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첫 관계는 얼떨결에 이루어졌다. 어? 어? 어?! 하다가 우리는 모텔로 향했고, 처음 가는 모텔
이었음에도 그 '키꽂이'의 용도를 눈치로 대강 파악한 나는 카운터에서 받은 키를 그 키꽂이에 꽂았다.
"아, 저 키를 꽂아야 되는거야?"
"어"
그 질문으로 말미암아 그녀 역시도 모텔 입성이 처음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옷을 벗을 즈음에서야 난 깨달았다. 하필이면 오늘 입은 팬티가 낡은 점박이 팬티라는 사실을. 아침에
"엄마, 팬티 없어?" 라고 물었을 때 "어휴 빨래가 아주 하나도 안 말랐어. 대충 아무거나 입고 가" 라는
대답에 짜증내면서 장농 구석에서 꺼낸, 그 누렇게 바래고 심지어 엉덩이에 아주 작은 구멍까지 뚫려
있던 팬티 말이다.
'그래도 이거라도 있었으니 다행이다' 라고 안도했던 아침의 감정은 참 이기적이게도 '하필이면' 하는
안타까움과 좌절로 바뀌었다.
그런 점에서 모텔의 어두운 조명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조명을 있는대로 다 켜더라도 그 어두침침한
조명은, 사실 내 팬티에 빵꾸가 뚫려있던 누렇게 바래있던 그것이 티가 날 성 싶지는 않았다. 거기에
먼저 씻고, 샤워가운을 챙겨입음으로서 나는 그렇게 완전범죄(?)를 성공시켰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데이트 때마다 신경써서 팬티를 골랐다. 하지만 그래봐야 브랜드 팬티 하나 없던
나는 그저 엄마가 사온 시장표 만원에 다섯장 팬티 시리즈가 전부였고, 데이트 비용 대는 것조차 꽤
부담스러웠던 대입준비생에게 팬티는 사실 선결과제가 아니었다. 그저 '그나마' 좋은 팬티를 고르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물었다.
"저기…자기야, 내가 팬티 하나 사줄까?"
옷을 사준다는 거야 그러려니 하지만 난데없이 팬티라니.
"왜?"
그러자 그녀는 픽 웃으며 말했다.
"…그냥"
팬티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던 난 '오죽했으면 여친이 팬티 사줄까 하는 질문을 다 할까' 라는 생각에
곧바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날 입었던 팬티는 그래도 내 장농 속 팬티 중에서는
그나마 제일 무난하고 깔끔했던 팬티였다.
1선발 최고 에이스가 처참하게 무너진 셈이었다. 감독인 나로서는 당연히 다음 시즌을 위해, 선발
용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집에 돌아온 난 제일 먼저, 인터넷에서 브랜드 팬티를 검색했다. 당대에 가장 먹어주는 팬티
였던 캘빈 클라인 팬티나 돌체 앤 가바나 팬티 말이다. 나도 빤스 멋쟁이가 되련다. 하지만 명품이
괜히 명품이겠는가.
'씨발'
무슨 빤스 한 장이 그리 비싸단 말인가. 결국 난 '짝퉁'을 찾기 시작했다. 찾기는 쉬웠다. 같은 상품
인데 가격은 그 1/10 이고, 그 아랫 달린 댓글은 무수히 '이거 정품 맞나요??' 하는 내용들이었다.
물론 판매자는 가품이 아니라고 일일히 댓글을 달며 항변하고 있었지만,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알듯이 그 상품은 분명히 가품이었다.
며칠 후 도착한 그 팬티는…설령 가짜라고 해도 내가 가진 다른 그 어떤 팬티들보다 비싼 팬티였다.
그래, 메이저리거가 아니면 어떻단 말인가. 박철순은 더블A 리거였어도 프로야구 레전드가 되지
않았던가. 비록 니가 진퉁이 아니면 어떻단 말인가. 그래도 캘빈 클라인인데.
친구들 중에는, 그런 명품 빤쓰를 입은 날에는 일부러 빤스가 살짝 보이게 입는 놈들마저 있었지만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난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자신 있었다. 솔직히 명동 한복판
에서도 바지를 벗어제낄 수 있을 정도의 든든함은 있었다. 캘빈 클라인이니까.
하지만 난 그 날, 그녀에게 캘빈 클라인 팬티를 보여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카페로 나를 불러낸
그녀는 나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했다. 무척이나 당황했던 난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이냐고, 서운한게 있다면 앞으로 잘하겠다고 온갖 이야기를 다 해가며 붙잡았
지만 그녀의 이유는 분명했다.
"넌 나를 그냥 잠자리 상대로 밖에 생각 안 하는 것 같아"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항변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랬던 것 같다. 첫 섹스의 맛을 본 수컷이 그것에 미
치지 않는 경우도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애시당초 초짜의 실력이야 뻔할 뻔자요, 하필이면 그녀도
초짜였으니 그 '맛'을 잘 모를 그녀에게 초짜의 어설픈 오입질이 즐겁기만 했으랴.
찌질하게 매달렸지만 그녀는 이미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라며 그렇게 떠났다.
집 주변을 아무 이유도 없이 터덜터덜 몇 시간 동안이나 빙빙 허무하게 돌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씻기 위해 바지를 벗다가 문득 캘빈 클라인 팬티에 시선이 꽂혔다.
모든게 그냥 괜히 이 놈 때문인 것 같았다. 왜 맨날 그 후진 빤쓰들 입고 다녔던 날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가, 이 놈의 가짜 팬티를 입은 날 갑자기 이런 날벼락이 치냐는 말이다. 샤워를 하며
참 많이도 울었다. 괜히 그 놈의 팬티 때문인 것 같아서 그 날 이후 단 한번도 그 팬티는 입어 본
적이 없다.
암만 가짜래도 그래도 나름 비싼 팬티인데, 라는 마음에 버리지는 못 했지만. 나는 그 날 이후로
'가짜' 명품은 사 본 일이 없다. 안 사면 안 샀지 무조건 진품만을 샀다. 그래, 박철순이 더블 A
리거였지 가짜 야구선수는 아니었지 않나. 틀린 비유를 들었기에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래, 차
라리 준 명품을 사면 샀지 가품은 사지 않으련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문득 여자친구가 해외출장 때 매일 돌아가며 입으라고 선물한 캘빈 클라인 팬티 7장을 보며,
10년도 더 된 추억이 떠올랐다. 나의 슬픈 첫 '가짜' 캘빈 클라인의 기억 말이다.
이었음에도 그 '키꽂이'의 용도를 눈치로 대강 파악한 나는 카운터에서 받은 키를 그 키꽂이에 꽂았다.
"아, 저 키를 꽂아야 되는거야?"
"어"
그 질문으로 말미암아 그녀 역시도 모텔 입성이 처음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옷을 벗을 즈음에서야 난 깨달았다. 하필이면 오늘 입은 팬티가 낡은 점박이 팬티라는 사실을. 아침에
"엄마, 팬티 없어?" 라고 물었을 때 "어휴 빨래가 아주 하나도 안 말랐어. 대충 아무거나 입고 가" 라는
대답에 짜증내면서 장농 구석에서 꺼낸, 그 누렇게 바래고 심지어 엉덩이에 아주 작은 구멍까지 뚫려
있던 팬티 말이다.
'그래도 이거라도 있었으니 다행이다' 라고 안도했던 아침의 감정은 참 이기적이게도 '하필이면' 하는
안타까움과 좌절로 바뀌었다.
그런 점에서 모텔의 어두운 조명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조명을 있는대로 다 켜더라도 그 어두침침한
조명은, 사실 내 팬티에 빵꾸가 뚫려있던 누렇게 바래있던 그것이 티가 날 성 싶지는 않았다. 거기에
먼저 씻고, 샤워가운을 챙겨입음으로서 나는 그렇게 완전범죄(?)를 성공시켰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데이트 때마다 신경써서 팬티를 골랐다. 하지만 그래봐야 브랜드 팬티 하나 없던
나는 그저 엄마가 사온 시장표 만원에 다섯장 팬티 시리즈가 전부였고, 데이트 비용 대는 것조차 꽤
부담스러웠던 대입준비생에게 팬티는 사실 선결과제가 아니었다. 그저 '그나마' 좋은 팬티를 고르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물었다.
"저기…자기야, 내가 팬티 하나 사줄까?"
옷을 사준다는 거야 그러려니 하지만 난데없이 팬티라니.
"왜?"
그러자 그녀는 픽 웃으며 말했다.
"…그냥"
팬티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던 난 '오죽했으면 여친이 팬티 사줄까 하는 질문을 다 할까' 라는 생각에
곧바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날 입었던 팬티는 그래도 내 장농 속 팬티 중에서는
그나마 제일 무난하고 깔끔했던 팬티였다.
1선발 최고 에이스가 처참하게 무너진 셈이었다. 감독인 나로서는 당연히 다음 시즌을 위해, 선발
용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집에 돌아온 난 제일 먼저, 인터넷에서 브랜드 팬티를 검색했다. 당대에 가장 먹어주는 팬티
였던 캘빈 클라인 팬티나 돌체 앤 가바나 팬티 말이다. 나도 빤스 멋쟁이가 되련다. 하지만 명품이
괜히 명품이겠는가.
'씨발'
무슨 빤스 한 장이 그리 비싸단 말인가. 결국 난 '짝퉁'을 찾기 시작했다. 찾기는 쉬웠다. 같은 상품
인데 가격은 그 1/10 이고, 그 아랫 달린 댓글은 무수히 '이거 정품 맞나요??' 하는 내용들이었다.
물론 판매자는 가품이 아니라고 일일히 댓글을 달며 항변하고 있었지만,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알듯이 그 상품은 분명히 가품이었다.
며칠 후 도착한 그 팬티는…설령 가짜라고 해도 내가 가진 다른 그 어떤 팬티들보다 비싼 팬티였다.
그래, 메이저리거가 아니면 어떻단 말인가. 박철순은 더블A 리거였어도 프로야구 레전드가 되지
않았던가. 비록 니가 진퉁이 아니면 어떻단 말인가. 그래도 캘빈 클라인인데.
친구들 중에는, 그런 명품 빤쓰를 입은 날에는 일부러 빤스가 살짝 보이게 입는 놈들마저 있었지만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난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자신 있었다. 솔직히 명동 한복판
에서도 바지를 벗어제낄 수 있을 정도의 든든함은 있었다. 캘빈 클라인이니까.
하지만 난 그 날, 그녀에게 캘빈 클라인 팬티를 보여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카페로 나를 불러낸
그녀는 나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했다. 무척이나 당황했던 난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이냐고, 서운한게 있다면 앞으로 잘하겠다고 온갖 이야기를 다 해가며 붙잡았
지만 그녀의 이유는 분명했다.
"넌 나를 그냥 잠자리 상대로 밖에 생각 안 하는 것 같아"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항변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랬던 것 같다. 첫 섹스의 맛을 본 수컷이 그것에 미
치지 않는 경우도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애시당초 초짜의 실력이야 뻔할 뻔자요, 하필이면 그녀도
초짜였으니 그 '맛'을 잘 모를 그녀에게 초짜의 어설픈 오입질이 즐겁기만 했으랴.
찌질하게 매달렸지만 그녀는 이미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라며 그렇게 떠났다.
집 주변을 아무 이유도 없이 터덜터덜 몇 시간 동안이나 빙빙 허무하게 돌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씻기 위해 바지를 벗다가 문득 캘빈 클라인 팬티에 시선이 꽂혔다.
모든게 그냥 괜히 이 놈 때문인 것 같았다. 왜 맨날 그 후진 빤쓰들 입고 다녔던 날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가, 이 놈의 가짜 팬티를 입은 날 갑자기 이런 날벼락이 치냐는 말이다. 샤워를 하며
참 많이도 울었다. 괜히 그 놈의 팬티 때문인 것 같아서 그 날 이후 단 한번도 그 팬티는 입어 본
적이 없다.
암만 가짜래도 그래도 나름 비싼 팬티인데, 라는 마음에 버리지는 못 했지만. 나는 그 날 이후로
'가짜' 명품은 사 본 일이 없다. 안 사면 안 샀지 무조건 진품만을 샀다. 그래, 박철순이 더블 A
리거였지 가짜 야구선수는 아니었지 않나. 틀린 비유를 들었기에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래, 차
라리 준 명품을 사면 샀지 가품은 사지 않으련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문득 여자친구가 해외출장 때 매일 돌아가며 입으라고 선물한 캘빈 클라인 팬티 7장을 보며,
10년도 더 된 추억이 떠올랐다. 나의 슬픈 첫 '가짜' 캘빈 클라인의 기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