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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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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헤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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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몸을 일으키며 나는 그렇게 말했다. 너무 밑도 끝도 없는 말에 그녀는 잠깐 침묵하다 물었다.

"왜?"

나 역시 한참을 입 안에서 맴맴 헛도는 말들을 정리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다른 여자가 있어"

윤지가 무어라 하려고 입을 떼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전에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너도 알잖아. 저번에… 걔. 아, 그렇다고 걔랑 사귀고 뭐 양다리 걸치고 그런건 아니야. 그냥…걔가
좋아. 걔가 마음에 있어"

내 말에 담담한 말투로 윤지는 "그렇구나" 하고 대답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랑 사귀기 전에 1년 정도 사귀었어. 그리고 너 만나기 얼마 전에 헤어졌어. 너랑 만나면서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부쩍 생각이 나. 어제 연락도 했어. 물론, 다시 잘 될지 안 될지는 몰라. 그렇지만…
다른 사람 마음에 둔 채로 너 속이면서 만날 수는 없는 거잖아"

솔직히 그녀로선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이유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인 관계에 있어서 다른 
누가 마음에 들어왔다는 사실 이상으로 관계의 종말을 선언하는게 또 어디 있겠는가.

"알았어… 해달라는대로 해줄께…"

차라리 화를 내고 욕을 하면 마음이라도 편하련만. 그녀는 주섬주섬 속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동작을 멈추고 말했다.

"나 정말 좋아하긴 한거야?"

그야 물론이지.

"정말로 좋아했어. 아니 지금도 좋아해. 그냥… 그렇지만… 미안할 짓 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러면 앞으로 후회 안할 자신 있어?"

후회라.

"하겠지. 분명히 하겠지. 너처럼 잘해주는 애 앞으로도 아마 또 만나기 힘들겠지. 정말 너무너무 고맙고…
아직도 너 좋아하는 마음 크지만… 이게 무슨 뻘짓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두 사람을 생각할
수는 없는거 아니겠…"
"그 여자랑 잘 안될 수도 있는 거라면서. 그럼 그 여자랑 안되면 다시 돌아올래?"

마지막 자존심까지 버리면서 묻는 그녀의 말. 나는 대답 대신 그저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물론 정말로
안 되더라도 무슨 낯으로 돌아가겠느냐마는.

"알았어"

난 불을 켰고, 나도 그녀도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그녀는 날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나 한 대 칠래?"
"때려서 뭐해. 내 마음만 아프지. 그런데 그 여자는 좋겠다…"

그녀는 덤덤했다. 무슨 염치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살며시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혼자
감성에 젖어 우습게도 이별의 뽀뽀를 했다. 고개를 숙이며 거부하는 듯 하면서도 끝내 내 입술을 받아
주는 그녀에게 또 미안했다. 차라리 뽀뽀는 하지 말 걸 그랬다.

"나 갈께"
"요 앞에까지 마중 나갈께"
"아냐 괜찮아"

그녀는 서둘러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섰다. 그리고 문이 닫기기 직전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얼굴을 봤다. 
그래서 차마 따라나설 수가 없었다. 

미안했다.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사람을 꼭 가지고 논 거 같기도 하고, 이별의 타이밍도, 방식도,
다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최악의 이별이다.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피곤했다.

그리고 새벽 3시, 문득 눈을 뜬 후 카톡 메세지를 확인했다. 그녀의 메세지가 와 있었다.

[ 다시 생각해봤음 좋겠다 ]

나는 답장 대신 눈을 감았다.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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