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 헉…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차 오른다. 채워놓은 턱끈이 아니었다면 벌써 하이바가 벗겨지고도 남았으리라. 버릴 거
이미 다 버렸는데도 군장은 미친듯이 무겁다. 띠- 소리로 가득찼던 청각이 겨우 회복되기 시작한다. 일단
저 앞의 포탄 구덩이가 1차 목표다. 저기로 튀어 들어간다.
"크흑!"
거의 몸을 던지다시피 뛰어들어왔다. 청각이 회복되자 다시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산발적인 사격
이다. 빨갱이들의 저항은 그다지 거세지 않았다. 펄떡펄떡 뛰던 심장 맥박이 겨우 아주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온 몸을 짓눌러오지만 K2 한 자루에 의지해 겨우 버텨본다.
옆으로 쿵쾅쿵쾅 달려가는 전우들이 보인다. 다시 몇 발의 총소리가 들리지만 모두 아군의 총소리 뿐이다.
대충 상황이 종료된 것일까.
"사격 중지!"
저 멀리서 소대장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제서야 안도했다. 얼추 교전이 끝난 것 같다. 빨갱이들은
다 후퇴를 한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몰라 몇 타이밍 더 우물쭈물대다 구덩이 옆으로 몇 명이 지나가고 나
서야 몸을 일으켰다. 쪽팔림은 둘째 문제다. 허세부리다 뒤진 놈 벌써 몇 놈을 봤는지 모른다. 난 군복에
묻은 흙을 툭툭 덜었다.
"아효 이걸 밥이라고, 옘병"
식판에 담긴 돼지죽 같은 식사을 몇 숟가락 떠먹던 동욱이 쌍욕을 내뱉었다. 난 그저 대꾸없이 묵묵히
밥이나 쳐먹을 따름이었지만, 시래기를 들추자 그 밑에 끼어있던 집게벌레를 보고는 나 역시 쌍욕을
내뱉었다.
"좆같네 씨발"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미 전쟁은 끝났어야 한다. 영변 핵기지를 접수했고, 압록강까지 밀었고, 북괴
주력부대는 괴멸됐고.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첫째는 북괴 수뇌부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지옥처
럼 끝없는 게릴라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게임 다 끝난 다음에 아프간에서 뒤진 미군이 몇 명이나 되는 줄 알아? 천 명이 넘어. 희생자는 둘째치고
전쟁을 몇 년을 했는데. 아예 걍 완전히 게임 자체가 안 되는 싸움에서 그 정도 희생자가 나왔다고. 근데
빨갱이 새끼들은? 60년도 넘게 전쟁 준비만 한 새끼들이 어떻게 나올까? 내 봤을 때 씨발 이건 진짜 개좆
된거야. 빨치산이 얼마나 무서운건데"
반 년 전, 한미연합군이 압록강까지 북괴를 밀어내고, 중국이 제 2차 한국전쟁에 더이상의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사실상 그걸로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가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아니었다.
지난 60년간 북괴가 판 땅굴은 휴전 기간동안 발견한 4개, 그리고 전쟁이 터지고 난 후 우리에게 막대한
희생을 강요한 2개를 제외하고도…수천 수만개가 더 있었다. 그것들은 남한으로 향하는 땅굴이 아니라
이렇게 지루한 게릴라전을 대비해 북괴가 만든 북한 땅 내부의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하 땅굴들이었다.
"좆도!"
베트콩 마냥 밤만 되면 지하땅굴에서 기어나와 아군의 희생을 강요하는 미친 빨갱이들의 게릴라전은
다 끝난 줄 알았던 전쟁을 그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지루한 교착상태로 몰고가 버렸다.
이미 미군들의 희생은 불과 몇 달 만에 아프간 전쟁의 희생자를 뛰어넘었고, 아군의 피해는 아예 집계
자체가 안될 정도였다.
차라리 북괴의 주력부대가 온전히 살아남아서, '그것만 까부수면' 전쟁이 끝나는 상황이라면 희망을
가져볼만 하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수십만 단위의 극렬분자들이 AK-47을 들고 산 속으로, 땅굴로
기어들어갔다 밤에 몰래 기어나와 국군 뒷통수를 쏴버리는 이런 미친 상황이 몇 달을 넘기자 다들
더이상은 통일이니, 종전이니 하는 말은 입 밖으로도 꺼내지 않는다.
"벌써 미국 내에서는 철수 이야기가 나온대요"
"딱 베트남 꼴 나게 생겼네 진짜 씨발"
"아니 씨발 짬밥 꼬라지를 보라고. 이거 뭐 문제 있는거 아냐? 점점 사람이 못 먹을게 나오잖아"
새로 충원된 동원예비군들은 틈만 나면 수다를 떨어댔다. 뒤늦게 합류하는 이들이 풀어대는 정보는
그것이 전혀 신뢰할 수 있는 루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제일
살벌했던 얘긴 중국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것이었고, 제일 황당했던 얘기는 모 여자 아이돌 그룹이
위문공연 갔다가 또라이 같은 군바리들에게 떼강간을 당했다는 소문이었다.
처음에는 제법 꼴릿한 루머였지만 몇 주마다 그 루머 속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바뀌고, 강간한 놈들이
장교한테 즉결처분을 당했다느니 피해자인 리더 모 양이 임신을 했다느니 하며 살이 붙기 시작하자
결국 그게 구라라는 것으로 우리들 사이에서 적당히 결론이 지어졌다.
"그나저나 김정은이 이 개씹쌔끼는 어디있는거래?"
"내가 봤을 때는 이미 한반도에 없어. 씨발 현상금이 20억인데 누가 신고를 안 해? 당근빠따 이건 이미
중국에 있다고 봐야 돼. 그게 훨씬 안전한거고. 나래도 중국으로 갔겠다"
"아 진짜 한반도의 주적은 중국이다 씨발. 육이오 때도 그랬…어 씨발!"
내 앞에서 욕을 하면서 떡밥을 떠먹던 민기는 내 뒤를 보면서 갑자기 식판을 내던지곤 옆에 놓은 총을
집어들었다. 등지고 있던 나 역시 영문은 모르지만 식판을 내던지곤 반사적으로 몸을 튕겨 옆으로 몸
을 굴렸다. 그리고 난 민기가 치는 고함소리를 들었다.
"엎드려!"
"조선인민주의민주공화국 영광 있!"
탕!
한발의 총소리 직후 엄청난 폭음이 땅을 울렸다. 빨갱이 수류탄 소리다. 한 20~30미터 정도 거리에서
터진 것 같다. 다시 한번 골이 울리는 것을 느끼며 난 발가락 끝부터 하나씩 어디 다친 곳이 없나를
점검했다. 다행이다. 이상없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아 씨발…다친 사람 없냐?"
한쪽 귀가 또 맛이 간 상태에서 우리는 서로 "괜찮아" "이상없음"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난 폭음이
난 쪽을 바라보았다. 하체는 곤죽이 되었고, 상체는 아예 통째로 날아간 인민군 소년병 자살폭탄테러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면역이 되어 구토는 나오지 않는다.
"아니 밥을 먹고 있는데 저기 풀 숲에서 뭐가 보이는거야. 노가리 까면서도 계속 은근하게 눈길 주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미친 새끼가 수류탄 들고 뛰어오지 뭐야. 아 씨발 식겁했네 진짜"
"아 난 이 새끼가 쳐먹던 식판을 던지길래 뭔가 했는데 표정 보는 순간 좆됐다 싶더라고. 그래서 걍
나도 바로 막 옆으로 굴렀지"
숙영지의 경계를 뚫고 인민군 소년병 하나가 자살폭탄테러를 시도한 것이었다. 아니 솔직히 소년병
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다. 하도 다들 못 쳐먹어서 키들이 난쟁이 똥자루라 덩치론 구분이 안된다.
어쨌든, 몸에 폭탄 감고 뛰어들어오는 놈을 향해 민기가 침착하게 사격을 실시했고, 덕분에 놈이 거
꾸러 지면서 손에 들고 있던 수류탄을 떨어뜨려 터졌을 뿐 몸에 두르고 있던 또다른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만약에 그게 터졌다면 여기서 이 무용담을 듣고 있는 놈 중 적어도 1/3은 세상에 없었을 것
이다.
지근거리에서 터졌음에도 나를 비롯해 근처에 있던 놈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고, 오히려 한참 멀리
있던 엉뚱한 취사병 하나만 날아간 작은 파편에 엉덩이를 살짝 다쳤다.
"자살폭탄이라니 씨발…"
다들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흩어졌다. 민기는 중대장이 불러서 갔다. 난 잠깐 볼일을 보고 우리 텐트
쪽으로 향했다.
전쟁은 점점 극단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내심 우리 생각으로는 어찌됐던 못 먹고 못 살던 놈들
이니까, 이기던 지던 통일되면 지들한테도 좋은 거니까 대충 대세만 넘어가면 얼추 협조적으로 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역시나 그렇지 않았다.
전쟁 중에 부모 잃고 가족 잃은 한이 어디 오죽하겠는가. 그들에게 우리는 원수일 것이고, 우리 역시
그들이 원수다. 낮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우리를 반기다가도, 밤이 되면 그 중 몇 놈은 또
빨치산이 되어 우리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다.
이미 그 문제로 몇 차례 쑥대밭이 된 동네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
아마도 민간인 학살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억울한 피해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
으로 지금 같아서는 북한 주민 전체를 못 믿겠다. 물론 학살극의 소문은 또 다른 북한 마을 사람들
속에 적개심을 자라나게 하겠지. 하지만 일단 다 필요없고 내 생각은 그저 지금 당장 내가 살고 싶고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 뿐이다. 좆같은거 일일히 다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다. 어차피 내가
죽인 사람이 몇 명인데.
"너 오늘 나랑 말번초다"
민기가 중대장과 이야기를 마치고 내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아싸.
"그래? 아, 아까 그거 때문에?"
"어. 야 근데 존나 아예 빼주는 것도 아니고 말번초 시켜주라면서 존나 생색 내는데 야, 이거 솔직히
훈장 하나 받아야 되는거 아니냐?"
"미친 새끼, 존나 김치국 사발로 쳐마셨구만"
"…씨발. 여튼 넌 오늘 나 덕분에 산 줄 알아"
"고맙다"
점호라기보다는 인원 점검에 가까운 간단한 점호를 마치고 우리는 모두 누웠다. 소대장 말로는 일단
내일부터 다시 대대적인 빨갱이 잔당 소탕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단다. 속으로 다들 쌍욕을 내뱉었지만
대신 상황봐서 인근 마을 수색할 때 협조 하에 샤워 같은 것도 진행하기로 할테니까 이해하라는 말에
조금 마음이 풀렸다. 소탕 작전은 좆같지만 당장 씻은지 일주일도 더 된 거 같은 이 썩는 내 나는 몸을
씻는다는 조건이면 나래도 찬성이다.
노곤함이 몰려온다. 눈을 감으며 엄마 생각을 했다. 일단 남한 지역은 벌써 복구작업까지 시작됐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전쟁통인데 뭐하나 제대로 돌아가기는 하겠는가. 민지도 잘 있는지 모르겠다.
여튼 올해 안으로 전쟁이 끝나면 좋겠다. 이제 곧 겨울이다. 겨울에도 전쟁하는 개좆같은 상황은 제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발 무사히, 전쟁 끝날 때까지 팔다리 어디 하나 안 없어지고 무사히
전역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전쟁 중에 다쳐서 병신되는거, 그게 제일 무섭다.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싶지는 않다.
'자자…'
난 마음을 진정시키고 깊은 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 오른다. 채워놓은 턱끈이 아니었다면 벌써 하이바가 벗겨지고도 남았으리라. 버릴 거
이미 다 버렸는데도 군장은 미친듯이 무겁다. 띠- 소리로 가득찼던 청각이 겨우 회복되기 시작한다. 일단
저 앞의 포탄 구덩이가 1차 목표다. 저기로 튀어 들어간다.
"크흑!"
거의 몸을 던지다시피 뛰어들어왔다. 청각이 회복되자 다시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산발적인 사격
이다. 빨갱이들의 저항은 그다지 거세지 않았다. 펄떡펄떡 뛰던 심장 맥박이 겨우 아주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온 몸을 짓눌러오지만 K2 한 자루에 의지해 겨우 버텨본다.
옆으로 쿵쾅쿵쾅 달려가는 전우들이 보인다. 다시 몇 발의 총소리가 들리지만 모두 아군의 총소리 뿐이다.
대충 상황이 종료된 것일까.
"사격 중지!"
저 멀리서 소대장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제서야 안도했다. 얼추 교전이 끝난 것 같다. 빨갱이들은
다 후퇴를 한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몰라 몇 타이밍 더 우물쭈물대다 구덩이 옆으로 몇 명이 지나가고 나
서야 몸을 일으켰다. 쪽팔림은 둘째 문제다. 허세부리다 뒤진 놈 벌써 몇 놈을 봤는지 모른다. 난 군복에
묻은 흙을 툭툭 덜었다.
"아효 이걸 밥이라고, 옘병"
식판에 담긴 돼지죽 같은 식사을 몇 숟가락 떠먹던 동욱이 쌍욕을 내뱉었다. 난 그저 대꾸없이 묵묵히
밥이나 쳐먹을 따름이었지만, 시래기를 들추자 그 밑에 끼어있던 집게벌레를 보고는 나 역시 쌍욕을
내뱉었다.
"좆같네 씨발"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미 전쟁은 끝났어야 한다. 영변 핵기지를 접수했고, 압록강까지 밀었고, 북괴
주력부대는 괴멸됐고.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첫째는 북괴 수뇌부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지옥처
럼 끝없는 게릴라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게임 다 끝난 다음에 아프간에서 뒤진 미군이 몇 명이나 되는 줄 알아? 천 명이 넘어. 희생자는 둘째치고
전쟁을 몇 년을 했는데. 아예 걍 완전히 게임 자체가 안 되는 싸움에서 그 정도 희생자가 나왔다고. 근데
빨갱이 새끼들은? 60년도 넘게 전쟁 준비만 한 새끼들이 어떻게 나올까? 내 봤을 때 씨발 이건 진짜 개좆
된거야. 빨치산이 얼마나 무서운건데"
반 년 전, 한미연합군이 압록강까지 북괴를 밀어내고, 중국이 제 2차 한국전쟁에 더이상의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사실상 그걸로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가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아니었다.
지난 60년간 북괴가 판 땅굴은 휴전 기간동안 발견한 4개, 그리고 전쟁이 터지고 난 후 우리에게 막대한
희생을 강요한 2개를 제외하고도…수천 수만개가 더 있었다. 그것들은 남한으로 향하는 땅굴이 아니라
이렇게 지루한 게릴라전을 대비해 북괴가 만든 북한 땅 내부의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하 땅굴들이었다.
"좆도!"
베트콩 마냥 밤만 되면 지하땅굴에서 기어나와 아군의 희생을 강요하는 미친 빨갱이들의 게릴라전은
다 끝난 줄 알았던 전쟁을 그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지루한 교착상태로 몰고가 버렸다.
이미 미군들의 희생은 불과 몇 달 만에 아프간 전쟁의 희생자를 뛰어넘었고, 아군의 피해는 아예 집계
자체가 안될 정도였다.
차라리 북괴의 주력부대가 온전히 살아남아서, '그것만 까부수면' 전쟁이 끝나는 상황이라면 희망을
가져볼만 하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수십만 단위의 극렬분자들이 AK-47을 들고 산 속으로, 땅굴로
기어들어갔다 밤에 몰래 기어나와 국군 뒷통수를 쏴버리는 이런 미친 상황이 몇 달을 넘기자 다들
더이상은 통일이니, 종전이니 하는 말은 입 밖으로도 꺼내지 않는다.
"벌써 미국 내에서는 철수 이야기가 나온대요"
"딱 베트남 꼴 나게 생겼네 진짜 씨발"
"아니 씨발 짬밥 꼬라지를 보라고. 이거 뭐 문제 있는거 아냐? 점점 사람이 못 먹을게 나오잖아"
새로 충원된 동원예비군들은 틈만 나면 수다를 떨어댔다. 뒤늦게 합류하는 이들이 풀어대는 정보는
그것이 전혀 신뢰할 수 있는 루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제일
살벌했던 얘긴 중국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것이었고, 제일 황당했던 얘기는 모 여자 아이돌 그룹이
위문공연 갔다가 또라이 같은 군바리들에게 떼강간을 당했다는 소문이었다.
처음에는 제법 꼴릿한 루머였지만 몇 주마다 그 루머 속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바뀌고, 강간한 놈들이
장교한테 즉결처분을 당했다느니 피해자인 리더 모 양이 임신을 했다느니 하며 살이 붙기 시작하자
결국 그게 구라라는 것으로 우리들 사이에서 적당히 결론이 지어졌다.
"그나저나 김정은이 이 개씹쌔끼는 어디있는거래?"
"내가 봤을 때는 이미 한반도에 없어. 씨발 현상금이 20억인데 누가 신고를 안 해? 당근빠따 이건 이미
중국에 있다고 봐야 돼. 그게 훨씬 안전한거고. 나래도 중국으로 갔겠다"
"아 진짜 한반도의 주적은 중국이다 씨발. 육이오 때도 그랬…어 씨발!"
내 앞에서 욕을 하면서 떡밥을 떠먹던 민기는 내 뒤를 보면서 갑자기 식판을 내던지곤 옆에 놓은 총을
집어들었다. 등지고 있던 나 역시 영문은 모르지만 식판을 내던지곤 반사적으로 몸을 튕겨 옆으로 몸
을 굴렸다. 그리고 난 민기가 치는 고함소리를 들었다.
"엎드려!"
"조선인민주의민주공화국 영광 있!"
탕!
한발의 총소리 직후 엄청난 폭음이 땅을 울렸다. 빨갱이 수류탄 소리다. 한 20~30미터 정도 거리에서
터진 것 같다. 다시 한번 골이 울리는 것을 느끼며 난 발가락 끝부터 하나씩 어디 다친 곳이 없나를
점검했다. 다행이다. 이상없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아 씨발…다친 사람 없냐?"
한쪽 귀가 또 맛이 간 상태에서 우리는 서로 "괜찮아" "이상없음"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난 폭음이
난 쪽을 바라보았다. 하체는 곤죽이 되었고, 상체는 아예 통째로 날아간 인민군 소년병 자살폭탄테러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면역이 되어 구토는 나오지 않는다.
"아니 밥을 먹고 있는데 저기 풀 숲에서 뭐가 보이는거야. 노가리 까면서도 계속 은근하게 눈길 주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미친 새끼가 수류탄 들고 뛰어오지 뭐야. 아 씨발 식겁했네 진짜"
"아 난 이 새끼가 쳐먹던 식판을 던지길래 뭔가 했는데 표정 보는 순간 좆됐다 싶더라고. 그래서 걍
나도 바로 막 옆으로 굴렀지"
숙영지의 경계를 뚫고 인민군 소년병 하나가 자살폭탄테러를 시도한 것이었다. 아니 솔직히 소년병
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다. 하도 다들 못 쳐먹어서 키들이 난쟁이 똥자루라 덩치론 구분이 안된다.
어쨌든, 몸에 폭탄 감고 뛰어들어오는 놈을 향해 민기가 침착하게 사격을 실시했고, 덕분에 놈이 거
꾸러 지면서 손에 들고 있던 수류탄을 떨어뜨려 터졌을 뿐 몸에 두르고 있던 또다른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만약에 그게 터졌다면 여기서 이 무용담을 듣고 있는 놈 중 적어도 1/3은 세상에 없었을 것
이다.
지근거리에서 터졌음에도 나를 비롯해 근처에 있던 놈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고, 오히려 한참 멀리
있던 엉뚱한 취사병 하나만 날아간 작은 파편에 엉덩이를 살짝 다쳤다.
"자살폭탄이라니 씨발…"
다들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흩어졌다. 민기는 중대장이 불러서 갔다. 난 잠깐 볼일을 보고 우리 텐트
쪽으로 향했다.
전쟁은 점점 극단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내심 우리 생각으로는 어찌됐던 못 먹고 못 살던 놈들
이니까, 이기던 지던 통일되면 지들한테도 좋은 거니까 대충 대세만 넘어가면 얼추 협조적으로 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역시나 그렇지 않았다.
전쟁 중에 부모 잃고 가족 잃은 한이 어디 오죽하겠는가. 그들에게 우리는 원수일 것이고, 우리 역시
그들이 원수다. 낮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우리를 반기다가도, 밤이 되면 그 중 몇 놈은 또
빨치산이 되어 우리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다.
이미 그 문제로 몇 차례 쑥대밭이 된 동네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
아마도 민간인 학살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억울한 피해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
으로 지금 같아서는 북한 주민 전체를 못 믿겠다. 물론 학살극의 소문은 또 다른 북한 마을 사람들
속에 적개심을 자라나게 하겠지. 하지만 일단 다 필요없고 내 생각은 그저 지금 당장 내가 살고 싶고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 뿐이다. 좆같은거 일일히 다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다. 어차피 내가
죽인 사람이 몇 명인데.
"너 오늘 나랑 말번초다"
민기가 중대장과 이야기를 마치고 내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아싸.
"그래? 아, 아까 그거 때문에?"
"어. 야 근데 존나 아예 빼주는 것도 아니고 말번초 시켜주라면서 존나 생색 내는데 야, 이거 솔직히
훈장 하나 받아야 되는거 아니냐?"
"미친 새끼, 존나 김치국 사발로 쳐마셨구만"
"…씨발. 여튼 넌 오늘 나 덕분에 산 줄 알아"
"고맙다"
점호라기보다는 인원 점검에 가까운 간단한 점호를 마치고 우리는 모두 누웠다. 소대장 말로는 일단
내일부터 다시 대대적인 빨갱이 잔당 소탕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단다. 속으로 다들 쌍욕을 내뱉었지만
대신 상황봐서 인근 마을 수색할 때 협조 하에 샤워 같은 것도 진행하기로 할테니까 이해하라는 말에
조금 마음이 풀렸다. 소탕 작전은 좆같지만 당장 씻은지 일주일도 더 된 거 같은 이 썩는 내 나는 몸을
씻는다는 조건이면 나래도 찬성이다.
노곤함이 몰려온다. 눈을 감으며 엄마 생각을 했다. 일단 남한 지역은 벌써 복구작업까지 시작됐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전쟁통인데 뭐하나 제대로 돌아가기는 하겠는가. 민지도 잘 있는지 모르겠다.
여튼 올해 안으로 전쟁이 끝나면 좋겠다. 이제 곧 겨울이다. 겨울에도 전쟁하는 개좆같은 상황은 제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발 무사히, 전쟁 끝날 때까지 팔다리 어디 하나 안 없어지고 무사히
전역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전쟁 중에 다쳐서 병신되는거, 그게 제일 무섭다.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싶지는 않다.
'자자…'
난 마음을 진정시키고 깊은 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