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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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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시대 고시원 5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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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하다. 그나마 탈탈 돌아가던 선풍기도 엊그제 고장나서 멈추었고 이 방 안은 찌는듯한 열기와
땀 쩐내, 부랄 쉰내와 지린내가 가득한 그야말로 생체 독성 실험장이나 다름없다. 우리 윗윗 층의 흥수
아자씨는 몇 날 며칠 째 나를 잊지 말아요를 연습해 제끼는데, 아니 세상에 대학가요제 나간다면서 왜
남의 노래만 줄창 불러제끼는지 이해를 못할 노릇이다. 그나마도 잘 부르면 말도 안 한다. 이건 당최
도레미솔라, 에서 그 이상만 가도 음이 벌써 꺾여 들어가는데 노래는 지미 무슨 깡다구로 부르겠다는
것인지 기도 안 찬다. 최성수에게 내가 다 미안해 질 지경이다.

하여간에 냄새와 소음과 더위가 어우러지니 세상에 땀과 악취가 두 배로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귀에선
며칠째 이명이 들린다.

"흐으, 아 더버라"

아무리 부채질 한들 진득하게 늘어붙는 메리야쓰와 쩔어버린 겨드랑이 털의 찝찝함은 어쩔 길이 없다.

푸드드드- 

엉덩이도 진득허니 땀이 누런 장판바닥에 눌어붙어 방구를 한 사구리 싸갈겨도 삼원각에 배달 오도바이
시동걸 듯 참 드럽게도 소리가 난다. 그래도 옆 방 부끄러울 것은 없다. 다들 그런 걸. 아이고, 염병 썩은
방구 쉰 내는 또 왜 이리도 구리나.

"어후 씨팔"

하기사 먹는 것은 뭐하나 제대로 된 것이 있나. 영양소라고는 죄 망할 놈의 삼양라면 하나 뿐인데 장이
썩어 문들어지지 않는 것이 더 신기할 정도. 맨 건강한 것만 먹어도 구린 것이 방구인데 그런 거나 쳐먹
었으니 똥방구가 안되면 그게 문제다. 공업용 기름을 써서 맨들었다는 말이 돌던데 정말로 그것이 참말
이라면 진짜 말 그대로 장이 썩는 것은 아닌가 또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걱정된다고 수단이 딱히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만. 하기사 내가 지금 뭘 먹는들 다 그거야말로 똥 만드는 재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 그걸 생각하면 씁쓸하다.

땀이 줄줄 흐르다 못해 이제는 식은 땀이 되어 등줄기를 흘러내리는 것이 아 또 이것은 왜 이리도 간질
간질한가. 손을 등 뒤로 뻗아다가 살살 긁는데 손톱에 땟줄기가 긁혀나온다. 참 내가 생각해도 드럽다.

내가 요로코롬 고시원 방구석에서 인간 두엄이 되어가는 것은 당최 내 혼자만의 뜻은 아니고 세상이 
하도 하수상하여 한 여름 이 좁은 돼지우리 안에서는 도저히 공부가 아니되어 밤낮으로 머리를 식히다
보니 언제부턴가 아예 책을 손에서 놓아버리게 된 것이 그 계기이니 이것이 어찌 나만의 잘못인가.

그리 생각하며 혼자 죄책감을 피해보지만 암만 해도 그건 변명거리도 안 되는거 역시 돌대가리 주제에
겉멋은 들어서 사람은 서울에서 살아야 한답시고 아부지 어머니 졸라 서울 올라가겠다며 때쓴 것이 참
큰 문제다. 그래도 시골 촌부들이니, 하나 있는 아들이 서울 가겠단 그 한 마디에 기대에 차 그럼 가서
뭘 할 거냐 묻노라니 실상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해봤기에 말문이 콱 맥혔지만서도 그때 떠오른 것이
용마루 집 큰 아들 대춘이 형이 설로 다가 공부를 하러 간 것이 생각이 딱 떠올랐지.

"서울 가 공부 해야지. 판검사 하게"

참, 세상에 생각해보면 그 푼푼한 시골 촌 학교서도 이십명 중 열 번째 안에 한번을 못 들어본 꼴통이
뭔 놈의 판검사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만 우리 늙은 부모님 귀에야 하겠다는 것이 이미 다 이뤄진
일이나 다름이 없다. 어차피 몇 년 째 기력이 딸려 놀려두고 있던 선산 너머 그 비탈 밭을 기동이 아저
씨한테 팔아다가 유학 자금을 마련해주신 아버지의 그 마음을 생각해보면 참말로 내가 호로자식이다
하고 욕을 한다만 호로자식이라는 욕을 내가 나한테 한다면 그거야말로 등신 짓이구나 생각하여 얼른
말을 바꿔볼라 치지만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

내 대구리 돌아가는 모양새가 이런 식이다. 여튼 떠벅이 촌놈이 처음으로 서울로 올라왔는데 생전에
전철 타는 법도 모르던 촌놈이니 뭔들 안 신기했겠는가. 일단 살 집부터 구할라고 발품을 파는데 허,
뭐가 이리도 비싸단 말인가. 

근데 참 나도 내가 생각해도 외동 티를 내는 것이, 암만 싸다 싸다 해도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할 집을
찾은 다음에 싼 집을 찾아야지 싸다고 사람이 못 살 집을 구할 수는 없다 하며 몇 번인가 퉁을 놓다
보니 이제는 복덕방 아저씨가 아예 "그 돈으로는 안 돼. 그러면 그냥 아예 고시원에 들어가" 하고
충고를 하는데 일단은 그러게 하겠노라 하며 자리 잡은 것이 이 집이다.

처음에는 여기서 어떻게 사나, 싶었다만 그래도 지은지 얼마 안 되는 고시원이라고 벽지는 깨끗하고
선풍기도 새 거에다 밥은 못 줘도 라면은 공짜로 준다는 말에 그럼 그걸로 오케바리다 하고 덜컥! 
계약을 하고 보니 가끔은 울컥울컥 하지만 또 고시원에 방 잡았다는 말에 그 시골 촌양반들은 정말로
내가 고시 공부를 하는가비다 하며 좋아라 한다. 

사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암만 해도 내가 시골에 있어봐야 아부지 따라 농꾼 밖에 더 되겄나 싶어
서울로 공부 핑계대고 도망친 것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정말로 다른 수재들 맨치로 육조전서을 공부
한다고 그게 답이 되나. 그건 농꾼 되는 것보다도 더 답이 없는 것임에는 다름없으니 그럼 난 이제
설 올라와 뭘 할까 생각을 해봤는데 처음에는 나도 정주영이 맨치로 사업이나 해봐야지 하고 생각해
봤지만 뭔 사업? 하고 누가 물으면 이건 진짜 뭐 들어본 것조차 없으니 아예 일절 할 말이 없다.

그럼 역시나 시골 촌부들이 또 대춘이 형네 찾아가서 시골에서 부쳐다 준 낡은 법전이 하나 뿐인데
역시나 이걸론 공부가 될 턱이 없다. 

게다가 답답한 마음에 라디오나 틀고 있노라면 세상 돌아가는 것이 이제는 냉전이 끝난다는 말이 
나오는 시기이니 지금이야말로 경천동지할 세상이 아닐까 하고 같이 라면 끓여먹는 영근이가 그 큰
콧구멍 벌렁거리며 날로 씨부리던 개소리가 그제사 이해가 될 듯 말 듯 하다. 

어쨌거나 천장으로는 슬슬 맛 들리다가 돈 없어서 때려치운 당구 다이가 펼쳐지고 다마가 왔다갔다
하는데 이러니 내가 무엇을 하겠나. 

그리고 사실 진짜로 뭐스러운, 서울와서 배운 참으로 찰진 욕 몇 가지가 있는데 샌님 샌님 해서 욕
한 마디 못 할 줄 몰랐으나 서울 사람들도 맛지게 할 줄 아는 욕 하나 그 뭐스럽다…참으로 남 앞서
하기 좀 뭐한 그 욕이 절로 떠오르는게 뭐냐면 옆 방에 주구줄창 찾아오는 현구 형님의 그 야시시한
여자친구 문제다.

이 고시원 방이라는게, 애시당초 뭐하나 온전하고 멀쩡한게 없지만 특히나 기가 차는게 벽이라 얇디
얇은 벽으로는 옆 방의 밸밸 소리가 다 들린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연필 깎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그런 판에 허구헌날 기집 불러다가 떡방아를 그렇게 찧어대니 주변 방 사람들이 어디 공부나 제대로
하겠는가. 나같으면 누가 듣는다는 생각에 민망하기라도 하겠는데 이 쌍쌍 커플은 증말 철판을 깔기
라도 했는지 아님 그것이 또 별미라고 생각하는 뭐스러운 년놈들인지 갈수록 소리 조절을 안 하니 
공부에 매이지 않은 내 정신마저 불끈불끈 하고야 만다.

누가 그 문제로 말을 하긴 한 것 같은데 당최 씨알이 안 먹힌다. 하여간에 다시 남 걱정 집어치우고
내 걱정을 좀 해보자면 지난 달부터 노인네들이 돈을 안 부친다. 그나마 돈 들어올 구녕 하나가 거
뿐인니 뭔가 일을 하던지 해야겠다 생각해봤는데 산골 출신임에도 험한 일 한번 안 해본 약골 맨재
기가 뭔 일을 하고 뭔 돈을 벌겠나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난다. 

그러던 차 고시원 허드렛 일 좀 도와주면 월세라도 깎아주겠다는 집주인 말에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아마 이번 달 넘어가면 이제는 미루는 것도 한계가 오지 싶다. 

"카아"

길게 한숨을 쉬다못해 오늘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어봤는데 입 한 번 연 적이 없는데 왠일인지 참
목구녕이 바짝 말라있다. 혼자 또 괜히 히죽히죽 웃어보는데 그것은 즐거워서 웃는 것은 아니고
이제 슬슬 내 짧은 서울 생활도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기술 없고 깡다구 없고 촌놈에 말 주변머리조차 없는 것이 남들 다 온다고 나
까지 서울 와봤자 뭐 딱히 나한테 주어지는 뭐가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뭐 서울서 내가 멋지게
놀아보기라도 했나.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젤로 한심한 놈이 나 같고, 그토록 한심하다 생각했던 그 촌부들 농사
짓는 것이 그래도 그건 가족을 멕여살리는 일이긴 하다 싶다. 다만 그 생각을 하노라면 왠지 내가
너무 무능한 것 같고 다시 시골에 내려간들 일이 손에 잡힐까 싶어 너무 쓸쓸해져 요즘 내가 삶에
낙이 없다. 참말로.

그 와중에 작게 틀어둔 라디오에서는 양수경의 '사랑은 창 밖의 빗물 같아요'가 흘러나온다.

그 누구 하나 노래에 맞춰 떠올릴 사람 하나, 아는 기집 하나 없지마는 왠일인지 그럼에도 이 노래
만 들으면 한없이 가슴이 아파져오는 것은 나한테도 그리운 첫 사랑이 있긴 있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노라니 어쩌면 내 첫 사랑은 사람이 아니라 서울인지도 모르겠다는 별 싱거운 생각이 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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