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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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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친구가 몰래 저에게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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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니 혜지보다 나를 더 먼저 알았으면 어땠을까"

무슨 뜻인지 모를 리가 없죠. 독이 든 성배나 다름없는 그녀의 말. 압니다. 아무리 비밀로 하자고 해도,
만약 그 성배의 포도주를 마시면 결국 그 포도주는 독이 되어 언젠가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 것이 분명
합니다.
  
아마도 몇 주일 후쯤 "혜지야, 미안한데. 나 니 남친이랑 잤어" 라는 폭탄 선언을 할게 분명하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나랑 사귈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망할 것. 참 기집애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이해를. 꼭 그런단 말입니다. 어쨌거나 거기까지 내 이성은 분명히 경고를 남겼어요. 남겼
단 말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지금 자야돼', 혹은 '그만 마시자, 내일 생각해야지' 라거나, '다이
어트 한다며? 그만 먹자' 또는 '귀찮아도 가자, 너 그러면 뭐하러 헬스 끊었어'하고 이성이 분명 경고했
지만 듣지 않았던 기억, 있지 않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또 이렇게 말해버렸습니다.

"그럼 이따가…혜지 돌려보내고, 다시 또 만날까"

제 심장은 요동쳤습니다. 무슨 말을 한거야 도대체. 금요일, 아니 이제 토요일, 그 새벽 2시에, 여자
친구의 친구와 만나서 뭘 할건데? 어?

하지만 독배는 저 혼자만 마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알았어"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윤정이는 곧 화장실에서 돌아온 혜지와 다시 정답게 대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어쩌면 여자라는 동물은 저토록 연기에 능숙할까요. 무섭기까지 합니다.

어쨌든 저는 혜지에게 말했습니다.

"여튼 집에 가자. 바래다줄께. 졸립다, 들어가자"

혜지는 조금 아쉬운 눈치지만 별 군말 없이 "그래" 하고 제 말을 따릅니다. 혜지가 제 손을 잡는 그
순간, 저는 윤정이와 눈빛을 주고 받았습니다.

오늘 밤은 아마도 즐거우면서도 미안한 밤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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