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늬들은 이렇게 이쁜 애들이 왜 이런 데서 일하냐?"
달큰하게 술이 들어간 손님의 말에 정은은 술을 한잔 더 따라주면서 "이쁘니까 이런데서 일하죠"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에 손님은 한방 먹었다는 듯 큭큭대더니 곧 정은의 몸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래, 니 말이 맞다. 이쁜 년이니까 이런데서 일하지 아니면 일도 못하지 암. 근데 사실 이런 데서 일하면
안되는 마스크 애들도 가끔은 일하고 있긴 하드라"
나름 진지하게 하는 그 말에 정은까지 웃음이 터졌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정은. 얼마 전 차를 사는 바람에 운전에 맛들린 경신의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머리도 조금 띵하고 허리 아래로 조금 묵직하게 뻐근하다. 몸살인가 싶어서 집 앞 편의점에서 쌍화탕 하나
사서 들어왔다. 보일러 온도 30도로 맞추고, 화장 지우고 볼일 보고 샤워하고 바로 이불 속으로 뛰어들어
왔다.
'아 피곤하다'
사온 쌍화탕을 싱크대 위에 올려놓은 것이 생각났지만 몸이 너무 노곤해서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다.
조금 답답해서 창문을 여니 창 밖으로는 눈 같지도 않은 눈이 날리고 있다.
'아늑하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그녀는 '그렇고 그런' 아이였다. 나름 학교에서 잘 나가는 아이들과 어울리고 밤이면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그런 아이. 첫 경험도 그룹에서 잘나가는 경욱이 오빠와 중3 때
가졌다. 그리고 그렇게 놀면서 고등학교를 보냈다. 당최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절도전과 아버지에 집 나간
어머니… 뻔한 그렇고 그런 집구석. 정말 너무 싫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말하셨다.
"니는 얼굴 하나는 반반하니까네, 그글로 먹고 살그라"
참으로 말주변머리가 없는 어버지의 나름 칭찬이라면 칭찬이겠고, 또 무능력한 자신의 처지에서 무엇을
지원해 줄 수 없으니 혼자 힘으로 어떻게 살라는 말이었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중에 정말 그리
되었으니 자식 보는 눈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부모가 포기한 자식이 가는 길은 뻔한 것인지.
어차피 공부는 처음부터 못했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공부하면 그걸로 내가 뭘할건데? 어차피 대학도
못 갈텐데? 그냥 친구들이랑 놀면 그걸로 좋았다. 술에 취해 늘어지고 몽롱해지면, 그러다 경욱 오빠
자취방에서 끌어안고 자고, 그게 내 삶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와의 인연은 역시나 채 1년도 가지 못해 경욱 오빠와 내 베프 영미의
불유쾌한 관계를 파악하게 된 것으로 끝났다. 단순히 그와의 관계만 정리한 것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마음
기댈 곳이 사라진 이상 그 길로 집을 나왔다. 그렇게 고등학교마저 관두게 되었다.
하지만 중졸 학력의 고3짜리 여자애가 서울로 상경해서 가출해봤자 할 일은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다.
예전에 경욱 오빠랑 놀던 시절에 들은 풍월로는 숙식이 해결되는 주유소 알바가 최고라고 했지만 도대체
어디가서 뭘 어떻게 해야하나도 잘 몰랐다.
다시 집으로 가야하나, 하고 생각할 무렵 얼굴로 먹고 살라던 아버지의 말이 새삼 떠올라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눈 앞의 셔터 닫은 가게에 바 여종업원을 모집하는 전단이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바는 정상적인 바였지만, 사장은 정상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새 보금자리를 얻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참 별 짓을 다 하면서 서울에서 3년을 버텼다. 바 종업원, PC방 알바, 휴대폰 대리점
비서-말이 좋아 비서지 그냥 대리점 사장 여친 노릇이었다. 그래도 돈 많은 호구라 여기서 참 내 행색이
많이 세련되어 졌다-, 다시 모던 바, 그리고 좀 더 높은 페이의 유혹에 섹시바…
그러다가 22살에 룸에서 잠깐 일하면서 드디어 아는 언니 집을 나와서 독립하고 기반을 잡았는데…
그때 만난 남자 새끼한테 사기당하고 빚 3천 얹어서 결국에는 다시 그 바닥, 그것도 하드코어한 풀싸롱
으로 넘어왔다. 몇 개 업소를 거쳐 결국 요즘에 일하는 곳이 바로 야구장.
이어서 보러가기(클릭) - [박지성 상무의 강남 야구장] 블로그-
* 본 컨텐츠는 19세 미만의 이용자에게는 권장되지 않습니다.
* [박지성 상무]와 강남 야구장은 실존하는 인물과 업체입니다. 이 점에 유의하여 읽어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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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큰하게 술이 들어간 손님의 말에 정은은 술을 한잔 더 따라주면서 "이쁘니까 이런데서 일하죠"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에 손님은 한방 먹었다는 듯 큭큭대더니 곧 정은의 몸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래, 니 말이 맞다. 이쁜 년이니까 이런데서 일하지 아니면 일도 못하지 암. 근데 사실 이런 데서 일하면
안되는 마스크 애들도 가끔은 일하고 있긴 하드라"
나름 진지하게 하는 그 말에 정은까지 웃음이 터졌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정은. 얼마 전 차를 사는 바람에 운전에 맛들린 경신의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머리도 조금 띵하고 허리 아래로 조금 묵직하게 뻐근하다. 몸살인가 싶어서 집 앞 편의점에서 쌍화탕 하나
사서 들어왔다. 보일러 온도 30도로 맞추고, 화장 지우고 볼일 보고 샤워하고 바로 이불 속으로 뛰어들어
왔다.
'아 피곤하다'
사온 쌍화탕을 싱크대 위에 올려놓은 것이 생각났지만 몸이 너무 노곤해서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다.
조금 답답해서 창문을 여니 창 밖으로는 눈 같지도 않은 눈이 날리고 있다.
'아늑하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그녀는 '그렇고 그런' 아이였다. 나름 학교에서 잘 나가는 아이들과 어울리고 밤이면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그런 아이. 첫 경험도 그룹에서 잘나가는 경욱이 오빠와 중3 때
가졌다. 그리고 그렇게 놀면서 고등학교를 보냈다. 당최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절도전과 아버지에 집 나간
어머니… 뻔한 그렇고 그런 집구석. 정말 너무 싫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말하셨다.
"니는 얼굴 하나는 반반하니까네, 그글로 먹고 살그라"
참으로 말주변머리가 없는 어버지의 나름 칭찬이라면 칭찬이겠고, 또 무능력한 자신의 처지에서 무엇을
지원해 줄 수 없으니 혼자 힘으로 어떻게 살라는 말이었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중에 정말 그리
되었으니 자식 보는 눈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부모가 포기한 자식이 가는 길은 뻔한 것인지.
어차피 공부는 처음부터 못했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공부하면 그걸로 내가 뭘할건데? 어차피 대학도
못 갈텐데? 그냥 친구들이랑 놀면 그걸로 좋았다. 술에 취해 늘어지고 몽롱해지면, 그러다 경욱 오빠
자취방에서 끌어안고 자고, 그게 내 삶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와의 인연은 역시나 채 1년도 가지 못해 경욱 오빠와 내 베프 영미의
불유쾌한 관계를 파악하게 된 것으로 끝났다. 단순히 그와의 관계만 정리한 것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마음
기댈 곳이 사라진 이상 그 길로 집을 나왔다. 그렇게 고등학교마저 관두게 되었다.
하지만 중졸 학력의 고3짜리 여자애가 서울로 상경해서 가출해봤자 할 일은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다.
예전에 경욱 오빠랑 놀던 시절에 들은 풍월로는 숙식이 해결되는 주유소 알바가 최고라고 했지만 도대체
어디가서 뭘 어떻게 해야하나도 잘 몰랐다.
다시 집으로 가야하나, 하고 생각할 무렵 얼굴로 먹고 살라던 아버지의 말이 새삼 떠올라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눈 앞의 셔터 닫은 가게에 바 여종업원을 모집하는 전단이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바는 정상적인 바였지만, 사장은 정상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새 보금자리를 얻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참 별 짓을 다 하면서 서울에서 3년을 버텼다. 바 종업원, PC방 알바, 휴대폰 대리점
비서-말이 좋아 비서지 그냥 대리점 사장 여친 노릇이었다. 그래도 돈 많은 호구라 여기서 참 내 행색이
많이 세련되어 졌다-, 다시 모던 바, 그리고 좀 더 높은 페이의 유혹에 섹시바…
그러다가 22살에 룸에서 잠깐 일하면서 드디어 아는 언니 집을 나와서 독립하고 기반을 잡았는데…
그때 만난 남자 새끼한테 사기당하고 빚 3천 얹어서 결국에는 다시 그 바닥, 그것도 하드코어한 풀싸롱
으로 넘어왔다. 몇 개 업소를 거쳐 결국 요즘에 일하는 곳이 바로 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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