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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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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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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차가 많이 막히네. 조금만 일찍 나올걸"

산소 가는 길이 막힌다. 주형은 핸들에 올린 손가락을 톡톡 튕기며 답답함을 달래었다. 조수석에 탄 아내
현숙은 뒷좌석에 탄 태준과 현주에게 한 모금 마신 생수을 건낸다.

"마실래?"
"안 먹어"
"엄마 마셔"

둘 다 짜증이 나있다. 제사만 지내고 바로 집에 갈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 산소 들렀다가 작은 할아버지 댁에
또 들러서 간다니 결국 집에 도착하면 오후 늦게나 될 테니까. 현숙은 생수를 든 손을 다시 무안하게 무릎
위로 가져오다가 문득 길가에서 꽃다발을 파는 아줌마들을 발견했다.

"하나 살까?"
"아이 됐어. 형이 사겠지"
"형수가 언제 저런거 생전에 한번을 사는거 봤어? 지갑 줘 봐"

조금 신경질적인 현숙의 말에 주형은 살짝 짜증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 답했다.

"뒤에 벗어놓은 쟈켓 안 주머니에 있어"
"현주야, 아빠 쟈켓에서 지갑 좀 꺼내줘 봐"
"여기"

엄마가 짜증난 목소리로 말하자 뿔 나있던 애들도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아빠 지갑을 꺼내준다. 현숙은
지갑에서 만원짜리들을 몇 장 꺼낸 다음 다가온 아줌마에게 물었다.

"얼마에요?"
"이거는 2만원이구요, 이거는 2만 5천원이에요"
"2만원짜리 주세요"

비싸기도 비싸다.

"감사합니다" 하는 아줌마의 말과 꽃다발을 건내받은 현숙은 꽃다발을 태준에게 건내주고 또 신세타령을
한다.

"아니 어쩜, 생전에 한 번을 응? 아니 큰 며느리면 큰 며느리 노릇을 해야지. 참. 눈치도 없고, 뭘 하나를
제대로 할 줄도 모르고. 생전에 전 한번을 똑똑히 못 부치니 원"

아내의 형수 흉 보기에 또 짜증이 나지만, 괜히 긁어봐야 싸움만 날 것이 뻔하기에 주형은 입을 다문다.
차는 여전히 빠질 줄을 모른다. 힐끔 확인하노라니 뒷따라 오던 형의 차는 보이지 않는다.




"어휴, 허리야"

묘지 거의 다 와서 거의 30분 넘게 밀리고, 주차할 곳 찾느라 또 한 세월 보내고. 차에서 내리니 허리가 다
뻐근하다. 차 뒤에 실었던 성묘 음식들이랑 돗자리 같은 것을 들고 주형과 기형의 가족은 할아버지 산소에
찾았다. 기형의 차에 탔던 어머니도 큰 손자 용준의 손을 잡고 제법 험한 산소의 계단을 올랐다.  

현숙과 은심이 묘석 위에 조촐하게나마 성묘상을 차렸고, 일행은 절을 했다. 절차가 끝나자 기형은 술을
음복하며 말했다.

"어휴, 이거 풀이 다 무성하네. 좀 와서 손을 보고 해야하는데 참"
"그러게. 참"

아버지 묘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자식이라고는 느즈막하게 본 둘 밖에 없는데 둘 다 먹고 살기 바쁘니 
성묘 하는 것도 1년에 한 번이 어렵다. 

"주형아 다음에 니가 한번 와서 이거 좀 베고 해라"
"내가 시간이 어딨어"
"임마 그래도 매년 내가 와서 그래도 잡초도 뽑고 다 했는데, 한번은 임마, 니가 해야지"
"봐서"

은근히 서운해하는 기형의 눈치. 힐끔 눈치를 보노라니 어머니는 아버지 옆 가묘 잔디밭에 앉아서 성묘
음식을 드시고 있었다.

"니도 좀 여유가 되면, 어머니 용돈도 좀 드리고 그래. 요새 형이 좀 어렵다. 한달에 그래도 돈 5만원도
간당간당해"
"아 그래도 달달이 내가 이십씩은 부치는데 뭘. 아니 근데 그렇게 어려워? 장사가 그렇게 안 돼?"
"어휴, 말도 마라. 아옘에프 때보다 더해. 거기에다 다음 달에 집 근처에 마트가 하나 또 들어온다는데
뭐 그거 들어오면 뭐 장사 더 안되겠지. 가게세도 올려달라고 그러는데 참"
"깝깝하네"
"힘들어"

답답한지 담배를 꺼내무는 기형.

"다시 펴? 끊었잖아"
"이거라도 안 하면 내가…"

둘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형수 은심이 사과를 깎아왔다.

"이거, 이거 좀 잡숴요"
"배는 없어?"
"아 그냥 먹어. 배는 어머니 드시라고 하고"
"노인네가 그걸 다 먹냐?"
"어머니한테 노인네가 뭐야. 애들 좀 줘. 아 이거 좀 드세요"
"어이구 네"

형수가 건낸 사과를 받아든 주형. 한 입 베어무니 달달하니 맛이 좋다.

"요즘에 당 수치는 어때?"
"맨날 똑같지 뭐"
"먹는걸 줄여. 배 어쩔거야. 거기다가 다시 담배까지… 뭐 죽을라고 그래?"
"죽으면 죽는거지"

깝깝한 형의 모습에 한숨을 쉬고 있노라니 기형이 현주를 보며 말했다. 

"현주는 뭐 다 컸네. 여전히 공부는 잘 해? 내년이면 고3인가?"
"쟤는 뭐, 걱정 안해. 생전에 속 한번 썩이는 일이 없는데. 문제는 태준이 저 놈이 걱정이지. 아휴 누구를
닮았는지 공부라고는 지질나게도 못해요. 학원비만 지미럴. 용준이 반만 하면 좋겠구만"
"어휴 말도 마라. 용준이 저 놈도 연애한답시고 아 지난 번에는 뭐 학점이 C, B, C, C 아주 그냥 확. 군대나 
가야 정신을 차리지"
"언제가는데?"
"슬슬 가야지. 1월에 간대나"
"참…허. 벌써 용준이가 군대를 가야되나"

흐뭇하게 조카 용준을 바라보다 그 옆의 어머니를 챙기는 은심에 문득 시선이 닿은 주형은 물었다.

"요새 형수는 뭐 둘째 이야기 안 해?"
"둘째는 무슨. 이 나이에 뭔 애야. 애 낳으면 뭐 누가 먹여살릴거야"
"형수 입장도 이해는 가, 솔직히"
"아 뭐 그야… 남의 자식 키우는게 어디 쉽나. 여자라면 지 배로 낳은 자식 키우고 싶은게 당연하지. 근데
어쩌겠어"
"애는 다 지 먹을거 갖고 태어난대. 잘 생각해 봐. 괜히 사람 가슴에 한 남기지 말고"
"몰라 임마. 여튼 치울거 치우자. 얘들아, 다 먹었냐?"

성묘한 자리를 치우고 아쉬운대로 온 가족이 들러붙어 잡초를 뽑았다. 내내 별로 표정이 안 좋았던 어머니의
표정이 그제서야 조금 밝아짐을 주형은 눈치챘다. 씁쓸했다.



"다음에 한번 시간내서 벌초라도 해야겠어"

신호를 받고 대기 중에 말하자 현숙은 "그러던지" 하고 하고 받았다. 그리고는 "피곤해" 하고 눈을 감았다.
4시를 향해 치닫는 나른한 오후의 후덥지근함에 모두 나른함을 느끼고 있었다. 피곤할만도 하지. 작은 할아
버지 댁으로 향하는 차 안, 애들은 모두 잠에 곤히 빠져들었다.

'피곤하다'

주형 역시 깊은 피로를 느꼈다. 명절에 한번 집에 다녀가면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다. 명절 음식 장만에
어른들 모시는 일에 아내도 피곤하고, 애들도 몇 시간씩 차 타려니 피곤하고, 운전에, 형 걱정에, 이래저래
집안 일들 걱정에 속 썩고, 명절에 나간 돈 걱정에 온갖 스트레스 덩어리들을 생각하며 운전대를 잡으려니
지치고, 피곤하고, 나른하다.

공원묘지 인근 도로를 지나 조금 뚫리는 듯 하던 길은 귀성차량들 때문에 다시 막히기 시작한다. 주형은
쏟아지는 피로에 긴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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