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휴…한심스러워. 그 나이 먹고, 그렇게 인생을 조지고도 컴퓨터에 손이 가냐? 손이 가? 밥이나 쳐먹어"
마누라의 빈정거림에 순간 불끈하지만 암만 그래도 지금은 도저히 그녀에게 덤빌 계제가 아니다. 얼른
모니터를 끄고 밥상머리에 앉지만 마누라의 바가지는 그 끝을 모른다.
"이름에 빨간 줄 가고, 멀쩡한 회사 짤리고, 이제는 취업도 안 되고, 애 앞길 막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뭐? 이 단칸방까지 털어먹으려고? 내 저 놈의 컴퓨터를 박살을 내야…"
"그만해"
그녀의 말을 막은 것은 내가 아니라 고등학생 아들 놈. 물론 내 편을 들어서가 아니라 그저 아침 나절부터
싸움박질하는 집구석이 싫어서겠지. 나는 묵묵히 밥을 떠 목구멍으로 넘긴다. 반찬이라곤 집에서 얻어온
총각김치에 며칠째 나오는지 모를 가지무침이 전부다.
"더 안 먹어?"
"먹을 반찬이 있어야지. 계란후라이 하나 없는데. 에이 씨"
"저 놈이 굶어봐야 정신을 차리던가 하지"
밥을 그냥 남긴 아들놈과 실랑이 하는 아내. 나보다 세 살 연상의, 쉰 다섯의 그녀는 요즘 들어서 더욱
늙어보인다. 나라에서 지급하는 헬릭서스를 꼬박꼬박 먹고 있음에도 결국 다가온 폐경 때문일까. 나는
묵묵히 계속 해서 숟가락을 옮긴다.
"반찬도 좀 먹으면서 먹어"
"어"
미운 정인지, 마누라는 툴툴대면서도 맨 밥만 떠먹는 내 밥 숟가락에 가지 하나를 올려준다. 그것을 또
말없이 먹는다. 힐끔 보니 그녀의 밥그릇에는 밥이 반도 채 차지 않았다. 공장 나가서 일하려면 조금 더
먹어여 할텐데.
"더 먹지 그래. 그거 먹고 어떻게 힘을 써"
"어이구, 주제에 내 걱정을 다 하네. 진짜 내 걱정이 되면, 일자리나 찾아봐 이 양반아"
한숨만 푹푹 쉬던 그녀는 그나마의 밥 숟갈도 놓고, 내가 밥 그릇을 비우자 밥상을 들어 얼른 거실로
내가서 후다닥 치우고 출근을 준비했다. 그녀가 출근을 하고나면, 난 그녀가 퇴근할 때까지 12시간의
자유다.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한 11시간 30분의 혹독한 노동…그리고 나라에서 지급하는 D 생활권…
불과 25년 전만 해도 세상은 이렇지 않았다.
민주주의자
[ 제목 : 요즘 세상에 민주주의자가 어딨냐 븅신들아? ]
도발적인 제목에 낚여서 홀로터치로 클릭을 한다. 5년도 넘은 1세대 홀로터치답게 깜빡임 현상 덕분에
한번 다른 글을 클릭했다. 손바닥을 흔들어 뒤로 간 다음에야 다시 그 글을 클릭하는데 성공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본문은 더욱 가관이었다.
[ 무슨 2020년대 후반도 아니고;;; 진심으로 민주주의 외치는 병신들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 사실상
우리나라에선 7.3 운동 이후로 진성 민주주의는 계보가 끊긴거나 다름없어 븅신들아 ]
여기있다 병신 새끼야, 를 외치고 싶지만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떨리는 손으로 댓글들을 또
읽어본다.
- 정말 없을거 같냐? 그럼 왜 정부에서 안보원을 안 없애냐? 지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줄 알아요;
+ 솔직히 내 생각에도 진짜 나이 쳐먹은 꼰대들 아닌 다음에야 젊은 층 중에 민주주의자가 있을까?
- 윗 댓글 병신아, 젊은 층만 슈퍼넷 하냐?
- 민주주의자가 정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여튼 조심하는게 맞지 않겠습니까. 제 2의
7.3 사태가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는거고. 민주주의자들은 바로 그런 방심의 순간에 나타나는
겁니다. 물론 저도 요즘같은 세상에 이기적인 개인의 권리를 앞세우는 민주주의자가 얼마나 있을까
싶긴 합니다만 조심해야죠. 여튼 신고는 안보원(Hnnt::stnc.mm.2co.kk)으로!
- 윗 댓글 추천
+ 지랄들 났다;;;;;;;병신들아 국민이 있고 나라가 있는거지 나라가 있고 국민이 있는거냐? 그리고
쟤는 이기주의자와 민주주의자의 뜻도 모르는 병신이네
- 윗 놈 신고했다
- 요 위에 봐라; 아 요즘 왜이렇게 민주주의자 새끼들이 많냐?
- 미친 놈들;; 아 진짜 답 없는 민주벌레 새끼들;;
세상이 바뀌었다. 사실 내가 누리던 '민주주의의 세계'에서도 이미 나라의 주권은 국민의 것이 아니란
자조적인 비아냥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이제는 법적으로 더이상 나라의 주권은 국민의 것이 아니다.
아니 아예 그런 문장 자체가 없다. 이 나라 헌법 제 1조 1항은 다음과 같다.
'모든 국민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헌신한다'
뭐 이 문장 자체로는 그리 흠 잡을 곳이 없다만… 여튼 민주주의 제도는 폐기되었고, 현재 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신 국가주의'다.
뭐 이 개념에 대해서도 깊게 파고 들어가면 꽤나 심오한 이야기라서 맨날 슈퍼넷에서 떠들어 제끼고
언론에서도 맨날 니가 옳네 내가 옳네 하면서 주구장창 싸우지만 그건 뭐 중요한게 아니고(우리 시절
에도 '민주주의'에 대해서 맨날 서로 자기 말이 옳다며 탁상공론 하지 않았던가) 간략하게 말하지면,
그냥 '개인'보다 '국가'를 더 상위에 두며, '국민'보다는 '지도자'들의 의견을 더 중시하는 사상이다.
'시대 배경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아니, 적어도 '우리 세대'에게는 영원불멸할 것 같았던, 그리고 당연하고도 보편적 '진리'
처럼 생각했던 사상인 '민주주의'는 지난 20여년간 서서히 폐기 수순을 밟았다. 거대한 변혁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역시나 세계 3차대전이었다.
북미대륙의 11개 주요 대도시와 러시아 땅의 1/5, 중동 거의 전 지역, 통일 인도의 구 파키스탄 지역이
방사능 오염 또는 싹쓸이 폭격으로 인해 초토화 된 폐허가 되었고, 전 인류의 20%에 이르는 어마어마
한 대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전쟁이 끝났지만…
진정한 대참사는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 전 세계적 식량부족과 대아사, 그리고 '식량 전쟁'에서 발생
했다. 만약 중국의 손혁 박사가 방사능 오염에서도 안전한 '생명쌀'과 이후 이어진 수많은 대방사능
안전 식물 종자들의 육종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아마 인류의 수명은 거기에서 다했을 런지도 모른다.
또한 북미연합에서 인간게놈 분석을 통해 만들어낸 방사능 치유제제 '제네릭서스'의 부가적인 효과
-유전자 단위에서의 이상·열성 보완-는 다소간의 '부작용 아닌 부작용(노화 완화 및 성장 촉진)'을
유발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인류를 방사능의 공포에서 구원해냈다.
하지만 전쟁은 인류의 삶을 많은 곳에서 변화시켰다. 아주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기존의 그 어떤
전쟁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참사 앞에 강력한 국가의 통제력은 국가 및 그 국민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작용했고, 인권이니 자유니 하는 민주주의의 많은 요소들은 공동체와 통제 앞에서 우선순위
에서 한참이나 밀려났다.
무엇보다 처참한 현실 앞에 사람들 스스로부터가 '우리들끼리 치고 박으며 조금씩 나아가기'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를 간절히 바랬다.
'뭐, 당장 나부터가 그랬고'
3차대전과 그 이후의 대혼란을 거치면서도 온존히 국가의 형태를 남긴 나라 대부분은-북미연합과
유럽 몇 개 국가 정도를 제외하면-거의 독재 또는 장기 계엄령 형태를 빌린 사실상의 독재를 인정한
나라들이었다. 당장 우리나라부터가 그랬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혼란도 많았다.
독재를 인정할 수 없다며 벌인 많은 민주주의자들의 '혁명'은 보기좋게 실패하여 모두가 '반란'으로
규정되었으며, 특히나 민중과 군사 쿠데타가 결합된 2027년의 '7.3 사태'는 그 규모와 여파가 매우
컸다. 물론 실패하였고 그래서 더욱 '민주주의'가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불온 사상'으로 규정지어
지는데 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래도 거의 파시즘으로 치닫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는 했지'
뭐 그랬다. 국가에서도 그 뜻을 존중하여 현재는 7.3 사태를 '의거'에 준하는 예우를 하고는 있다만,
어쨌든 나라 전반적으로 '우리 시대'와는 세상과 사상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에휴"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누웠다. 사상범 전과자 백수의 삶은 참 답답하다. 취업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허허.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발언이라… 솔직히 그리 별 옹호도 아니었는데.
그냥 슈퍼넷의 픽로그에 사상의 자유에 대한 20여년 전 옛날 얘기를 좀 했을 뿐인데 나는 안보원에
신고당했고, 법에 의해 처벌받았다.
- 민주주의? 이거 완전 미친 새끼네;;; 요즘 세상에 민주주의라니 완전;;;
- 요즘에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어딨냐던 새끼들 다 어디갔냐. 여기 있네 씨발
- 와 이 새끼 진짜 민주주의자 아님?
- 민주주의 신봉자로 신고했습니다"
[+] 정치제도 이야기 좀 했다고 민주주의자라니요;;;;
…그때 일을 떠올려보니 아찔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흐흐, 허허허허 참"
사실 말이 그렇지 나라고 해서 무슨 과거에 운동권이나 데모꾼 이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난
TV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 "저런 새끼들 때문에 나라가 발전을 못하는거야"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었고, 젊은 나날 소위 말하는 '빨갱이'들을 보면 치를 떠는 사람이었다.
1.4 후퇴 때 북에서 피난을 내려와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 할아버지가 평생토록 북녁의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이북의 그 빨갱이들을 보며 치를 떨던 영향도 있었고 말이다. 그 탓에 친북이네 좌파네
하는 사람들마저 다 싫어했었지.
'때가 어느 땐데' 하면서 종북이니 주사파니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가 차기도 했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내가 그런 처지가 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실패한 사상'이 된
오늘날. '슈퍼넷'이 아니라 '인터넷'이던 시절, 인터넷에 종종 보이던 소위 그 '종북'들이 이런 심정이
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 새끼들이 그토록 뻔뻔하게도 고개를 들고 다녔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 새끼들을 옹호하고픈 마음은 없다. 우리 할아버지, 그 인자한 노인이
오죽하면 유언으로 "반공"을 외쳤겠느냔 말이다.
…그저 심정적으로 처지가 비슷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서 문득 드는 생각일 따름이다.
뭐, 또 어찌보면 업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3차 대전 직후, 기회를 타고 북진통일을 해야
한다고 외치던 노인들을 향해 '저런 꼴통들이 있나' 하고 비웃음을 날리던 시절…
술자리에서 김정일이 목을 따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그들의 모습과, 언젠가 "정치인 욕도 마음껏
하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하고 슈퍼넷에서 떠들던 나는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요즘 애들이 보기에는
나야말로 내가 욕하던 '빨갱이' 혹은 '수구꼴통'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요즘에는 아들의 중학교 시절에 배우던 '국가' 과목 교과서를 종종 펴본다. 그리고 내가 배우던 시절의
그것과 다른 내용의 그것을 보며 '사상의 차이'를 느낀다. 그러면서 가벼운 좌절을 겪는다. 정말로 한
사람에게 주입된 사상은 정말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정말로 '인터넷' 시절을 자꾸 회상하게 된다. 내 사상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요즘에는 참 많이 헷깔
린다. 정말로 혼란스럽다. 물론…
그런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에 일자리나 찾아보라는 마누라의 말이 가장 '진리'에 가까운 말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마누라의 빈정거림에 순간 불끈하지만 암만 그래도 지금은 도저히 그녀에게 덤빌 계제가 아니다. 얼른
모니터를 끄고 밥상머리에 앉지만 마누라의 바가지는 그 끝을 모른다.
"이름에 빨간 줄 가고, 멀쩡한 회사 짤리고, 이제는 취업도 안 되고, 애 앞길 막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뭐? 이 단칸방까지 털어먹으려고? 내 저 놈의 컴퓨터를 박살을 내야…"
"그만해"
그녀의 말을 막은 것은 내가 아니라 고등학생 아들 놈. 물론 내 편을 들어서가 아니라 그저 아침 나절부터
싸움박질하는 집구석이 싫어서겠지. 나는 묵묵히 밥을 떠 목구멍으로 넘긴다. 반찬이라곤 집에서 얻어온
총각김치에 며칠째 나오는지 모를 가지무침이 전부다.
"더 안 먹어?"
"먹을 반찬이 있어야지. 계란후라이 하나 없는데. 에이 씨"
"저 놈이 굶어봐야 정신을 차리던가 하지"
밥을 그냥 남긴 아들놈과 실랑이 하는 아내. 나보다 세 살 연상의, 쉰 다섯의 그녀는 요즘 들어서 더욱
늙어보인다. 나라에서 지급하는 헬릭서스를 꼬박꼬박 먹고 있음에도 결국 다가온 폐경 때문일까. 나는
묵묵히 계속 해서 숟가락을 옮긴다.
"반찬도 좀 먹으면서 먹어"
"어"
미운 정인지, 마누라는 툴툴대면서도 맨 밥만 떠먹는 내 밥 숟가락에 가지 하나를 올려준다. 그것을 또
말없이 먹는다. 힐끔 보니 그녀의 밥그릇에는 밥이 반도 채 차지 않았다. 공장 나가서 일하려면 조금 더
먹어여 할텐데.
"더 먹지 그래. 그거 먹고 어떻게 힘을 써"
"어이구, 주제에 내 걱정을 다 하네. 진짜 내 걱정이 되면, 일자리나 찾아봐 이 양반아"
한숨만 푹푹 쉬던 그녀는 그나마의 밥 숟갈도 놓고, 내가 밥 그릇을 비우자 밥상을 들어 얼른 거실로
내가서 후다닥 치우고 출근을 준비했다. 그녀가 출근을 하고나면, 난 그녀가 퇴근할 때까지 12시간의
자유다.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한 11시간 30분의 혹독한 노동…그리고 나라에서 지급하는 D 생활권…
불과 25년 전만 해도 세상은 이렇지 않았다.
민주주의자
[ 제목 : 요즘 세상에 민주주의자가 어딨냐 븅신들아? ]
도발적인 제목에 낚여서 홀로터치로 클릭을 한다. 5년도 넘은 1세대 홀로터치답게 깜빡임 현상 덕분에
한번 다른 글을 클릭했다. 손바닥을 흔들어 뒤로 간 다음에야 다시 그 글을 클릭하는데 성공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본문은 더욱 가관이었다.
[ 무슨 2020년대 후반도 아니고;;; 진심으로 민주주의 외치는 병신들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 사실상
우리나라에선 7.3 운동 이후로 진성 민주주의는 계보가 끊긴거나 다름없어 븅신들아 ]
여기있다 병신 새끼야, 를 외치고 싶지만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떨리는 손으로 댓글들을 또
읽어본다.
- 정말 없을거 같냐? 그럼 왜 정부에서 안보원을 안 없애냐? 지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줄 알아요;
+ 솔직히 내 생각에도 진짜 나이 쳐먹은 꼰대들 아닌 다음에야 젊은 층 중에 민주주의자가 있을까?
- 윗 댓글 병신아, 젊은 층만 슈퍼넷 하냐?
- 민주주의자가 정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여튼 조심하는게 맞지 않겠습니까. 제 2의
7.3 사태가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는거고. 민주주의자들은 바로 그런 방심의 순간에 나타나는
겁니다. 물론 저도 요즘같은 세상에 이기적인 개인의 권리를 앞세우는 민주주의자가 얼마나 있을까
싶긴 합니다만 조심해야죠. 여튼 신고는 안보원(Hnnt::stnc.mm.2co.kk)으로!
- 윗 댓글 추천
+ 지랄들 났다;;;;;;;병신들아 국민이 있고 나라가 있는거지 나라가 있고 국민이 있는거냐? 그리고
쟤는 이기주의자와 민주주의자의 뜻도 모르는 병신이네
- 윗 놈 신고했다
- 요 위에 봐라; 아 요즘 왜이렇게 민주주의자 새끼들이 많냐?
- 미친 놈들;; 아 진짜 답 없는 민주벌레 새끼들;;
세상이 바뀌었다. 사실 내가 누리던 '민주주의의 세계'에서도 이미 나라의 주권은 국민의 것이 아니란
자조적인 비아냥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이제는 법적으로 더이상 나라의 주권은 국민의 것이 아니다.
아니 아예 그런 문장 자체가 없다. 이 나라 헌법 제 1조 1항은 다음과 같다.
'모든 국민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헌신한다'
뭐 이 문장 자체로는 그리 흠 잡을 곳이 없다만… 여튼 민주주의 제도는 폐기되었고, 현재 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신 국가주의'다.
뭐 이 개념에 대해서도 깊게 파고 들어가면 꽤나 심오한 이야기라서 맨날 슈퍼넷에서 떠들어 제끼고
언론에서도 맨날 니가 옳네 내가 옳네 하면서 주구장창 싸우지만 그건 뭐 중요한게 아니고(우리 시절
에도 '민주주의'에 대해서 맨날 서로 자기 말이 옳다며 탁상공론 하지 않았던가) 간략하게 말하지면,
그냥 '개인'보다 '국가'를 더 상위에 두며, '국민'보다는 '지도자'들의 의견을 더 중시하는 사상이다.
'시대 배경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아니, 적어도 '우리 세대'에게는 영원불멸할 것 같았던, 그리고 당연하고도 보편적 '진리'
처럼 생각했던 사상인 '민주주의'는 지난 20여년간 서서히 폐기 수순을 밟았다. 거대한 변혁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역시나 세계 3차대전이었다.
북미대륙의 11개 주요 대도시와 러시아 땅의 1/5, 중동 거의 전 지역, 통일 인도의 구 파키스탄 지역이
방사능 오염 또는 싹쓸이 폭격으로 인해 초토화 된 폐허가 되었고, 전 인류의 20%에 이르는 어마어마
한 대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전쟁이 끝났지만…
진정한 대참사는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 전 세계적 식량부족과 대아사, 그리고 '식량 전쟁'에서 발생
했다. 만약 중국의 손혁 박사가 방사능 오염에서도 안전한 '생명쌀'과 이후 이어진 수많은 대방사능
안전 식물 종자들의 육종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아마 인류의 수명은 거기에서 다했을 런지도 모른다.
또한 북미연합에서 인간게놈 분석을 통해 만들어낸 방사능 치유제제 '제네릭서스'의 부가적인 효과
-유전자 단위에서의 이상·열성 보완-는 다소간의 '부작용 아닌 부작용(노화 완화 및 성장 촉진)'을
유발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인류를 방사능의 공포에서 구원해냈다.
하지만 전쟁은 인류의 삶을 많은 곳에서 변화시켰다. 아주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기존의 그 어떤
전쟁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참사 앞에 강력한 국가의 통제력은 국가 및 그 국민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작용했고, 인권이니 자유니 하는 민주주의의 많은 요소들은 공동체와 통제 앞에서 우선순위
에서 한참이나 밀려났다.
무엇보다 처참한 현실 앞에 사람들 스스로부터가 '우리들끼리 치고 박으며 조금씩 나아가기'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를 간절히 바랬다.
'뭐, 당장 나부터가 그랬고'
3차대전과 그 이후의 대혼란을 거치면서도 온존히 국가의 형태를 남긴 나라 대부분은-북미연합과
유럽 몇 개 국가 정도를 제외하면-거의 독재 또는 장기 계엄령 형태를 빌린 사실상의 독재를 인정한
나라들이었다. 당장 우리나라부터가 그랬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혼란도 많았다.
독재를 인정할 수 없다며 벌인 많은 민주주의자들의 '혁명'은 보기좋게 실패하여 모두가 '반란'으로
규정되었으며, 특히나 민중과 군사 쿠데타가 결합된 2027년의 '7.3 사태'는 그 규모와 여파가 매우
컸다. 물론 실패하였고 그래서 더욱 '민주주의'가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불온 사상'으로 규정지어
지는데 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래도 거의 파시즘으로 치닫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는 했지'
뭐 그랬다. 국가에서도 그 뜻을 존중하여 현재는 7.3 사태를 '의거'에 준하는 예우를 하고는 있다만,
어쨌든 나라 전반적으로 '우리 시대'와는 세상과 사상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에휴"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누웠다. 사상범 전과자 백수의 삶은 참 답답하다. 취업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허허.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발언이라… 솔직히 그리 별 옹호도 아니었는데.
그냥 슈퍼넷의 픽로그에 사상의 자유에 대한 20여년 전 옛날 얘기를 좀 했을 뿐인데 나는 안보원에
신고당했고, 법에 의해 처벌받았다.
- 민주주의? 이거 완전 미친 새끼네;;; 요즘 세상에 민주주의라니 완전;;;
- 요즘에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어딨냐던 새끼들 다 어디갔냐. 여기 있네 씨발
- 와 이 새끼 진짜 민주주의자 아님?
- 민주주의 신봉자로 신고했습니다"
[+] 정치제도 이야기 좀 했다고 민주주의자라니요;;;;
…그때 일을 떠올려보니 아찔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흐흐, 허허허허 참"
사실 말이 그렇지 나라고 해서 무슨 과거에 운동권이나 데모꾼 이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난
TV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 "저런 새끼들 때문에 나라가 발전을 못하는거야"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었고, 젊은 나날 소위 말하는 '빨갱이'들을 보면 치를 떠는 사람이었다.
1.4 후퇴 때 북에서 피난을 내려와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 할아버지가 평생토록 북녁의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이북의 그 빨갱이들을 보며 치를 떨던 영향도 있었고 말이다. 그 탓에 친북이네 좌파네
하는 사람들마저 다 싫어했었지.
'때가 어느 땐데' 하면서 종북이니 주사파니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가 차기도 했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내가 그런 처지가 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실패한 사상'이 된
오늘날. '슈퍼넷'이 아니라 '인터넷'이던 시절, 인터넷에 종종 보이던 소위 그 '종북'들이 이런 심정이
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 새끼들이 그토록 뻔뻔하게도 고개를 들고 다녔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 새끼들을 옹호하고픈 마음은 없다. 우리 할아버지, 그 인자한 노인이
오죽하면 유언으로 "반공"을 외쳤겠느냔 말이다.
…그저 심정적으로 처지가 비슷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서 문득 드는 생각일 따름이다.
뭐, 또 어찌보면 업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3차 대전 직후, 기회를 타고 북진통일을 해야
한다고 외치던 노인들을 향해 '저런 꼴통들이 있나' 하고 비웃음을 날리던 시절…
술자리에서 김정일이 목을 따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그들의 모습과, 언젠가 "정치인 욕도 마음껏
하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하고 슈퍼넷에서 떠들던 나는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요즘 애들이 보기에는
나야말로 내가 욕하던 '빨갱이' 혹은 '수구꼴통'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요즘에는 아들의 중학교 시절에 배우던 '국가' 과목 교과서를 종종 펴본다. 그리고 내가 배우던 시절의
그것과 다른 내용의 그것을 보며 '사상의 차이'를 느낀다. 그러면서 가벼운 좌절을 겪는다. 정말로 한
사람에게 주입된 사상은 정말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정말로 '인터넷' 시절을 자꾸 회상하게 된다. 내 사상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요즘에는 참 많이 헷깔
린다. 정말로 혼란스럽다. 물론…
그런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에 일자리나 찾아보라는 마누라의 말이 가장 '진리'에 가까운 말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