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이 3.5평 좁은 방 안에서 홀로 무력하게 인터넷을 하고, 딸딸이 치고, 햄버거 먹고,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잔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오늘로 정확히 이 사설 감옥에 끌려온 것이 3년하고 이틀째. 영화 올드보이를 보며 '실제로 저런 곳이
있고, 갇힌다면 정말 괴롭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씨발 내가 있는 곳이 그런 곳이다.
단지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갇혀있던 그 방은 참 아방가르드한 벽지가 인상 깊었는데 이 방은 그딴
거 개나 주고 그냥 도배 집 가면 있는 제일 싼 아이보리 종이벽지가 발라진 썰렁한 벽이라는 차이점이
있고, 인터넷이 되는 PC가 있으며(속도는 지랄같이 느리지만) 마지막으로 방에 창문이 없다는 정도가
다르다면 다른 차이라고나 할까. 화장실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침대 옆에 변기가 있다.
우습지만 이 변기는 변기이자 내 세면대이고 가습기이자 욕실이다. 가끔은 정수기 역할도 한다.
"저기…휴지가 다 떨어졌는데요…"
나를 가두고 있는 이 방의 문은 흔한 아파트 철문이지만 문이 반대로, 바깥 쪽에 잠금장치가 달려있다.
식사나 소모품들은 문 아래의 우윳구멍으로 제공된다. 그래서 아마 식사도 영화에서 흔히 보던 식판이
아닌 그냥 햄버거로 제공되는 것이겠지. 물은 하루에 한번 낡은 생수병에 담겨 제공되며-물 맛을 보아
하니 그냥 수돗물 틀어서 담은 것인데, 염소 냄새가 없는 것을 보아서는 아마 지하수가 아닐까 싶다-,
다 마신 생수병이나 이런저런 쓰레기는 다시 그 우윳구멍으로 내놓으면 된다.
휴지는 두루말이 휴지를 주는데, 당연히 달라고 무조건 주는 것은 아니다. 평균적으로 2주일에 한 롤
정도를 주는 것 같은데 딸딸이를 자주 치다보면 아무래도 모자랄 수 밖에 없다. 결국 딸을 칠 경우 그
냥 변기에 싸고, 그 변기물로 씻고, 물을 내리는 식으로 처리를 한다.
좁은 우윳구멍으로 아주 가끔 그 이외의 물건이 오갈 때도 있다. 이를테면 형광등처럼.
정말로 사정사정해서 받았다. 작년 여름, 나는 형광등 불이 나가고 난 이후로 거의 한달 반을 불 없이
살았다. 밤이 조금 길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방 안에는 창문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형광등이 없다는 사실은 곧 24시간이 밤이라는 뜻이다.
창문 없는 비좁은 방에서, 모니터 불빛 만으로 한달 반을 생활하다 보면 사람이 거의 반쯤 미친다. 난
그때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수면으로 때우고는, 그 잠자는 시간 동안 저용량으로 인코딩 된 영화를
다운 받아-그래봐야 거의 이틀을 꼬박 투입해야 50메가짜리 영화 한 편을 받을 수 있다- 보면서 겨우
이성의 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식사와 함께 새 형광등이 우윳구멍으로 들어오던 날, 난 울었다.
사람이 햇볕을 못 본다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이다. 당장 피부병 문제가 있고, 비타민D 였던가 그게
부족해지니까. 식사도 문제다. 햄버거라는 식품이 의외로 단백질, 탄수화물, 무기질까지 꽤 골고루
영양성분이 들어있는 식품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이래저래 부족한 영양소가 있을텐데…
그래서인지 일주일에 한 번씩 친절하게도 식사와 함께 알약을 세 알 준다. 비타민제 같기는 하지만
확실히 장담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혹시 이 약이 무슨 사람 병신 만드는 약이 아닐까 두려워서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인터넷
에서 약물 정보를 한참 찾아보니 두 알은 그냥 흔한 종합 비타민제라 지금은 꼬박꼬박 챙겨먹는다.
한 알은 아무리 뒤져도 정보가 없길래, 무언가 깨림칙해서 계속 안 먹고 변기에 흘려보냈다.
인터넷이 있는데 왜 갇혀있느냐, 하고 묻는데 내 말이 그 말이다. 일단 사람들이 내 처지 자체를
믿어주지 않는다. 그냥 흔한 올드보이 컨셉의 관심병 환자인 줄 안다. 흔한 인터넷의 개또라이들
처럼 말이다. -솔직히 요즘해서는 인터넷의 그 무수히 많은 또라이들 중에는 어쩌면 그 나름대로
'진실'인데 사람들이 정말로 안 믿어주고 있는 경우가 꽤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경찰청 홈페이지와 인권위, 심지어는 청와대 홈페이지에까지 글을 남겼지만 무시당하기 일쑤고,
그나마 진지하게 날아온 답변이
'귀하의 컴퓨터 IP는 해외 프록시 서버로, 위치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라는 성의없는 내용이 전부다. 씨팔, 위치 추적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겠지. 아마 내
컴퓨터 속도가 느린 이유도 바로 그 프록시 서버인지 뭔지 때문 아닐까 싶다.
게다가 더 최악의 케이스로 발전한 것은, 내가 매일 같이 좀 구해달라는 글을 여기저기 올렸더니
그 글이 몇몇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잠깐 됐었는데-혹시 '진짜' 어딘가 갇힌 사람의 글이 아니냐며-
사람들 사이의 결론이 '그냥 흔한 관심병 환자'로 내려지면서 그 이후로 더더욱 내 글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글이 되어버렸다.
한번 쓴 글을 복사 붙여넣기 해서 그런가, 싶어서 매번 다르게 새로 써서도 올려보았지만 더이상
내 글을 진지하게 읽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몇 번 받아본 행운의 편지를 진지하게 끝까지
읽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 이후로 사실은 하다하다 안되겠다 싶어서, 인터넷에서 사람들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욕하면서
신고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인터넷에서 몇몇 사람들에 대해 말도 안되는 쌍욕 등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저질렀지만 어이없게도 여지껏 아무런 대응이 없다.
'허허, 씨팔…'
그 사람들이 순해서 신고를 안 한 건지, 아니면 경찰들이 대충 일하는건지. 남들은 참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잘만 고소되더만.
처음에 궁금했던 것은 여기가 어딜까, 였다. 아무런 정보가 없었으니까 나름 머리를 굴려서 이 곳이
어디쯤인가 알아낼 방법에 대해서 무척 많은 시도를 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내가 정신을 차
렸을 때는 이미 이 방 안이었던데다, 이 방 안의 거의 모든 물건이 철저하게 상표 같은 것이 지워져
있었으니까.
올드보이마냥 추측의 근거로 햄버거를 떠올리기는 했지만, 솔직히 내 입 맛은 꽤나 둔한 편이라 아
마 밖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맛으로 어디 햄버거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군만두야
주방장 한 사람이 만드니까 맛이 어느 정도 일정하겠지만 햄버거야 그렇지 않지 않는가. 하기사 이
사설 감옥을 만든 새끼도 올드보이는 봤을 테니 나름 대비책을 세웠겠지.
그나마 유일한 추측이라면 그래도 이런 햄버거 체인이 외딴 곳에 있지는 않을테니까 이곳은 의외로
도심 인근이 아닐까 싶기는 한데, 매번 차갑게 식은 햄버거를 주는 것을 보아서는 솔직히 그것도 별
로 자신은 없다. 어디서 멀리 매일 오가는 길에 몇 개씩 사다놨다가 냉장고에 넣어두면 그만일테니.
그래도 뭐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나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는 사람-아마도 할머니로
추측되는-에게 항상 말 걸고, 울고, 하소연도 해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코 나에게 말 한번
거는 경우가 없었다. 심지어 내가 손목을 낚아채어 할퀴었을 때조차도.
'도대체 왜'
두번째로, 아니 사실 가장 나를 괴롭게 한 것은 '왜'라는 질문이었다. 도대체 누가 왜 나를 이 곳에
가두었는가.
올드보이에서의 최민식처럼 참 오래 전에, 기억도 못할 어떤 흐릿한 기억 때문에 누군가 나를 여기
가두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나에게 원한을 가진 누군가들이 나를 가두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도대체 이런 중범죄, 그리고 어쨌거나 분명 나를 이 곳에 가두는 비용으로 결코 적지 않은 돈이 지
불 될 텐데 누가 이런 짓을 한 것일까.
이 안에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최민식은 과거를 더듬는 반성의 일기를 썼지만, 난 그런 짓까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큰 죄를 저질렀다면 모르되 아니라면 이러한
납치 감금이라는 벌을 받아야 할 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여기까지가 약 2년 전까지의 이야기.
분노와 좌절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오히려 조금 적응이 되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어차피 여기에서 당장 빠져나갈 수 없다면 그나마 내가 이 안에 갇혀있는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몸 만들기? 그래서 쉐도우 복싱을 시작했다. 쉐도우 복싱이라고 해봐야 뭐
복싱을 배워본 적도 없는 만큼 그냥 혼자 서서 치고 박고 상상 속의 나와, 그리고 나를 이 곳에
가둔 그 정체 모를 누군가를 떠올리며 싸우는 것이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 것이라면 영어라도 공부해서, 만약에 바깥 세상에
다시 나가게 된다면, 뭐 영원히 이 곳에 갇히게 되더라도 영문 인터넷의 더 넓은 정보들을 얻으면
시간 때우기에라도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가 열심히 한 것은 따로 있다.
아무 것도 할 필요 없고, 정말이지 아무 것도 나에게 강요되지 않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뭔가
창조적 일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결국 나는 오랜 수감생활을 한 지식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들처럼 '글쓰기'를 시작했다.
stylebox라는 필명으로, 온라인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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