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카지노 원정기(http://stylebox.egloos.com/2045375 )
눈을 뜨니 어느새 10시 반. 알람을 9시에 맞춰놓았음에도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피곤한게 당연하지만.
아침에 샤워를 마치고 짐을 싸서 호텔 체크아웃을 했다. 호텔의 유료송영 차량을 타고 100달러를 내고 공항
까지 가서 일단 짐을 맡겼다. 2박 4일 일정, 새벽 비행기라서 탑승수속이 시작되는 밤 12시까지 약 12시간의
자유다.
마카오의 카지노들은 공항이나 페리 터미널 등의 주요 장소마다 카지노 호텔로 손님을 무료로 데려다 주는
셔틀버스를 운행 중인데 그렇게 베네치안 카지노로 다시 향했다.
쩐을 확인해본다. 수하물 보관비용이나 택시비, 밥값, 낮에 마카오 시내 구경 좀 하고, 만에 하나 여유 등을
감안했을 때 내가 쓸 수 있는건 약 1,000 홍콩달러.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걸로 뭔 놈의 카지노. 잠깐 슬롯
머신이나 하고 점심 먹을 때까지 놀다가 슬슬 지루해져서 샌즈 카지노로 갔다.
베네치안 카지노가 고급스러우면서도 캐쥬얼한 분위기라면 샌즈 카지노는 조금은 본격적인 분위기. 그렇
다고 막 어두운 분위기는 아니고, 최소한 관광객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그렇다는 말이다. 대충 실시간 바카라 머신으로 좀 놀다가 딴 돈으로 거기 2층의 뷔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격은 약 2만원이고 맛도 품질도 그냥 딱 고 정도 된다.
오후에는 잠깐 세나도 광장에 가서 에그 타르트를 2개 먹었다. 에그 타르트로 유명한 가게도 바로 근처에
하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거기보다 그냥 세나도 광장 초입에 있는 육포 가게 옆의 에그 타르트가 훨씬 더
맛있는 것 같다. (유명한 맛집 치고 진짜 맛나게 먹은게 뭐 얼마나 있는가)
그리고는 그렇게 한 7시까지 마카오 시내를 정처없이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나는 딱히 유명 여행지가 아닌
그 동네 사람들이 사는 곳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는 편인데 그러다 우연찮게 폰테16 카지노까지 방문했다.
그런데 여기는 다른 대형 카지노 체인들과는 다르게 종업원들이 영어를 진짜 못한다. 심지어 한 이쁘장한
여자 매니저는 내가 현지인인 줄 알았는지 카지노 멤버십 카드 제안을 하려다가 내가 영어로 되묻자 바로
크게 당황하며 어리버리하다 내빼지 뭔가. 손님들도 거의 다 현지인들인 듯 하고 전체적으로 로컬 카지노
스타일이다. 다만 요즘 무슨 마이클 잭슨 관련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라 카지노 내에서 계속 잭슨의 노래를
틀어서 그건 좋았다.
그러다 이제 다시 택시를 타고 시티 오브 드림 카지노로 향했다. 호텔 카지노 안 명품 매장들에서 쇼핑 좀
하다가… 옛날 추억이 떠올랐다. 옛날에 거기 명품 매장에서 전 여친한테 가방을 사주려다가 카드가 한도
초과가 되는 바람에 민망하게 결국 못 사준 적이 있었다. 그냥 그땐 웃어 넘기고 말았는데, 몇 년이 지났음
에도 내 처지는 크게 바뀐게 없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그러고나니 흥이 좀 깨졌다.
쇼핑이고 나발이고 그냥 카지노 가서 겜블이나 하다 시간되면 비행기 타고 가자, 하고 그렇게 베네치안
카지노로 다시 갔다. 기분이 별로였다.
이제 어느덧 8시다. 돈도 계속 슬금슬금 쓰다보니 남은 돈은 꼴랑 300달러. 솔직히 그냥 다 잃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까 명품들 생각하니 기분도 좀 잡쳤고, 그냥 내 팔자가 한심스러웠다. 도대체 난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건가. 백수 새끼가 정신 못 차리고 있구나, 집에 가면 이제 한심스러운 미래만이 남아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빅휠이나 하다 가기로 마음 먹었다.
빅휠이 뭐냐면 예능 프로 같은 데에 흔히 등장하는 방식의 큰 회전판이고, 회전판에는 각각 1, 3, 5, 10, 20,
45가 초딩 방학 시간표 마냥 수십개로 나뉘어 빼곡하게 돌아가며 적혀있다. 그리고 내가 돈을 건 배수의
숫자가 나오면 그대로 돈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3에 돈을 100달러 걸었는데 정말로 3이 나오면 300달러를 주는 것이다. 1에 걸면 100을,
10에 걸면 1,000달러를 준다. 반대로 다른 숫자가 나오면 그대로 꽝.
다만 그 회전판에 써있는 숫자의 한 50%는 1이다. 그리고 다른 숫자는 배율이 높은 만큼 그만큼 나올
확률이 낮다. 45가 나올 확률은 그만큼 낮다. 어지간해서는 거의 안 나온다고 봐야된다. 45는 물론이거
니와 당장 10배, 20배만 해도 거의 안 나온다고 봐야된다.
하지만 그런 만큼 1배 위주로, 가끔 3배에 배팅하면 돈을 잃을 확률도 낮다. 해볼만한 거 아닌가. 우선
300달러를 칩으로 환전했다. 미니멈 배팅이 100달러니 100달러짜리 칩을 3개 받았다.
빅휠 머신은 몇 개 있지만, 사람이 직접 손으로 돌리는 빅휠은 그 넓은 베네치안 카지노 안에도 딱 하나
뿐이다. (내가 아는 한). 게다가 그 위치도 윗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 코너 자리라 아주
좋다. 그럼에도 손님이라고는 딱 한 명 뿐이었다.
내 옆 자리에 앉은 그 손님은 외모는 참 안경 쓴 30대 초반의 덕후 스타일이었지만 입담이 무척 좋았다.
쭝국말로 떠드니 무슨 말인진 몰라도 여자 딜러 둘과 정장을 입은 동글동글하게 생긴 남자 매니저가
계속 빵빵 터진다. 난 카지노 돌면서 이렇게 손님과 딜러들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테이블은 보다보다
처음 봤다.
이제 편의상 그 입담 좋은 덕후씨를 덕훈이라고 부르자. 덕훈이는 전형적인 '잃지 않는 도박'을 하는
타입이었다.
무슨 소린가 하면 철저히 1배에만 배팅을 하고, 그렇게 100을 걸어서 100을 따면 그 딴 100을 다시
1배에 걸고. 잃으면 다음 판에 또 1배에 200을 배팅해서 잃은 돈을 만회하고. 물론 종종 3배에도 배팅
하고, 1배에 200이나 300을 배팅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철저히 주식의 물타기 기법과
비슷하게 배팅을 했다.
사실 누구나 머리로는 생각하는 방식이지만 의외로 막상 카지노에서 이런 방식으로 배팅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그가 솔직히 감탄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배팅은 꽤 성과가 좋았다. 따고 잃고 따고 잃고 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하게
따고는 있었다. 여자 딜러가 웃으면서 그의 방식에 대해 무어라 농담을 하는 듯 했지만, 덕훈은 또
농담으로 받으면서 계속 그 방식을 고수했다. '쫀쫀한' 방식일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이론적으론'
훌륭한 방식임에 분명했다.
나는 그와 비슷하게 따라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계속 1에, 아주 가끔 3에 걸었고 아주 종종
200달러씩 배팅을 하긴 했지만 아주 조심스러운 1에 100씩 배팅을 지속했고, 또 덕훈의 배팅을 따라
했다. 그가 1에 걸면 나도 1에 걸고, 그가 종종 3에 걸면 나도 3에 거는 것이다.
이제 내 판돈은 500이 되었다. 다음 판은 잃었다. 다음 판은 다시 1배에 100을 걸어서 땄다. 그 다음
판은 그냥 한판 쉬었다. 그 다음 판에 역시 1에 200을 걸어서 땄다. 슬슬 가진 돈이 불어나기 시작
했다.
그러다 소지한 칩의 총액이 800달러가 되었다. 500짜리 칩 하나랑 100짜리 칩 3개일 뿐이지만 돈으로
치면 아까 300으로 시작했으니 500달러를 딴 셈이다. 상승세라 슬슬 흥이 돋기 시작하지만 난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오래 하다보면 집중력을 잃는다. 잠시 5분 정도 인근을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재미나는게, 카지노 안을 둘러다보면 룰렛이나 식보 등의 경우, 지난 게임의 숫자가 각각의
테이블마다 미니 전광판에 표시가 된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이건 의미가 없다. '확률 독립의 법칙'
이라고 하던가. 지난 판에 무슨 숫자가 나왔던 간에 다음 판에 무슨 숫자가 나올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심리상 지난 판에 뭐 계속 같은 색깔이나 어떤 패턴이 발견되면 그에 맞춰 배팅을
조정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하는 빅휠은 그 과거 판의 족보가 표시되지 않는다. (물론 룰렛이나 식보
와는 달리 빅휠의 경우 각 숫자별 확률이 크게 상이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무모한 도전 욕심을 꺾어버릴
위험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라도 족보 표시를 안 하는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럼에도 매니저는 계속 그 족보로 보이는 숫자를 적어서 어디론가 보고를 하는 듯 했다. 그리고 무엇
보다 희한한 것은 사람들 분위기가 안전빵으로 계속 1에만 몰리면 3이나 5, 혹 그 이상의 숫자가 뜨고,
반대로 사람들이 너무 무모한 배팅(고액으로 1에 배팅하거나, 반대로 너무 높은 배율의 숫자에 배팅)을
하면 역시나 1이 나오고야 만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들이지만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이런 가설을 세워보았다. 그 많은
테이블과 게임의 종류들이 있는데 왜 사람 손으로 돌리는 빅휠은 유니크하게 운영될까. 만약 그 휠을
돌리는 매니저가 일종의 '기술자'라서, 마음 먹은 숫자대로 숫자가 나올 수 있게 한다거나 혹은 어떤
인위적인 조작이 외부에서 가해지는 바람에 게임판의 어떤 분위기에 따라 숫자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설마 그리 쪼잔한 짓을 할까, 했지만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 빅휠의 위치는 정말 좋은 위치다. 카지노
입장에서는 분명 적당히 손님 몰이는 물론이요 돈도 벌어줘야 하는 위치다. 그토록 돈을 펑펑 쓰는
듯 하지만 사람들이 적은 깊은 새벽 시간에는 슬롯머신도 많이 꺼두는게 또 카지노다. 분명 카지노
측에서도 "이 입지의 테이블에서는 그래도 얼마얼마 정도를 벌어줘야 한다" 같은 나름의 룰이 있을거
아닌가. 겜블러 중에도 타짜들이 있는데 딜러 중에 일종의 회전 기술자가 없다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의심병이지만, 이런 병신같은 가설을 세워놓고 게임을 하노라니 사뭇 또 재밌다.
이제는 더이상 '다음 판에 무슨 숫자가 나오게 해주세요 신님!'이 아니라, 게임의 참여자들과 그들이
칩을 거는 배율에 따라 내가 돈을 거는 나름의 방식을 만들게 된 것이다.
새로운 참가자가 생겨나 판의 흐름이 흔들리면 판을 쉬고, 무모한 배팅을 하는 사람이나 사람들 배팅이
한쪽에 몰리면 그것을 가급적 피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테이블의 분위기'를 보고 배팅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금새 1천 9백 달러까지 벌었다. 덕훈은 꾸준히 '1의 방식'을 고수해서 3천 가까이를 벌었다. 난
자리에서 또 일어났다. 덕훈이 중국어로 물었다. 또 일어서냐, 아니면 이제 그만하는거냐, 하고 묻는 듯
했다. 난 빙긋 웃어보일 따름이었다.
거기서 갈등이 되었다. 관두고 이제 접을까. 아니면 조금만 더할까. 관둘까 했지만 그 정도로는 그저
아쉬움만 남을게 뻔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잠깐 머리를 식히고는 다시 테이블로 갔다. 덕훈은 또 왔냐,
하는 식으로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딜러들도 웃었다.
그리고 한참을 하다보니 나는 조금씩 잃기 시작했다, 덕훈도 많이 잃었다. 덕훈은 슬슬 초심을 잃기
시작했다. 여전히 1 위주로 걸기는 했지만 3이나 5에 배팅하는 숫자도 확실히 늘고 있었고 1에 걸어도
전판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400~500을 걸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잃어갔다.
딜러가 우스개로 무어라 덕훈에게 말을 하는 듯 했는데, 눈치로 보아하니 이런 거 같았다.
"너 따라해서 배팅하는 쟤가 이제는 너보다 칩이 더 많다. 니 배팅 완전 망한 거 같다"
눈치로 그렇게 짐작한 나는 그게 웃겨서 웃었다. 그리고 내 웃음에 딜러도 덕훈도 많이 궁금했던 것 같다.
'외국인 같기는 한데 동양인이고 우리 말을 알아듣는 것도 같으니 아 얘 뭐지?' 식으로.
급기야는 그 동글동글한 매니저가 나에게 중국어로 웃으며 무어라 물었다. 아마 역시 눈치로 보아서는
우리 말 알아들어요? 혹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식의 질문인 듯 했다. 나는 그냥 순수하게 대답했다.
"아이 캔낫 스픽 챠이니즈, 아임 코리언"
그제서야 매니저는 "항궈, 항궈" 하면서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딜러들과 덕훈은 또 뭐라 농담을
주고 받았지만 딱히 내 흉을 보거나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덕훈이 자해개그 같은 것을 하는 눈치.
어쨌든-
덕훈은 쾌활하게 웃으며 받았지만, 그가 흔들리는 이상 나는 더이상 그에게 기댈 수 없다. 나도 이미
많이 잃어서 이제는 600 뿐이었다. 그 와중에 덕훈은 또 잃었다. 이제 그는 100달러 칩 2개 뿐이었다.
그의 '안전 고수' 원칙도 결국 카지노 앞에서는 무력했다. 하기사, 주식에 물타기 해서 돈 버는 사람
본 적 있는가. 이론 상의 묘수는 이론 상의 묘수일 따름이다.
'덕훈의 판'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쉬웠다.
솔직히 딜러들도 아쉬워하는 듯 했다. 생각해보라. 모처럼 그렇게 즐겁게 농담을 주고받는 유쾌한
손님이 나타났는데 그가 돈을 다 잃고가니 사람인 이상 아쉬운 것은 당연했다. 여기가 무슨 하이리밋
겜블룸도 아니고 다 푼돈 놓고 푼돈 먹는 사람들인데.
덕훈이 또 농담으로 아쉬운 소리를 하는 듯 했다. 뭐 아마 "아 쫌 막판인데 좀 봐줘요~" 식으로.
그리고 그때였다.
그 동글동글한 매니저가 45배를 찍으며 말했다. 눈치로 보건데 "아 그럼 여기다 한번 걸어보셔~어차피
막판인데ㅋㅋㅋ" 하는 듯한 말.
그 혼자만 그랬다면 그냥 농담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여자 딜러들도 농담으로 "45배 걸어봐요" 하는 투로
45배를 손가락으로 콕콕 찍었다.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딜러들이 특정 숫자, 그것도 아주 높은 배율의 가능성 낮은 숫자를 손님에게
직접 제안하고 있다. 물론 거의 두 시간 이상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대충 '빠진' 분위기라고 해도 이건
놀라운 이야기 아닌가. 그저 단순히 농담인 양 빈말로 하는 소리로 보면 그만이지만, 동네 고스톱 판도
아니고 엄연히 카지노 판이다. 그리고 괜히 딜러가 손님에게 도발을 걸 이유도 없는 판.
게다가 계속 사람들이 판돈을 잃고 있는 흐름… 저쪽에 앉은 아줌마 셋은 어느 순간부터는 자리에 앉아
있음에도 배팅을 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사람들을 끌어모을 재밌는 손님이 이제 곧 떠날 분위기고, '해보자' 하는 사람들의 욕심을 불러일으키기
도 해야할만한 판이었다. 만약 정말로 '조작'이라는게 존재한다면 하나가 터져줘야 할 판이기도 했다.
하지만 덕훈은 여전히 마지막 200을 1에 걸었고, 난데없이 내가 딜러들의 그 뜬금없는 농담에 응했다.
100달러 칩을 45에 걸었다. 뭔가 촉이 계속 오고는 있었지만 500달러짜리 칩을 걸기에는 확신도 부족
했고, '흐름'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또 괜히 촉이 온다고 무리한 배팅을 했다가는 그게 역으로
흐름을 안 좋게 바꿀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휠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긴장이 됐다. 돌아간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 45배가 터졌다. 단번에 4,500홍콩 달러를 딴 것이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 전부와 뒤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놀라며 박수를 쳤다. 딜러들도 웃으면서
"와우! 유아 럭키가이!" 하면서 축하해주었지만 내가 봤을 때 이건 럭키가 아니라 일종의 쇼다…
여튼 웃어주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4,500달러를 따낸 100달러는 다음 판에 1배에 배팅
하며 바람 좀 잡아주고는 바로 또 잃어주었다.
남은 500달러 칩과 대박 터진 4500달러를 합해 5천 달러 대박! 약 75만원을 딴 셈이다. 이번 마카오
경비를 그렇게 벌었다. 난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그 짜릿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씁쓸한-어쩌면 난 내 그 '촉'이 빗나가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래서야 어디 나중에라도 카지노 하겠는가. 기분 찝찝하게 말이다-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는 나에게 딜러들이 새삼 또 축하를 해주었고 나는 그렇게 아직 공항에 갈 시간까진
거의 1시간 가량이 남았음에도 서둘러 '다른 게임에 손댔다가 다시 다 털리기 전에' 손 떼고 공항
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나의 마카오 카지노 원정기는 기분좋은 대박으로 마무리 되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10시 반. 알람을 9시에 맞춰놓았음에도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피곤한게 당연하지만.
아침에 샤워를 마치고 짐을 싸서 호텔 체크아웃을 했다. 호텔의 유료송영 차량을 타고 100달러를 내고 공항
까지 가서 일단 짐을 맡겼다. 2박 4일 일정, 새벽 비행기라서 탑승수속이 시작되는 밤 12시까지 약 12시간의
자유다.
마카오의 카지노들은 공항이나 페리 터미널 등의 주요 장소마다 카지노 호텔로 손님을 무료로 데려다 주는
셔틀버스를 운행 중인데 그렇게 베네치안 카지노로 다시 향했다.
쩐을 확인해본다. 수하물 보관비용이나 택시비, 밥값, 낮에 마카오 시내 구경 좀 하고, 만에 하나 여유 등을
감안했을 때 내가 쓸 수 있는건 약 1,000 홍콩달러.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걸로 뭔 놈의 카지노. 잠깐 슬롯
머신이나 하고 점심 먹을 때까지 놀다가 슬슬 지루해져서 샌즈 카지노로 갔다.
베네치안 카지노가 고급스러우면서도 캐쥬얼한 분위기라면 샌즈 카지노는 조금은 본격적인 분위기. 그렇
다고 막 어두운 분위기는 아니고, 최소한 관광객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그렇다는 말이다. 대충 실시간 바카라 머신으로 좀 놀다가 딴 돈으로 거기 2층의 뷔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격은 약 2만원이고 맛도 품질도 그냥 딱 고 정도 된다.
오후에는 잠깐 세나도 광장에 가서 에그 타르트를 2개 먹었다. 에그 타르트로 유명한 가게도 바로 근처에
하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거기보다 그냥 세나도 광장 초입에 있는 육포 가게 옆의 에그 타르트가 훨씬 더
맛있는 것 같다. (유명한 맛집 치고 진짜 맛나게 먹은게 뭐 얼마나 있는가)
그리고는 그렇게 한 7시까지 마카오 시내를 정처없이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나는 딱히 유명 여행지가 아닌
그 동네 사람들이 사는 곳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는 편인데 그러다 우연찮게 폰테16 카지노까지 방문했다.
그런데 여기는 다른 대형 카지노 체인들과는 다르게 종업원들이 영어를 진짜 못한다. 심지어 한 이쁘장한
여자 매니저는 내가 현지인인 줄 알았는지 카지노 멤버십 카드 제안을 하려다가 내가 영어로 되묻자 바로
크게 당황하며 어리버리하다 내빼지 뭔가. 손님들도 거의 다 현지인들인 듯 하고 전체적으로 로컬 카지노
스타일이다. 다만 요즘 무슨 마이클 잭슨 관련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라 카지노 내에서 계속 잭슨의 노래를
틀어서 그건 좋았다.
그러다 이제 다시 택시를 타고 시티 오브 드림 카지노로 향했다. 호텔 카지노 안 명품 매장들에서 쇼핑 좀
하다가… 옛날 추억이 떠올랐다. 옛날에 거기 명품 매장에서 전 여친한테 가방을 사주려다가 카드가 한도
초과가 되는 바람에 민망하게 결국 못 사준 적이 있었다. 그냥 그땐 웃어 넘기고 말았는데, 몇 년이 지났음
에도 내 처지는 크게 바뀐게 없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그러고나니 흥이 좀 깨졌다.
쇼핑이고 나발이고 그냥 카지노 가서 겜블이나 하다 시간되면 비행기 타고 가자, 하고 그렇게 베네치안
카지노로 다시 갔다. 기분이 별로였다.
이제 어느덧 8시다. 돈도 계속 슬금슬금 쓰다보니 남은 돈은 꼴랑 300달러. 솔직히 그냥 다 잃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까 명품들 생각하니 기분도 좀 잡쳤고, 그냥 내 팔자가 한심스러웠다. 도대체 난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건가. 백수 새끼가 정신 못 차리고 있구나, 집에 가면 이제 한심스러운 미래만이 남아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빅휠이나 하다 가기로 마음 먹었다.
빅휠이 뭐냐면 예능 프로 같은 데에 흔히 등장하는 방식의 큰 회전판이고, 회전판에는 각각 1, 3, 5, 10, 20,
45가 초딩 방학 시간표 마냥 수십개로 나뉘어 빼곡하게 돌아가며 적혀있다. 그리고 내가 돈을 건 배수의
숫자가 나오면 그대로 돈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3에 돈을 100달러 걸었는데 정말로 3이 나오면 300달러를 주는 것이다. 1에 걸면 100을,
10에 걸면 1,000달러를 준다. 반대로 다른 숫자가 나오면 그대로 꽝.
다만 그 회전판에 써있는 숫자의 한 50%는 1이다. 그리고 다른 숫자는 배율이 높은 만큼 그만큼 나올
확률이 낮다. 45가 나올 확률은 그만큼 낮다. 어지간해서는 거의 안 나온다고 봐야된다. 45는 물론이거
니와 당장 10배, 20배만 해도 거의 안 나온다고 봐야된다.
하지만 그런 만큼 1배 위주로, 가끔 3배에 배팅하면 돈을 잃을 확률도 낮다. 해볼만한 거 아닌가. 우선
300달러를 칩으로 환전했다. 미니멈 배팅이 100달러니 100달러짜리 칩을 3개 받았다.
빅휠 머신은 몇 개 있지만, 사람이 직접 손으로 돌리는 빅휠은 그 넓은 베네치안 카지노 안에도 딱 하나
뿐이다. (내가 아는 한). 게다가 그 위치도 윗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 코너 자리라 아주
좋다. 그럼에도 손님이라고는 딱 한 명 뿐이었다.
내 옆 자리에 앉은 그 손님은 외모는 참 안경 쓴 30대 초반의 덕후 스타일이었지만 입담이 무척 좋았다.
쭝국말로 떠드니 무슨 말인진 몰라도 여자 딜러 둘과 정장을 입은 동글동글하게 생긴 남자 매니저가
계속 빵빵 터진다. 난 카지노 돌면서 이렇게 손님과 딜러들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테이블은 보다보다
처음 봤다.
이제 편의상 그 입담 좋은 덕후씨를 덕훈이라고 부르자. 덕훈이는 전형적인 '잃지 않는 도박'을 하는
타입이었다.
무슨 소린가 하면 철저히 1배에만 배팅을 하고, 그렇게 100을 걸어서 100을 따면 그 딴 100을 다시
1배에 걸고. 잃으면 다음 판에 또 1배에 200을 배팅해서 잃은 돈을 만회하고. 물론 종종 3배에도 배팅
하고, 1배에 200이나 300을 배팅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철저히 주식의 물타기 기법과
비슷하게 배팅을 했다.
사실 누구나 머리로는 생각하는 방식이지만 의외로 막상 카지노에서 이런 방식으로 배팅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그가 솔직히 감탄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배팅은 꽤 성과가 좋았다. 따고 잃고 따고 잃고 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하게
따고는 있었다. 여자 딜러가 웃으면서 그의 방식에 대해 무어라 농담을 하는 듯 했지만, 덕훈은 또
농담으로 받으면서 계속 그 방식을 고수했다. '쫀쫀한' 방식일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이론적으론'
훌륭한 방식임에 분명했다.
나는 그와 비슷하게 따라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계속 1에, 아주 가끔 3에 걸었고 아주 종종
200달러씩 배팅을 하긴 했지만 아주 조심스러운 1에 100씩 배팅을 지속했고, 또 덕훈의 배팅을 따라
했다. 그가 1에 걸면 나도 1에 걸고, 그가 종종 3에 걸면 나도 3에 거는 것이다.
이제 내 판돈은 500이 되었다. 다음 판은 잃었다. 다음 판은 다시 1배에 100을 걸어서 땄다. 그 다음
판은 그냥 한판 쉬었다. 그 다음 판에 역시 1에 200을 걸어서 땄다. 슬슬 가진 돈이 불어나기 시작
했다.
그러다 소지한 칩의 총액이 800달러가 되었다. 500짜리 칩 하나랑 100짜리 칩 3개일 뿐이지만 돈으로
치면 아까 300으로 시작했으니 500달러를 딴 셈이다. 상승세라 슬슬 흥이 돋기 시작하지만 난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오래 하다보면 집중력을 잃는다. 잠시 5분 정도 인근을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재미나는게, 카지노 안을 둘러다보면 룰렛이나 식보 등의 경우, 지난 게임의 숫자가 각각의
테이블마다 미니 전광판에 표시가 된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이건 의미가 없다. '확률 독립의 법칙'
이라고 하던가. 지난 판에 무슨 숫자가 나왔던 간에 다음 판에 무슨 숫자가 나올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심리상 지난 판에 뭐 계속 같은 색깔이나 어떤 패턴이 발견되면 그에 맞춰 배팅을
조정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하는 빅휠은 그 과거 판의 족보가 표시되지 않는다. (물론 룰렛이나 식보
와는 달리 빅휠의 경우 각 숫자별 확률이 크게 상이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무모한 도전 욕심을 꺾어버릴
위험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라도 족보 표시를 안 하는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럼에도 매니저는 계속 그 족보로 보이는 숫자를 적어서 어디론가 보고를 하는 듯 했다. 그리고 무엇
보다 희한한 것은 사람들 분위기가 안전빵으로 계속 1에만 몰리면 3이나 5, 혹 그 이상의 숫자가 뜨고,
반대로 사람들이 너무 무모한 배팅(고액으로 1에 배팅하거나, 반대로 너무 높은 배율의 숫자에 배팅)을
하면 역시나 1이 나오고야 만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들이지만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이런 가설을 세워보았다. 그 많은
테이블과 게임의 종류들이 있는데 왜 사람 손으로 돌리는 빅휠은 유니크하게 운영될까. 만약 그 휠을
돌리는 매니저가 일종의 '기술자'라서, 마음 먹은 숫자대로 숫자가 나올 수 있게 한다거나 혹은 어떤
인위적인 조작이 외부에서 가해지는 바람에 게임판의 어떤 분위기에 따라 숫자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설마 그리 쪼잔한 짓을 할까, 했지만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 빅휠의 위치는 정말 좋은 위치다. 카지노
입장에서는 분명 적당히 손님 몰이는 물론이요 돈도 벌어줘야 하는 위치다. 그토록 돈을 펑펑 쓰는
듯 하지만 사람들이 적은 깊은 새벽 시간에는 슬롯머신도 많이 꺼두는게 또 카지노다. 분명 카지노
측에서도 "이 입지의 테이블에서는 그래도 얼마얼마 정도를 벌어줘야 한다" 같은 나름의 룰이 있을거
아닌가. 겜블러 중에도 타짜들이 있는데 딜러 중에 일종의 회전 기술자가 없다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의심병이지만, 이런 병신같은 가설을 세워놓고 게임을 하노라니 사뭇 또 재밌다.
이제는 더이상 '다음 판에 무슨 숫자가 나오게 해주세요 신님!'이 아니라, 게임의 참여자들과 그들이
칩을 거는 배율에 따라 내가 돈을 거는 나름의 방식을 만들게 된 것이다.
새로운 참가자가 생겨나 판의 흐름이 흔들리면 판을 쉬고, 무모한 배팅을 하는 사람이나 사람들 배팅이
한쪽에 몰리면 그것을 가급적 피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테이블의 분위기'를 보고 배팅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금새 1천 9백 달러까지 벌었다. 덕훈은 꾸준히 '1의 방식'을 고수해서 3천 가까이를 벌었다. 난
자리에서 또 일어났다. 덕훈이 중국어로 물었다. 또 일어서냐, 아니면 이제 그만하는거냐, 하고 묻는 듯
했다. 난 빙긋 웃어보일 따름이었다.
거기서 갈등이 되었다. 관두고 이제 접을까. 아니면 조금만 더할까. 관둘까 했지만 그 정도로는 그저
아쉬움만 남을게 뻔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잠깐 머리를 식히고는 다시 테이블로 갔다. 덕훈은 또 왔냐,
하는 식으로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딜러들도 웃었다.
그리고 한참을 하다보니 나는 조금씩 잃기 시작했다, 덕훈도 많이 잃었다. 덕훈은 슬슬 초심을 잃기
시작했다. 여전히 1 위주로 걸기는 했지만 3이나 5에 배팅하는 숫자도 확실히 늘고 있었고 1에 걸어도
전판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400~500을 걸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잃어갔다.
딜러가 우스개로 무어라 덕훈에게 말을 하는 듯 했는데, 눈치로 보아하니 이런 거 같았다.
"너 따라해서 배팅하는 쟤가 이제는 너보다 칩이 더 많다. 니 배팅 완전 망한 거 같다"
눈치로 그렇게 짐작한 나는 그게 웃겨서 웃었다. 그리고 내 웃음에 딜러도 덕훈도 많이 궁금했던 것 같다.
'외국인 같기는 한데 동양인이고 우리 말을 알아듣는 것도 같으니 아 얘 뭐지?' 식으로.
급기야는 그 동글동글한 매니저가 나에게 중국어로 웃으며 무어라 물었다. 아마 역시 눈치로 보아서는
우리 말 알아들어요? 혹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식의 질문인 듯 했다. 나는 그냥 순수하게 대답했다.
"아이 캔낫 스픽 챠이니즈, 아임 코리언"
그제서야 매니저는 "항궈, 항궈" 하면서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딜러들과 덕훈은 또 뭐라 농담을
주고 받았지만 딱히 내 흉을 보거나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덕훈이 자해개그 같은 것을 하는 눈치.
어쨌든-
덕훈은 쾌활하게 웃으며 받았지만, 그가 흔들리는 이상 나는 더이상 그에게 기댈 수 없다. 나도 이미
많이 잃어서 이제는 600 뿐이었다. 그 와중에 덕훈은 또 잃었다. 이제 그는 100달러 칩 2개 뿐이었다.
그의 '안전 고수' 원칙도 결국 카지노 앞에서는 무력했다. 하기사, 주식에 물타기 해서 돈 버는 사람
본 적 있는가. 이론 상의 묘수는 이론 상의 묘수일 따름이다.
'덕훈의 판'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쉬웠다.
솔직히 딜러들도 아쉬워하는 듯 했다. 생각해보라. 모처럼 그렇게 즐겁게 농담을 주고받는 유쾌한
손님이 나타났는데 그가 돈을 다 잃고가니 사람인 이상 아쉬운 것은 당연했다. 여기가 무슨 하이리밋
겜블룸도 아니고 다 푼돈 놓고 푼돈 먹는 사람들인데.
덕훈이 또 농담으로 아쉬운 소리를 하는 듯 했다. 뭐 아마 "아 쫌 막판인데 좀 봐줘요~" 식으로.
그리고 그때였다.
그 동글동글한 매니저가 45배를 찍으며 말했다. 눈치로 보건데 "아 그럼 여기다 한번 걸어보셔~어차피
막판인데ㅋㅋㅋ" 하는 듯한 말.
그 혼자만 그랬다면 그냥 농담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여자 딜러들도 농담으로 "45배 걸어봐요" 하는 투로
45배를 손가락으로 콕콕 찍었다.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딜러들이 특정 숫자, 그것도 아주 높은 배율의 가능성 낮은 숫자를 손님에게
직접 제안하고 있다. 물론 거의 두 시간 이상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대충 '빠진' 분위기라고 해도 이건
놀라운 이야기 아닌가. 그저 단순히 농담인 양 빈말로 하는 소리로 보면 그만이지만, 동네 고스톱 판도
아니고 엄연히 카지노 판이다. 그리고 괜히 딜러가 손님에게 도발을 걸 이유도 없는 판.
게다가 계속 사람들이 판돈을 잃고 있는 흐름… 저쪽에 앉은 아줌마 셋은 어느 순간부터는 자리에 앉아
있음에도 배팅을 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사람들을 끌어모을 재밌는 손님이 이제 곧 떠날 분위기고, '해보자' 하는 사람들의 욕심을 불러일으키기
도 해야할만한 판이었다. 만약 정말로 '조작'이라는게 존재한다면 하나가 터져줘야 할 판이기도 했다.
하지만 덕훈은 여전히 마지막 200을 1에 걸었고, 난데없이 내가 딜러들의 그 뜬금없는 농담에 응했다.
100달러 칩을 45에 걸었다. 뭔가 촉이 계속 오고는 있었지만 500달러짜리 칩을 걸기에는 확신도 부족
했고, '흐름'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또 괜히 촉이 온다고 무리한 배팅을 했다가는 그게 역으로
흐름을 안 좋게 바꿀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휠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긴장이 됐다. 돌아간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 45배가 터졌다. 단번에 4,500홍콩 달러를 딴 것이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 전부와 뒤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놀라며 박수를 쳤다. 딜러들도 웃으면서
"와우! 유아 럭키가이!" 하면서 축하해주었지만 내가 봤을 때 이건 럭키가 아니라 일종의 쇼다…
여튼 웃어주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4,500달러를 따낸 100달러는 다음 판에 1배에 배팅
하며 바람 좀 잡아주고는 바로 또 잃어주었다.
남은 500달러 칩과 대박 터진 4500달러를 합해 5천 달러 대박! 약 75만원을 딴 셈이다. 이번 마카오
경비를 그렇게 벌었다. 난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몰래 찍은 인증샷
아직도 그 짜릿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씁쓸한-어쩌면 난 내 그 '촉'이 빗나가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래서야 어디 나중에라도 카지노 하겠는가. 기분 찝찝하게 말이다-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는 나에게 딜러들이 새삼 또 축하를 해주었고 나는 그렇게 아직 공항에 갈 시간까진
거의 1시간 가량이 남았음에도 서둘러 '다른 게임에 손댔다가 다시 다 털리기 전에' 손 떼고 공항
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나의 마카오 카지노 원정기는 기분좋은 대박으로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