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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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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그녀를 만난 이유는 나의 짐승같은 이기심 때문이었다.

여자친구인 지윤과 한창 안 좋던 시기, 나는 이대로는 그저 헤어질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상실감에 
휩싸여 있었다. 게다가 지난 몇 달간이나 나와 관계를 거부하는 그녀에 의해 난 욕구불만 상태였다.

그리고 그 모두가 3년만에 본 명희와의 술자리에서 일거에 분출되었다.

태어나서 서울에 처음 올라온 명희는 그저 마냥 모든 것을 좋아라 했다. 27살이나 먹은 여자애가 처음
지하철을 타본다며 들떠 하는 표정이란. 나는 그녀에게서 왠지 모르게 뭉클한 사랑스러움마저 느꼈다.

나보다도 허리가 굵은 그녀에게 말이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 내가 하는 말 한마디에 진솔하게 귀 기울여주고 웃어주는 그녀의 태도란, 지난
1년 반간의 내 연애가 얼마나 힘들고 지랄맞은 연애였는가에 대한 반증이었다. 그게 고마웠고 술김에
난 명희와 선을 넘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된 양다리.

아니, 솔직히 양다리라 하기에도 민망한 그 무엇이었다. 명희에 대한 내 '못된 연애'는 잦고도 일방적
이었던 약속 취소부터 이런저런 금전적 요구, 사후피임약 복용 강요 등 피임에 대한 외면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 걸쳐 매우 질이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명희에게 양다리가 발각된 그 순간조차도 난 사과 대신 "싫음 여기서 관두던가" 하는 뻔뻔함
으로 무장했다. 그리고 날 무척이나 좋아했던 명희는 그런 굴욕적인 연애마저도 눈물을 감추며 받아들
였다.

그 즈음부터 지윤이와 다시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지윤이 집안의 사정이 다시 풀리기도 했거니와
명희 덕분에 그녀에 대한 집착이 덜해진 나는 내 본연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고 그것이 다시 또 지윤의
흥미를 당겼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즈음해서 지윤이 임신했다. 물론 나의 고의성이 다분한 시도였다. 지윤은 매우 당혹스러워
하며 번민했지만 곧 한숨과 함께, 싸구려 다이아와 함께 한 내 유치하고도 조야한 프로포즈를 받아들
였다.

나는 곧바로 명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지윤을 임신시켰다고 말했다. 명희는 그때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내 뺨을 올려붙었다. 지난 23년간 알고 지냈던 친한 여동생을 잃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명희는 자신의 너무 센 손길에 코피가 터진 나를 걱정해 지 눈물을 훔치곤 미안하다며 내 
코피를 닦아주었다.

"오빠 미안해"

그 와중에도 내 코피를 걱정해서 울분을 잊고 놀라 허둥지둥 휴지를 꺼내어 내 코를 틀어막아주는 그
너무나도 헌신적인 모습에 그만 나까지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이렇게 착한 애한테 내가 왜 그랬을까…'

마음 속으로 몇 번이고 후회를 반복하던 그 순간, 명희는 내 코피가 멎자 아직도 눈가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씩씩하게 훔치더니 "오빠…그러면 멋지게 잘 살아요. 그동안 친하게 지내줘서 고마웠어요"
하고 축하의 말 한마디를 남겼고, 그렇게 며칠 후 짐을 정리해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내 생일, 우리 아이의 생일, 또 내 와이프의 생일이면 요즘도 과일 한 박스씩을 시골
에서 올려보낸다.

문득 명희가 보내준 박스 속 마지막 남은 복숭아를 먹으며 언젠가의 그날 밤, 그 새하얀 새벽녘의 눈밭 
처럼 순백하던 그녀의 둔부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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