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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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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리위웬 사건의 판결을 맡은 김주형 판사의 7살 늦둥이 외동아들이, 그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잘린 목만.

온 세상의 공분을 자아낸 흉악한 사건과 그에 대한 '관대한' 판결로 이미 큰 이슈가 된 상황에서, 이번
에는 판결에 불만을 품은 보복성 범죄로 보이는 끔찍한 사건이 터지자 온 세상 호사가들이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경찰은 우선 아동폭력 전과자나 정신질환자에 대한 수사를 전개하는 한편, 원한관계에 의한 범죄로
보고 그동안 김주형이 담당했던 재판의 피고인이나 피해자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경찰의 수사가 피고인들보다 피해자,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더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주형 판사는 항상 이슈의 중심에 놓인 판사였기 때문이었다. '법이 허용하는
최소한의 형량'만을 선고하는 그의 신념은 많은 피해자 가족들의 한맺힌 울부짖음을 불러왔고, 수많은
네티즌들의 폭언, 심지어 법원 내부에서도 그의 판결에 대해 몇 차례 말이 나왔을 정도로 큰 논쟁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런 그가 이번에는 '피해자 유가족'의 입장에 놓인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죄 없는 아이
가 죽었는데 감히 어느 누가 그에 대해 무어라고 하겠는가.

…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세상은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 아이의 장례식장에 와서 앙천대소를 하며
이제야 두 발 뻗고 자겠다며 기뻐한 김형은 양 피살사건(99년)의 형은이 어머니, 납골당까지 찾아와서
"이제 우리 감정이 이해되요? 아직도 안 되요?" 하고 울부짖은 조동일 군 납치살인 사건(2004년)의 동
일군 형 등을 비롯해서 온 인터넷에서도 역시 많은 말이 나왔다.

> 제목 : 이런 말 하면 욕 먹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한번은 이런 일이 일어났어야 됩니다.
> 제목 : 다 인과응보다;; 예수 코스프레 했으니 지도 십자가 한번은 져봐야지
> 제목 : 지 눈깔에서 피눈물 좀 흘려보니까 좀 다르지?
> 제목 : 지 자식, 지 부모가 뒤져봐야 그 고통을 알 것이야

그런 악플러에 대해서 먼저 경찰에서 수사를 한다 어쩐다 말도 나왔지만 역시나 그것은 또다른 반발을
불러왔다.

> 제목 : 악플러 새끼들도 개새끼지만 경찰도 등신이네 씨발
> 제목 : 김주형 그 씹쌔끼의 솜방망이 연타 감안하면 그 새끼 애고 부모고 싹다 뒤졌어야 돼
> 제목 : 무슨 근거로 처벌하는건데?
> 제목 : 그만하자 새끼들아 도를 넘네


그와는 별개로, 경찰의 수사는 더뎠다. 현장 CCTV는 고장난 상태였고, 관련 증언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1차, 2차 용의선상에 올랐던 이들 중에서도 딱히 유력한 용의자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고위 공직자가 이런 끔찍한 범죄 피해를 당한 이상 경찰에서도 가만 있을 수는 없었다.

경무관급 수사기획관을 팀장으로 하고, 광역범죄수사대 중에서도 에이스만을 추려 뽑아 TFT를 꾸린 후
사건 지역 인근 7개 지역 인접서와 함께 원점부터 대대적인 재수사를 벌인 끝에 용의자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바로 지난 99년, 김형은 양 살인사건의 범인인 허석만이었다. 당시 그는 10대 소녀를 강간한 후
살인은 물론, 사체훼손까지 한 흉악한 범죄자였기에 사람들은 공분했다. 당연히 1심에서 중형을 선고
받았지만 2심에서 김주형 판사의 판결 덕분에 대폭 형량이 줄어들었다. 검찰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며 대법원까지 항소했지만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 덕분에 결국 허석만은 최종적으로 6년형만을
선고받았다.

이번 수사에서도 그는 제일 처음에 용의선상에 올랐던 인물이었지만 알리바이가 입증되어 풀려났다가
재수사 과정에서 뒤늦게 그 알리바이가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고 결국 최유력용의자가 되어
체포된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그는 순순히 범죄를 시인했다. 그리고 중앙신문 최철호 기자가 단독으로
따낸 그의 인터뷰 내용은 꽤 충격적이었다.


- 김주형 판사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저지른 범행인가.
> 알고 있었다.

- 그는 과거 형량을 줄여준, 어찌보면 은인에 가까운 사람 아닌가. 왜 그랬나.
> 내 첫 살인(김형은 살인사건)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과는 달리 나도 할말이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 하나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그런데 김주형 판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준 사람이었다. 심지어 변호사마저 내 말을 무시하던 상황에서 말이다. 그게 고마웠다. 고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의 판결을 보며 난 깨달았다. 그는 내 말에 귀를 기울어 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치기 어린 신념 때문에 나에게 알량한 동정을 베푼 것에 불과했다.

- 그것이 설령 동정이었다 하더라도 은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없지 않은가.
> 아니다.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은 내 말을 믿어주었고, 그 덕분에 영혼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모든 것이 내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의 좌절감이 분노로 바뀌는 데에는 그다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본인의 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 인정한다. 오히려 이번에야말로 죄 값을 제대로 받고 싶다. 지난 번 같은 장난놀음은 겪고 싶지 않다.

- 왜 판사 본인을 해하지 않고 그 아들을 타겟으로 노렸나. 더 고통을 주기 위해 그런 것인가.
> 그런 면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문득 내가 저지른 죄를 회개하고 싶었다.

-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가.
> 형은이를 죽인 것은 결코, 의도적인 범행이 아니었다. 강간 혐의 역시 결코 강간이 아니었다. 그저
우발적인 사고로 인해 그녀가 죽었을 뿐이었다. 그 이후의 사체 훼손 역시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어떻게든 살려보려다가 술김에 미친 짓을 벌인 것이다. 꿈과 현실이 헷깔릴 때 꿈 속에서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할 때 있지 않는가. 그저 나는 현실을 꿈으로 착각한 것 뿐이다. 게다가 나 역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다행히 구원받았다고 생각했지만 리위웬 사건을 통해 알았다. 모든게 착각이었다. 형은이의
부모님은 마음에 나보다 더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김주형은 그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그에게 똑같은, 아니 더 큰 상처를 남기고 싶었다.

- 본인이 싸이코패스라고 생각하는가.
> 아니다.


다소 황당하면서도 이해가 갈 듯 말 듯한 허석만의 주장은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곧이어
김주형 판사의 이혼 소식이, 모 여성지를 통해 특종으로 터졌다.

> '(중략)…그의 신념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와 영민이
> 에게까지 손가락질 할 때에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나 역시 그가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 영민이를 잃고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은 결코, 결단코 제 3자가 먼저 감히
> 용서라는 말을 꺼내서는 안되는 그런 마음이다. 그것을 깨닳은 순간 나는 더이상 그와 함께 할 수
> 없었다. 용서? 회개? 용서라는 말을 어느 누가 감히 입에 담는단 말인가.
>
> 그리고 우리 영민이의 죽음을 통해 증명되지 않았나. 제 3자의, 자기 혼자만의 믿음으로 내려버리는
> 용서는 그 어느 누구도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연일 김주형 판사에 대해 신랄하게 까던 일부 네티즌조차도 그 즈음해서는 그에 대해서 조금 안쓰러운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아내와 자식과 믿음을 동시에 잃어야 했던 사람에 대한 연민이었다. 물론 그래도
적지 않은 수의 네티즌은

"그가 지옥으로 몰아넣은 피해자 가족이 몇인데. 분노를 참지 못하고 끝내 홧병으로 죽은 사람도 있다.
아직 멀었다. 그가 철저히 지옥으로 추락할 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먼저 '용서'를 해서는 안된다"

라며 더욱 몰아붙였다.

2개월간의 병가를 마치고 돌아온 김주형 판사는 기자들도 놀랄 정도로 꽤 수척한 모습이었다. 단번에
대여섯살은 늙어버린 듯 했다. 그러나 그는 기자들 앞에서 뜻밖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아무도 더이상 저보고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라는 질문은 안 하겠지요?"

여전히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꺽지않은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절대 판사를 해서는 안되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미친 놈이라는 반응과, 진정으로 공과 사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최고의 법관이라는 반응까지. 그저 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의 씁쓸한 조크일 뿐이라는 해석
부터 이것은 법정의 신뢰성 전반에 대한 문제라는 의견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다.

결국 그를 부담스러워 한 법원은 이듬해 봄, 재임용 심사에서 그가 탈락하기까지 단 한 건의 재판도
맡기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쓸쓸히 법정을 떠나갔고, 세상의 관심을 피해 짐을 정리한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동안 그 이슈는 다소 지겨우리만큼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이른바 '김주형 판사 사건'으로 말미암아 새삼스레 강력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 그리고 가해자 및
피해자의 인권,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고통에 대해 전면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그 역시 언제나처럼, 몇 달 후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사건 자체가 워낙에 쇼킹했던 만큼 그 이야기는 제법 오래 회자되었지만, 그 뿐이었다. 변한 것은
그 어느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몇 달 후 전혀 엉뚱한 다른 기사에서

> 김주형 판사 사건 때 그렇게들 난리더니 벌써 다 까먹었지? 하여간 냄비 코리안 새끼들ㅉㅉㅉ

하고 댓글로 뜬금없이 울분을 토해내는 네티즌의 존재마저, 다른 여느 사건과 변함없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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