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461년, 아시아 지역 대부분와 유럽 일부를 재패한 무갈 제국의 황제 알 핫산 3세는 '문 시티' 건축을
선언한다. 달에 도시를 세우겠다는 그의 야심한 계획은 곧이어 경쟁관계의 북미 연합을 자극해서 근 500년
만의 우주개발 경쟁이 벌어진다. 그것도 달 이주 계획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프로젝트로.
서기 2499년, 핵융합 엔진을 탑재한 달 이주선 'musa' 호가 4천여 명의 달 이주민을 싣고 무사히 왕복에
성공한다. musa는 '모세'의 아랍식 표현이다.
서기 2581년, 이제는 달의 26% 지역에 인간이 거주한다. 달 테라포밍 작업도 많이 진척되나, 달 거주민과
개발을 위해 소모되는 지구의 자원들이 급격히 고갈되어 간다. 환경파괴와 자원고갈로 인하여 5백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이제 지구에 사는 동식물의 종류는 그 1/4에 불과하다.
서기 2662년, 수백 년에 이르는 무리한 우주 개발계획으로 인한 경제파탄으로 무갈 제국이 붕괴한다. 그
영향으로 세계 경제도 큰 타격을 입어 북미 연합 역시 사실상 달 개발 중지를 선언한다. 달의 도시들에
대한 식량 이외의 지원이 급격히 줄어든다. 전 세계적인 대체 에너지와 식량 자원에 대한 연구개발 압박이
시작된다.
서기 2713년, 달을 중심으로 핵융합 에너지와 초 고효율 태양력 에너지 기술이 널리 쓰이기 시작하지만
환경파괴와 자원 고갈의 조짐은 전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한다. 천년 가까이 버려졌던 클로렐라와 곤충식 등
극한의 식량기술이 보다 진보된 형태로 등장하여 각광 받는다.
우주 궤도권 무기 체계의 발전으로 인해, 과거 20세기 말엽의 '핵을 통한 평화'와 유사한 형태로 '공포에
의한 세계평화'가 이뤄진다. 그러나 여전히 국지전은 세계 각국에서 끝없이 벌어지고 식량과 환경오염에
의한 종말의 위기감은 그 어떤 시대보다 높다.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인류의 종말을 더 가깝게 느꼈던
시기…역사는 이 시기를 중세에 이어 '제 2의 암흑시대'로 일컫는다.
서기 2801년,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세계대전이라고 하기에는 그 참전국의 숫자가 적고, 전쟁 역시도
과거의 국가 총력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잉여 국력 소모전'으로 펼쳐졌지만 주요 7개국이 참전한 전쟁
이었던 만큼 그 폐혜는 너무나도 컸다. 170억을 넘보던 인류의 숫자가 140억대로 급감했고, 인류가 더이상
살 수 없게 된 육지의 크기는 전 대륙의 1/16에 달하게 된다. 1,2차 세계대전이 비행기술을 크게 앞당긴 것
과 마찬가지로, 인류는 반 중력기술의 상용화에 성공한다.
서기 2821년, 인류 종말의 위험과 더 이상의 전쟁을 막기위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 연맹체가 탄생한다.
앞으로 약 500년간 인류의 부흥을 이끌, UNN이라 이름 붙여진 이 조직의 업적은 다양한 것이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업적은 강력한 인구 규모 억제책과 통일언어 교육책이었다.
2901년, 25세기 말까지 수십 세기에 걸쳐 전승된 어떤 종교의 신화 속에서 언급된 바 있는 '언어 분열의
저주'가 드디어 완벽하게 극복되어, 인류 문화의 발전적 전승과 만약의 위험성을 위해 제외된 7%의 예외를
뺀 나머지 모든 인류가 통일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기술집약과 전파의 용이성을 가져오고, 당연
하게도 매우 강력한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서기 2993년, 인류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대단위 원자재배열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 중세 시대의 연금술
을 온갖 형태로, km 단위로 해내는 엄청난 기술을 통해 인류는 단숨에 자원 위기를 극복함은 물론, 과학
력을 단숨에 몇 단계나 상승시킬 기술적 기반을 갖게 된다.
서기 4012년, 과학자들이 그토록 찾아헤메던 우주 대통합 이론이 2천 년여만에 완벽하게 정립된다. 기존
에도 유사한 개념의, 높은 완성도를 가진 이론들이 존재했지만 이번에 인류가 완성시킨 것은 우주 삼라
만상에 해당하는 모든 존재와 그 반대에 해당하는 반 존재, 이 세상 모든 현상과 차원, 인류의 인지 그
이상의 개념적 이해를 요하는 초월적 이해, 미래의 구조와 간섭이 갖는 영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설명 가능한 놀라운 기술 사상적 완성이었다. 그 충격은 어마어마한 것이었기에 '더이상 정복
해야 할 산이 사라졌다' 라는 말과 함께 학자들의 자살이 속출할 정도였다. 실제 그 개념의 구체적 정립
과 세부적 적용, 이론의 응용까지는 너무나도 먼 길이 남았음에도 말이다.
서기 4305년, 다양한 이유로 190억 규모에서 정체 되어가던 인류의 수는 불과 몇 세기 만에 300억을 돌파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지구 및 화성 궤도 권에 설치된 십수개의 우주 콜로니 덕분이다.
그리고 근 100년 동안 우주 대통합 이론을 기반으로 입자극가속 기술과 쿼크재배열 기술, 차원좌표 지정
개념과 공간 엔트로피 변환을 통한 무한동력 및 워프 기술의 이론적 기반이 제시된다. 인류의 과학적 발전
속도를 설명하는 '앙카리 속도'를 빌어 표현하자면 이 시대의 앙카리 속도는 700,00ank/y에 이른다. 이는
그 이전 역사상 가장 빠른 앙카리 속도를 보인 그 이전 세기의 약 6천배에 이르는 속도다.
우주력 13FB, 처음으로 태양계 외곽에 문명의 기반을 건설하기 시작한 인류는 그 첫 워프 항구의 완성을
기점으로 새롭게 시간 개념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는 어마어마한 비용과 혼란을 야기하는 일이므로
이후로도 약 200FB 기간 동안 기존의 시간개념이 병립하여 사용되었지만, 과거의 절대적인 많은 것을 희생
하더라도 그만한 가치를 지닌 이 새로운 시간개념에 의하여 인류는 새로운 도약을 추진한다.
우주력 18FB, 인류의 수는 800억을 돌파한다(통일점 2uB 시기 기준). 이는 인류가 지난 수십만년간 행해
오던 고전적인 방식의 종족유지를 포기하고 인공적인 방식의 생산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서 가능한 일
이었으며, 태양계 전역에 수천개에 이르는 우주 콜로니가 건설된 덕분이다.
우주력 160FB, 태양계를 중심으로 반경 1,000광년에 해당하는 광대한 영역의 우주 해역도가 완성된다.
무수히 많은 탐사체와 모험가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완성한 이 갚진 결과물은, 더이상 인류가 태양이라는
기준점을 중심으로 존재할 이유가 없게 만들었다. 이제 인류는 태양계에만 모여살기에는 너무 먼 곳까지
알고 있었고, 그 먼 곳으로 떠날 수 있는 기술까지 갖고 있었다.
인류의 거주지역 확장은 놀라우리만치 대담하게 이루어졌으며, 그로부터 약 300FB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어마어마한 확장성을 보이지만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어 문명의 단절이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 즈
음하여 이제 인류는 서서히, 그러나 영구히 언어적 통일성을 상실한다.
우주력 402FB, 인류 이외의 첫 지적 문명과 접촉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인류는 드디어 하나의 종(種)으로
서의 통일성까지 잃게 된다. 물론 약 600FB에 이르기까지 '유사 인류'에 대한 전 인류 차원의 박해가 이
루어 지지만 그 '유사 인류'가 가진 다양한 초감각적 능력은 은하단을 넘으려 하는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
한 것이었기에 그들은 존재의 확립에 성공한다.
우주력 1300TFB, 이 시기의 앙카리 속도는 무려 13해ank/y에 이르지만, 앙카리 속도 역시 이 시기를 기점
으로 그 지표로서 가치를 잃는다. 앙카리 속도로 측정할 '인류'라는 집단 자체가 더이상은 하나로 묶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다양하게 쪼개져 버렸으니까. 11경에 이르는 존재들의 정신통일체, 인류와는 다른, 어떤
또 다른 존재로 생물학적 진화 또는 퇴화를 해버린 존재들, 물질계를 뛰어넘어 상념계의 시공간 지표화
되어버린 존재들, 지난 수천 FB의 시간동안 금지된 룰을 깨고 미래라는 공간으로 이주해버린 존재들,
존재론적 의미에서 인류이기를 포기한 '상실된 인류' 등등등, 더이상 그 모든 이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규정하기에는 다들 너무나 다른 존재들이 되어버렸다.
우주력 21T135TFB…우주 자체를 뛰어넘어 퍼져나간 인류에게 더이상은 공간 베이스의 시간지표, FB라는
단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셈이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태양계 권에 거주하는 '인류'라는 단어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130억의 존재들 기준으로 놓고 보았을 때, 그들은 '발전을 위한 퇴보'를 시작한다.
물질적 발전을 꿈꾸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고, 철학적 발전을 이루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성취가 존재
했다. 인류가 이제 갖고 싶은 것은 '퇴보를 통한 발전의 기회'였고, 태양계를 중심으로 한 '구 문명' 지성체
들은 그 기회의 결행을 위한 의논을 실시한다.
그리고 그 합의 내용은 '퇴보를 통한 발전'이었으며, 그에 반대하던 60억의 인류는 2찬드라 떨어진 다중
우주와의 융합을 통해 영원히 떠났다. 남은 70억의 인류는 과감히 지난 300DT에 이르는 시공간 소멸을
결행했고 그 스스로의 존재들을 '과거의 인류'와 소멸에 가까운 형태로 융합시켰다. 물론 '기억'이라는
존재의 증명마저도.
마지막으로 2천 여명의, 그 마지막 순간까지 인류를 이끌던 영적 지도자들에게는 그러한 '미래의 역사'를
과거의 표현도구인 '글'로 표현하여 서기 2013년 1월 20일을 전후한 어떤 시기에 스스로가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작은 지적 유희의 특권이 주어졌다. 바로 이 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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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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