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설계

그는 짧막한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보여주었다. 한 남자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짧은 감동적인 애니메이션
이었다.

"이 작품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 주인공의 삶에서 잘못한 점이 있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보험회사 직원이 보여준, 한 남자의 삶이 담긴 그 애니메이션…그리 철저하지 못했던
노후설계, 만약의 불상사에 대처할 방법이 없어 열심히 한푼 두푼 모은 소중한 미래 자금을 결국 중간에
털어먹어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 등, 결국 '보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그렇지만'

애초에 일단 나는 보험을 들러 온 입장이다. 그것도 제 발로.

'보험 따위 필요없어'가 아니라 이미 '나 지금 보험 하나 들러왔습니다' 라는 사람에게 굳이 또 보험의 
필요성을 설명을 해봐야 의미 없는 이야기 아닌가. 몸도 별로 안 좋고, 퇴근 이후라 얼른 집에 갔으면,
하고 생각하던 차에 뻔한 이야기 들어봐야 의미없는데. 

"저기…"

나는 이런 뻔한 내용 말고, 보다 실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이를테면 무슨 무슨 상품이 있고
이 상품은 이런 보장에 좋고, 저 상품은 저런 것에 좋다 등등 하는.

"꼭 보험 뿐 아니라 연금이나 기타 저축형 상품 같은 것 중에서도 뭐 쓸만한 것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남자는 곧바로 "아 그러시군요" 하며 실무적인 이야기에 진입했다. 몇 가지의 상품을 늘어놓고, 그 중
한 가지를 추천했다.

"이 상품 어떻습니까"

대강 훑어보니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좀 자세한 설명을 원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앞에
있는 화이트 보드 옆에 서더니 물었다.

"고객님 이제 슬슬 결혼하실 나이 아니십니까?"
"음…결혼 생각은 없습니다"

별 생각없이 한 말인데 그의 말문이 막혔다.

"허허, 결혼…안 하실 생각이세요?"
"네"

그러자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결혼 자금, 그리고 결혼하시면 아이를 낳으실텐데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드는 비용이 약 6억입니다. 또
추후에 아이가 성장해서 시집장가를 가면 그때 또 본인의 노후자금이 자식들이 새 가정을 꾸리는데 어느
정도 소모됩니다. 그 부족 분들… 그런 비용들이 필요한데요…"

허허, 결혼을 안 하면 저 비용이 다 굳는단 말이지. 

"결혼 안 하는게 최고의 노후 대책이네요"

남자는 머쓱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웃었다. 어쨌든 보험은 들었다. 이제 나는 당장 죽어도
5천만원이라는 돈이 나온다. 마음이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