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저물어가지만, 나의 휴일은 아직 이틀이나 남았다. 5월 1일 노동자의 날 휴일에 맞춰서 4월 30일에
하루 휴가를 냈기 때문이다. 얼마만의 나흘 연휴인지 모른다.
토요일에는 간만에 H를 만났다. 거의 몇 달만이다. 어벤져스를 봤다. 그녀는 소설로 먼저 본 은교를 더 보고
싶어했지만 눈치없이 그 전에 내가 미리 은교를 이미 봤다고 이야기를 해버렸다. 또 보고 싶다며 은교를
다시 제안했지만 그녀는 괜찮다며 어벤져스를 보아주었다.
괜찮았다. 나만.
그녀는 사실 아이언맨, 그것도 시리즈 첫 편 이외에는 히어로 영화를 아무 것도 본 적이 없어서 큰 감흥이
없던 모양이다.
간단히 라멘으로 저녁을 때우고 투썸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나흘을 쉰다며 자랑을 하니까
너무 부러워하며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지 그러냐고 그랬다. 그 말을 듣자 아차 싶었다. 아 그러게.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멍청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또 나누었다. 그녀는 잘 다니던 갤러리를 관둘거라고
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저리가라인 여자 보스의 비서로 일하는게-미란다는 업계에서
인정받는 슈퍼스타이기라도 하지- 이래저래 힘든 모양이었다. 관두고 뭘 할 생각이냐고 묻자 그냥
잠시 쉴 거라고 했다. 문득 그녀가 조금 부러웠다.
일요일, 늦잠을 잤다. 새벽에 악몽을 꾼 바람에 잠깐 깼지만 그 덕분에 더 늦잠을 자버렸다. 하루종일
몇 시간을 잤는지 모른다. 오후 2시쯤 늦은 점심을 먹었다. 라면 끓여먹으려다가 그래도 뭔가 해먹고
싶어서 냉장고를 뒤져 버섯 볶음밥을 해먹었다. 그리고 또 잤다.
일어나 잠깐 컴퓨터 좀 하다가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다들 이미 데이트 중 아니면 출근 중 아니면
주중에 못잔 잠 보충 중이다. 그래 차라리 오늘은 집에서 쉬면서 돈이나 굳히자 생각했다.
사놓고 쌓아놓기만 한 책 몇 권 좀 뒤적여보다가 또 잤다. 깨고보니 어느새 8시, 출출하길래 현재
입주한 오피스텔 1층에 있는 까페에 내려가서 샌드위치로 때웠다. 나름 허세 좀 떨려고 얼마 전 산
화이트 맥북도 같이 들고 내려갔는데, 옆 테이블의 아주 신심 깊은 여자애 넷이서 간증 토론을 하고
있길래 도저히 맥북 허세질 할 맛이 안나 잡지 좀 뒤적이며 얼른 샌드위치만 먹고 일어섰다.
그러다가 잡지에서 본 닭고기 요리 하나가 생각나 마트로 향했다.
마트로 가는 길에 꽃 가게가 보여서 해바라기 좀 있냐고 물으니 2천원이란다. 오, 한 단에 2천원
이라니 제법 싼데? 하고 4천원을 내미니 두 송이를 준다. 혼자 실없이 웃다가 뭐 그걸로도 좋다고
생각하고 두 송이를 예쁘게 포장해왔다. 오는 길에 베이커리에 들러 호밀 식빵도 하나 샀다.
마트에 갔다. 아까 잡지에서 사진 찍어둔 레시피를 확인하니 닭고기, 양파, 블랙 올리브, 소금,
후추면 된단다. 대형 마트라고는 해도 사이즈가 조금 작은 우리 동네 마트에 블랙 올리브가 있을
리 없지만 그건 대충 버섯으로 음미를 바꿔서 먹기로 했다.
닭가슴살이 유통기한이 5월 2일까지다. 그래서 50% 세일을 한다. 아… 내일 먹고 모레 먹고 하루
이틀 정도 더 넘겨서 먹으면 된다 생각하고 두 팩을 사왔다.
사실은 그 닭고기 재료만 사면 되는데 괜히 통후추에 바질에 쌈에 마늘에 표고버섯에 아몬드에
고구마에 채소에 도토리묵에 레몬에 오렌지까지 사고, 그 닭고기 요리를 담을 마땅한 그릇이
생각 안 나 사기 그릇도 하나 샀다.
짐이 엄청 무거웠다. 계산하고 보니 7만원이 넘었다. 아 닭만 사와서 가면 되는 것을 이게 다 뭐냐.
무슨 엄마표 마트 장도 아니고. 5월 2일까지 10만원 이상 구매하면 사은품을 드린다며 캐셔 아줌마가
환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괜찮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공짜 좋아하는 한국인인 이상 머릿 속으로는 또
뭐 3만원어치 살 거 없나 계산을 해본다. 아까 돈이나 굳히자 생각했던 것이 문득 떠올라 혼자 다시
실없이 웃었다.
집에 도착했다.
창문을 열고 가서 공기는 깨끗했다. 공기 청정기는 쉴 새 없이 돌이가고 맥미니는 오늘도 충실히
'라디오'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마트 장봐온 것을 정리하고, 샤워하고, 시계를 보니 밤 11시. 일요일이 저물어 간다. 하지만 괜찮다.
아직 이틀이나 휴일이 남았다.
하루 휴가를 냈기 때문이다. 얼마만의 나흘 연휴인지 모른다.
토요일에는 간만에 H를 만났다. 거의 몇 달만이다. 어벤져스를 봤다. 그녀는 소설로 먼저 본 은교를 더 보고
싶어했지만 눈치없이 그 전에 내가 미리 은교를 이미 봤다고 이야기를 해버렸다. 또 보고 싶다며 은교를
다시 제안했지만 그녀는 괜찮다며 어벤져스를 보아주었다.
괜찮았다. 나만.
그녀는 사실 아이언맨, 그것도 시리즈 첫 편 이외에는 히어로 영화를 아무 것도 본 적이 없어서 큰 감흥이
없던 모양이다.
간단히 라멘으로 저녁을 때우고 투썸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나흘을 쉰다며 자랑을 하니까
너무 부러워하며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지 그러냐고 그랬다. 그 말을 듣자 아차 싶었다. 아 그러게.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멍청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또 나누었다. 그녀는 잘 다니던 갤러리를 관둘거라고
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저리가라인 여자 보스의 비서로 일하는게-미란다는 업계에서
인정받는 슈퍼스타이기라도 하지- 이래저래 힘든 모양이었다. 관두고 뭘 할 생각이냐고 묻자 그냥
잠시 쉴 거라고 했다. 문득 그녀가 조금 부러웠다.
일요일, 늦잠을 잤다. 새벽에 악몽을 꾼 바람에 잠깐 깼지만 그 덕분에 더 늦잠을 자버렸다. 하루종일
몇 시간을 잤는지 모른다. 오후 2시쯤 늦은 점심을 먹었다. 라면 끓여먹으려다가 그래도 뭔가 해먹고
싶어서 냉장고를 뒤져 버섯 볶음밥을 해먹었다. 그리고 또 잤다.
일어나 잠깐 컴퓨터 좀 하다가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다들 이미 데이트 중 아니면 출근 중 아니면
주중에 못잔 잠 보충 중이다. 그래 차라리 오늘은 집에서 쉬면서 돈이나 굳히자 생각했다.
사놓고 쌓아놓기만 한 책 몇 권 좀 뒤적여보다가 또 잤다. 깨고보니 어느새 8시, 출출하길래 현재
입주한 오피스텔 1층에 있는 까페에 내려가서 샌드위치로 때웠다. 나름 허세 좀 떨려고 얼마 전 산
화이트 맥북도 같이 들고 내려갔는데, 옆 테이블의 아주 신심 깊은 여자애 넷이서 간증 토론을 하고
있길래 도저히 맥북 허세질 할 맛이 안나 잡지 좀 뒤적이며 얼른 샌드위치만 먹고 일어섰다.
그러다가 잡지에서 본 닭고기 요리 하나가 생각나 마트로 향했다.
마트로 가는 길에 꽃 가게가 보여서 해바라기 좀 있냐고 물으니 2천원이란다. 오, 한 단에 2천원
이라니 제법 싼데? 하고 4천원을 내미니 두 송이를 준다. 혼자 실없이 웃다가 뭐 그걸로도 좋다고
생각하고 두 송이를 예쁘게 포장해왔다. 오는 길에 베이커리에 들러 호밀 식빵도 하나 샀다.
마트에 갔다. 아까 잡지에서 사진 찍어둔 레시피를 확인하니 닭고기, 양파, 블랙 올리브, 소금,
후추면 된단다. 대형 마트라고는 해도 사이즈가 조금 작은 우리 동네 마트에 블랙 올리브가 있을
리 없지만 그건 대충 버섯으로 음미를 바꿔서 먹기로 했다.
닭가슴살이 유통기한이 5월 2일까지다. 그래서 50% 세일을 한다. 아… 내일 먹고 모레 먹고 하루
이틀 정도 더 넘겨서 먹으면 된다 생각하고 두 팩을 사왔다.
사실은 그 닭고기 재료만 사면 되는데 괜히 통후추에 바질에 쌈에 마늘에 표고버섯에 아몬드에
고구마에 채소에 도토리묵에 레몬에 오렌지까지 사고, 그 닭고기 요리를 담을 마땅한 그릇이
생각 안 나 사기 그릇도 하나 샀다.
짐이 엄청 무거웠다. 계산하고 보니 7만원이 넘었다. 아 닭만 사와서 가면 되는 것을 이게 다 뭐냐.
무슨 엄마표 마트 장도 아니고. 5월 2일까지 10만원 이상 구매하면 사은품을 드린다며 캐셔 아줌마가
환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괜찮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공짜 좋아하는 한국인인 이상 머릿 속으로는 또
뭐 3만원어치 살 거 없나 계산을 해본다. 아까 돈이나 굳히자 생각했던 것이 문득 떠올라 혼자 다시
실없이 웃었다.
집에 도착했다.
창문을 열고 가서 공기는 깨끗했다. 공기 청정기는 쉴 새 없이 돌이가고 맥미니는 오늘도 충실히
'라디오'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마트 장봐온 것을 정리하고, 샤워하고, 시계를 보니 밤 11시. 일요일이 저물어 간다. 하지만 괜찮다.
아직 이틀이나 휴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