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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섹스 칼럼니스트 이도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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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 섹스칼럼니스트 이도희 ]
[2. 도희의 소개팅 ] …
[3. 외로운 여자 이도희 ] …
[4. 도희의 첫 사랑 ] … 
[5. 도희, 인생 두 번째 원나잇 ] 에 이어서…



"좋습니다"

편당 고료 10만원짜리 원고… 도희는 아까부터 이 얼굴에 개기름이 줄줄 흐르는 편집장의 표정도 그렇고
요상한 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무실 사람들 시선도 그렇고 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단 한 푼이라도 돈이 급했다. 게다가 편당 10만원이라면 괜찮은 편 아닌가.

"그럼, 잘 부탁해요"
"네"

도희는 악수를 위해 손을 내미는 편집장의 손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겨우 잡았다. 남녀간 악수는 여자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 한 권하는게 아니라는 비지니스 매너의 기본도 모르는 회사 대표 겸 편집장이 참…



"어휴"

도희는 긴 한숨을 쉬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다니던 계약직 회사는 짤리고, 이제는 정말이지 '프리랜서 칼럼
니스트'가 주 직업이 되었다. 하지만 요새 업계가 워낙에 불황이라, 원고의 고료는 나날이 뚝뚝뚝 떨어지고
일거리도 거의 없어졌다. 그나마 아예 전담코너를 맡겨 일거리를 주던 '피앙새' 역시 얼마 전에 판매실적
부진을 이유로 편집장이 짤리고 코너도 폐지되어 일거리가 없어져 버렸다.

"하아…"

이제 도희에게 남은 것은 퇴직금조로 받은 150만원과 적금 깨고 남은 돈 350이 전 재산이었다. 나이 스물 
아홉에 전직 수습 기자 출신 프리랜서 칼럼니스트 경력으로는 어디 멀쩡한 회사 취업하기 힘들다. 그러던
와중에 새로 창간을 앞둔 모 잡지에서 '여성 섹스칼럼니스트' 라는 경력 하나를 보고 원고 청탁 제의를 준
것이다. 

당장 돈이 급했던 도희 입장에서야 거절할 이유가 없는 일이고 당장 OK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뭐
보통 영세한 출판사들 사정이야 뻔하니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빌라 건물 한 층에 입주한 출판사야 그러려
니 하겠다만…

사무실 안에 자욱한 땀내와 암내, 식사를 마친 이후의 음식물 냄새로 가득한 사무실, 그리고 자신을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고 지들끼리 쑥덕대는 남자 직원들의 모습은 후각과 시각, 청각을 총체적으로 자극하는
불유쾌한 경험이었다.

"홍찬일입니다. 아, 오시느라 수고했습니다. 여기 찾기 좀 어렵죠? 사무실도 참 누추하고"
"아, 네에. 아니에요. 금방 찾아왔습니다"
"어이, 최찬일이, 미안한데 커피 두 잔만 타와"
"예에"

멀쩡히 일하고 있는 한 남자 직원을 가리켜 반 말로 커피 타오라고 시키는 편집장의 첫 모습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생긴 외모 역시 비대한 체구와 저팔계 스타일 외모, 회색 머리 염색과 뿔테 안경에
입에 문 전자담배의 콜라보는 그야말로… 욕심 많은 악덕 사업주를 형이상화 한 결정체처럼 보였다. 뭐
어디까지나 첫 인상이 그렇다는 것 뿐이지만. 도희는 아예 그 편집장의 눈 대신 입술에 시선을 맞추고
대화를 진행했다.

"저희 잡지 스타일은 뭐 그렇습니다"
"아…네에"

새로 창간하는 남성 잡지라고 해서 GW나 엑스카이저를 생각했지만, 이들이 창간을 준비 중인 잡지는 음,
'본격 성인잡지'에 가까웠다. 그것도 멕시멈이나 스파키 같은 정도도 아니고 어디 신문 가판대 구석에 슥
꽂혀있을 법한 그런 3류 성인 주간지 느낌의.

'어쩔 수 없지'

솔직히 두어달 전 상황 같았더라면 그냥 못하겠다고, 미안하다고 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암만 그래도 나름
실명 걸어놓고 쓰는 섹스칼럼인데 나름의 격이 있는 잡지도 아니고 이렇게 대놓고 쌈마이 잡지에 쓸 수야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사실상 백수가 된 처지에 찬 밥 더운 밥 가릴 계제가 아니었고, 그저 실명 대신 다른 필명으로 쓰겠
다는 조건을 달아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계약서를 찬찬히 읽어보는 사이 편집장은 그녀에게 "그런데 칼럼
에 쓰시는 글은 모두 실제 경험이신가요?" 하는 참 뻔하면서도 유치하고 노골적인 질문을 해왔다.

"경험도 있고, 지어낸 이야기도 많고, 주변에서 소재를 제보 받아서 쓴 글도 있고, 뭐 그래요" 
"흐, 그래요. 전 그 예전에…일전에 그거 있죠? 스무살 연상 남자와의 원나잇 그거, 그게 좋았어요. 그 칼럼
보고 연락을 드린 겁니다"
"아…네, 감사합니다"

도희는 그저 빨리 이 편집장의 입냄새와 불쾌한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을 따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꼭 돈 10만원에 몸이라도 팔고 온 느낌이었다. 뻔하지. 
'여성 섹스 칼럼니스트' 라는 말에, 도희가 도착하기 전에 그들 사이에서 오갔을 그렇고 그런 대화들…
 
솔직히 이 일을 하면서 한 두번 겪은 경험도 아니고 종종 메일로 날아오는 원색적이고 유치한 비난과
노골적인 성희롱 멘트들에 비하면야 아무 것도 아니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우울하고 기분이 확
다운되고야 마는 것이다. 심지어 "몸 팔아 돈 버는 년이나, 지 섹스 경험썰 팔아 돈 버는 년이나 뭐가 
다르냐? 창녀 같은 년" 같은 지독한 비아냥을 들어본 경험까지 있으니까. 

도희는 기가 막히고 억울하고 서운했다.

정말 뭐 나쁜 짓이라도 한 건가? 그저 여자 입장에서, 여자의 눈으로, 때로는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신랄하게 여자들의 성을, 남자들의 성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것 뿐인데. 

'됐어 됐어, 신경꺼'

그래, 더러운 메일 만큼이나 힘을 불어넣어주는 메일도 많이 날아오지 않는가. 그나저나 그보다 진짜
고민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다. 일자리 문제도 문제고, 이번에 계약한 건의 경우 그쪽에서 요구한
글의 선정성 수위가 굉장히 높았다. 아차하면 글이 싸진다. 골치 아프다. 소재도 문제다.

적당히, 예전에 쓴 글들을 대충 각색, 짜깁기해서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새
필명을 쓰기로 했으니 그럴 수도 없다. 만에 하나 누가 표절 문제라도 제기하면 어쩐단 말인가. 별로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그러고보니 또 내 글의 스타일을 보고 누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어쩌지. 천하의
이도희, 이제는 막장까지 갔구나, 하고 손가락질이라도 당할 생각하니 두려웠다. 

'하지만 뭐 돈 앞에 장사 있나'

도희는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차창 밖을 보던 시선을 돌려 차 앞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룸미러로 
힐끔 자신을 쳐다보다 얼른 시선을 돌리는 택시기사를 발견했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 스커트를 조금
내려입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소재 하나 건졌다고. 

푸짐해진 아내의 외모 탓에 만성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중년의 택시기사와 우울한 묘령의 취업준비생,
그 둘의 공허한 마음 사이에 피어오른 짧은 춘정…

'그 돼지 편집장이 딱 좋아할 내용이네'
 
도희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왠지 모를 씁쓸함에 한없이 다운되는 기분을 느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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