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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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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돌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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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문방구에서 엄마를 졸라 군용 자동차 프라모델을 구입한 적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건데,
아직 미취학 아동이었던 내가 조립하기에는 분명 쉽지 않은 장난감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엄마를 졸라
그 장난감을 샀다.

집에 와서 펼쳐보니 수백개에 이르는 부품은 어린 내가 조립하기에는 역시 무리였다. 조립의 난이도를
떠나서, 그 많은 부품을 조립해야 하는 인내와 끈기 문제 때문에라도. 하지만 어린 시절 그다지 풍족한
장난감을 갖지 못했던 나로서는 어떻게든 그것을 '장난감'으로 만들어야 했고 어린 나는 내 나름의 잔
머리를 굴렸다.

잘 보이지도 않는 차량 내부의 모든 세세한 부품을 모두 조립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큼지막한 부품과
가장 사람들이 눈여겨 보게 되는 부분, 이를테면 차량 외피나 운전석 같은 부분만을 조립했다. 내 나름
대로는 그걸 '효율성 높은 선택적 조립'이라고 생각했고, 솔직히 사람들이 보지도 않을 저 많은 부품을
모두 조립했을 사람들이 바보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수백개의 부품 중 수십개의 부품만을 조립해서 결국 내 나름의 완성을 이루기는 했다만 그것은 어린 내
눈으로 보기에도 도저히 완성이라 부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크랭크축 부품이 전혀 조립되지 않아
타이어는 차체에 조립할 수조차 없었고, 무수히 많은 자잘한 부품이 조립되어 나타내야 했을 그 섬세한
디테일은 전혀 구현되지 않았으며 얼기설기 겨우 끼워맞춰 간신히 차량이라는 것만을 앙상하게 알리고
있는 그 미완성품은 흉물에 가까웠다.

결국 나는 그 어설픈 흉물을 적당히 대충 분해해 케이스에 넣었지만, 결국 그 장난감은 영영 완성되는
일 없이 언젠가 허무하게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어린 시절 공부 못 해본 사람이 또 얼마나 있겠냐만, 어릴 때의 난 꽤 머리가 좋았던 놈이었던 것 같다.
학교 성적이 우수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 스스로 느끼기에도 주변의 친구들보다는 더 빨리 머리가
돌아갔던 놈 같다. 오죽하면 '국민학교' 때 선생님이 우리 부모님께 영재 검사를 권유했었을까. 조기
교육이니 선행학습이니 하는 것은 아직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 말이다.

(물론 어머니는 그런 것을 잘 모르셨고, 권유를 받긴 했어도 혹여라도 그 검사비용이 비싸고 그러진
않을까 걱정되어 끝내 나의 영재검사는 받지 않았지만-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종종 그 이야기가 나오면
나에게 괜히 미안해 하신다. 만약 니가 그때 그 검사를 받아서 영재 코스를 밟았다면 지금 니 인생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당연히 내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검사 안 받기를 잘하셨어요 어머니)

어쨌든 그랬던 만큼 나는 '내 머리'에 대해 어이없을 정도로 미친 오만을 갖고 있었고, 국민학교 6학년
이 되도록 맹세컨데 집에서 예습복습 한번을 한 적이 없다. -필수적인 숙제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그럼에도 항상 시험은 대부분 올백 아니면 실수로 한 두개 틀리는 정도였고 나는 솔직히 '시험공부'
라는 것 자체를 왜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저 나는 '멍청한 아이들의 필사적인 몸부림' 정도로
이해를 했을 따름이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고는 하나 나는 참 미친 놈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대가리도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6학년 때, 나는 처음으로 학급 1등을 놓쳤다. 그것도
내심 몰래 좋아하던 여자애한테.

그것은 정말이지 내 자존심이 산산히 뭉개지는 일이었다. 여전히 예습 복습 따위는 한 적이 없지만
-난 그것을 지극히 비효율적인 공부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중간고사의 굴욕을 갚기 위해 기말고사 때
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문제집을 몇 권씩 풀어가며 '벼락치기' 공부에 매진했지만…

어이없게도 기말고사 때에는 학급에서도 4등, 전교에서는 수십 등으로 밀려났다. 반 1등에서 밀려나
다른 아이에게 그 박수 갈채를 빼앗긴 굴욕의 반복은…

더욱 더 공부에 매진하는 대신, '학교 공부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발현되었다. 때마침
나는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맞벌이 가정이었던 부모님의 어쩔 수 없는 교육적 방치는 그 일탈을 결코
막아낼 수 없었다.

만약 그 시험에서 내가 '노력하면 성과가 분명 돌아오는구나' 라는 교훈을 얻었더라면 내 인생은 그
이후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아마 크게 변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대학교 4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생각하고 했던 일의 회사에서 나를 정직원으로 채용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내 업무 성과와 태도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나는 취업계를 내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
고, 그렇게 동기들보다 6개월, 혹은 1년, 일부 늦은 녀석들보단 거의 2~3년 가까이 빨리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군 전역 이후 3개월 쉰 것을 제외하면 휴학 한번 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남들보다 빨리' 사회 생활을
시작한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 즈음해서, 당시 30대의 일찍 결혼한 한 지인을 우연찮게 만났다. IT업계에서 일하다가 관두고 보험
영업 일을 시작한 그는 나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나는 너보다도 훨씬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결혼마저 제법 빨리해서 남들보다 인생을 몇 년을
앞서서 시작했지만, 방탕하고 무계획적인 삶으로 인해 결국 금전적으로는 오히려 남들보다 더 많이
늦고 말았다"

라는 충고를. 꽤 귀담아들을 이야기였지만, 나는 당시 그 이야기를 보험 판촉용 멘트라고 생각했고
'아무렴 설마 제가 형님보다야 더 멋지게 살겠죠' 하고 속으로 비아냥 댔을 뿐 그의 말을 그저 무시
하고 말았다.

물론 나의 경우 '방탕하고 무계획적인 삶'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서 그리된 것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오히려 그 충고를 하던 당시의 그보다 어찌보면 더 안 좋은-당장 결혼 여부나
모아놓은 재산 등의 측면에서- 상황에 놓여있다.

심지어 '내가 그래도 몇 년은 앞서있지' 라고 생각했던 대학 당시의 동기들보다도, 결혼 등의 인생
이벤트나 금전적 성공 여부-연봉이나 모아놓은 재산 등의 측면-에서 언제부턴가 밀리기 시작한 점
에서 씁쓸한 웃음을 흘리기도.



어떤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왠지 그 도돌이표의 기점이 참으로 귀여운 시점에 박혀있지만
어찌보면 바로 그래서 더욱, 그 흐름이 기십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 놀랍고 두렵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시점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그때 그 시절들보다 더욱 강한 초조함에 '순차적 진행'보다
'효율성 높은 선택적 진행'이란 표지판에 또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 발전없는
돌대가리 같은 삶의 모습에 그저 헛웃음이 종종 흘러나오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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