었다. 강렬한 향과 맵고 짠 맛, 무엇
보다 그 세균의 온상인 맨 손으로 주욱 찢어 입에 음식물을 넣어준 그 상황에 박스스타일 박사는 결국 그
김치를 삼키지 못하고 토했다.

"우, 우어억!"

대번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우-우- 하는 증오 어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무엇인가에 의해 뒷
통수를 강타당한 그는 바닥에 쓰러졌고, 사람들의 린치가 가해졌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는 사태였기에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으…"

하지만 그는 학자였다.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는 일이 있더라도, 학자로서의 소명은 다 하고 싶었다. 쉴새
없이 쏟아지는 주먹질과 발길질 속에서 그는 품 안에 넣어두었던 한장의 고지도를 꺼냈다. '환단고지도'
라는 이름의, 과거 한반도에 존재했던 나라들이 한반도 뿐만 아니라 중국 대륙 대부분에 걸쳐 존재했다는
내용의 역사왜곡 지도였다. 

최근 문제가 되는 한중일 영토분쟁에 앞서, 이런 류의 역사왜곡 자료가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이 결국 부메랑처럼 한국의 목을 조를 것이다, 라는 이번 강연의 주제 자료였다. 

그는 의식을 읽기 직전 품 안에서 그것을 꺼내는데 성공했고, 사람들은 린치를 멈추고 지도를 확인했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그제서야 사람들이 당황하며 자신을 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느꼈다.

그의 지도가 몇 년 후 '역사학습용 지도'로 사용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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