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간만의 모임이었다.
남자 스타일박스(이하 스박), 여자 스타일박스(이하 여박), 게이 스타일박스(이하 게박)의 모임….
스박은 가장 먼저 도착해서 커피에 베이글까지 시켜먹고 있었다.
"어차피 곧 점심 먹을건데 꼭 빵까지 먹어야 돼?"
"어 왔어? 배고파서 그래. 나 어제 저녁도 굶었어"
다각다각 힐 소리를 내며 다가온 여박.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인사보다 먼저 스박을 향해 핀찬부터
날렸다. 하지만 대수롭잖게 어깨만 으쓱한 스박은 여전히 게걸스레 빵을 해치웠다. 그러자 남은 한
조각을 집어든 여박은 다시 그에게 물었다.
"X현이는 아직 안 왔어?"
게박을 찾는 여박의 질문에 스박은 "거의 다 왔대" 라며 기름기 묻은 손가락을 빨았다. 그리고 슬쩍
턱을 들어 저쪽에서 다가오는 게박을 향해 눈 인사를 했다.
"요즘 일이 좀 있었어"
스박과 여박 모두, 게박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 거의 한두달 동안 글도 안 쓰고,
연락도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질문을 적당히 수습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뭔가 일이 있었
나보다, 하면서 둘은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분위기가 살짝 싸해진 것을 느낀 게박은 스박을 향해 물었다.
"그보다 요즘 꽤 슬럼프인 것 같던데?"
그 말에 스박은 고개를 저었다.
"말도 마, 아주 요새 기를 쪽쪽 빨려. 요즘 내가 어느 정도냐면…혀가 막 굳어. 사람 발음이 이상하
다니까. 병원 가보니까 스트레스성 같대. 회사가 아주 사람을 말려죽여. 그런 판인데 글이라고 어디
나오겠어?"
게박은 거의 두 달을 쉬다시피 하는 중이고, 스박은 컨디션 난조, 그나마 여박만이 조금 분발하고
있는 판인데 애시당초 그녀는 다작을 하는 편이 아니다. 결국 스박이 컨디션 난조를 보이면 전체가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보다 요즘에는 주변에 꼬이는 남자들 없어? 언제까지 싱글로 놀거야. 진짜 주변에 딱히 누구
쓸만한 애 없으면 그냥 다시 스박이랑 사귀던가"
게박은 다시 이번에는 여박에게 난데없이 대뜸 연애에 관해 물었다. 가만있다 난데없는 소리를 들은
여박은 픽 웃었다.
"그러는 넌 뭐 연애하냐? 그리구 스박이는 안 돼. 얘 요즘에 아무래도 여자 만나고 다니는 거 같애"
여자 만나고 다니는 거 같다는 소리에 스박은 펄쩍 뛰며 "뭔 소리를 하는거야" 하며 반박했지만 어
차피 이 셋은 잘 안다. 이건 그저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는 스박과 여박이, 차마 대놓고 주변 연애
사정을 물을 용기는 없고 적당히 간접적으로 떠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그러는 넌 뭐 연애하냐?' 라는 소리를 들은 게박이 꽤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 사실 연애했었어. 근데 지난 주에 헤어졌어"
그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자주 가던 이반 바에 왠일로 연하의 귀요미가 나타났단다. 이제사
겨우 스물 넷 밖에 안 된 놈인데 귀엽기도 진짜 귀엽고 스타일 좋고 성격도 괜찮은 편이라 아무래도
대시가 수도 없이 쏟아졌다고. 무엇보다 그 귀요미가 심지어 '탑'이기까지 했더란다. '바텀'에 비해
압도적으로 그 수가 적은 탑의 입장인 이상 녀석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고.
그런 와중에 역시나 이빨 잘 털고 스타일 좋은 게박이 대시하자 녀석도 제벌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
였는데…그 둘을 질투한 다른 게이들이 게박에 대해 온갖 음해를 해대고 오해를 유발해대서 결국
게박도 귀요미도 마음에 상처를 입고 관두기로 했단다.
"…그쪽 세계도 징하구만. 어쩜 여자애들보다 더하니"
"원래 그래"
"어쨌거나 힘들었겠다"
"뭐 별로 힘들진 않았어. 두 달도 안 사귀었는데 뭐"
원래 마른 체형의 게박이 그러고보니 살도 더 빠진 느낌이다. 스박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여박
에게 물었다.
"우리 올해 만우절 이벤트 뭐해?"
그러자 게박은 유치하다는 듯 콧방귀를 뀐다.
"그런 거 하지 말자. 유치해"
하지만 여박은 픽 웃으며 "왜 어때서. 재밌잖아. 다들 은근히 서로 뭐할지 기대하잖아" 하고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스박이 "뭐 아이디어 있어?" 하고 묻자 여박은 "인증할까" 하고 운을 뗐다.
게박은 여전히 별로라는 퉁이지만, 스박은 "누가 인증해?" 하고 웃으며 물었다. 여박은 "내가 하지
뭐" 하며 조금 신이 난 표정.
별로 그다지 좋아보이는 만우절 이벤트는 아니지만, 모처럼 여박의 신난 표정을 보며 게박도 스박도
그저 훈훈하게 웃어줄 따름이다. 그리고 게박은 오늘도 스박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중에 잘 위로해줘"
남자 스타일박스(이하 스박), 여자 스타일박스(이하 여박), 게이 스타일박스(이하 게박)의 모임….
스박은 가장 먼저 도착해서 커피에 베이글까지 시켜먹고 있었다.
"어차피 곧 점심 먹을건데 꼭 빵까지 먹어야 돼?"
"어 왔어? 배고파서 그래. 나 어제 저녁도 굶었어"
다각다각 힐 소리를 내며 다가온 여박.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인사보다 먼저 스박을 향해 핀찬부터
날렸다. 하지만 대수롭잖게 어깨만 으쓱한 스박은 여전히 게걸스레 빵을 해치웠다. 그러자 남은 한
조각을 집어든 여박은 다시 그에게 물었다.
"X현이는 아직 안 왔어?"
게박을 찾는 여박의 질문에 스박은 "거의 다 왔대" 라며 기름기 묻은 손가락을 빨았다. 그리고 슬쩍
턱을 들어 저쪽에서 다가오는 게박을 향해 눈 인사를 했다.
"요즘 일이 좀 있었어"
스박과 여박 모두, 게박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 거의 한두달 동안 글도 안 쓰고,
연락도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질문을 적당히 수습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뭔가 일이 있었
나보다, 하면서 둘은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분위기가 살짝 싸해진 것을 느낀 게박은 스박을 향해 물었다.
"그보다 요즘 꽤 슬럼프인 것 같던데?"
그 말에 스박은 고개를 저었다.
"말도 마, 아주 요새 기를 쪽쪽 빨려. 요즘 내가 어느 정도냐면…혀가 막 굳어. 사람 발음이 이상하
다니까. 병원 가보니까 스트레스성 같대. 회사가 아주 사람을 말려죽여. 그런 판인데 글이라고 어디
나오겠어?"
게박은 거의 두 달을 쉬다시피 하는 중이고, 스박은 컨디션 난조, 그나마 여박만이 조금 분발하고
있는 판인데 애시당초 그녀는 다작을 하는 편이 아니다. 결국 스박이 컨디션 난조를 보이면 전체가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보다 요즘에는 주변에 꼬이는 남자들 없어? 언제까지 싱글로 놀거야. 진짜 주변에 딱히 누구
쓸만한 애 없으면 그냥 다시 스박이랑 사귀던가"
게박은 다시 이번에는 여박에게 난데없이 대뜸 연애에 관해 물었다. 가만있다 난데없는 소리를 들은
여박은 픽 웃었다.
"그러는 넌 뭐 연애하냐? 그리구 스박이는 안 돼. 얘 요즘에 아무래도 여자 만나고 다니는 거 같애"
여자 만나고 다니는 거 같다는 소리에 스박은 펄쩍 뛰며 "뭔 소리를 하는거야" 하며 반박했지만 어
차피 이 셋은 잘 안다. 이건 그저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는 스박과 여박이, 차마 대놓고 주변 연애
사정을 물을 용기는 없고 적당히 간접적으로 떠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그러는 넌 뭐 연애하냐?' 라는 소리를 들은 게박이 꽤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 사실 연애했었어. 근데 지난 주에 헤어졌어"
그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자주 가던 이반 바에 왠일로 연하의 귀요미가 나타났단다. 이제사
겨우 스물 넷 밖에 안 된 놈인데 귀엽기도 진짜 귀엽고 스타일 좋고 성격도 괜찮은 편이라 아무래도
대시가 수도 없이 쏟아졌다고. 무엇보다 그 귀요미가 심지어 '탑'이기까지 했더란다. '바텀'에 비해
압도적으로 그 수가 적은 탑의 입장인 이상 녀석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고.
그런 와중에 역시나 이빨 잘 털고 스타일 좋은 게박이 대시하자 녀석도 제벌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
였는데…그 둘을 질투한 다른 게이들이 게박에 대해 온갖 음해를 해대고 오해를 유발해대서 결국
게박도 귀요미도 마음에 상처를 입고 관두기로 했단다.
"…그쪽 세계도 징하구만. 어쩜 여자애들보다 더하니"
"원래 그래"
"어쨌거나 힘들었겠다"
"뭐 별로 힘들진 않았어. 두 달도 안 사귀었는데 뭐"
원래 마른 체형의 게박이 그러고보니 살도 더 빠진 느낌이다. 스박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여박
에게 물었다.
"우리 올해 만우절 이벤트 뭐해?"
그러자 게박은 유치하다는 듯 콧방귀를 뀐다.
"그런 거 하지 말자. 유치해"
하지만 여박은 픽 웃으며 "왜 어때서. 재밌잖아. 다들 은근히 서로 뭐할지 기대하잖아" 하고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스박이 "뭐 아이디어 있어?" 하고 묻자 여박은 "인증할까" 하고 운을 뗐다.
게박은 여전히 별로라는 퉁이지만, 스박은 "누가 인증해?" 하고 웃으며 물었다. 여박은 "내가 하지
뭐" 하며 조금 신이 난 표정.
별로 그다지 좋아보이는 만우절 이벤트는 아니지만, 모처럼 여박의 신난 표정을 보며 게박도 스박도
그저 훈훈하게 웃어줄 따름이다. 그리고 게박은 오늘도 스박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중에 잘 위로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