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은 운명의 그 날.
남자들은 아침부터 흡족하게, 보무 당당하게 한껏 바지를 배까지 끌어당겨 올려입고 화려한 꽃무니 패턴
셔츠로 자신을 강렬하게 어필합니다. 머리에는 무스를 뜨억 발라서 휙 뒤로 올빽으로다가 딱 넘기고 운전
할 때 쓰던 썬구라스를 딱 써주니 아따 거 세상에 끝장 나부러!
마누라한테는 "아 동참 모임이여 동창 모임. 1박 2일로 여행 다녀올텡게 그리 알어" 하고 나서는데 지갑을
딱 열어 두둑하게 모아놓은 여유자금 20만원에 마누라 지갑에서 꺼낸 신사임당 한 장이 추가되는디 아 이
거면 1박 2일간은 무사태평하겠지 싶어도 혹시 몰라 회사 법인 카드까지 쟁여넣는다. 크흠.
여자들은 아침부터 준비가 부산하다. 어제 미용실에서 각별히 더 빠글빠글 만 머리는 또 한번 드라이로
뽕을 넣고, 최근 부쩍 는 새치에 염색까지 했더니 참 하길 잘했다 싶어 마음이 뿌듯하다. 곰국도 다 끓여
놓았겠다 준비 완료. 빤쓰와 부라는 뭘 입나 한참을 고민했는데 빵꾸 뚫린 것보다는 그래도 누래진게 낫
겠지 싶어서 어제 제대로 삶아 빨았는데도 누런 끼는 아직 좀 찜찜하게 남았네. 허나 고짓거리야 불 끄고
하면 되겠지 싶어서 그걸로 하기로 한다. 웃도리와 티도 동창 모임 때 입을라고 시장 폐업 세일 때 사놓
았던 우아래 6만원(깎고 또 깎아 3만 5천원에 들고 온) 나비 티에 롱치마를 입으니 그래도 처녀적 태가 좀
나는 것도 같고 마음이 뿌닷한 것이 시상에 진작 이르고 살 것을 그랬다 싶다.
"곰국 다 끓여놓았으니 여튼 잘 챙겨먹어요. 찬영이 늦게까지 컴퓨터 하면 좀 못하게 하고"
"어이구 다 알아서 안 할까. 가서 돈 쓰지말구 다녀와"
"알았어요"
"세상에 이런 남편이 어딨냐, 1박 2일로 동창모임도 보내주고"
내 찬영이 막달 찼을 때보다도 더 불룩한 배를 툭 메리야스 밖으로 내놓은 남편을 보노라니 한숨이 푹
나오면서도, 거짓말 하고 떠나는게 마음 한 켠이 짠한게 미안하기도 하고 이게 뭔 미친 짓거린가 싶기도
하지만 '1년에 딱 한번, 앞으로 평생 언제 또 갈지 모르는 기회'라는 통장네 말에 그래 두 눈 꾹 감기로
했다.
혹여 누가 보기라도 할까 가구단지 뒷 편에 인적 드문 곳에 대놓고 사람들을 기다리는 버스. 아자씨들은
서로 통성명하고 담배 같이 태우며 길 한 켠에서 흐뭇한 미소짓고 타는 아지매들을 하나하나 훑어본다.
아줌마들은 하나같이 무슨 죄지은 사람 마냥 마후라에 썬글래스에 종종 걸음으로 벌써 저 골목 끝에서
부터 [ 남도 여행 ] 버스만 보고 서둘러 종종걸음으로 와 "여행가실 분 빨리빨리 타세요" 하는 까불까불
하게 생긴 남자의 인도대로 하나둘씩 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아지매들을 훑는 아자씨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대고 씩 웃어대는지. 이미
시간은 30분이 넘게 지체되었건만 아직도 사람들은 하나둘씩 그제서야 나타난다. 그야말로 코리안 타임
이건만 어느 누구 하나 급한 사람이 없다.
"하이고, 오늘은 왠 물이 와이래 픙퍼짐한 아지매 뿐잉교"
"아 우린 아자씨 아닌가"
"그름, 우리가 뭐 꼭 고거 때문에만 오나? 정 붙이고 놀라고 오는거지"
"정을 뭐할라꼬 붙이노?"
"아따 그 정이 그 정이 아니랑께요"
조선 팔도가 고거 생각 하나 앞에 지역감정을 뛰어 넘어 의기투합 하노라니 아 이것이야말로 국민통합
아니겠는가.
끝끝내 시어머니 병원 문제 때문에 못 온다고 최종 통보가 온 미경이 엄마 때문에 남자 스물, 여자 열
아홉이 모임이 됐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스페어로 항상 따라오는 쌕쉬한 도우미 은주가 있으니 이거
짝 안 맞아 큰일이라던 호식이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어 그녀 옆 자리에 앉는다고 선언한다. 저 뒤에
서있던 묻지마 베테랑 학수 아버지는 "저런게 호구여 호구" 하면서 혀를 차지만 그게 호식의 귀에 들릴
리는 없고 그렇게 버스에 초이스 타임이 도래한다.
이거야말로 복걸복이니 아지매들이 쭈루룩 창가 측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노라면 밖에선
제비로 뽑은 순번대로 아자씨들이 쭉 버스를 타 앉는데 얼굴을 가렸어도 몸매는 눈에 뵈건만 이것이
묘한 룰이 있노라니 한번 딱 뒷 좌석으로 넘어가면 다시 빠꾸는 안 되, 이러니 일단 이거다 싶은 아지
매가 앉아있으면 그 옆에 바로 딱 앉는게 수짜다.
암만 그래도 사십년 오십년 길거리 여자들을 눈으로 훑은 세월이 있다보니 척척척 자리를 앉아가는데
암만 몸매가 그럴싸해도 얼굴이 어이쿠 싶은 아지매도 있는가 하면 '시상에 복터졌네' 싶게 웃음이
허허허 터져나오는 곱상한 여사님이 앉아있는 케이스도 나온다. 물론 그거야 여자들도 마찬가지라
옆 자리에 누가 앉아, 하 거 떨리는 마음이 처녀적 생각도 나고
"이제 커튼 치우셔도 되는구마"
하고 덥썩 손을 잡는 옆 자리 남자의 손길에 고개를 돌려보니 배시시 부끄러운 웃음이 절로 아래 위로
터져나온다. 한편으로는 남편만도 못한 뚱씨에 썩 기분좋지 않는 케이스도 있지만 그래도 도착해서
짝짓기 기회가 또 한번 온다니 그거에 걸기로 하고 일단은 "안녕하세요" 하고 웃어보인다.
"출발!"
시작과 함께 신나는 삐리뽀뽀 뽕짝 음악이 온갖 추임새와 함께 요란하게 시작을 하노라니 어깨가 다
들썩들석 하는데 아까 그 이미 얼굴부터 까불까불하게 생겨갖고서는 아줌마들 버스로 인도하던 까불이
사회자 김봉필이 음악 소리 줄이더니 뜨억! 하고 등장한다.
"아이고 안녕하심미까 1박 2일동안 으이러분의 즐거운 시간을 확!!! 시라게 책임질 까불까불 확 까불
'까불이' 김봉필입니다. 뽕필이하고 불러주시면 되겠습니다. 여 앉은 남녀 스무 분의 쌕돌이 쌕순이
여러분, 이 버스가 뭔 버습니까. 아 말하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무우찌마 뻐스 아니겠슴미까? 하이코
벌써 다들 손에 손을 잡고 저기 앉은 아지매는 아 입 좀 다물어요 웃음이 멈추질 않네 그 입 말고!"
초장부터 쌕한 농을 던져대노라니 진도 빠른 커플들은 다들 벌써 어깨동부에 손에 손잡고 난리에
부르스를 춰댄다.
"아 그리고 이 순간부터 딱 1박 2일은 가족일은 잊습니다. 전화기 딱 끄고 잊는 겁니다잉? 그리고 뭐
마누라, 남편 생각 다 개나 주고, 지금은 옆에 앉은 그 분이 마누라고 남편입니다. 아시겠죠? 혹시 또
뭐 그짓말이 필요하다? 지금 집구석 마누라가 의심스러워서 옆에 사람 바꿔보라, 아니면 나는 타고
나기를 그짓말을 못한다? 그럼 전화기 다 가져오십쇼. 제가 다 대신 여러분 사연 만들어 드립니다.
이제 맘 놓고, 으열심히 놀아주십쇼 음악 갑니다!"
그렇게 버스는 들썩들썩 출발하고 1박 2일간의 뜨거운 아줌마 아저씨의 축제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