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장
갈아야지 갈아야지 하면서도 벌써 몇 주가 넘게 안 갈고 있는 침침한 형광등 아래 오늘도 미스 장은
혼자 늦게까지 남아 미싱을 돌린다.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던 노실장은 다가가 물었다.
"오늘 끝나고 뭐해?"
밤 11시 40분에 끝나봐야 뭘 뭐하긴 뭐하겠냐만 그의 질문에 미스 장은 살짝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
했다.
"그냥, 집에 가서 자야죠 뭐"
그러자 노실장은 그런 미스 장의 어깨를 주무르며 다시 묻는다.
"미스 장은 남자친구 없어?"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린 실장님의 손길에서 문득 '남자'를 느낀 그녀는 조금 소름이 돋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 대답한다.
"없어요. 맨날 늦게 끝나는데 사귈 시간이 어딨어요"
그녀는 이유없이 심장이 쿵쿵 뛰고, 괜히 오늘 속옷을 맞춰입고 왔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랑 잔지
도대체 얼마나 됐지? 석달? 넉달? 어머, 나 지금 무슨 생각하는거야, 하고 화들짝 놀라는 그녀. 놀라
면서도 머릿 속으로는 작년 9월에 해선이 생일 때 클럽에서 만난 그 꽃돌이가 마지막이니 어머 벌써
몇 달을 굶은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노실장은 언제나처럼 리드미컬한 솜씨로 어깨를 주무른다. 그동안 수십 명의 여직원을 녹여버린 그
전설의 안마다. 시다 시절 미싱 가르쳐주신 68세 조간난 여사 수발을 들며, 어깨 너머로 미싱 배우던
시절에 반 강제로 함께 배운 안마 기술이다. 억척스레 혼자 오남매 길러낸 양반답게 잡기도 많았지.
'그때 그 시절에는 참 그렇게 미싱 배웠는데'
하고 감회를 떠올리며 노실장은 더욱 안마에 열을 올린다. 미스 장은 어느새 미싱에서 손을 떼고 그저
살짝 몸을 앞으로 숙인 채 거친 숨만 쌕쌕 내쉰다.
"미스 장"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고 여전히 거친 숨만 몰아쉰다. 이윽고 노실장의 손길이 어깨에서 가슴
쪽으로 뻗어나가자 미스 장은 그제서야 작게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한다.
"실장님, 아무한테도 말씀하시면 안 되요…"
노실장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귓속말로 대답한다.
"당연하지…"
노실장은 옆 테이블 위에 가득 쌓인 옷감들을 격한 손길로 치워내고 미스 장을 그 위로 눕혔다. 미스
장의 발갛게 달아오른 그 얼굴이, 노실장을 새삼 흥분시켰다.
발각
서른 한살 먹은 기집애가 길거리에서 서럽게 울면, 그 앞에 서있는 남자는 한 순간에 개새끼가 된다.
"아니, 일단 오해야 내 말 들어봐"
물론 오해는 아니다. 오늘 점심에, 미스 장이 미스 도, 미스 최랑 점심 먹다가 '그' 이야기가 나왔단다.
허허, 아무래도 미스 장은 간밤의 일을 단단히 오해를 했던 모양이다.
요 며칠 함께 야근한 것을, 무슨 내가 자기를 흠모해서 옆에서 지켜보느라 그런 것으로 생각했고, 그
래서 집에 가는 길에 혼자 온갖 김치국을 다 퍼마셨던 모양이다. 배도 부르겄다. 참.
하지만 오늘 점심 시간, 각각 스물 네살, 스물 여섯살 먹은 막내 시다 미스 도, 미스 최가 입방정을
"우리 노실장님 진짜 그것도 미싱처럼 하시잖아요. 드르르르륵 1초에 6번 왕복!" 하면서 까르르 떠느라
그동안 내가 우리 회사 여직원들을 죄 건드린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도 나 보자마자 귀싸대기 안
때린 것만 봐도 우리 미스 장은 확실히 침착하다.
"전 그것도 모르고…"
어쩐지 진짜 열심히 거시기 해주더라. 한 다음에도 입으로 거시기 해주는 거에 감동까지 했는데 지 딴
에는 딴 생각을 했던 모양. 에효, 월급 65만원 노처녀가 할 법도 한 생각이니 내가 개새끼지. 요즘 같은
신녀성이 활개치는 시대에 나이 서른 하나가 무슨 노처녀냐 하는 모단한 사람도 있겠지마는, 그런 건
화이트 칼라 커리어우먼 이야기고 이 바닥에서 서른 하나면 노처녀 충분히 맞다.
"아니야 미스 장, 내가 걔들이랑 논건 맞는데, 그건 그냥 스쳐가는 바람이고, 미스 장은…항상 때 되면
불고, 없는 듯 하다가도 있는 그런 앞마당 산들바람이지. 그만큼, 나한테 미스 장은 소중한 사람이란
이야기야"
산들바람이 지미 불고 지나가면 그만이지 그게 무슨 항시 있는 바람이냐. 무슨 계절풍도 아니고.
하지만 눈치 없고 머리 나빠 8년이나 시다한 미스 장이 뭔 말인지 알아듣기나 하겠나.
"정말이요? 정말 저는 실장님의 산들바람이에요?"
"그럼"
나는 얼른 눈물을 닦아주고는 그녀와 함께 회사 옆 추억의 바닐라 모텔로 향한다. 나의 지난 7년
춘정이 다 이 모텔 안에 있다. 어쨌거나, 뭐 나중에 꽤 귀찮아 지겠지만 어디 한두번 겪는 일인가.
어쨌든 당분간 거시기 걱정은 없겠다. 그거면 되었다.
갈아야지 갈아야지 하면서도 벌써 몇 주가 넘게 안 갈고 있는 침침한 형광등 아래 오늘도 미스 장은
혼자 늦게까지 남아 미싱을 돌린다.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던 노실장은 다가가 물었다.
"오늘 끝나고 뭐해?"
밤 11시 40분에 끝나봐야 뭘 뭐하긴 뭐하겠냐만 그의 질문에 미스 장은 살짝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
했다.
"그냥, 집에 가서 자야죠 뭐"
그러자 노실장은 그런 미스 장의 어깨를 주무르며 다시 묻는다.
"미스 장은 남자친구 없어?"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린 실장님의 손길에서 문득 '남자'를 느낀 그녀는 조금 소름이 돋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 대답한다.
"없어요. 맨날 늦게 끝나는데 사귈 시간이 어딨어요"
그녀는 이유없이 심장이 쿵쿵 뛰고, 괜히 오늘 속옷을 맞춰입고 왔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랑 잔지
도대체 얼마나 됐지? 석달? 넉달? 어머, 나 지금 무슨 생각하는거야, 하고 화들짝 놀라는 그녀. 놀라
면서도 머릿 속으로는 작년 9월에 해선이 생일 때 클럽에서 만난 그 꽃돌이가 마지막이니 어머 벌써
몇 달을 굶은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노실장은 언제나처럼 리드미컬한 솜씨로 어깨를 주무른다. 그동안 수십 명의 여직원을 녹여버린 그
전설의 안마다. 시다 시절 미싱 가르쳐주신 68세 조간난 여사 수발을 들며, 어깨 너머로 미싱 배우던
시절에 반 강제로 함께 배운 안마 기술이다. 억척스레 혼자 오남매 길러낸 양반답게 잡기도 많았지.
'그때 그 시절에는 참 그렇게 미싱 배웠는데'
하고 감회를 떠올리며 노실장은 더욱 안마에 열을 올린다. 미스 장은 어느새 미싱에서 손을 떼고 그저
살짝 몸을 앞으로 숙인 채 거친 숨만 쌕쌕 내쉰다.
"미스 장"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고 여전히 거친 숨만 몰아쉰다. 이윽고 노실장의 손길이 어깨에서 가슴
쪽으로 뻗어나가자 미스 장은 그제서야 작게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한다.
"실장님, 아무한테도 말씀하시면 안 되요…"
노실장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귓속말로 대답한다.
"당연하지…"
노실장은 옆 테이블 위에 가득 쌓인 옷감들을 격한 손길로 치워내고 미스 장을 그 위로 눕혔다. 미스
장의 발갛게 달아오른 그 얼굴이, 노실장을 새삼 흥분시켰다.
발각
서른 한살 먹은 기집애가 길거리에서 서럽게 울면, 그 앞에 서있는 남자는 한 순간에 개새끼가 된다.
"아니, 일단 오해야 내 말 들어봐"
물론 오해는 아니다. 오늘 점심에, 미스 장이 미스 도, 미스 최랑 점심 먹다가 '그' 이야기가 나왔단다.
허허, 아무래도 미스 장은 간밤의 일을 단단히 오해를 했던 모양이다.
요 며칠 함께 야근한 것을, 무슨 내가 자기를 흠모해서 옆에서 지켜보느라 그런 것으로 생각했고, 그
래서 집에 가는 길에 혼자 온갖 김치국을 다 퍼마셨던 모양이다. 배도 부르겄다. 참.
하지만 오늘 점심 시간, 각각 스물 네살, 스물 여섯살 먹은 막내 시다 미스 도, 미스 최가 입방정을
"우리 노실장님 진짜 그것도 미싱처럼 하시잖아요. 드르르르륵 1초에 6번 왕복!" 하면서 까르르 떠느라
그동안 내가 우리 회사 여직원들을 죄 건드린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도 나 보자마자 귀싸대기 안
때린 것만 봐도 우리 미스 장은 확실히 침착하다.
"전 그것도 모르고…"
어쩐지 진짜 열심히 거시기 해주더라. 한 다음에도 입으로 거시기 해주는 거에 감동까지 했는데 지 딴
에는 딴 생각을 했던 모양. 에효, 월급 65만원 노처녀가 할 법도 한 생각이니 내가 개새끼지. 요즘 같은
신녀성이 활개치는 시대에 나이 서른 하나가 무슨 노처녀냐 하는 모단한 사람도 있겠지마는, 그런 건
화이트 칼라 커리어우먼 이야기고 이 바닥에서 서른 하나면 노처녀 충분히 맞다.
"아니야 미스 장, 내가 걔들이랑 논건 맞는데, 그건 그냥 스쳐가는 바람이고, 미스 장은…항상 때 되면
불고, 없는 듯 하다가도 있는 그런 앞마당 산들바람이지. 그만큼, 나한테 미스 장은 소중한 사람이란
이야기야"
산들바람이 지미 불고 지나가면 그만이지 그게 무슨 항시 있는 바람이냐. 무슨 계절풍도 아니고.
하지만 눈치 없고 머리 나빠 8년이나 시다한 미스 장이 뭔 말인지 알아듣기나 하겠나.
"정말이요? 정말 저는 실장님의 산들바람이에요?"
"그럼"
나는 얼른 눈물을 닦아주고는 그녀와 함께 회사 옆 추억의 바닐라 모텔로 향한다. 나의 지난 7년
춘정이 다 이 모텔 안에 있다. 어쨌거나, 뭐 나중에 꽤 귀찮아 지겠지만 어디 한두번 겪는 일인가.
어쨌든 당분간 거시기 걱정은 없겠다. 그거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