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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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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상무의 강남 야구장(80)] 밤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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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잠이 들었다. 누가 톡톡 쳐서 화들짝 깨 일어나보니 보라다.

"피곤해?"

그녀는 고맙게도 얼음물 한 잔을 건내며 물었다. 박지성 상무는 고개를 저었다.

"피곤하기보다…몸이 좀 안 좋네"

혹시 깜빡 잠든 사이 연락 온 것은 없나 싶어 영업용 폰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없다.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네. 이럴 때가 사실 좋을 땐데. 에이스들 싹 쓸어다가 초이스 할 수도 있는데. 마침 요 한달?
아니 두 달인가? 시간 개념은 좀 가물가물한데 여튼 새로 일하게 된 언니야들이 참 와꾸가 끝내주
는데 정작 개인 구좌로는 손님들 전화가 좀 줄은 느낌이다. 스박 요 놈도 그러고보니 글도 영 뜸한
것 같고. 좀 분발 좀 해서 도와달라니 핑계만 늘어놓는다. 뺀질뺀질한 놈.

"여튼 깨워줘서 고맙다"

몸을 슥 일으키려는 찰나, 보라가 손을 붙잡았다.

"오빠 잠깐만"




뭐 이야기 자체야 흔하다면 흔한 이야기다. 손님이 따로 스폰서 제의를 해오고, 아가씨 입장에서야 몸
편하고 돈도 수월하게 버니까 잠깐 흔들렸는데 곧바로 진상 스토커 새끼로 돌변하는 케이스. 다만 무슨
여기가 텐프로, 쩜오도 아니고 풀싸롱에서 뭔 아가씨한테 스폰서 제의라니, 하여간 어디서 본 건 있어서
헛지랄하는 병신은 어딜가나 있다. 그냥 풀싸롱에서는 3장 내고 화끈하고 재미나게 놀다가면 그만인 것
인데.

"하여간에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아 몰라 그냥 귀찮아 죽겠어. 씨발 새끼, 아주 죽이고 싶다니까. 내일 폰 번호 바꿔야겠어. 짜증나"
"에효, 너도 참. 아, 참 깝깝시렵다 너도"

가게 밖으로 잠깐 나와 담배나 태우며 이야기 하다고 그래 맞장구를 쳐주고는 있다만 사실 괜한 일에
끼어들어봐야 남는 것이 없다. 그냥 끽해야 미친 놈이 스토커질 하면 경찰에 진정서 넣는다고 맞협박
하는 길 밖에 뭐 더 있겠냐, 식의 조언이나 하고 마는게 수짜다. 누굴 뭐 어떻게 알아봐 준다느니 어쩐
다느니 해봐야 내 고생만 내 고생이지 어쩔 수가 없다. 이 바닥 일하면서 남 이야기에 관심 많으면 지
몸만 피곤해진다.

사실 보라 이 기집애도 딱히 나한테 뭘 도움을 바란다기 보다는, 뭐 이야기라도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
한 것이겠지. 그보다, 이야기 들어줬으니 나도 뭐 하나 부탁 좀 해야겠다.

"보라야"
"어"
"사진 한 방만 찍자"
"뭐?"
"아 요즘에 오빠도 힘들어 죽갔어. 이 바닥도 불경기라서 아주 그냥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 아 좀 도와
주라"
"뭘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걍 뭐, 섹시한 포즈로 자세만 잡아줘. 그럼 내가 사진 잘 찍어서 우리 구좌 까페에 딱 올리면 딱딱딱
손님들이 꼴려서리 나는 홍보가 되고, 너는 지명이 되겠지"

이야기를 들은 보라는 담배를 한 모금 더 맛나게 빤다. 아 거 참. 아 요즘 애들 왜 이렇게 비싸게 굴어.
…라고 욕하려는 찰나 그녀가 물었다.

"여기서?"

난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빈 방에서 딱 이렇게 포즈만 취해 봐. 야시시하게. 그럼 내가 딱 찍어서 올릴께. 아 나도 단골 손님들
한테 너 추천 좀 하고"
"아, 씨. 나 좀 도와달라니까 왜 오빠가 나한테 도와달래"
"야, 이게 진짜 너 도와주는거지. 그냥 스토커 새끼들은 딱 경찰에 신고해버려. 그런 새낀 그게 답이야"
"아 모르겠다. 여튼 더우니까 가게나 들어가자"
"그러자, 아휴 요새 며칠 선선하더니 오늘은 또 왤케 찌냐"
"아 근데 오빠, 사진 찍을 때 이거도 까야 돼?"

아직 사람들이 오다니는 시간에 다소 큰 목소리로 자기 가슴을 두 손으로 받치며 묻는 그녀의 물음에
박지성 상무는 그냥 피식 웃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쇼"

엊그제 박지성 상무의 야구장 까페에서 견적 문의-예약한 손님들 좀 잠깐 모시고, 다시 또 노트북으로
까페에 견적과 수위 문의하는 손님들한테 하나하나 댓글 남기고 있노라니 잠이 노곤하게 온다.

"아, 이거 진짜 몸살 오려나"

에어컨 짱짱하게 트는 가게 안과 가게 밖을 자꾸 왔다갔다해서 냉방병이라도 뒤늦게 온 건지 어째 몸이
영 무겁다. 그래도 오늘은 좀 이래저래 잡무 좀 처리할 일이 많다.

예약 받은 손님들 안내 같은 기본 업무는 당연하고, 온라인으로 관리하는 까페, 홈페이지에 견적이나
수위 등을 묻는 손님들 관리 같은 자잘한 잡무, 그리고 또 틈틈히 블로그 같은 걸로 검색노출 신경 좀
쓰고 있노라면 아 이게 은근히 손도 신경도 많이 가는 일인 것이다. 다행히 일 도와주는 동생들 두 명
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일이 그나마 편해지긴 했는데 그래도 이래저래 손님들 관리는 쉽지 않다.

"이게 진짜 어지간한 에이전시 뭐 바이럴 마케팅인가 뭔가 하는 거랑 똑같대니깐. 빡세 이게 진짜"

혼자 중얼중얼거리면서 게시물을 올리고 있노라니 뒷통수에 부드럽고 큼지막하며 달콤한 냄새가 나는
살덩이 두 개가 포옥하고 와닿는다. 가늘고 하늘하늘한 팔 두 개가 목을 살짝 감더니 그녀가 물었다.

"오빠야, 뭘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냐?"

목소리로 듣건데 하늘이다. 간만이다. 고개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뒷통수로 기분좋은 느낌을 만끽
하며 물었다.

"한동안 가게 안 나오더니, 다시 나오기로 한거야?"

그녀는 "응" 하고 대답하더니 잠시 후 말을 이었다.

"학교 때려치웠어"
"왜?"
"그냥"
"…재미지게 놀다가 다시 학교 다닐라니 재미없지?"
"우리가 일하는게 어디 노는건가? 막노동이지"

박지성 상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막노동 맞지 맞어"

그러면서 그는 목을 젖혀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휴, 얼굴도 또 손 봤네?"
"하여간 눈썰미도 좋아. 난 오빠 얼굴도 까먹었는데. 코만 새로 했어. 어때? 잘 됐지?"

눈썰미가 좋아서가 아니라 코 수술한 티가 너무 나서 물어본건데 그녀는 딴에 마음에 든 모양이다.

"어, 잘 됐네. 여튼 온거, 뭐, 축하한다면 축하한다. 돈 많이 벌어라. 그래, 생각 잘했다. 대학 나와봐야
요샌 다 실업자 아니냐. 여기서 돈 버는게 남는거야"
"그럴라고. 여튼 얼굴 봤으니 난 일하러 가야겠다. 수고"
"그래 수고"

무슨 연어 새끼들이라도 쳐먹는지 이 바닥을 떠난다며 떠나는 애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다시 이 바닥으로
돌아온다. 돈 문제가 당연히 가장 큰 이유지만…술에 쩔고 몸 축나고 돈 몇 푼에 더럽고 치사하고 음탕한
짓을 하더라도 '그래도' 현란한 밤의 일을 하다가 느리고 재미없는 낮의 생활로 돌아가고 나면 어느 순간
그 허무한 나른함에 도저히 버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 짜릿한 맛을 어떻게 잊누"

가히 '마약'이라고 해도 좋을 직업적 중독성이지만, 사실 그보단 '밤의 매력'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
박지성 상무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다른 편 보러가기) - [박지성 상무의 강남 야구장]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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