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사무실에 한 남자의 이름이 울려퍼진다.
"김상민씨"
조금 더 높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불리우고, 그때까지 여전히 그 이름의 주인공은 반응이 없다. 그리고 심상
찮은 그 목소리 톤에 주변 파티션 사람들의 시선까지 모였을 그 무렵…
"김상민씨!"
호통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사무실 사람 전체가 움찔하며 쳐다볼 정도의 목소리 톤이 되자 그제서야 그
이름의 주인공이 정신을 차린다.
"어, 어…네, 네. 쓰읍. 네"
그리고 그는 곧 자신을 부른 이가 최근 그렇잖아도 자기를 마뜩찮게 보는 강 부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다.
"잠깐 회의실에서 봅시다"
"요즘 밤에 잠 안 자고 뭐해? 어? 뭐 맨날 술이라도 마시나?"
강 부장의 물음에 상민은 면목 없다는 듯 허벅지만 비비다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시잖습니까. 저 술 못하는거"
강 부장은 가볍게 콧바람을 내쉬며 물었다.
"그럼 뭐야? 밤에 잠 안 자고 뭐해? 뭐, 여자 만나나?"
하지만 척 보면 알잖는가. 여자는 커녕 요즘은 어째 하루가 갈수록 무서운 속도로 아저씨 화 되어가는
폼이 척 봐도 여자가 있을 리가 없다.
"없습니다. 여자는 무슨…"
"그럼 뭐하는데?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상민은 잠시 입맛을 다시다가 "죄송합니다. 요즘 좀 이래저래 잠을 설쳐서…" 하고 또 고개를 꾸벅한다.
그러나 오늘은 그 정도 넘어가 줄 수는 없다. 이미 몇 번이나 지적했고, 또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식곤증
이나 춘곤증 레벨이 아니라 이건 숫제 하루 일과 중에 반을 조는 판이니 가볍게 넘길 수가 없다.
"이유를 알아야겠어. 어디 뭐, 몸이라도 안 좋은거야?"
그렇잖아도 지지난 달에 과로로 회사에서 쓰려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뇌진탕까지 온 유 대리의
껀도 있고 해서 회사 측에서는 매니저급 직원들에게 부하 직원들 건강을 각별히 챙기라는 사장 지시도
있었다.
상민은 입맛을 다시는 듯 대답을 주억거린다. 지난 2년여간 그를 데리고 있으면서 그에 대해 적당히 다
알 거 아는 강 부장으로서는 혀를 끌끌 차며 "솔직히 왜 그러는데? 어? 이유를 알아야 뭐 도와주던가
할 거 아냐" 하며 답을 독촉했다. 상민은 뒷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실은 요새 게임에 빠져서‥"
아주 예상을 못한 대답은 아니지만 역시나 너무도 한심한 대답인지라 강 부장은 속에서 한숨이 다 쏟아
졌다. 내가 이런 것들을 데리고 일을 한다, 소리가 목구멍을 넘어온 지경이었지만 간신히 참은 그는 또
물었다.
"거 뭐, 디…뭐더라. 거 얼마 전에 뉴스에서 나온, 애들이 줄서서까지 사간 뭐 그 게임?"
상민은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고, 강 부장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아니 김상민씨 나이가 몇 이야. 게임하느라 밤을 새서 낮에 이 모양이라는게 말이 돼? 아 우리 아들,
초등학교 5학년 아들도 그렇게까지는 안 해. 아니 참 김상민씨 나이를 생각해보라고"
상민은 그저 꾸역꾸역 고개를 끄덕이며 "죄송함다. 주의하겠습니다" 하고 듣고 있었지만 그게 또 은근히
얄밉다.
"일단 오늘 일은 내 앞으로 시말서 쓰고, 앞으로 한번만 더 그러면 회사 차원에서 징계할테니 그리 알아.
뭐 이의 있나?"
'시말서'에 이어 '징계'까지 이야기까지 나오자 생각보다 좀 뜻밖이라는 듯 상민이 다급한 표정으로 또
말한다.
"아니 부장님, 잘못했슴다. 아 근데 시말서에 징계라니, 아 물론 쓰자면 쓰지요. 근데 이렇게 확 문서화
시켜놓으면… 아 부장님 잘못했슴다. 한번만 선처해주십쇼"
뻔뻔하다고 해야할지 넉살이 좋다고 해야할지. 가끔 보면 참 얄미울 정도로 능글맞은게 좀 불편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또 이렇게 매달리면 독하게 밀고 나가기도 미안할 정도로 천연덕스러운게 이 '김상민'
이란 사원의 장점이고 또 단점이다.
"정말 잘할 수 있어? 어?"
"아 물론입니다"
누그러진 것을 보자 벌써 표정에 웃음을 확 띄우며 옳다꾸나 대답을 하는 그를 보며 한번은 봐주기로 한다.
"그래, 그럼 내일부터 또 지켜보겠어"
그렇게 말하고 스윽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상민이 "아 부장님" 하고 또 부른다. 또 그 능글맞은 아부인가,
싶어 슬몃 떠오르는 웃음까지 겨우 지우면서 물었다.
"뭐? 또 그 놈의 부장님 존경합니다, 말하려고?"
하지만 이번에 상민의 얼굴은 꽤 진지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저기, 부장님. 내일부터 한 3일만 연차를 써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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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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