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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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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환하지만 이제 슬슬 어둑어둑하니 땅거미가 질 무렵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다.

"날씨 쌀쌀하지?"
"어"

하지만 남친의 손을 잡고 걸으니 춥지 않다. 큰 길에서 한 블럭 들어왔을 따름인데 벌써 동네가 조용하다.
골목골목 높지 않은 건물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자주 보이는 악기 연습실들. 마침 2층의 한 바이올린
연습실에서는 끼잉끼잉대는 미숙한 연주가 들려온다.

"이 동네에 음악 학원 되게 많다. 것두 피아노 이런 것도 아니고 바이올린, 첼로 이런거"

남친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근처에 예술의 전당이랑 예술고랑 있어서… 이 동네는 그냥 동네표 밥집에도 음악회 포스터 막
붙어있고 그래"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걸으니 정말로 분식집 정문에 음악회 콘서트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새삼
이 동네의 아늑한 조용함이, 우아하게 느껴진다. 

"더 가야 돼?"
"조금만 더 가면 돼"

가는 길. 큰 길도 아닌데 골목골목에 제법 멋들어진 이탈리아 레스토랑, 프랑스 레스토랑이 눈에 띈다.
간간히 등에 자기 키만한 큼지막한 악기를 짊어진 여자들이 지나간다. 그냥 단독주택 많은 조용한 동네
인데, 그 사이사이로 그런 풍경이 비치니 조금 이질적이면서도 멋졌다. 나도 모르게 흰 블레이저 재킷을
고쳐입었다.

"많이 추워? 빨리 가자"
"아니야"

그리고 조금 더 걷자… 정말 말로만 듣던 '잔디 정원 딸린 2층, 아니 3층 단독주택'이 눈 앞에 나타났다.

"들어가자"
"어"

애써 표정을 감추었지만, 내 안의 불안함은 더 커졌다. 서초동에 산다고 해서 집이 어느 정도 살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 얘기를 해주면 언니랑 동생은 어떻게 생각할까, 부모님은 좋아하실까 생각했지만 그보
다는 오히려 다들 걱정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수 걱정 말이다.

"어머니, 저 왔어요"

초인종 저 너머에서 "어머 벌써 왔어?"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득 집안 배경 차이가 너무 커도
이래저래 많이 힘들다던, 현주 언니 말도 생각났다. 어쨌든 조금 무거워 진 마음을 다 잡고 안으로 들어
섰다. 그리고 혼자 김치국 열심히 마시네, 하는 자조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울려펴졌다. 조금은 안정됐다.




"어머, 정말 이쁘기도 이쁘네. 반가워요, 동현이 엄마에요. 말 많이 들었어요. 어유 정말 이쁘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유정이라고 했나?"

남친의 어머니는 눈에 이채를 띄며, 아주 화사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다. 화려한 꽃무늬가 들어간 검은
원피스에 갸름한 얼굴형, 살짝 수술한 티가 나는 진한 쌍거풀과 크게 웨이브 들어간 헤어스타일, 그리고
옆에 큐빅이 잔뜩 박힌 안경… 부티가 났다. 정말로 사모님. 동네표 폐업 의류점에서 몇 천원짜리 티셔츠
쪼가리나 사입는 엄마 생각이 났다. 아냐, 야 김유정. 너 촌스럽게 왜 이래?

"안녕하세요, 어머님. 네, 김유정이요. 저도 동현이한테 어머님 말씀 많이 들어요. 들었던 것보다도 훨씬
미인이세요"

나도 웃으며 그렇게 맞았다. 오면서 어떤 표현으로 불러야할지 엄청 고민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부르기
어려웠던 어머님, 이라는 말이 이렇게도 쉽게 먼저 튀어나올 줄은 나도 몰랐다.

"들어와요, 마침 식사도 다 준비해놨으니까 손 씻고 식사부터 해요"
"네에"

화장실로 향하면서 언뜻 스쳐지나간 식탁 위에는 온갖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음식들을
준비했을 아주머니가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그 얼굴에 언뜻 엄마 얼굴이 비친 것은 어쩌면 내 자격지심
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동현과 나의 거리감이 무한히 느껴졌다.

물을 틀고 손을 씻는 짧은 시간 동안, 이 집의 화려한 내장에 대해 새삼 놀랐다. 대리석 욕조에 금박 장식
이 들어간 바닥, 우리 집 안방만한 이 집의 화장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왠지 모르게 부담이 됐다. 남들
같으면 팔자 고칠 기회라고 좋아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다. 괜히 부담만 된다. 새삼 내 안의 컴플
렉스를 느꼈다. 그리고 그게 싫었다.




"그러고보니 나이가 몇이랬지?"

함께 식사를 하면서 동현의 어머니가 물었다.

"서른…입니다"

문득 나이를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같은 서른이라 할지라도, 남친의 서른과 내 서른은 다르겠지. 특히
귀한 외동 아들의 배우자로서는 더더욱.

"아 맞다. 동갑이랬지 참. 아니 나는 아까 들어올 때 동현이, 라고 하길래"

아 그래서 아까 순간 멈칫했던 거구나. 그러고보니 남친의 전 여친은 22살이라고 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난다. 그랬구나.

"많이 먹어요. 저번 달에 새로 온 우리 여사님이 요리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요즘 살이 절로 붙는다니깐?"

옆에 서서 우리 잔의 물을 채워준 아주머니가 쑥쓰럽다는 듯 "어휴 사모님도" 하면서 어색하게 웃는다.
나도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둘이 어디서 만난거야?"

남친에게 어머님이 물었다. 남친은 "말씀드렸잖아요. 전 회사에서 만났다구. 내가 먼저 고백했지. 얼마나
일도 잘하고 회사 윗 분들께 잘하는지. 그거에 반했다니까"

아 그랬구나. 나보고는 그냥 이뻐서 반했다고 해놓고선.

"어머 그래? 요즘 젊은 애들은 그런 애들 드문데. 역시 그래도 한 살이라도 더 많은 애들이 다르긴 달라"

내 나이에 대한 어머니의 언급인가 싶어 살짝 경직되었지만, 그 어머니가 무척이나 싫어하셨다던 전 여자
친구와의 비교 발언인가 싶었다. 그 어느 쪽도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어휴 내 정신 좀 봐. 먹어요 먹어"
"네에, 말씀 편하게 하세요"

테이블 위에는 무슨 명절 맞이라도 하나 싶은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잡채에 갈비찜에 해물탕에 온갖
부침과 전, 제육볶음에 생선구이에 각종 쌈 요리에, 그리고 온갖 오만색의 나물반찬에 샐러드에 계란찜에…

"그런데 어머니 저 오신다고 이렇게 차리신 거에요? 어머…"
"으응, 뭐, 많이 먹어. 뭐 내가 했나? 여기 여사님이 하셨지. 내가 한 건 요거, 이거 하나 뿐이 없어"

동현의 어머니가 가리킨 것은 작은 접시에 놓인, 아주 화려한 떡 경단… 비슷한 요리였다. 산적꽂이 마냥
꽂이에 쌓은 3개짜리 떡 경단에 이런저런 데코레이션을 화려하게 하고 그 위에 노란 소스를 살짝 뿌려놓은
요리였다. 사실 난 처음에 그냥 데코레이션 같은 걸로 작은 꽃 같은 것을 차려놓았는 줄만 알았다. 아마도
어디 문화센터나 요리 강좌 같은 데서 배운 요리시겠지.

"그럼 이거 먼저 먹어볼께요"

나는 그중 하나를 먼저 집어서 동현의 앞 접시에 놓아주고 그 다음 내 것을 집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맛을
보았다. 생강 비슷한 알싸한 소스의 맛과 경단 속의 달콤한 꿀 비슷한 어떤 것과 어우러져 아주 맛있었다.
데코레이션 같은 푸성귀가 또 그 진한 맛을 적당히 중화하는 것이, 아 정말 맛있긴 맛있었다.

"어머, 정말 맛있어요. 어머니 요리 정말 잘하신다. 와"

표현이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그 느낌만큼은 정말이었다. 동현의 어머님은 기분 좋은 듯 "그래? 에구
그러면 좀 더 만들걸 그랬네. 난 요리에 영 자신이 없어서 딱 그 성공작 그 두 개만 만들었어" 하고 멋적어
하셨다. 아무래도 정말로 요리에는 썩 자신이 없으셨던 모양이다. 어쩌면 정말 평생에 자기 손으로 만든
요리가 얼마 없을지도. 문득 그러고보니 예전에 자취하는 동현에게 '집밥'의 소중함에 대해 강변했음에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주 살짝은 이해가 갔다. 아니아니 너무 앞서나가지는 말자.



식사를 마치고 거실로 나와 우리는 소파에 앉았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눈도 돌리지 못했지만, 식사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면서 본 집안 풍경은 과연 놀라웠다. 어디 외국 영화 같은 데서나 보이는 사슴 머리가
정말로 거실에 걸려있었다. 조금 촌스러운 발상인지도 모르지만 먼지나 냄새 같은 것이 걱정되었다.

"멋있지? 아버지가 캐나다에서 직접 공수해 온 박제야"
 
나는 솔직히 멋있는 줄은 모르겠다. 그저 무서웠다. 동현의 어머니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아주머니가
차를 내오셨고 나는 소파에 공손히 앉아 그 잔을 받았다. 이윽고 화장실에서 나온 동현 어머니가 물었다.

"둘이 사귄지는 얼마나 돼?"
"1년쯤 됐어요"

나에게 물으셨지만 대답은 동현이 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럼 스물아홉에 사귄거네? 그러면 음
둘 다 결혼은 생각하고 만나는거야?" 하고 물으셨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내가 잠깐 망설이는 사이 동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아직 프로포즈 못했어요" 하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건, 절차적인 문제고. 그래도 둘 다 뭐, 생각은 할거 아냐?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건지 아니면 뭐…"

어머니의 눈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여전히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직은, 서로 알아가는 중이에요"

대답을 하면서도 참 대답 못한다고 속으로 나를 자책했고, 어머니는 웃으면서 "결혼한다고 바로 대답 안하는
거보니까 동현이 많이 안 좋아하나보네?" 하고 농담을 하셨다.

"아 참, 아 무슨, 참" 하고 동현은 웃었고 나도 그 말 속에 뼈가 들어있는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우면서도
어색하게나마 쿡쿡 웃었다. 어머니는 또 물었다.

"집에, 부모님은 무슨 일 하셔?"

동현은 "아 무슨 호구조사해?" 하고 볼맨소리를 했지만 부모님들이 그런 거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한 법.

"아버지는 트럭 운전하시고, 어머니는 작은 식당에서 일하세요"
 
어머니는 가타부타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이쿠, 내가 참 둘만 계속 붙잡아 놨네. 둘이 위에 올라가서
동현이 방도 구경하고 그래. 청소도 싹 해놨어"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우리도 일어났다.




"이건 내 세 살 때 사진이야. 이때 내가 여기서 뭘 잘못 먹고 난리가 났었대. 원래 외국 나가면 막 물갈이
하고 그러잖아. 그래서 여튼 막 달구지 같은거 막 타고 이 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 응급실에 가서 막 난리가
났었대"

동현은 신나서 앨범을 보면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동현의 어릴 적 귀여운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그 어머니의
모델 같은 포스가 더 장난이 아니었다. 80년대에 찍은 사진인데도 검은 점퍼 수트에 보잉 선글래스, 적당한
갈색 웨이브 헤어는 지금 당장 압구정에 나가도 크게 손색없을 느낌이었다. 문득 오늘 내 패션을 보고 속으로 
동현 어머니가 얼마나 촌스럽다고 생각하실까 한숨도 나왔다. 

앨범의 반은 외국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무역업을 하시는 동현의 아버지 덕분에 그는 아버지 따라서 과장
보태어 안 가본 나라가 없다고 했다. 

"전 여자친구랑은 얼마나 사귀었어?"

그리고 나는 문득 물었다. 그 전에는 일부러라도 물어보지 않았던 질문이다. 동현은 움찔하다가 "에이 뭘 그런
걸 물어"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궁금해서 그래. 아까 어머니도 물어보셨잖아"

하지만 동현은 "야 맞다 너 그러고보니까 어머니, 라는 말 되게 잘하더라. 보통 여자애들 처음 우리 어머니
보면 그런 말 잘 못하는데" 하고 말을 돌렸다. 여자애'들'이라니. 한둘이 아니었나보네. 

"말 돌리지 말구"

내가 한번 더 묻자 그제서야 동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알고 지낸건 10년도 넘었지.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그냥 아는 동생 정도로 알고 지내다가, 나 취업하고
나서 좀 더 있다가 한 2년 정도 사귀다가 걍 관뒀지. 알아서 뭐해 그런거"

그랬구나. 

"어머니는 왜 그 여자애 싫어하셨어? 반대했다고 하셨잖아"
"내가 그런 이야기까지 했어?"

하고 동현은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가 "뭐, 너무 어리니까. 그리고 교회가 내가 다니는 데는 좀 그런게 되게
말이 많아. 어머니가 걔 뒷 이야기를 좀 듣고 뭐 그랬나 봐. 뭐 술 마시고 그런거 다. 어리니까 막 까불까불
하는 것도 있고. 그래서 안 좋아하셨지. 근데 어머니가 너는 되게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 하고 처음 그
내 전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10년도 전에 알았는데 사귈 때 나이가 22살이면 도대체 몇 살 때부터 알고 지낸거야. 

"그 애도 아직 그 교회 다녀?"
"아니. 이민 갔어. 호주로" 

나는 다시 묵묵히 앨범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정아"

남친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말했다.

"왜"

그러자 남친은 픽 웃으면서 말했다.

"어머니한테 너 소개시켜 주니까, 꼭 왠지…"
"그만. 거기까지"

남자들은 꼭 그랬다. 자기 부모님께 소개시켜 드리고나면 마치 내가 자기랑 결혼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왠지 모르게 뿌듯해했다. 그 마음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왠지…음. 나는 그게 조금 부담스러웠다.

아직 내가 동현과의 관계에 대해 확신이 없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전 남친도 그랬었지. 전
남친은 동현과는 정 반대였다. 내가 어버이날이라고 그 남친의 부모님께 뭐라도 선물해드리려고 이것저것
물어보면

"됐어 선물하지마. 뭔 선물이야. 아직 그런거 할 때 아니잖아 우리"

하고 매번 나를 서운하게 만들던 그 남자. 그리고 나중에 급기야 크게 싸우고 헤어질 뻔 한 이후에야 한번
겨우 자기 집에 데려갔을 때, 그제서야 난 그가 왜 나를 자기 집에 데려오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는지를
알았다. 작은 연립주택, 그것도 아직 셋방살이하는 그런 처지의 집이었던만큼…


"무슨 생각해?"
"어? 아니야"

잠깐 딴 생각하고 있자 어느새 침대에 걸터앉은 내 옆으로 다가와서 앉은 동현.

"유정아"
"이러지마"

그는 내 등을 쓰다듬었다. 나는 뿌리쳤다.

"어머니 계시잖아. 이러지 마"

정색을 하자 조금 뻘쭘해하던 그는 다시 일어서더니 "뭐 좀 더 먹을래? 과일이라도?" 하고 어색하게 얼버무렸다.

"됐어 안 먹어. 배불러"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동현의 책상-엄밀히 말해 지금은 자취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방의 주인은 사실상 없다,
라고 해도 되겠지만- 책장에 꽂힌 책 중 문득 그의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급문집을 발견해서 빼내었다.

"으악, 보지마"

동현은 말렸지만 나는 "아유, 이러지 마" 하면서 조심조심 페이지를 넘겼다. 어릴 때부터 악필이었구나. 표지에
쓰인 이름을 보니 알만했다.

"그래도 4학년이면 나름 글씨체 잡힐 때 아니야? 이건 개발새발…"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뭐. 넌?"
"난 초등학교 3,4,5,6학년 다 학급 서기였어"

쿡쿡 웃으며 한참을 넘기다가 그제서야 동현이 쓴 5줄짜리 시 아닌 시를 발견했다. 내용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
아버지는 맨날 해외에 나가있다
어머니는 맨날 외롭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면 선물을 사오신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왠지 너무 초딩스러운 시라서-초딩이 쓴 시 맞지만- 웃기면서도 왠지 그 내용이 참 찡한게 웃겼다.

"시가 이게 뭐야"
"초딩들 시가 다 그렇지 뭐. 그래도 나름 라임이 살아있잖아. 난 진짜 힙합의 화신인가봐"
"초등학교 1학년짜리 시 같애"

하지만 그 내용의 어머니가 외롭다는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어머니한테 잘해 좀. 어릴 때부터 그래도 어머니 외로운 것도 알고, 되게 효자였네"
"내가 그래서 여자들한테 잘하잖아. 너한테도"

초등학교 4학년이 '외롭다'라는 것을 눈치챌 정도의 외로움은 어떤 것일까. 나는 문득 화려한 사모님 그
이면의 어떤 우울한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여튼 내려가자. 가서 어머니랑 과일이나 좀 먹고 그러다 일어나지 뭐"
"어 알았어"

아까는 마냥 부담스러웠던 동현의 어머니가, 왠지… 별 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쓰러웠다.




"어머 그래? 요즘 회사들은 그러니?"

'사내커플'에 대한 이야기를 동현이 살짝 과장 섞어 들려주자 그 어머니는 굉장히 놀라하셨다. 동현이 현재
다니는 회사는 요즘 회사 차원에서 장가 보내기 운동에 들어갔단다. 워낙에 다들 장가 못 간 노총각 직원이
많아서. 하다하다 안되면 사내커플이라도 적극 육성한다나.

"근데 참 유정이는 이쁘다. 진짜"

또 새삼 어머니는 나를 칭찬하셨다. 나는 "아니에요" 하면서 부끄러운 듯 얼굴을 매만졌지만 어머니는
동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서 진짜 이렇게 이쁜 애를 꼬셨대. 잘해줘. 니보다 훨 낫네"
"아이 진짜. 나도 어디 가면 안 빠져요. 키 180에 몸 되고 학벌 되고, 뭐가 빠지나?"

어머니는 한숨 쉬면서 말했다.

"닌 참 아직 애다 애"

그러더니 나에게 말했다.

"동현이가 많이 부족해도 잘 봐줘요. 알겠지만, 그래도 착하잖아?"




"그러면 아빠 차라도 타고 갈래?"
"아냐 됐어요. 그럼 주말에 아부지 낚시 갈 때 뭐 타고 나가라고. 그리고 그냥 나도 피곤하고. 택시 타고
가는게 편해요"

전날 밤 회식 때문에 차를 회사에 두고 온 동현. 덕분에 오늘 택시 타고 왔다니까 가는 길에 아버지 차라도
끌고 가라는 어머니. 하지만 우리는 그냥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자 날씨는 이미 제법
쌀쌀해져 있었다. 

조금 걸어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동현은 나의 손을 잡았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유정아"
"응"

동현은 내 이름을 불렀고, 내가 대답하자 한 템포 쉬다가 말했다.

"오늘 어머니가 너 마음에 들어하시는거 같더라"

사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아직은 그리고… 딱히 그럴 때도 아닌 것 같고. 또 그렇다고 그거에 좋아하는 것도
좀 우습고. 나는 조금 마음이 혼란스러워져 차창을 바라보았다.

동현은 다시 한번 내 손을 꼬옥 잡았다. 차창 밖으로 을씨년스러운 밤의 예술의 전당이 보였다. 화려하지만
그 안은 썰렁한 그 풍경이, 왠지 동현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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