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남기고 그녀가 자리를 떠난지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참으로 병신같이 바 구석에서 혼자 눈물 흘린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는 더이상 슬프지도 않고 그저 머리만 멍한 그 시간.
가게 안에 흐르는 피아노 선율이 이윽고 귀에 들어왔고 얼음조차 다 녹아버린 칵테일 잔을 살짝 흔들어보고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긴 그 순간, 더이상의 새 출발이니 뭐니 하는 그 모든 것이 다 허무하게 느껴졌다.
살아서 뭐하나. 병신같이 이대로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봐야 뭐하나. 올라갈 일은 없고 내려갈 일만 가득한
암담한 미래. 이제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내가 무수히 꿈 속에서 그렸던 그 아름다운 그림은 그려질 일 없고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설마 저것만은 아니겠지 했던 그림들이 어느새 내 눈 앞에 가득한 오늘과 내일.
얼마나 눈으로 따라 훑었을까. 테이블 위 작은 캔들 홀더에 쓰인 상호명 Amore가 머릿 속에 가득함을 느끼고
난 소파에 푹 몸을 뒤로 뉘었다. 끝인가.
마지막을 멋있게 장식할 수도 있었겠지. 깔끔하게 헤어지고 혹시 모를 연장전을 기대하는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제 더이상 너랑 같이 얼굴 보면서 커피 한잔 마실 수도 없게 되고…
깊은 밤 외로울 때 문자라도 주고 받으면서 행복하게 잠들 수 있었던 시간들이 벌써부터 너무나 그리워서,
그 큰 아쉬움에 마지막마저 그렇게 병신 같아졌지.
그래도 후회는 없다.
내 마지막이 찌질했던 만큼, 네 새출발이 조금이라도 빨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거 하나 간신히 위로가
되니까.
"만 팔천원입니다"
말 없이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가게를 돌아보니 가게는 텅 비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시간은 새벽 2시 반.
"고마워요"
문득 뒤돌아 주인 아저씨에게 인사했다. 아저씨는 "힘내요" 하고 한 마디 하고 그제서야 내가 앉았던 테이블
뒷정리를 위해 카운터에서 몸을 일으켰다.
'개운하다'
누군가 나를 신경써줬다는 사실에, 미안하면서도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간만에 흘린 눈물 덕분인지도.
오한 어린 한숨을 쉬며 가게를 나오자 밖은 비가 왔던 모양인지 촉촉히 젖어있었다. 아직까지 제법 빗줄기가
투둑 떨어지는 것을 보아 아까는 꽤 비가 왔을텐데. 걔, 우산도 안 가져왔을텐데. 마지막까지 비를 맞춰 보냈
구나.
씁쓸함을 달래며 택시를 잡았다.
"문원 터널쪽으로 가주세요"
창 밖을 바라보니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부디 집에 도착했기를 바랬다. 이제 더이상은 슬프
지도, 우울하지도 않다. 그저 다만… 다만… 가슴이 조금, 시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