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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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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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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도 아무 남자나 좀 만나요"
"어떻게 아무 남자나 만나"
"어휴, 언니 도대체 왜 이렇게 멀쩡한 남자들이 없죠?"
"그러게"
"모르겠다. 하, 알았어요 언니, 푹 쉬고 주말에 봐요"
"어"

전화를 끊었다. 다시 또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것 같아 외로움이 몰려온다. 다들 그렇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과거에 알던 그녀들은 그렇지 않았다. 다들 당당했고 똑똑했다. 물론 승희야 워낙에 천상여자 같은 면이
있고, 윤미도 겉으로나 드세지 속으로는 맨날 남자들한테 데이기나 하는 헛똑똑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개성
넘치고 자신있던 애들이…

서른, 아니 정확히는 서른 둘을 넘기면서 다들 변하기 시작했다.

태경이는 허구한 날 남자타령하며 문어발식 소개팅으로 바쁘고, 은정이는 노처녀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툭하면 짜증을 피우는 성격이 되었다. 어찌나 까탈스러워졌는지 같이 노는게 부담스럽다. 윤미는 새로 사귄
35살 남친 때문에 아예 연락조차 잘 하지 않을 정도로 뜸해졌고, 그나마 어린 승희가 좀 증상이 덜하긴 해도
그녀 역시 "그냥 결혼이나 했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물론 그녀들의 마음 역시 나와 다를 바 없겠지.

여자 나이 서른을 두세해 더 넘기자 이젠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슬슬 초조함을 넘어서 불안에 가까운
지경에 이르고, 본인도 처음에야 느긋하게 생각하지만 어느새 주변의 친구며 아는 언니며 동생이며 죄다
시집을 가버리니 이제는 주말에 전화해서 놀자고 할 사람마저 하나둘씩 사라져버리니 남은 것은 비슷한
처지의 서른 대여섯 노처녀 언니들 뿐.

그렇다고 아무 남자나 사귈 수 있나. 세상물정 알거 다 아니, 이런 타입 남자 만나면 이런 스타일의 짜증이
날게 뻔히 보이고, 저런 타입 남자 만나면 저런 스타일의 미래를 살게 되겠지 하는 것이 머릿 속에 저절로
그려지는데. 그러니 고르는데 신중해 질 수 밖에 없고 또 주변에 시집 간 년들 생각해보면 최소한 어느 정도
수준은 맞춰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디 세상에 '멀쩡하고 듬직한 남자'가 많은가? 뭐 하나씩은 부족해도 크게 부족한 놈들이 태반이고
적당히 포기하고 '그래 이건 내가 접어주자' 하고 생각하고 다시 쳐다보면 또 다른 뭐 하나가 빠지는게 현실.

결국 마음 접고 돌아서니 커지는건 불안이요 나오는건 한숨이라.

1월이 4월 되고 4월에 8월 되니 어느새 반년, 하고 생각하며 눈 한번 깜박하니 겨울이라. '내년에는 기필코'
생각하고 다짐한게 어느것 5년차.

어쩌다 가끔 시집간 애들 얘기 들어보면 결코 시집 이후 생활도 만만한 것은 아니구나 생각이 들지만은
암만 그래도 지금 내 처지보다는 낫겠지, 싶기도 하다.

아침이면 피곤에 쩔어 비몽사몽 출근준비하고 겨우겨우 시간 맞춰 출근하니 쌓여있는 일더미에 정신없이
지쳐 일하다가 점심에 커피 한잔 마시고 일에 지쳐 쓰러질 때 쯤 퇴근해서 집으로 홀로 돌아가는 길, 이유
없는 한숨이 연신 터져나오고 집에 돌아와 불꺼진 방에 보일러 올리며 코트 벗노라니 눈물이 흐른다.

시집이고 나발이고 그냥 어디 훨훨 훌쩍 여행이나 떠나고 싶고, 별이며 뭐며 다 따다준다던 구 남친 새끼
들은 다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그저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 놈들만 아니었더라면 다른 남자 만나서 지금은
내가 훨씬 더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결혼이야 둘째치고 연애도 문제인데, 이 나이 맞춰서 주변에서 소개 들어오는 남자들은 정말이지 하나같이
답 없는 남자들이 태반이다. 가까운데서 찾아볼까 싶어 주변을 슥 돌아보면…

암만 외모를 안 본다고 해도 이건 정말이지 해도해도 너무한 놈들이 반, 가끔 말하는 거나 생각하는거 보면
얘도 정상은 아니다 싶은 애들이 또 나머지의 반, 얘는 어떨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얘하고 평생
살 생각하면 그것도 속 터질 일 같아서 아웃. 어쩌면 이렇게 세상에 찌질이들과 싸이코들이 넘쳐나나 하고
생각하며 거울을 보는데 어느새 하나둘씩 늘어나는 눈가 주름과 깊어진 팔자 주름, 탄력없는 피부톤에 버럭
겁부터 난다.

'이러다 평생 나 혼자 사는건 아닌가'

설마 그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얼른 스스로를 변호해보지만 나이 먹을만큼 먹고 늦게늦게 결혼하는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당장 남자가 생긴다고 결혼할 수 있나? 생각해보면 통장에 돈도 별로 안 모였고 나보다 훨씬
이쁘고 어린 애들도 많은데 어느 돈 많고 잘생긴 남자가 나 좋다고 덤벼들겠나.

다시 한번 옛 남친들을 떠올려보지만 아무래도 걔들은 지금이나 그때나 아니다, 라는 결론만 내려진다.

속상하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주말이면 같이 영화보자 밥 먹자 술 마시자 하던 남자들만 몇
명이고, 좋아한다 고백은 못 해도 분명 내 주변 맴맴 돌며 티 내던 남자들도 그렇게 많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 집에서 엄마한테 전화가 오면 맨날 결혼 타령이다. 아주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짜증나서 뭐라
소리치자 "이거 봐라, 너도 벌써 노처녀 히스테리 부리기 시작하잖냐" 하고 역반하장으로 역정부터 낸다.

기가 차서 웃음도 안 나올 지경이지만 겨우 진정하고 침대에 누워 주변에 시집 간 친구들부터 생각해본다. 

윤선이. 얘야 원래부터 이쁘고 착하니 남자들이 줄줄 따를 스타일이지. 결국 27살 때 변리사랑 결혼했다.
둘째를 낳고서부터는 연락이 많이 뜸해지더니 요새는 1년에 전화나 겨우 한두번 하는게 전부다.
혜영이. 작년에 같은 회사 다니는 남친이랑 결혼했다. 둘다 대기업 다니니 부족할게 뭐 있으랴.
윤주. 5년 만나던 남자랑 헤어지네 마네 맨날 그렇게 난리 부르스를 떨더니 결국에는 작년 가을 결혼했다.
어차피 윤주네 집이 부자이기도 하고.
미선 언니. 지난 주에 결혼했다. 이 언니만큼은 나보다 늦게 가겠지 생각했는데, 정작 시집도 잘 갔다. 
남편 분이 사업을 한다는데 차부터 벤츠니 뭐. 하기사 이 언니도 자기 가게만 정리해도 그게 얼마냐. 

그런데 나는.

피부도 쳐질만큼 쳐지고, 모은 돈도 없고, 집에도 돈도 없고, 하루하루 회사 일은 힘들어 지기만 하고 
그냥 확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하니 우울증이 절로 몰려온다. 

그렇다고 정말 결혼을 막 해버릴 수도 없는게, 주변에 이혼한 이야기들 들어보면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다. 돈 없고 힘들면 사랑이고 뭐고 그저 다 힘들기만 하단다. 하기사 멀리 볼게 뭐 있나. 우리 집부터
그런데. 

드라마 속, 영화 속 여주인공 같은 꿈같은 미래를 꿈꾸기에 나는 너무 나이가 들었고, 너무 현실을 잘
안다. 내 처지도 잘 안다. 하지만 내 처지를 안다고 그저 그런 남자 만나서, 또 지지고 볶고 너무나도 
뻔한 구질구질한 미래를 그려나갈 바에야 차라리 혼자 사는게 낫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당장 우리 윗 집부터 그렇지 않나. 임신까지 해놓고 허구한 날 부부싸움이라니. 

"하아"

엎드려서 엊그제 사온 이번 달 잡지나 뒤적인다. 누가 저런 옷 좀 척척 안 사주나. 이런 데서 스파나 하고
신선놀음이나 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머 이 구두 너무 귀엽다.

그러고보니 문득 생각났는데, 여자들이 현실을 모르네 어쩌나 하지만 엊그제 남자들 이야기 하는거 들어
보니 더 기가 차더라. 개발팀 남자들이 무슨 여자 외모들 이야기 하는데… 맙소사. 자기 입은 옷 꼬라지들을
좀 보라지. 아니 옷은 둘째치고 머리 스타일이라도 좀 제발.

그래놓고서는 여자들이 현실을 모른다니 어쩌니, 눈들은 하늘 위에 달려서는 무슨… 에효.

모르겠다. 남 흉 볼 상황도 아니고, 대충 아무렇게나 살기는 더 싫다. 그냥… 그냥 확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귀찮을 것도 없는 그런 세상으로.

물론 마냥 한없이 이렇게 스스로를 다운시키다보면…'그래도 아직은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들테고, 난 그렇게 다시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겠지.

창 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온다. 난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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