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만 이번 달부터 패션 커뮤니티 글루와 측의 후원이 끊겼다. 결국 이 기획은 두 달만에 쫑이 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기왕 멍석 잘 깔아놓았는데 하던 지랄은 마저 해야지, 하는 생각에 일단 이번
달부터는 내 돈으로 꾸역꾸역 잡지를 사가며 연재를 이어가기로 한다.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평균적으로 잡지는 빠르면 15일 내외, 늦어도 25일 내외에는 그 다음 월 호의 잡지가 나온다. (일본
잡지의 경우에는 아예 두 달 앞서 나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4월 2일에 4월 호 잡지 내용들을 분석
하는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특정 잡지의 열혈 독자나, 마케팅 관계자, 잡지 마니아 아닌 이상에는 4월에 4월 호 잡지를
본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잖는가. 그렇게 위안을 삼고 며칠 늦은 분석을 시작한다. 많은 양해
부탁드린다.
1. 에스콰이어 : 그저 그래요
'좋은 요리'란 무엇일까. 이런저런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결국 아무리 좋은 요리도 맛이 없으면 결코
그것이 '좋은 요리'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잡지 역시 마찬가지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재미라는 것은 어떻게 유발되나. 그렇다. 독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와,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소리를
잘 캐치해서 들려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민희식 편집장의 칼럼 '남자가 결혼을 두려워 하는 까닭(88p)'은 꽤 적절하다. 에스콰이
어의 주된 독자, 아니 대한민국 대부분의 남성잡지 독자들은 결국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의
청·중년들이다. '결혼 이후의 경제적 주도권'에 관한 이슈는 그들의 관심 또는 공감대에 가장 직접적
으로 닿아있는 이슈다. 게다가 그 이슈에 대해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내용'을 들려준다.
다만 같은 이슈로 196페이지부터 이어진 '결혼, 환상 그리고 거짓말'이라는 결혼에 관한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의 연작 칼럼들은 별로 흥이 나지 않는다.
'비계의 이해(161p)'는 색다른 각도에서 재미있는 소재다. '비계'라는 식재료에 대한 옛날 이야기
부터 맛과 현대적 의미에 대해서까지 잘 풀어나간 이 외부 칼럼은 새삼스럽게 '비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신기주 에디터의 칼럼 '도로 위의 노로' 기사는 사실 잡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신기주
에디터의 시사 칼럼들은 특이하게도 이런 내용들이 많다) 내부 고발자의 제보를 기반으로 한 고발
기사를 일반적인 패션·남성 잡지에서 보게 되다니!
패션쪽 기사들은 그저 그렇다. 간간히 흥미 있는 소재는 있지만 딱히 끌리는 내용은 아니고, 요즘
가장 핫한 배우 하정우와 함께 한 화보임에도 역시 별 매력이 없다.
2.맥심 : 무난해요
사유리를 표지 모델로 고른 초이스는 제법 괜찮았다. 결코 핫한 섹시 스타는 아니지만 그녀라면
'이번 달 맥심 재밌겠네' 라는 기대감을 실어주기에는 충분하니까.
요 근래의 맥심이 과거에 비해 모자란 부분을 확실하게 캐치할 수 있는 4월호였다. 그 모자란 부분은
바로 글빨이다. 기사 꼭지의 소재 초이스는 간만에 괜찮았던 4월 호였다. 소재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소재를 뒷받침 할 유머러스한 글빨이 확실히 딸리는 느낌이다. '라면사리 대체품 BEST4(28p)'이 그
대표적인 예다.
여친 가슴 키우는 법(35p), 떡튀순 삼국지(110p), 축구 평점, 믿씹니까?(88p) 등은 적절히 흥미로운
소재의 기사. 사유리 화보(114p)는 생각보다 그저 그랬지만 159p의 로렌자 조레르 화보는 아주 좋다.
3. GEEK : 나쁘진 않아요
청바지 소재 '데님'을 주제로 한 연작 기사들(30p~)은 제법 괜찮았다. 데님이라는 패션 소재를 중심
으로 역사, 뷰티, 스타일, 디테일, 운동, 스트리트 룩까지 잡지 절반에 걸쳐 훑어주는 과감한 기획은
창간 1주년 미만의 '젊은' 잡지만의 패기가 느껴진다.
외부 필진의 칼럼들로 구성된 'GEEK JOURNAL(129p)'은 이번 달에도 역시 당연히 볼만하다. 당장
화려한 필진을 직접 꾸릴 수 없다면 이런 식으로 검증된 외부 필진들로 쏠쏠한 컨텐츠를 채워넣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본다.
3,800원의 가격에 이 정도 컨텐츠라면 딱히 돈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 것 같다.
4. LUEL : 괜찮아요
남성잡지를 보며 독자가 경도되는 순간은 결국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우아하며 깊이
있는 내용의 정보를 고급스러우면서도 깔끔한 문체로 독자에게 쏟아낼 때이다.
루엘은 바로 이 부분에서 강점을 갖는 잡지인데, 이달의 루엘은 간만에 초심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
이다. GUIDE(108p), ENJOY(128p), STYLE&DETAILS(222p) 챕터 기사들은 전체적으로 초심자
에게 설명하듯 쉬우면서도 단단하게 텍스트를 뽑아냈다. 그 와중에서도 세탁 후 의상 수축에 관한
기사 '애들이 줄었어요(116p)'나 마트에서 싸게 살 수 있는 쓸만한 와인 추천 'S'MART' CHOICE
(122p)'처럼 흥미있는 기획도 제법 괜찮다.
사실 남성잡지를 오래 보다보면 주제는 결국 돌고 돈다. 예를 들어 수트의 예법이나 히스토리,
포르쉐의 역사 같은 것은 결국 잡지 독자라면 필연적으로 신물나도록 복습하게 되는 주제. 그렇
다면 결국 같은 주제라도 이번에는 얼마나 또 멋지게 풀어내야 하는가가 중요한데, 이번 달의
루엘은 지난 몇 달간의 부진을 꽤 걷어낸 느낌이다.
무엇보다 '패션지'로서 잡지 중반 이후의 내용들도 나름 알차다. '남성지'보다 '패션지'에 보다
무게추를 두는 독자라면 이번 달의 루엘은 괜찮은 선택이다.
5. GQ : 볼 게 없네요
해외의 유명 잡지를 그 모태로 두고 있는 잡지들은 아무래도 기사의 구성과 퀄리티 측면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 워드 단위로 수십 달러 이상의 원고료를 받는 비싼 몸값의 에디터들과 세계
전역에서 활동하는 해외 자매지들이 생산해내는 정보량은 '토종잡지'들이 따라잡기 어려운 데가
있으니까.
EDITION 코너(114p~)에서는 바로 그런 강점을 나름 잘 활용한 토막 기사들이 보인다. 하지만
아쉽게도 차라리 국내 에디터들이 작성한 기사들이 더 재미있다. (관심과 정서적 차이의 문제도
있겠지만) 364p의 호날두 화보 및 인터뷰 기사는 '호날두' 그 자체만으로 관심이 가지만 딱히 뭐
깊이 들어가는 기사는 아니다.
그보다…이번 달 GQ는 역시나 재미없다. 재미가 없다기보다 인상에 남는 기사가 없다. GQ는
그래도 다른 그 어느 잡지보다 스타급 에디터도 많고 각자 짬밥도 되는 에디터들도 많은 잡지다.
글빨이라는 측면에서는 떨어질 이유가 없다. 아무래도 '소재' 측면에서, 뭔가 흥미있는 꺼리를
캐치하는 능력에 다소 문제가 생긴게 아닌가 싶다.
요 몇 달간 연속해서 GQ가 재미가 없다. 나 개인의 취향이 변한 탓이라고 하기에는 주변의 반응
역시 GQ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듯 하다. 그래도 남성잡지 중에서는 가장 탄탄하고 가슴
깊이 응원하는 독자들이 많은 잡지 중 하나 아닌가. 조금 더 분발해주었으면 한다.
6. L'OFFICIEL HOMMES : 좋아요
남성잡지를 보다 가장 즐거운 순간 중의 하나를 꼽자면 '내 소비범위 내에서 시도가능한 흥미로운
돈지랄'을 발견했을 때가 아닐까. 'PERFECT SET OF TEETH(68p)'는 그런 점에서 재미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기능성 치약부터 각종 치아 관리 도구들에 대한 기사.
모나미153 볼펜이나 글록26 권총 등 심플담백한 미니멀리스트들에 대한 분석 'MINIMALIST 8
(112p)'도 흔한 기획이기는 하나 그 초이스가 나쁘지 않다. '남성 패션을 빛낸 100인(160p)'도
볼만한 기사.
185페이지 'Eating, Dringkin, Shopping and Walking' 기사도 괜찮다. 서울의 맛·멋집에 대한
정리기사인데, 그 초이스가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이미 익히 알려진 곳들 위주라(10꼬르소꼬모
서울, 마이 분, 뻐꾸기, 우래옥 등) 신선한 맛은 없지만 수묵화 풍으로 그린 지도와 깔끔한 편집
등 꽤 공이 들어갔음이 분명한 기사다.
"상남자가 뭔데?"(233p)부터 '숫자로 말해요(243p)'까지 다양한 피쳐 기사들도 볼만하다.
전체적으로, 평소보다 패션에 할애된 영역이나 비중이 좀 낮았지만 그 이외의 피쳐 기사들이
꽤 좋다. 만약 평소 딱히 챙겨보는 잡지가 없거나 이번 달에는 평소 사는 잡지 외에 한 권을 더
산다면 이 로피시엘 옴므 4월호를 추천한다.
7. LEON : 300페이지짜리 광고책
원래 남성·패션지들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레옹을 보다보면 확실히 다른 잡지보다 좀
더 광고가 노골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그것은 광고를 '광고'로서 확실히 분리하기 보다는
지면에 기사처럼 녹여내는 케이스가 더 많아서 그런 것 같은데…
이건 사실 양날의 칼이라서, 보통이라면 슥 훑고 지나갔을 광고지면을 시간을 들여 찬찬히 재미
있게 읽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슥슥 넘기다보니 어느새 잡지가 거의 끝나버리는 어이없는 불
상사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매우 아쉽게도, 이번 달의 레옹은 후자에 가깝다. 물론 정말 '광고'라고 치부해버리기엔
그 안에 들어갔을 에디터들의 노고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느껴지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별 다른
기획기사 하나 없는 잡지 한 권을 흘려버리듯 슥 읽어버리고 나면 황당함마저 느끼기 마련이다.
게다가 7,900원이라는, 다른 잡지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가격대라면 더더욱 말이다.
8. 아레나 옴므+ : 무난해요
적당한 가격대(6500원)에 항상 푸짐한 볼륨감을 자랑하는데다 부록까지 통크게 제공하는 잡지
아레나. 중간중간 짜투리 팜플렛도 몇 개나 들어있다. (다 광고지만) 아이폰5와 갤럭시S3용 라코
스테 휴대폰 스킨범퍼를 부록으로 주는데 별로 좋지는 않다.
과거 전성기(?)의 맥심에 실렸을 법한 흥미로운 짜투리 역사 기사 '8Trunk Stories(90p)'이 우선
눈길을 끈다. 루이비통 트렁크에 얽힌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라니.
요즘 사회 이슈가 될만한 건수들을 정리하는 코너 Agenda 04-13도 전반적으로 초이스가
괜찮다. 남성패션이 기대되는 개봉 대기 중의 영화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서적,
한반도 주변 국가 군사력 비교, 쉽게 와인 라벨 읽기(순수히 발음 위주로),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8인의 유년시절 비화 등, 볼만한 건수가 많다. (정말로 과거 구 맥심의 느낌이 나는
소재 초이스들 아닌가)
다만 에디터들의 '메인급' 기사는 별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손담비와 옥타곤걸 이수정
화보는 괜찮다. 특히 과감한 이수정의 노출 화보가 인상적이다.
항상 느끼는 건데, 아레나의 잡지 화면 구성과 편집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치 액자던 뭐던 벽면을 가득가득 채워야 속이 풀리던 우리네 부모님의 방 꾸미기 같은
올드한 취향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때때로 그 벽면을 가득 채운 장식품 하나하나에 정성이
느껴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살펴볼 맛이 날테고, 그게 이번 달 아레나의 재미다.
전체적으로 지난 달에 비해 볼거리가 나은 4월의 남성잡지들이다. 다음 달에는 더 좋은 기사로
가득가득 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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