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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힙합의 대부] MC회창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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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락 음악의 산 증인, 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신중현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한국 힙합의
대부는 누가 있을까. 듀스-지누션 등의 90년대 스타들을 언뜻 떠올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많은 이가 잊고 
있는, 아니 그 존재조차 잊혀져가는 '정치힙합' 장르의 살아있는 전설 MC회창을 새삼 떠올려 본다.

 

"붑, 취키취키 붑, 취키취키 붑붑, 취키취키 붑붑, 요, 취키취키치키치키 붑붑" (비트박스를 시연 중인 MC회창)


본격 코리안 정치힙합의 대부, 까지는 아니지만 작은 삼촌격까지는 충분히 되고도 남을 MC회창은 데뷔
초기부터 수트 스타일을 고수하며 두건에 잠바떼기, 펄럭이는 힙합 바지와 무릎까지 길게 뺀 힙합 벨트는
차려입어야지만 힙합인 줄 알았던 무지한 우리 조선 뮤지션들에게 본토의 힙합쟁이들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수트 간지의 힙합 뮤직을 전수하였는데 이는 팝 뮤직을 하면서도 수트 간지를 뽑냈던 Michael
Jackson의 Dangerous이나 smooth criminal에 한 합을 견주어 볼만한 조선 힙합의 소중한 발자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음악사의 거인, 故 Michael Jackson의 영향력은 한국 정치뮤직사에도 결코 작지 않은 흔적들을
남겨놓았는데, 그 대표적인 두 가지가 바로 얼마 전 7집 앨범을 낸 '한국의 MJ' 정몽준의 이니셜과 이
MC회창의 1집 앨범 '대쪽같은 남자(straight man)'의 무대요소들이다.

수트 패션에 MJ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흰 장갑을 매치하여 완연히 그에 대한
오마쥬를 드리우고 있다. 


위의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패션으로서의 MJ는 물론, 그의 인상적인 고난이도 안무 Lean 동작을
무대에 삽입하기도 했다.

Lean동작을 시연 중인 Michael Jackson과 MC회창. 


MC회창은 이런 성공적인 1집 앨범의 발매를 통해 993만 5718표…아니 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세우지만, 그해 1032만 6275장을 팔아치운 김DJ의 '국민의 정부(lover of the people)에 밀려 그 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괜찮아유"


하지만 거기서 좌절하지 않은 MC회창은 곧이어 2집 앨범을 준비하는데, 수트 간지를 뽐내던 1집 앨범
과는 달리 본격 노동자의 패션 '점퍼 패션'을 고수한다. 이는 많은 논란을 낳았는데 특히나 MC회창의
MJ화를 바라던 일부 극성팬들은 "마이클 잭슨으로 돌아가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제는 전설이 된 KING OF (HIP)POP 시위의 모습.



그는 2집 앨범에서 맹렬한 김DJ에 대한 디스와 본격 리얼 정치힙합의 진수를 선보이지만 역시 팬들을
외면한 가수가 롱런하기 힘들 듯, 뜻밖에도 신인 랩퍼 'NO라고 불리우는 남자' RHO.MH에게 그 해의
앨범상을 또 내어주게 된다. 

"체리롸우!" / "요!"


리얼 힙합을 보여주겠다고는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명문 학벌과 거대 기획사를 등에 업은 '엘리트'인 그가
고졸 출신의 한계를 딛고 일어선 리얼 갱스터 랩퍼 RHO에게 블랙 뮤직으로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시상식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심사위원들에게 독설을 날린 'NO라고 불리운 남자' RHO의 카리스마.



결국 2집 앨범은 실패로 돌아가고, 두 번의 1위 수상에 실패한 그는 결국 소속사의 마케팅 비용 문제와
내부적인 불화를 겪다못해 결국 뮤지션 은퇴를 선언하고 소속사를 나오게 된다.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수백억 단위의 마케팅 비용에 대해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소속사 측.



요즘도 그렇지만, 거대 기획사에서 나온 가수들은 언제나 금전적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데 MC회창
역시 곧바로 경제적 벽에 부딪히고 급기야는 시장통을 전전하는 일용직 노동자일까지 하게 된다.

훗날 MC회창은 이 시절을 "고되고 힘들었지만, 진정한 내 음악을 찾을 수 있었던 시절"이라고 회고
하는데 사실 고된 일보다도 연예인인 자신을 알아보고 안쓰러워 하는 대중의 시선이 더 힘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지금도, 인기를 잃고 퇴물이 된 연예인들의 안쓰러운 현실이다.




하지만 본디 복싱과 힙합의 싹은 가난을 통한 고난에서 피어나는 법. '헝그리 정신'을 몸에 익힌 그는
드디어 컴백을 선언하고 화려한 3집 앨범 '無'을 들고 나오게 된다.

자신의 오랜 팬과 함께 무대에 오른 MC회창. 둘 다 오랜만의 재회에 감격에 젖어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미 시대는 MC회창의 음악을 '오래된 낡은 것'이라 규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거대 기획사의
배경도, 열광적인 팬들도 다 사라져 있었다. 컬트적인 팬 이외에는 뭐하나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그의 음악을 '유일한 희망'이라고 하기에 이미 기존의 팬들에게는 더 젊고 강력한 '불도저' 마릴린
명박이 있었다. 마릴린 명박의 첫 싱글 'MBitious'는 천만장을 돌파했다. MC회창은 겨우 음반 제작에
들어간 돈을 회수하는데 그쳤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의 한계를 자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스스로가 최고의 스타가 되기보다, 최고의 스타를 키우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음반사를
차렸다. 그의 아직 뿜어내지 못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기로 마음 먹었다.


롤링스톤즈에게 정열의 혓바닥이 있다면, MC회창에게는 빙판같은 차가움을 내재한, 그러나 불타는
격정의 바디체크가 있었다.

레이블 로고부터가 벌써 격렬한 바디체크를 의미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격렬한 열정이 숨쉬는 곳인가…
물론 자본력과 유통망, 그 모두 갈 길이 멀었다. 그리고 끝끝내 이루지 못한 '올해의 앨범 대상' 수상에
대한 미련 역시 남을 것이다.

하지만 MC회창은 비장한 각오로 말한다.

"put your hands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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