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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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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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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깊이 생각한 적조차 없다.

난 그저 그녀를, 윤 교수의 표현을 빌어 '지식 그루피'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열심히
하고 '난 좀 너희들과 달라' 하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정치에 관심 많고 열정 있고 주변에 아는 오빠들
많고 무엇보다 '지식인'에 대해 묘한 관심을 보이면서 좀 헤픈 아이.

교수 직함 달고 NGO 활동에까지 몸 담고 있는데다 언론에서 몇 번 이름 좀 비추는 소위 '지식인'이라
하면 걔들은 그냥 껌뻑 죽는다. 도대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좋단다.

"교수님~" 하고 애교 있는 목소리로 몸 비비 꼬는 그녀들에게, 밥 사주고 술 사주면 그걸로 그날 밤은
그렇게 띠동갑 어린 기집애로 보신 수면하는 것이다. 나같은 사람도 이 정도인데 정말로 잘나가는 유
명인들은 어떨까 생각해보니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왜 연예인들, 유명세를 얻은 지식인, 알만큼 아는
사람들이 종종 추한 모습 보여가면서까지 유명세에 집착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방송에까지 얼굴을 비춘 이후로 더 그런 '그루피'들이 늘었다. 팔자에 없는 여복이다.


난 좀 성적 취향이 유별나다. 흔히 말하는 '새디스트'다. (이쪽 용어로는 사실 다른 단어로 부르지만)
그 사실을 털어놓으면 당연히 처음에는 놀랜다. 하지만 대부분 곧 웃으면서 뜻밖이라고, 유연하게
받아주었다. 오히려 낮에는 여성 인권 운동가, 밤에는 여성의 지배자라는 말에 더 흥분된다고 했다.

뭐, 한 년은 모텔까지 같이 가놓고 돌아가 버렸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렇게 난 인생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잖는가. 사회적 명망, 안정된 가정, 금전적 여유,
성적 쾌락의 충족, 더 바랄 것도 없었다. 그게 딱 어제까지의 이야기.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이라도 한 듯, 오늘은 마누라도 처가에 간 데다 휴대폰 알람 없이도
나 혼자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밤새 배터리가 다 되어 꺼진 휴대폰에 전원을 연결하자 어이없게도 카톡
메세지가 70통이 넘게 와 있었다. 부재 중 전화도 15통. 뭔 일이라도 있었나. 확인해보자 하나같이 지금
트위터 좀 보라는 말 뿐.

뭔 소리인가 싶어서 접속해봤다. 찬찬히 읽어내리다가 난 털썩 바닥에 주저 앉았다.



"씨팔년!"

휴대폰을 집어 던졌지만 여전히 몸이 부르르 떨렸다. 무수히 많은 시나리오와 변명을 떠올렸다. 허나 
망할 년이 너무 적나라하게, 변명의 여지도 없이 스트레이트로 써내려갔다. 답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계정을 서둘러 만들어서 달래보았지만 아예 그 이야기마저 써버렸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전전긍긍하며 방에서 혼자 머리를 긁고 있노라니 참 빨리도 전화가 왔다. 윤 간사님이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윤영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의 한 5초를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

"말씀하시죠"

내가 어렵게 말을 꺼내자 그쪽도 말했다.

"사실입니까"

순간 이토록 잔인한 질문을 하는 그가 미웠지만, 차라리 이게 더 빨리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네"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짧은 한숨소리와 함께 "알겠습니다. 그럼 잘 마무리 지으시고, 조만간 사무실
한번 들르세요. 그럼 먼저 끊겠습니다" 라는 말이 들려왔다. 난 아무 말도 못했고, 전화가 끊어졌다.

난 침대에 털석 누웠다.

마누라가 아는 건 시간문제다. 난 이제 이혼을 당하겠지. 마누라가 이해해주더라도 처가에서 용납을
못할 테니까. 학교에서도 짤릴테고, NGO 활동도 이제 끝이겠지. 위자료 물어주고 나면 남는 재산도
얼마 없을텐데.

'이제 뭘해서 먹고 산다…'

살짝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들어온다. 허무한 가슴에 싸늘한 칼자국이 남는다.
의외로 머리는 가볍다. 뭔가 다 내려놓은 기분이다.

그리고 난 다시 손에 쥔 휴대폰을 들었다. 글을 남겼다. 다 맞노라고, 내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허허,
온 천하에 자신의 성적 취향이 드러났는데, 그것을 이토록 쿨하게 인정한 남자가 세상에 또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마누라한테는 뭐라고 말할까. 뭘 뭐라고 말하나.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고 싸대기 한 대 맞지 뭐. 생각
해보니 이것도 꽤 그럴 듯 하네. 그토록, 결혼하고 6년이 지나도록 끝끝내 '바닐라'로 남은 마누라…

그런 그녀에게 '남편이 변태라는 사실이 만방에 알려지는 수치 플레이'를 남은 평생 강요하게 만들었
으니 이보다 더 짜릿한 플레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하아'

살짝 열린 창 밖으로 구름 틈 사이의 햇살이 비치는 것은 하늘이 내 눈을 찌르기 위함인가, 아니면
그래도 살 길을 찾아보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그저 난 살짜기 눈을 감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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