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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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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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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많이 흐려서였을까. 서울에서 출발할 때보다 기분이 많이 다운되었다. 교외의 한가로움도 왠지
그저 을씨년스러움으로 느껴졌다.

"날씨가 갑자기 안 좋아지네"

운전 하던 오빠도 그렇게 느꼈던지 목소리 톤이 조금 낮아졌다. 쿵작쿵작 신나게 틀어놓던 음악도 껐다.

"근데 정말 사람 하나도 없다…"

무슨 유령도시 같았다. 싸이클 경기장에 역도 경기장, 심지어 익스트림 경기장까지 있는데 사람도 그렇고
차도 없었다.

"원래 지방도시들이 그래. 정부에서 지방균형발전이니 뭐니 하고 돈은 퍼주는데, 그래봤자 평균 연령이
환갑이 넘어가는 도시들인데 이런 종합 경기장 시설 같은거 있어봤자 전국체전 때나 한번 쓰고 땡이지.
다 돈 지랄이야. 이번에 우리 아버지 회사가 맡은 축구 경기장도 6만명짜리야. 아니 무슨 월드컵 준비해?
누가 와서 본다고…미친 놈들, 하여간 지방자치 한답시고 정치인들이 다들 자기 지역구 껀수 올리는데
환장했어. 다 그게 국민세금인데"

혀를 끌끌 차는 오빠의 말. 난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무슨 올림픽 촌에 온 것처럼 경기장은
웅장하게 몇 개나 들어서있지만, 주말임에도 이 주변에는 사람 하나 없다. 저어기 멀리 자전거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뿐이다. 길가의 차들도 과연 SUV 아니면 트럭들 뿐이다.

"딱 하나 좋다면 한적한거? 근데 이건 썰렁한거지 진짜"
"뭔가 무섭지 않아?"
"뭐가 무서워. 이렇게 뻥 뚫린 길 너무 좋다. 좀 밟아볼까"

하지만 오빠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피식하고 시동이 꺼졌다.

"어? 이거 왜 이래"

오빠는 다시 시동을 걸었지만 걸리지 않았다.

"아 씨…아 이거 왜 이래 또"

몇 번이고 다시 해봤지만 걸리지 않았다. 오빠는 "잠깐만"하고 차에서 내려 본네트를 열어보았지만 딱히
외형상의 문제는 잘 보이지 않는 듯 당혹스러운 얼굴로 허리에 손을 얹을 뿐이다.

"아 진짜…또 이거 아 씨…아 수입차가 좋기는 개뿔이…이 왠수덩어리 씹! 저번에 그러더니 또 이래"

다시 차로 들어온 오빠는 콘솔박스를 뒤져 차량 보험/메뉴얼 다이어리를 꺼내들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전화를 빨리 받지 않는 듯 한참 통화대기음을 기다리던 그의 눈가에서 난 미미한 짜증을 느꼈고,
그는 내 앞에서 욕하고 화 내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지 차에서 내려 저 앞으로 걸어갔다. 차 문이 닫기
고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후우"

그냥 이럴 줄 알았으면 서울에서 같이 모텔에서 뒹굴거리며 쉬기나 할 걸. 괜히 날씨 너무 좋다고 오빠
부추겨서 교외로 나왔다. 휴대폰을 열어 괜히 카톡을 뒤져보았지만 오늘따라 친구들도 다들 조용하다.
피곤했다. 그리고 조금 배도 고팠다. 그냥 집에 가서 다시 자고 싶다. 모처럼 이쁘게 꾸몄는데. 그냥 멍
하니 차창 밖만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피곤하다.

"아 짜증난다"

하마터면 깜빡 잠에 들 뻔한 순간, 다시 차에 탄 오빠의 첫 마디는 짜증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왜?"
"오는건 금방 오는데, 어차피 이거 견인해 가봤자 외제차라서 수리하려면 지정 센터 가야돼. 오늘 들어
간다고 오늘 수리 되는 것도 아닐테고. 아 진짜 내 다시는 프랑스 차 안 산다. 서울 올라가자마자 바로
차부터 바꾼다, 아 염병…"
"욕하지마"



금방 온다던 서비스 차량도 한참 후에야 왔다. 오빠는 출장 나온 서비스 직원한테 괜히 볼맨 소리로 몇
마디 하다가 여튼 좀 잘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며 차를 견인해 보내버리고는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냥 택시 잡아타고 가자"

하지만 이 동네에는 택시도 다니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다. 분명 버스 정거장도 있지만 15분이 넘게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뭐야…"
"지금 몇 시지?"
"6시 13분"
"근데 왜 이래 여기 분위기. 뭔 새벽 외진 곳 같네. 택시도 없고. 진짜 시골에선 차 없으면 못 산다니까"
"나 배고파"

배까지 고프다는 내 말에 오빠는 안되겠던지 나에게 말했다.

"콜택시 좀 불러봐"
"오빠가 하면 안 돼?"
"니가 좀 해 봐"

오빠는 버스정류장 옆의 표지판을 보며 버스 시간표와 행선지를 읽기 시작했다. 난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매만지다 다시 오빠한테 물었다.

"여기 지역번호가 몇 번이야?"
"아 그런 건 좀 니가 폰으로 인터넷 뒤지면 되잖아. 사사건건 내가 다하니"

짜증이 섞인 오빠의 말. 난데없는 그의 짜증에 나도 짜증이 났다.

"지금 짜증 부린거야?"
"아 좀! 야, 아…그래 나 지금 짜증났어. 좀 너라도 나를 도와줘. 일일히 내가 다 해야 돼? 택시 정도는
니가 부르면 되잖아"
"몰라서 물어본건데 왜 짜증을 피우냐구"
"나도 모르니까 너도 인터넷 뒤져서 보면 되잖아"
"그럼 모른다고 하면 되지 왜 짜증을 나한테 피우는건데. 차 고장난게 내 잘못이야?"
"내가 차 고장났다고 너한테 뭐라고 했냐?"
"근데 그럼 왜 나한테 짜증을 피우는건데"
"아 한 말 반복하게 하지마. 아 됐어 됐어 내가 할께. 내가 진짜 너한테 뭘 시키겠냐"

순간 너무 어이도 없고 짜증이 확 나서 소리를 확 지르려다가 그냥 등을 돌리고 성큼성큼 아무 곳으로나
걸어갔다. 기가 막혔다. 지 짜증나는걸 왜 나한테 푸는건데.

그러자 또 그가 뒤에서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

"아 혜영아, 미안해"
"됐어 이거 놔"
"아 미안하다고. 아, 내가 그래 순간적으로 짜증나서 미쳤나보다. 미안해"
"됐어, 놓으라구"
"아 혼자 어딜 가는건데. 힐도 그렇게 높은거 신고. 여기 택시도 안 다녀"
"그럼 혼자 노숙하지 뭐"

순간 노숙한다는 내 말이 너무 어이가 없었던지 오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분명 화가 났음에도 나
역시 그의 허탈한 웃음에 그만 표정관리를 못 하고 실소를 흘렸다. 멍청이처럼. 일단 둘 다 거기에서
짜증은 일단락 짓기로 했다.

"아 됐고, 저기나 가서 좀 쉬자"
"…어디?"

한번 봐주는 셈치고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전형적인 시골 여관 같은 5층 건물이 보였다. 

"다른데 없어? 빨간 벽돌만 봐도 후져보여"
"아 몰라, 이 동네에서 뭘 더 바라는데"
"그래두. 경기장도 있고 뭐 주변에 숙박시설 있을거 아냐"
"저어기 선수들 임시 기숙사 같은 거 하나 있고, 나머지는 여기서 좀 나가야 돼. 걸어서 가기 좀 멀어"
"여기 도대체 왜 이래? 미친거 아냐?"
"촌 동네가 다 그래"

한숨을 내쉬고 그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일단 그 전에 밥부터 먹자고 했다.

"근데 오빠, 우리 밥부터 먹자"
"저기서 콩나물 국밥이나 먹고 가자"
"후우, 진짜 짜증난다"



콩나물 국밥도 영 맛이 형편없었다. 지방 인심 같은 것은 어림도 없었고, 반찬 재활용하는 것이 뻔해
보이는 수북한 김치 접시에 그저 뜨겁기만 한 맨 짜고 맛없는 국밥이었다. 무뚝뚝하고 반찬 그릇도 
툭툭 던지듯 놓는 할머니의 손길도 짜증났다.

"카드 안 되는데"
"카드 안 돼요?"
"카드기 고장나서…"

요즘 세상에 무슨, 하고 생각하다가 오빠가 시비 걸린 김에 한바탕 할 거 같아서 그냥 얼른 오빠 대신
내가 현찰로 계산하고 가게를 나왔다. 

"뭐야 도대체. 요즘 세상에 카드 안 되는 데가 어딨어. 지방 사람들이 더한다니까"
"분명 고장났다는 것도 거짓말이야. 아마 끝까지 현찰 없다면 그제서야 카드기 해줄걸"
"신고해버리고 싶다"


하지만 짜증은 그 뿐이 아니었다. '영광장'이라고 쓰인 간판의 그 빨간 벽돌 여관급 모텔로 들어서자,
건물 입구에서 한 아저씨가 대걸레로 복도를 닦고 있었는데 노란 형광전구 불 아래로 시꺼먼 물이 뚝
뚝 떨어졌다. 

"어서오세요"

청소하는 아저씨를 지나 모텔 카운터 쪽으로 다가서자 카운터에서 한 남자가 고개를 쑥 내밀었다.
더벅머리에 퉁퉁 살찐 얼굴, 여드름에 돗수 높아 보이는 안경…한 20대 중반쯤? 여튼 꼭 덕후같은
그런 인상의 남자가 가타부타 없이 "5만원입니다" 하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카드 되죠?"
"네, 돼요"

오빠는 카드를 내밀었다. 받아든 카드를 보고는 흘낏 다시 오빠를 쳐다본 그.

"블랙카드네요?"
"아, 네"

정작 백화점에서조차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며 툴툴대던 오빠의 블랙카드. 이런 촌동네 와서야
처음으로 누군가 알아봐주다니 허탈한 노릇이었지만 그보다는 괜히 더 불안했다.

"돈 좀 있으신가봐요"
"어휴, 허허"

괜히 이런 데서 돈 자랑하면 위험할 거 같아서 난 오빠한테 힐끗 눈치로 뭐라고 했다. 문 앞에서 걸레
짜던 아저씨도 돈 소리에 슥 돌아본다. 오빠는 '내가 뭐 생각이나 했나, 습관적으로 저거 꺼낸거지' 하
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4층입니다. 아, 차 가져오셨어요?"
"아니요"
"차 안 가져오셨어요?"
"고장나서 견인보냈어요"
"왠일이래"

우리는 꼬질꼬질한 플라스틱 번호표가 달린 키를 건내받았다. 404호실이었다.



"암만 시골이래도 카드키도 아니고 열쇠는 진짜 너무했다"
"것도 그렇고 404호실이라니 뭔가 재수없어. 기분 나뻐"

방에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가득했다.

"어후"

오빠는 창부터 열고 환기를 했다. 방은 꽤나 오랫동안 안 쓴 느낌이었다. 난 뾰루퉁해져서 침대 옆 탁자
위를 손가락으로 슥 훑었다. 살짝 먼지가 묻어나왔다.

"정말 여기서 자야돼?"
"별 다른 수가 없잖아. 다 똑같애. 아니면 저어기 한참 걸어나가야 돼. 시내 모텔까지 가려면 차로도 한
7~8분 밟아야 돼"

현장 공사감독하느라 아버지 따라 종종 현장에 나왔던 그의 말이니 더이상 무어라 할 수도 없었다. 이미
힐 신었던 발은 물론이요 골반까지 뻐근하던 차니까.

"아 진짜 짜증난다"
"미안해. 대신에 서울 올라가면 잘해줄께"
"이게 뭐야 진짜"
"쏘리, 일단 씻기부터 하자"
"먼저 씻어"
"알았어"

오빠는 화장실로 씻으러 들어갔고, 난 오만상을 찌푸리며 방 안을 빙 돌아보았다. 문득 든 생각에 침대
이불도 마음 단단히 먹고 냄새를 한번 맡아보았지만 의외로 다행히 별 냄새는 없었다. 흔한 소독약 같은
모텔 이불 냄새도 없었다는게 좀 그랬지만 적어도 퀴퀴한 땀냄새만이라도 안 나는게 다행이었다.

조금 기분이 나아진 난 그제서야 잠바를 벗고 조심조심 TV를 켰다. 뉴스가 나오는 것을 보며 벌써 9시
인가 싶어 깜짝 놀랐지만 시계를 보니 8시. 아참, 뉴스 시간대 옮겼지….

괜히 우울해져서 려원이한테 카톡으로 [ 뭐해? ] 하고 카톡을 날렸지만 답장이 없다. 작게 한숨을 쉬며
빨리 서울가고 싶다, 하고 생각하던 차, 방 안의 전화기가 울렸다.

왠 전화? 하고 생각하다가 "오빠" 하고 남친을 불렀지만 물소리에 들리지 않는 듯 했고, 난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받았다.

"여보…세요?"

그러자 곧 아까 그 카운터 덕후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404호 손님이시죠? 혹시 맥주 필요하신가요? 3병에 오징어 하나 해서 2만원인데"
"필요없는데요…"
"그럼 담배는 안 필요하세요?"
"필요없어요…"

내 말에 입맛을 다시듯 "예에" 하고 먼저 전화기를 툭 끊는 그. 기분 나빴다. 아니, 기분이 나쁘기보다
좀 소름이 돋았다. 뭐야. 기분 나쁘게.

괜히 오싹해져서 문 쪽을 바라보았다. 방 안에는 그저 화장실에서 씻고 있는 남친의 물소리 뿐. 뭐가
그리 기분 좋은지 휘파람까지 부는 그였지만, 괜히 휘파람 소리마저 거슬렸다.

[ 카톡! ]

갑자기 울린 카톡 알림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하마터면 비명이라도 지를 뻔 했다. 놀라서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아까 내가 카톡을 보낸 려원이었다.

[ 뭐하긴;; 논문 준비 중이지. 진짜 죽겠다 그 임 교수 씨발년 죽이고 싶어;; 넌 뭐해? 남친이랑 즐거운
시간?? 여행 갔담서 나한테 왠 카톡? 둘이 싸웠냐?ㅋㅋㅋㅋ ]
 
석사논문 준비 때문에 맨날 주말도 반납하고 스트레스에 쩔어 사는 우리 불쌍한 려원이.

[ 아냐;;; 근데 오빠 차 고장나고 동네도 왠지 기분 나쁘고 날씨도 꾸리꾸리하고 다 짜증나 왠지 괜히
무서워 동네가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오빠한테 무섭다면서 찰싹 붙어라 그럼ㅋㅋ]
[ ㅋㅋㅋ ]
[ 아 부럽다 주말에 여행이나 다니구;; 난 뭐니ㅜㅜ 하루하루 논문에 쩔어;; 그니깐 배부른 소리 말고
 잘 놀다 와 이것아 ] 
[ ㅋㅋㅋ알았어 너두 수고해 ] 
[ 엉 ] 

하아. 려원이랑 카톡이라도 하니 조금 마음이 진정이 된다. 멍하니 보지도 않는 TV를 보고 있노라니
화장실 문을 빼꼼히 연 오빠가 "수건 좀" 하며 부탁한다. 타올을 가져다주자 곧 머리를 털고는 스윽
아랫도리를 수건으로 가리고 그가 나왔다.

헬스로 조각처럼 잘 다져진 몸매에 샤워 후에 올백으로 넘긴 머리가 또 너무나 샤프해보였다.

"왜? 오빠가 그렇게 멋있니?"
"됐거든?"
"여튼 너도 씻어. 다행히 뜨거운 물은 잘 나온다. 그래도 꼴에 여기 연수기까지 달아놨네"
"피"

곧이어 나 역시 화장실에서 씻고 나왔다. 중간에 천장에 거미를 보며 비명을 질렀지만 오빠는 별
대수롭지 않게 들어와 슥 휴지로 잡아 죽이고는 말했다.

"방에 거미 있는거 보니까 다른 벌레는 없겠네"

너무너무 싫었지만 그 말을 들으니까 또 조금은 안심이 됐다.



딱히 할 것도 없고 해서, 우리는 일찍 불을 끄고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내 브래
지어를 벗기고 가슴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당연히 필요없다고 했지, 뭘 뭐라고 그래"
"근데 그 말 들으니까 갑자기 맥주 땡기는데"
"됐어, 뭔 술이야. 그리고 왠지 기분 나빠, 여기. 꼭 술에 뭐 탔을 거만 같아"

오빠는 내 말에 또 너털웃음을 흘렸다.

"약 타서 뭐, 우리 둘 다 저승길이라도 보낼라구?"
"그게 아니라…그냥 몰라. 괜히 재수없어"
"그러지 마. 짜증나긴 해도, 그냥 서울처럼 맨날 사람들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씩 부딪히는 동네가
아니잖아. 원래 지방이 다 그래. 아주 친근하거나, 아니면 좀 무뚝뚝하거나. 아까 맥주 그것도 딱
나름대로 서비스한다고, 돈도 좀 벌고 뭐 그런 거지. 괜히 그러면 못 써"

가끔 이럴 때 보면 내 편을 안 들어줘서 조금 서운하면서도, 굉장히 어른스러움이 느껴져서 좋다.
얼굴은 꼭 내 동생처럼 동안이면서 생각하는건 너무너무 어른스럽다.

"알았어요 우리 자기님"

그의 품 안에 파고들며 꼭 안기노라니, 그의 심볼이 느껴졌다. 픽 웃으며 물었다.

"얘 혼자 왜 이래? 나 아직 아무 것도 안 했는데?"
"혜영아"

그의 입술이 내 귓가를 스치는 순간, 어이없게도 또 침대 옆 전화기가 울렸다. 화들짝 놀라면서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카운터에서 온 전화를 받아든 남친.

"네?"

가만히 뭐라고 말을 듣고 있던 남친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다가 "잠시만요" 하고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 라면 안 먹을래?"
"라면? 뭔 라면?"
"카운터인데, 자기들 야식 라면 끓일건데, 혹시 먹을 생각 있음 올려준다는데. 돈 안 받는대"

너무 기가 막히고 황당해서 나도 그만 웃어버렸다.

"대박이다 여기 진짜"

난 당연히 안 먹는다고 하려고 했지만 오빠는 뜻밖에 "난 먹고 싶은데. 아까 국밥 너무 맛없어서 반도
안 먹고 관뒀더니 좀 출출해" 하고 말했다. 붙임성 좋은 건 좋은데 이럴 때는 좀 그렇다.

"맘대로 해"

그러자 오빠는 "그럼요, 죄송한데 라면 두 개 끓여서 올려주시겠어요? 아, 저기 혹시 맥주도 있나요?
오케이, 그럼 돈은 드릴께요. 아이 아니죠, 드려야죠, 네에"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진짜로 먹을거야?"
"어"

너무나 천연스레 "어" 하고 대답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그래…"



다시 불과 TV를 켜고 좀 기다리자,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린 그 덕후 같이 생긴 카운터의 알바생인지
주인인지 주인 아들인지가 큰 쟁반에 라면에 맥주에 소주에 삶은 계란까지 해서 가져왔다.

"어후, 감사합니다. 맛있겠네요"
"아녜요, 방은 어떻게 좀, 쓸만한가요? 하도 손님이 없어서 사실 요새 청소도 제대로 못 했어요"
"깨끗한데요 뭐"
"예, 여튼 드세요" 

오빠는 얼른 벽에 걸어둔 코트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5만원짜리를 건내주었다. 남자는 괜찮다며
몇 번인가 손을 내저었지만 결국에는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럼 푹 쉬세요, 더이상 안 귀찮게 하겠습니다, 흐"

그는 힐끔 내 쪽을 바라보더니 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문을 닫고 오빠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먹자 먹자"
"뭘 5만원씩이나 줘"
"딱 보면 착이지. 아까 블랙카드 보고 돈 좀 있겠구나 싶으니까 들이대는거야. 그래도 장사하는
사람이 저 정도 깡다구는 있어야지, 장사 할 줄 아네"
"몰라, 싫어. 괜히 기분 나빠"
"얼른 불기 전에 먹자"
"자기 전에 라면 먹으면 안 되는데…"
"괜찮아. 놀러와서 먹는 라면은 살 안 쪄"

생각보다 라면은 맛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파에 고춧가루에 버섯에… 꽤나 정성들인 라면
이었다. 오빠는 그걸 보고 또 웃었다.

"봐라, 야 이건 진짜 정성의 서비스다. 진짜 대박이다"
"생긴건 오타꾸같이 생겨서 디게 정성들였네. 천천히 먹어, 체하지 말구"

가끔, 오빠를 보며 그의 '여유'에 부러움을 넘어 심술이 다 날 때가 있다. 시원시원한 웃음에 큰
일 아닌 다음에야 그냥 대충 크게크게 생각할 줄 아는 모습. 외모도 외모지만 그런게 좋다.

"얼른 먹어, 다 뿔겠다"


라면을 먹고 나니 노곤하게 잠이 왔다. 냄새나는 라면 그릇들을 대충 화장실 쪽에 치워놓았다.
양치질을 하고 세수도 좀 하고 다시 우리 둘은 누웠다. 다시 팬티 한장씩을 입은 속옷차림이 되어
침대 속에서 끌어안고 있노라니 좋았다.

"좋다"

오빠는 내 이마부터 머리까지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 여행은 좀 별로지만, 서울 올라가면 더 재밌게 놀자. 내일 눈 뜨자마자 바로 서울로 가자"
"응, 얼른 돌아가고 싶어. 괜히 여기는 가만 있어도 사람이 기 뺏기는 거 같아"

그 말에 오빠는 나를 더 한층 꼭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 난 허벅지로 다시 그의 성장한 심볼을 느꼈다.



"잘 쉬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서둘러 가십쇼"

아침에 눈을 뜨자 11시 25분이었다. 둘 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겨우 눈을 뜨고 씻고 나왔다. 카운터에
부탁해서 콜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카운터의 그 덕후남이랑 오빠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낄낄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텔 밖에 나와 팔짱을 낀 채 택시를 기다리던 나. 힐끔힐끔 어제의 그 대걸레 짜던 아저씨가 나를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난 살짝 치마를 내렸다.

이윽고 택시가 도착하자 오빠는 그에게 "다음에 또 올께요" 하고 인사하며 택시에 올랐다. 우리는 바로
"기차역으로 가주세요" 하고 말했다.



열차에 오르자 그제서야 난 왠지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는 오빠의 넓은 어깨에 기대었다.

"밤새 그렇게 자고 또 졸려?"
"나 밤에 제대로 못 잤단 말이야. 그냥 괜히 무서워서"
"뭐가 무서워. 좋은 사람이더만"
"그냥…그 사람이 아니라 이 동네 전체가 그냥 싫어. 다시는 안 올래"

오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앞으로는 좋은데만 다니자. 피곤하면 어깨 기대서 좀 한숨 자"
"응"

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천천히 열차가 움직이는게 느껴졌다. 난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빨리 서울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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